십우도 十牛圖
김예나
새벽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 숲으로 안개까지 겹겹이 내려앉아 산길은 글자그대로 오리무중이다. 이따금씩 생각난 듯 낙엽 위로 빗물이 뚝, 뚝 듣는다. 그 고즈넉한 소리로 사위는 더욱 적막하다. 이 새벽, 지천으로 떨어진 낙엽 위로 안개가 지쳐 안개비가 내리는가? 웅얼웅얼. 사람들의 말소리가 그들의 모습 보다 먼저 내 의식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말소리가 도착하고도 한참 뒤에야 안개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으로 숨어버리는 사람들. 마주칠 때마다 주춤 놀라면서도 턱없이 반갑다. 날씨가 이렇게 궂은 날 하루쯤은 걷는 일을 그만 둘 걸 그랬나 했던 좀 전까지의 후회를 털어 내고 나는 내딛는 발길에 새삼스럽게 힘을 준다. 보리를 집에 두고 온 것은 잘한 일 같다.
“걸어요. 걷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그렇게 작심하고 걸어요.”
침을 꽂을 때마다 다짐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어두운 숲 속에서 주술처럼 내 등을 밀어낸다. 나무들은 벌거벗고 서 있으면서도 추위에 움츠리지도 않고 어둠이 두려워서 허리를 굽히지도 않는다. 나는 안개 속에 의연하게 서 있는 젖은 나무의 맨 몸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그 당당함을 가슴에 새긴다.
다시 걷는다. 젖은 낙엽은 밟혀도 아프다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아, 이 몸은 머지않아 땅 위에 누우리라.
의식을 잃고 쓸모없는 나무도막처럼 버려져 뒹굴 것이다.
발밑에 스러지는 낙엽더미 속에서 법구경 한 도막을 나는 주어 올린다. 안개에 젖고 땀에 젖은 옷이 촉촉해질 즈음 산의 정상에 다다른다. 문득 시야에 들어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 안개 때문일까. 하반신을 구름 같은 안개 속에 묻은 채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의 동작이 한없이 몽환적이다. 낮게 울리는 파륜궁의 훈령을 듣지 못 했다면 정령들의 춤사위로 여겼을 법하다. 하늘을 향해 한꺼번에 내뻗는 손들이 안개 속에서 유난히 희다. 십일월의 바닷가, 그 갯가에서 몸살을 대며 뒤흔들리던 갈대의 눈부신 흰 손을 나는 거기서 본다. 처연하다.
아침
"뜨거운 국 한 그릇 마신 만큼은 온기가 돌 겁니다.”
나는 눈을 감고 반듯하게 누워 있다. 침을 꽂은 엄지발가락으로부터 미미한 더운 기운이 종아리를 지나 아주 천천히 허리께로 올라온다. 빈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연기. 의사는 눅눅한 수건 한 장을 배 위에 얹어주고, 한 이십 분 정도만 움직이지 말고 누워 있으라면서 진찰실로 사라졌다.
좀 과로했다 싶으면 으레 도지곤 하는 허리 통증에 길들여진 탓일까. 앉으면 꼬리뼈가 치받고, 일어서면 발뒤꿈치로부터 허벅지까지 힘줄이 잡아당겨 걷기가 힘든 증세가 나타나고도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주일이 넘도록 나는 핫백만 엉덩이 아래 깔고 누워 견뎠다. 그 틈을 비집고 보리란 녀석은 내 겨드랑이에 주둥이를 박은 채 덩달아 게으름을 피웠고 나는 그런 녀석의 체온을 즐기며 애써 통증을 외면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다고 작업을 아주 작파할 수는 없었다. 속이 쓰리도록 타이레놀을 움켜 삼키면서 틈틈이 닥종이를 붙여나갔다. 약속한 소품을 갤러리 <느낌>에
갖다 주던 날,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통증은 날카로운 이빨을 사정없이 드러냈다.
“내가 너무 닦달을 했나보다. 승희씨 얼굴 많이 상했네.”
칭찬이 흔하지 않은 이 여사가 유독 동자승의 얼굴 표정이 신선하다면서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아주 짧은 동안 통증을 잊고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이 여사의 칭찬도 진통을 오래 지속시키지는 못 했다. 이제 통증은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신경 줄을 뜨겁게 지져댔다.
상가수첩에서 알아낸 정형외과를 찾아가던 길목에서 나는 정형외과 보다 먼저 한의원을 만났다. 희망한의원. 우연히 마주친 한의원은 아주 강한 자력으로 나를 손짓했다. 왜 처음부터 침 맞을 생각을 못 했을까. ‘희망’이라는 한의원의 간판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아무 근거도 없이 홀가분하게 통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가슴이 뛰었다. ‘희망’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얼마나 낯설고 먼, 꿈속에서조차 품어본 적이 없는 꿈인가.
요란스럽게 삐걱거리는 낡은 엘리베이터로 3층까지 올라갔다. 한의원 문을 밀고 들어서던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나를 놀라게 한 건 허름한 건물 외벽에 매달린 초라한 간판에 비해 제법 넓고 쾌적한 실내가 아니라 그 넓은 실내에 그들먹하게 들어찬 환자들의 숫자였다. 게다가 이미 오전 진료 신청 시간은 넘어 있었다.
“오후 진료는 두 시부텁니다.”
내가 접수대로 다가가자 사람에 치인 간호사는 숫제 얼굴을 들지도 않은 채 나를 밀어냈다. 나는 접수대에 상채를 기댄 채 꼬리뼈에 끈덕지게 매달리는 뜨거운 통증을 달랬다.
“많이 아프세요?”
그제야 겨우 얼굴을 든 간호사가 성가신 눈빛으로 내 기색을 살폈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 접수하셔두 한 시간 훨씬 더 기다리셔야 하는데 참을 수 있겠어요.”
간호사의 건조한 음성에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간호원이 시키는 대로 내 인적사항에 관한 긴 설문지를 작성했다. 뜻밖에도 의사는 앳되고 풋풋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한의사라는 일반적인 정형을 우습게 흔들어놓았다.
“미혼이세요?”
내가 작성한 설문지를 눈으로 꼼꼼히 읽어나가던 의사가 흘깃 나를 쳐다본다.
“자아, 어디 보십시다.”
미간을 잔뜩 모은 채 의사가 골똘하게 나의 맥을 짚는다.
“천만다행 이예요. 이 몸으로 시집갔으면 아기 못 낳는다고 분명 시어머니한테 쫓겨났을 거 에요.”
갑자기 내 가슴에서 젖줄이 아프게 금을 긋는다.
“이쪽으로 와서 누워 보세요.”
나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진찰대 위에 누웠다. 수맥을 찾듯이 내 몸뚱이 여기저기를 골똘히 짚어나가면서 의사는 한숨처럼 휘파람 소리를 길게 흘렸다.
“온 몸에 얼음이 빈틈없이 박혀 있어요. 여기, 여기, 여기...이게 모두 냉기에요. 꼭 냉동인간 같군요.”
의사의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미처 몰랐던 통증이 날카롭게 손톱을 세운다. 나는 진찰대 위에 무기력하게 누어 몸의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통증을 대책 없이 견뎠다. 아프면 아픈 대로 혼자서 견디기만 했지 병원이나 한의원등을 찾아가 본 적이 없는 나는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통증조차도 낯설기만 했다.
“우리가 찍는 사진 말입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목표물인 피사체, 예를 들어서 인물이라든지 풍경, 혹은 건물들은 뚜렷하게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 사진 안에 흐르고 있는 추운 공기나 더운 기류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지요? 온도가 찍혀 나온 사진 보신 적 있으세요?
바꾸어 말해서, 사람들마다 병원에 가서 아무리 엑스레이나 MRI까지 찍어 봐도 체온에 관한 것은 알아낼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 한방에서는 우리 몸의 한열寒熱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함승희씨처럼 이렇게 몸이 냉한 사람도 문제지만 몸에 열이 너무 많아도 병이지요. 냉증이란 흔히 부실한 산후 조리의 후유증으로 생기게 마련인데 체질에 따라서는 이렇게 생래적인 사람도 있긴 하죠.“
대기실에서 기다린 한 시간 반이 아깝지 않을 만큼 의사는 오래 진맥을 하고 진맥한 내용을 낱낱이 설명까지 해주었다.
“지금 함승희씨는 침을 맞을 단계가 아닙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티코만한 차가 엔진이 꺼져가고 있는데 타이어만 새 것으로 갈아 끼운다고 그 차가
굴러가겠습니까? 우선 온 몸에 웅크리고 있는 이 얼음부터 녹힙시다”
적어도 육 개월 동안은 첩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침은 그런 다음에야 생각할 문제라는 처음의 그의 주장은 나의 집요한 사정으로 사십 일 만에 수
정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금요일, 나는 눅눅한 수건을 배에 얹고 엄지발가락과 복숭아 뼈 옆으로 침을 꽂고 이 간이침대에 누워 있다. 두 번의 금요일과 한 번의 월요일이 지나갔다. 아직도 나는 꼬리뼈의 통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정형외과를 찾아가 물리치료를 시작할 생각은 없다. 내게 세상은 늘 낯설다. 새 사람을 만나 새로운 교통을 만드는 일이 내게는 꼬리뼈의 통증을 견뎌내는 일 만큼이나 힘들다. 이 ‘희망 한의원’만이 내게는 ‘희망’이라고 나는 여긴다.
낮
침을 맞고 돌아오면서 입이 짧은 보리를 위해 스팸을 한 통 사왔다. 보리는 밥을 좋아한다. 보리가 아보덤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라면이나 빵을 싫어하는 내 식성을 닮았다. 스팸을 잘게 다져서 물에 말은 밥과 섞어 주었더니 두 큰 술이나 달게 먹는다. 꼬리를 찰랑거리며 빨간 혀로 물 말은 밥을 할짝거리는 보리를 바라보며 문득 그를 떠올린다. 열대어에게 먹이를 뿌려주고 뿌려준 먹이를 열대어가 다 먹을 때까지 수족관을 지키던 그. 따듯한 그리움이 엄지발가락에 침을 맞고 누었을 때처럼 가슴으로 서린다.
자칫 비감해지려는 기운을 떨쳐내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 어쩌면 나는, 마주 앉아 밥을 나누어 먹을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가슴이 쓰리다. 밥을 비빈 매운 고추장 탓이다. 나는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눈물을 손등으로 훔친다. 맵다. 사는 일이 고추장만큼이나 맵다. 보리가 빨간 혀를 내밀어 내 손등을 핥는다. 녀석의 혀가 참 따듯하다.
오후
서남향으로 난 내 창으로 햇빛이 흘러넘친다. 나는 부신 눈을 반쯤 뜨고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역광으로 찍은 사진처럼 윤곽이 흐리고 하얀 내가 유리창 안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본다.
‘너 자유롭니? 짐짝 같은 아버지가 없는 지금 온전히 자유로우냐고?’
마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눈물 위에서 햇살이 반짝인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아버지는 늘 무표정한 얼굴로 창문만 바라보았다. 고통스럽거나, 화를 내거나 더더구나 고독하지 않은 얼굴. 씻은 무처럼 그냥 말갛기만 하다. 밥을 먹여주면 말없이 받아먹었고, 혼자 잡수시라고 내버려두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어눌한 손놀림으로 그릇이 빌 때까지 먹는 일을 계속했다. 좁은 집안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체취와 섞여진 반찬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아직도 반 넘어 남은 밥그릇을 치워도 아버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허기는 물론 추위도 더위도 느끼지 않는 얼굴이었다. 등창으로 왼쪽 옆구리가 깊이 곪아가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하루 종일 창문만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창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아버지가 돌아간 뒤 나는 이따금씩 아버지가 그랬었던 것처럼 창 앞에 서서 과거가 된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날들이 한 천년이나 더 전에 있었던 일같이 아득하다. 바닷가에 사는 어부의 딸 클레맨타인 같이 나는 실제로 아버지와 둘이서만 살았었던가. 살았던 것으로 내가 긴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살았던 것이 실재라면 그것들은 어떤 시공時空을 가지고 있을까. 보리가 내 발등을 핥는다. 저를 알은 체 해주고 같이 놀자는 수작이다.
“아직도 내가 그렇게 못마땅하세요?”
가끔 말없는 아버지를 향해 못질을 해대도 창문을 향한 아버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이 나이에 아버지와 매일 씨름하며 늙어 가는 딸자식을 보시면서 아무 것도 느끼시지 못 한다곤 못 하시겠죠?”
종 주먹을 대도 아버지는 침묵할 뿐이었다. 치매였을까?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신의 의식을 놓아버릴 분이 아니시다.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한테 칭찬을 들은 기억이 내겐 없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기 때문에 유년시절은 물론 성년이 된 후까지 나는 늘 아버지 앞에 서면 주눅이 들었다. 아버지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할 때면 턱이 덜그럭거렸고 손이 떨려 바로 앞에 있는 물건도 집어 올리지 못 했다.
어머니가 그리운 만큼 원망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다섯 살의 어린 딸을 두고 생명줄을 놓아버린 건 어떤 이유를 내밀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늘 어머니를 단죄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세 명의 여자가 아버지의 아내로 들어왔었지만 삼 년을 넘긴 여자는 한 명도 없다. 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 그녀들이 늘 한없이 부러웠다.
저녁
잠든 보리 옆에서 작업을 한다. 가능하면 90도의 자세로 앉기 위해 두툼한 등받이를 허리에 고인다. 작업을 하는 동안은 내 영혼이 기쁨에 젖어 웬만한 통증은 잊는다. 동그스름한 머리에 잘록한 허리. 닥종이를 입힌 철사로 뼈대부터 만든다. 뼈대 위로 닥종이를 붙여나가는 일은 마치 반복하며 절을 하는 것과 같다. 한결같되 마음에서 울어나는 기쁨과 함께가 아니라면 단조로운 이 작업을 몇 년씩 해오지는 못 했을 것이다.
한 장, 또 한 장. 나는 늘 법당에 들어가 절을 올리는 마음으로 닥종이를 부쳐나간다.
“승희 손은 신의 손이야! 고 작은 손으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내지!”
그는 항상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기뻐하고 감격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늘 몸에서 추위가 떠나질 않았다. 한 여름에도 양말 속에서 발이 시렸고 땀을 흘리면서 등이 시렸다. 그가 내 몸 속에 한기를 걷어냈다.
그를 알고부터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렸다. 몇 겹으로 걸어 닫았던 마음의 빗장을 한 겹씩 풀어냈다.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가 두렵지 않았다.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도 있다는 발견은 참으로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녀석은 안 된다!”
어떤 부연 설명도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증오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이다. 그 분이 두려운 존재이긴 했지만 미워해 본 적은 없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반역이 비로소 내 안에서 용트림 치기 시작했다.
밤
통증이 다시 심하다.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의자에 깊숙이 들어앉아 눈을 감는다. 이 꼬리뼈가 기어이 나를 주저앉힐 심사인가. 승부근성이 내게는 없다. 나를 향해 날아드는 수모든지 고통을 참아낼 수는 있지만 싸워 이길 자신은 없다. 나는 누구와 승부를 겨루는 일도, 여러 사람이 모인 앞에 나서는 일도 딱 질색이다. 그와 함께 있었던 열일곱 달, 그 시간만 제외하곤 늘 남의 시선이 덜 모이는 곳만 피해서 살아왔다.
눈을 뜬다.
검은 창문으로 내 방이 떠오른다. 작업대 위에 어수선하게 늘어놓은, 이제 겨우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뼈대, 닥종이, 풀, 철사, 내 발 밑에서 잠든 보리까지 뚜렷하게 비친다. 늘 내 마음 안에 살고 있는 그의 모습도 그 안에 있다.
“안녕하세요?”
그의 음성을 꼭 닮은 구관조는 수족관을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늘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반들반들한 검은 자색의 날개 끝으로 흰 깃이 눈부시게 꽂힌 구관조는 수족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는 일로 항상 분주하게 머리를 흔든다. 고막도 없고 사람처럼 밖으로 이어진 귀도 따로 없지만 속귀가 발달된 열대어들은 구관조가 인사할 때마다 덩달아 수족관 수면으로 떠올라 인사를 하듯 주둥이를 뻐끔거린다.
그런 열대어들을 소중하게 다루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걸 나는 좋아했다.
특히 열대어에게 먹이를 주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 절대로 그는 먹이를 서둘러 획 뿌려주고 매정하게 돌아서지 않는다. 언제나 사랑이 듬뿍 담긴 손길로 먹이를 골고루 넣어준 뒤에도 그 안에 있는 열대어들이 넣어준 먹이를 다 먹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지켜보곤 한다. 충분한 수면水面, 적당한 광선, 적절한 물의 온도, 알맞은 수질水質, 정확한 먹이를 체크하고 보완하는 일에 그는 온 몸을 다 바쳤다. 시신경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열대어들도 그만은 알아보았다.
어쩌다 열대어가 병이라도 나면 간호하는 그의 정성은 지극하다.
한 번은 엔젤 피시가 눈병이 났다. 엔젤 피시는 그가 각별히 사랑하는 열대어다. 이 열대어는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는 절대로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 번 짝짓기를 한 상대에겐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굳게 정절을 지킨다.
엔젤 피시는 금방이라도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눈망울만 위태롭게 껌뻑이면서 몸을 잘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럴 땐 바닷물이 있으면 젤 좋은데...”
우선 그는 깨끗한 물이 든 다른 어항으로 엔젤 피시를 조심스럽게 옮겨 놓았다.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소금물 치료로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으니까.”
그는 겁먹은 얼굴로 어항을 들여다보는 내 코를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그렇지만 소금물을 한꺼번에 너무 진하게 타는 것은 금물!”
그는 또 한 번 내 코를 잡았다 놓으면서 검지를 세워 시계추처럼 내 얼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물 4 리터에 차 스푼 5개 정도의 소금을 풀어 주되 두세 시간마다 한 스푼씩 점차적으로 넣어주란 말이지.”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영리한 구관조의 재롱을 즐기며 열대어를 지극한 사랑으로 기르는 그를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저녁 그의 피로한 발을 내 손으로 씻어주고, 가끔은 절을 찾아가 무릎 꿇어 절을 하면서 일몰처럼 겸손하게 살고 싶었다.
눈가에서부터 꼬리까지 짙게 그어진 푸른 선이 불빛을 만나면 네온처럼 빛을 내뿜는 네온테트라, 가슴에 돋아난 오렌지 빛깔의 긴 수염이 일품이면서 빨강, 오렌지, 블루같은 혼인색이 나타날 때면 현란하게 아름다운 비단구우라, 암컷의 관심을 받아보려 온갖 아양을 다 부리는 로지 테트라의 수놈. 모두 잊을 수 없는 나의 사랑들이다.
“이 디스커스(원어圓漁)를 보면 승희 같애.”
수초 뒤에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 디스커스를 가리키며 그가 웃는다.
“겁장이라서요?”
“겁장이라기 보다는 평화애호가지.”
놀라기를 잘 해서 수족관 유리에 심심찮게 코를 다치는 디스커스. 심한 공포감으로 죽기까지 하는 디스커스는 세상을 한 번도 정면으로 대면해 보지 못한 나의 전생이었을까.
보리가 발등을 핥는다. 그만 불을 끄고 같이 자자는 뜻이다.
나는 자리에 눕는다. 핫백의 뜨거운 기운이 꼬리뼈의 통증을 어루만져 준다. 대퇴부의 골절로 쓰러진 아버지는 삼 년 이 개월 만에 돌아갔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나의 꼬리뼈는 왜 이렇게 끈질기게 아픈 걸까. 희망 한의원의 원장 말대로 내 몸 구석구석에 박힌 얼음덩이가 문제일까.
식사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가면서 아버지는 물기라곤 한 방울도 없는 미이라처럼 바싹 야위어 갔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초조해서 갈팡질팡하는 나와 달리 아버지의 눈빛은 변함없이 꼿꼿했다.
“아버지!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세요?”
나는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의연한 아버지의 태도를 더는 참을 수 없어 어느 날 느닷없이 달려들었다. 아버지가 내 손을 붙잡고 울며 용서를 구하지는 못해도 어떤 형태의 변명이라도 그 입을 통해서 직접 듣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는 그가 죽어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죽을 권리가 없다. 나는 휠체어를 잡은 아버지의 앙상한 손가락이 눈빛 대신 흔들리는 걸 놓치지 않고 더욱 사납게 퍼부었다.
“왜 평생 날 미워하셨어요? 엄마가 자살했던 게 내 탓이었나요?”
아버지가 날 선 시선으로 나를 흘깃 올려다본다. 이렇게 아버지 앞에서 정면으로 엄마 얘기를 꺼내보긴 처음인 것 같다.
“나도 아버지와 똑 같은 피해자 아닌가요? 아니, 오히려 엄마가 돌아가신 뒤 힘들게 살기는 아버지 보다 어린 내가 아니었나요?”
아버지의 얼굴로 흘깃 비웃음이 지나간다. 내 안에서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새삼스럽게 치솟는다.
“여자들을 세 번씩이나 집 안에 들여놓을 때 단 한 번만이라도 내 의사 따윌 물어본 적이 있나요? 그런 아버지가 무슨 자격으로 내 결혼에는 그렇게 발 벗고 나서서 간섭을 했죠?”
분노가 컥컥 말문을 막았지만 나는 짐승처럼 계속 소리를 질렀다.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미쳐버리고 싶었다.
“놓쳐버린 엄마 대신에 마지막까지 절 이렇게 아버지 죽음 옆에 붙잡아두시니까 흡족하신가요? 내 아이까지 죽이면서 꼭 나만을 고집했던 이유를 밝혀 보시라구요!”
나는 발을 구르며 악을 썼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을 죽이고 있다는 말까진 그 분노 속에서도 참아 넘겼다.
어느 순간 유리창에 비친 아버지의 얼굴에서 나는 눈물 줄기를 발견했다. 음흉한 노인네! 나는 현관문을 모질게 매다 부치고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버지를 향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어 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목에서 피 냄새가 올라올 때까지 달렸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절 집 앞마당이다. 가끔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산책을 다니면서 여기 포교원이 있네, 하고 놀란 적은 있지만 임대 아파트만 촘촘히 들어선 동네 한 복판, 야산 아랫자락에 언제부터 이 포교원이 자리 잡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씩씩거리며 대웅전을 노려보았다. 언제 관세음보살이 나의 편이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대답 대신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 한다. 나는 신발을 탁탁 털어 내며 절 집을 다시 나섰다.
“이왕 오신 김에 부처님께 인사나 여쭙고 가시잖고?”
포교원 문을 막 나서는 내 발목을 한 낮은 목소리가 잡는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은 채 그냥 뛰었다. 나는 살인자다. 그것도 친 아비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죽이는 패륜아다.
해가 꼴깍 저물 때까지 나는 산길을 헤맸다. 기운이 탈진하면서 분노의 불길도 스러져 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나는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아욱국을 끓였다. 내가 먹이는 대로 자반고등어 반쪽에 국 한 그릇을 아버지는 다 비웠다. 아버지와 나는 평상시와 똑 같이 뉴스를 보고 연속극까지 본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 일주일 뒤에 아버지는 돌아갔다.
그 날 아침,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예감했다. 나는 평상시 보다 훨씬 공을 들여 아버지를 씻겼다. 그 분의 환갑 때 마련했던 한복을 입혔다. 벌써 삼 일 째 보리차만 마시고 곡기를 끊은 아버지한테서는 더 이상 이 세상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살빛이 깨끗하던 아버지의 얼굴에선 숫제 빛이 났다.
“날 용서하지 말아다우.”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다. 기력이 쇠잔해진 것 말고는 아버지의 말씨는 여전히 차분하고 또렷했다.
다시 새벽
산길을 내려온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숲은 오늘따라 환하다. 벌써 주말인가? 오가는 사람들이 별스럽게 많다. 빨리 걸으려는 내 발길을 여전히 꼬리뼈의 통증이 잡고 늘어진다.
절 집 앞을 지난다. 늘 그렇듯이 정갈하게 비질이 된 큰 법당 앞마당엔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갑자기 치솟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조용하다. 단정하게 닫힌 대웅전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잠깐 호흡을 조절해 보았지만 역시 문을 열고 안을 기웃거릴 용기는 없다. 전면 문을 지나 오른 쪽으로 벽을 따라 걸었다. 쪽문도 닫혀 있다. 날렵하게 뻗어나간 팔작지붕 아래로 십우도.十牛圖*가 그려져 있다. 소를 찾는 심정으로 그림을 따라 가며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았다.
소를 찾는다(尋牛)-본래 잃은 바 없는데 어찌 이리저리 쫓아다닐 필요가 있으랴!
발자국을 보다(見跡)-경.經으로 뜻을 알고 교.敎를 보고 발자국을 안다.
소를 보다(見牛)-소를 따라 들어갔네. 보자마자 거기서 근원을 만났네.
소를 얻다(得牛)-오랫동안 푸른 들판에 묻혀 있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소를 만났네.
소를 기르다(牧牛)-코에 낀 밧줄이나 단단히 끌고 가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네.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騎牛歸家)-소 등에 몸을 싣고 저 하늘 바라보니 불러도 돌아 서지 않고, 붙잡아도 머물지 않네.
소를 잊고 사람만 남다(忘牛存人)-집에 돌아와 소를 잊는다. 법에는 둘이 없는 것. 소를 잠시 비유로 삼았을 뿐.
소와 사람 둘 다 잊었다(人牛俱忘)-범부의 정도 성인의 뜻도 다 비웠다. 어느 쪽에도 끄
달리지 않으니 천안.千眼인들 눈치 채랴.
본래의 근원에 돌아가다(返本還源)-무척이나 공들여 근본 자리로 돌아왔네. 본래 청정하 여 한 티끌도 용납지 않는다.
시중에 들어가 중생을 돕다.(入廛垂手)-가슴 풀어헤치고 맨발로 저자 거리로 왔네. 먼지 묻은 얼굴에 웃음 가득하고, 술장수 생선장수 모두 성불한다.
아무 의식 없이 세상과 더불어 살던 사내는 진리를 찾기 위해 숱한 고난을 겪는다. 애써 찾은 소를 잘 길들여서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그 소가 자기와 함께 있음을 잊어버리고 천진한 기쁨 속에 살다가 때가 되자 기쁨에 잠긴 자기 자신까지도 마침내 놓아버린다. 그렇듯 마음을 완전히 텅 비운 채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던 사내는 어느 날 다시 자진해서 복작복작한 세상 밖으로 뛰어든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사는 일이 바로 사내가 찾아낸 바른 삶의 길임을 가리켜주는 것 같은데 그 과정이 생각만으로도 숨이 차다.
먼지 묻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채, 가슴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시장 바닥에 선 사내의 모습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 가슴으로 고스란히 옮겨 앉았다.
지난여름 그를 만났다.
장마가 열흘 이상이나 계속된 도시는 온통 더위와 비에 함몰되어 허우적거렸다. 나는 갤러리 <느낌>에 들러 새 일거리를 받았다. 모처럼 받은 일거리가 음습한 우기의 우울함을 씻어 주리라는 기대로 나는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도 짜증스럽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한창인 지하철역은 사람들로 붐볐다.
땀과 비가 뒤섞인 역한 비릿한 냄새가 폭발할 것처럼 그들먹하게 들어찬 지하로 내려가면서 나는 빗물이 흐르는 우산을 접었다. 그가 내 시야에 들어선 것은 바로 그 때이다. 십사 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나는 한 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내게 있어서 그는 아버지처럼 과거가 아니었다. 늘 내 영혼과 더불어 살고 있는 현재였다.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명이 들리도록 주위의 소음이 한꺼번에 숨어버렸다. 한 무리의 열대어가 노니는 수족관 앞에서 웃고 있는 그의 어깨 위에 구관조가 올라앉았다. 네온 테트라, 비단 구우라, 로지 테트라, 엔젤 피시...한 눈에 보아도 모두 알만한 녀석들이 수족관 안에서 신나게 헤엄을 치고 있다. 사진 찍히는 일이 무서웠나? 디스커스는 여전히 수초 뒤에 숨어 있다.
‘열대어 박물관으로 오세요.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이 여기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어깨를 부딪치면서 나는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 사람이에요! 바로 이 이가 내가 늘 못 잊어 그리워하던 그 사람이라구요. 내 아버지가 아니었더라면 이 사람은 내 아기의 아버지가 되었을 거 에요. 나는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그래요! 당신이라면 잘 살아줄 거라고 믿었지요. 유산된 아기의 핏덩이를 두 손에 움켜쥐고 흐느껴 울던 당신.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주어서 고마워요. 나는 그의 사진 밑으로 인쇄된 인터넷 홈페이지의 주소를 쓰다듬듯 읽고 다시 읽었다.
가을이 다 가도록 그는 그 지하철역에 있었다. 나는 가끔 그를 만나러 그 지하철역으로 일부러 나가곤 했다. 이제 그는 그곳에 없다. 내가 사랑한 그 사람. 이제 더 이상 그는 ‘현재’가 아니다. 아버지처럼 그도 과거가 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의 홈페이지를 찾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간 지 일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용서하지도 내 불효를 용서 빌지도 않는다. 혹시라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조금만 나약했더라면 난 진작 아버질 용서할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아버지는 그냥 과거일 뿐이다. 물론 아직도 나는 가끔 그 과거 때문에 가위에 눌린다. 그러면서도 과연 아버지는 내 인생 안에 실재했던가를 의심한다.
이 밤도 나는 어두운 창문을 마주하고 앉아 작업을 한다. 어두운 창문에는 여전히 나의 방이 가득하다. 나는 지금껏 이 방안의 일밖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 바깥세상을 궁금해본 적이 내겐 없다. 그런데 이 밤 불쑥 십우도의 열 번째 그림 속의 사내가 어두운 창문 너머에서 서성이는 걸 알겠다. 가슴을 풀어헤치고 먼지 묻은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 사내. 신선의 비결조차 쓸 필요 없이 그냥 저절로 고목에 꽃이 피게 한 사내의 얼굴이 창문 너머서 내게 연신 손을 흔들고 있는 거다.
아직 참선하지 않을 때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이었다.
나중에 참선을 하고 깨달은 바 있고 난 뒤에
산을 보니 산이 아니요, 물을 보니 물이 아니게끔 되었다.
그런데 이제 이 마지막 궁극적인 자리를 알고 나서
다시 산과 물을 보니 여전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아까 절집을 나서면서 문가에서 집어온 법보를 펴서 읽어본다. 이 방 바깥세상의 일이라면 산인지 물인지의 구분조차 아리송한 내겐 너무 어려운 말이다. 법보를 접어 옆으로 밀어놓으면서 다시 창문을 바라본다. 닥종이로 한껏 어질러진 방 너머엔 좀 전에 사내의 손짓도 없고 어둠만 가득하다.
나는 어두운 창을 마주하고 앉아 그 어둠보다 더 깜깜절벽인 바깥세상을 내다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꼭꼭 닫아걸었던 마음의 빗장을 비장한 마음으로 끌러낸다. 먼지 묻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맨발에 사내, 그 사내가 생선장수 술장수까지 성불을 하도록 도와주었다는 세상. 성불은 아무나 하나. 그냥 무릎이 닳도록 절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극락인 것을.
나는 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더듬더듬 어둠 속, 세상 밖으로 어렵사리 발길을 내 딛는다.
*李箕永 역해 『十牛圖』를 참고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