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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환換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2. 14. 19:00

길 위의 환換

이수정

코바늘을 걸다 말고 일어선다. 엄지손가락만 뜨면 될 노란 벙어리장갑이 봉분처럼 솟아있다. 희붐하게 창을 가리는 눈발을 보려고 만삭의 배로 발돋움한다. 벌써 언덕길 잔디가 빛물결을 짓는다. 나정은 벽에서 얼른 코트를 떼서 걸치며 머리까지 목도리를 감는다. 그새 아기가 배가 삐딱하도록 발길을 내지른다. 아랫배를 쓸며 지난겨울에 뜬 인식의 스웨터를 어깨에 두른다. 비닐로 바람구멍을 막은 부엌 쪽문을 밀치고 블록이 드러난 계단에 선다. 한 층씩 높낮이가 다른 삐딱한 계단을 오르며 왼손으로 허리를 바친다. 시멘트벽을 짚은 오른쪽 손끝이 아리다. 그래도 종아리에 힘주어 조심스레 계단을 딛는다. 비닐 장판과 폐타이어를 인 지붕들이 얼기설기 얽힌 동네가 내다보인다. 세 계절을 함께 한 산동네가 소박하고 웅숭깊게 첫눈을 포옹하고 있다.

첫눈 오면 돌감 따 줄게.

돌감의 달고 쫀득한 입감이 침샘을 자극한다. 지난가을 분홍빛 감이파리에 사랑해라고 적었다. 한글 익히는 아이처럼 삼 음절을 적는데 하룻밤을 보냈다. 인식에 대한 그 많은 감정을 담은 말이 세 글자뿐이었다. 모든 것이 통하는 단어를 걸러내며 나정은 비로소 살고 싶어졌다. 아직도 돌감이 남아 있을까. 유난히 늦은 첫눈에 맘이 급해진다. 저만치 할머니 가게 연통이 처마 밑으로 모가지를 내밀고 연기를 내뿜는다. 벌써 얼큰한 취객이 소변보러 가게 뒷마당으로 사라지고 있다. 오후가 익어간다는 신호다. 나정은 힘겹게 마지막 블록에 발을 놓는다. 그때 연탄집게 든 할머니가 휙 돌아선다.

그 몸으로 어데 가노. 자빠지면 우짤라꼬.

대답 대신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언덕배기에 올라선다. 다시 할머니 참견이 날아든다. 담뱃불로 수놓은 누빈 고무바지 차림의 할머니는 중국 며느리가 사준 털조끼를 껴입고 나정보다 더 부른 배를 디밀고 섰다. 끝이 오그라든 연탄집게로 허공을 찌르는 할머니 말소리가 귀에 붙지만 싫지 않은 관심이라 나정도 대꾸한다.

첫눈이잖아요.

처음 아인기 어딨노. 우리 영감 죽은 거도 내 칠십 여섯 묵은 거도 만날 오는 오늘도 다 처음이제.

할머니 뒷말이 두렵다. 오늘은 무슨 말로 가슴을 질러 놓을지. 할머니의 목단 꽃무늬 조끼를 스치며 바쁜 척 종종걸음을 뗀다. 나정을 위한다는 게 달팽이 배춧속 파듯 할머니 매운 입은 늘 손톱 끝을 후벼 파놓고서야 끝이 났다. 나무들이 줄지은 내리막에 발을 놓는다. 하얀 나무들이 같은 듯 해도 나정은 그들의 낱낱을 기억한다.

내 참 삐딱하이 짤라라 캐도. 그래야 지대로 붙을 꺼 아이가 어이.

지난여름 고욤나무와 접붙인 단감나무가 몇 남은 삐죽한 가지에 흰 눈을 이고 있다. 재개발단지를 쩌렁쩌렁 울리던 할머니 더운 입은 지금도 할 말이 남아 뜨거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둘러 나무들을 지나친다. 휘영청 수양버들과 여태 잎 떨구지 않은 사철 푸른 나무, 앙상한 가지만으로도 괜찮은 모양새를 갖춘 은사시를 뒤로 하고 오른쪽 커버 길로 돌아간다. 학생들이 떠난 중학교에 층마다 소음 대신 눈이 쌓인다. 늘 벌떼 같이 비슷한 음계의 소리가 윙윙대던 곳이라 조용한 게 오히려 어색하다. 건물 뒤편에는 담배 피는 아이들이 꼭 있기 마련이었는데.

얘들아 담배 피지 마. 그거 무지 안 좋은 거야.

인식은 이곳을 지날 때면 움푹 팬 눈을 더 크게 홉뜨며 말을 했다. 아이들의 비웃음도 아랑곳 않고 꼭 그 말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나정이 옆구리를 끼며 당겨도 꼭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도 훈계할 인식도 없이 혼자 길을 내려간다. 저만치에서 면이 있는 남자의 어깨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가게 할머니의 화가인 큰아들이다. 아마도 밤샘 작업을 하고 오는 길이리라. 할머니가 어떻게 저런 아들을 낳았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조용한 사람이다.

어디 가시게요?

손을 젓는다. 나정은 저도 모르게 그만 보면 손사래를 치게 된다. 괜찮다는 표시로 알아차렸는지 피차 곤란하기 때문인지 그도 어쩌지 못하고 오르막을 향한다. 몇 발짝을 더 내려가 승강장에 닿는다. 주머니가 가볍다. 스웨터를 두르며 서랍장 위에 그만 지갑을 둔 것이다. 몇 번을 뒤져도 빈 주머니가 채워질 리는 없다. 돌아가면 다시 못 내려올 것 같아 언덕길을 돌아본다.

저기요…….

눈발이 굵어지다 눈에 날아든다. 오해할까 봐 나정은 얼른 뺨을 훔친다. 그도 돈을 꺼내며 눈길조차 맞추지 않는다. 만원만 빌려 달랬는데 파란 지폐 석 장을 건넨다.

집에 가면 드릴게요.

마을버스에 오르며 뒤통수에 말을 던진다. 버스 안에서 갈색 헤링본 코트에 눈을 단다. 그의 등에 인식이 걸려 있다. 사람의 등은 누구나 저럴까. 저리 왜소한 걸까. 곁을 잘 내주지 않는 사람인데 인식에게 각별했던 그의 등에 흰 눈이 앉는다.

새댁 여기 앉어. 홀몸도 아닌디.

자리를 내주는 아주머니 덕에 겨우 코트에서 눈을 뗀다. 버스가 초등학교를 지나 시장통에 멈춘다. 연이어 바뀐 파란불에 큰길을 건넌다. 여름내 떡볶이와 손칼국수로 배를 불리던 기억에 침샘 작용이 활달해진다. 인식은 칼국수에 양념장을 꼭 두 숟가락씩 끼얹었다. 해롭다고 말려도 그것만은 듣지 않았다. 경상도 특유의 짠맛을 즐기는 인식에게 ‘할매칼국수’는 고향의 맛인가 보았다. 할머니의 사투리 욕지기로 간을 한 칼국수가 살짝 거슬렸지만 먹을수록 멸치 다시와 깊은 손맛에 나정도 단골이 되고 말았다. 인식은 부대낄 때마다 휘는 몸을 할머니의 다시 국물로 추스르곤 했다. 나정은 미각에 끌려 가게로 들고 싶었지만 곧 저물녘이라 참는다.

버스가 터널을 빠져나오자 겨우 산 아랫마을이다. 길은 늘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뱅뱅 돌아온 곳이 결국 그곳이니까. 아랫동네 길이 오늘따라 꽤 넓다. 맨 처음 이곳으로 흘러들 땐 이런 데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은 외진 곳이었는데 오늘따라 희멀건한 도로며 가게들이 제법 도시 티를 내고 있다. 학생도 많고 거리에 생기가 넘친다. 왜 이리 밝은 걸까. 기분 탓일까. 얼마지 않아 행복한 교회 첨탑 트리가 반짝이며 눈을 밝힌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다 되었다는 얘기다.

당신 애기 갖고 싶어.

누런 링거액 주머니가 외등마냥 둘을 비추었다. 폴을 밀던 인식의 낯빛이 하얘졌다. 본심이 드러난 나정의 높은 톤 목소리가 낭랑하게 병원 뒷마당을 울렸다. 점차 파리해지는 인식은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을 쳐다보며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었다. 나정은 다시 또박또박 말을 했다.

당신 애기 갖고 싶다구.

인식은 링거 폴을 돌렸다. 나정도 보폭을 좁혔다. 인식이 병원 문을 밀었다. 나정도 인식을 따라 병원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외래 환자들이 빠져나간 널찍한 로비에 잔잔하고도 영롱한 불빛들이 끔벅대고 있었다. ‘축 성탄’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오목한 가운데 아기 예수가 포근하게 구유에 누워있다. 인식은 아기 예수 곁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나도 저런 이쁜 애기, 당신과 나의 분신을 갖고 싶어.

가부키 인형보다 하얘진 인식은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그의 볼살이 떨렸다. 더듬거리는 인식의 팔을 끌었다. 두 바늘이 겹쳐 선 벽시계 아래를 지나갔다. 발길이 드문 구석에서 인식은 좀 더 강하게 팔을 뿌리쳤다. 나정은 근육질 빠진 인식의 팔뚝을 세차게 붙들었다. 인식은 풀썩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보채는 아이처럼 나정은 졸랐다.

맺힐 듯 떨어지는 더딘 수액 방울이 서른 번째 떨어졌다. 더 많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반대편 승강기를 빠져나올 때까지 인식의 손을 풀지 않았다. 병실 앞에서 나정은 다시 한 번 세차게 인식의 팔을 옥죄었다. 인식은 돌아섰다. 나정도 그의 병실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인식은 이불을 머리까지 씌우고는 말문을 닫아버렸다.

버스는 터널을 빠져나와 인식과 걷던 한강대교를 달리고 있다. 나정은 아기 발길질에 정신을 차린다. J병원 건너 편에 버스가 선다. 빌딩 숲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재개발 단지 쪽을 향해 도로를 건넌다. 낙지 칼국수와 내장탕 가게를 지나치다 머뭇거린다. 나정은 결심한 듯 떡볶이집으로 들어간다. 오늘따라 먹고 싶은 게 많은지. 순대볶음도 먹고 싶은데. 주머니 속 삼만 원을 만진다.

그렇게 먹고도 안 질려?

나도 그게 이상해. 우리 아긴 나만 닮았나 봐.

양념장을 뒤집어쓴 먹음직한 떡을 한입 베어 문다. 인식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지난봄 입덧할 때 먹었던 그 맛이다. 파와 함께 어묵도 입안에 넣는다. 살짝 비리면서 달콤하고 매운맛이 혀에 감긴다. 인식은 국물까지 입을 불며 떠먹는 나정에게 질린다는 시늉을 했다.

당신, 애 낳고 나면 떡볶이 꼴도 안 볼 거야.

맞는 말이다. 지금도 식감을 타고 오는 살팍한 정을 맛보려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정은 발길질하는 아기의 식욕을 안고 맛있게 먹는다. 그 맛이 설혹 가짜일지라도 오늘만은 인식과의 시간을 붙들고 싶다. 가게 벽에 붙은 낯익은 표어까지 그대로이다. ‘순 우리 쌀로 만든 떡볶이’의 말린 종이 끝까지 변한 것이 없다. 미각만큼 빠르고 가파른 감각이 있을까. 인식이 좋아하던 순대볶음도 당긴다. 먹을까를 고민하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날아든다.

오늘은 혼자 오셨네. 벌써 배가 이리 불렀어. 산달이 언제야.

다 돼 가요. 일월이요.

뒤늦게 나온 주인아주머니가 농담할 동안 아기가 리드미컬하게 발길질을 한다. 엄마 맛있어. 더 먹자. 박자를 맞춘다. 나정아 맛있어. 먹어 봐. 인식이 칼국수를 먹을 때 하던 말처럼 엄지만한 아기 발이 신호를 보낸다.

애기가 인사 하네요.

옆구리를 훑는 나정에게 뭔가를 물어보려다 말고 아주머니는 김밥을 썰어 준다.

이건 우리 애기님 꺼. 서비스야.

애기 아빤 그새 떠난 거야? 어휴 어떡하니…. 생략된 말들을 토막토막 잘라 담은 김밥을 매운 국물에 찍어서 또 입에 넣는다. 이른 저녁을 때우며 나정은 불붙는 혀로 입술을 핥는다. 어둠이 길바닥에 길게 너울져 흘러내리고 있다. 제법 쌓인 눈길이 새시유리를 하얗게 채울 즈음 접시를 말갛게 비우고 일어선다. 또 오라는 주문을 뒤통수에 달고 빨간 벽돌 건물을 돌아든다. 잎새 떨어진 나무 덩굴에 휘감긴 건물은 나무의 수령만큼 오래되었을 것이다. 나정은 지난겨울 이 건물을 보자 병원이 아니라 박물관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수많은 명줄을 달고 있다 떨궈버린 건물은 페인트에 가려져 음기를 품고 있었다. 대학병원이라기엔 다소 작은 규모지만 왠지 그 음산함이 친근했다. 적어도 기억 속의 병원은 늘 어둔 표정들이 오가던 곳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덩굴이 된 뼈로 병원 침대를 휘감고서야 떠났으니까. 오늘도 변함없이 응급실 입구에 구급차가 서 있다. 또 누군가의 급한 사연을 부리고 있을 테다. 나정의 다급한 사연도 저곳에서 씻어냈으니까.

이름이 뭐예요. 이름 말해 봐요.

누른 빛만 보였다. 정신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데 아득한 소리가 들렸다. 나정은 지금도 그것이 현실인지 꿈인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순간 눈을 떴다는 사실만이 뚜렷했다. 응급실 벽 색깔이 누랬던 탓인지를 모른 체 다시 혼쭐을 놓았으니까.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입에 관이 꽂혔고 팔다리가 묶였다는 것밖에는 기억이 없다. 풀어달라고 악다구니를 쳤고, 보다 못한 엄마가 나정의 뺨을 철썩 올려붙였던 게 유일하게 분명한 의식이었다. 묶인 몸을 풀자 손가락에 남은 힘이 별로 없었다. 일인실로 옮겨서도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날들만이 덩굴을 뻗쳐 올라갔다.

봄이었던가. 다인실에서 겨우 숟갈질을 했다. 다시 남편이 살아났다.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하는 분노 덕에 숟가락을 들 수 있었다. 정신과 상담 시간마다 나정은 미소를 지었다. 묻는 말마다 살짝 웃어주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의사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약의 가짓수도 신경안정제 주사 횟수도 줄어들었다. 곧 자유의 몸이 되면 남편을 찾아가 복수하리라고 맘을 다잡았다.

그 날 따라 점심으로 스파게티가 나왔다. 나정은 그리 날카롭지 않은 포크와 붉은 소스를 끼얹은 접시를 노려보았다. 남편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그는 스위트와인처럼 감미로운 목소리로 여자를 갈아치웠다. 탄력 있게 삶은 면발처럼 혀로 여자들을 감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배배꼬인 면발로 달팽이관을 간질이며 그 어떤 유혹보다 강렬하게 여자들을 자극했다. 남편은 와인 따르는 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병목을 살짝 돌려 한 방울의 탈출도 허락하지 않는 기술은 섹스와도 직결되었다. 한 치 틈도 없이 여자들을 엮을 줄 알았으니까. 남편의 거듭되는 외도와 나정이 병원을 찾는 수치는 비례했다. 그러다 남편이 가출했다. 여자의 아파트로 찾아간 나정에게 문을 열며 남편은 그녀를 공개했다.

애기도 없다면서요.

여자의 첫마디다. 나정은 조용히 돌아섰다. 남편의 외도로 첫아이가 유산되었다는 말 대신 집으로 돌아와 수면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스파게티를 식판에 올린 체 노려보는 중이다. 나정은 포크로 스파게티를 내리찍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시 왼쪽 팔뚝을 찍어 돌렸다. 눈을 떴을 땐 응급실에 왔던 그날의 상황으로 돌아가 있었다. 엄마가 모셔온 목사님은 변함없이 특유의 강한 시옷 발음으로 기도를 올리셨다. 그 때마다 나정은 모로 돌아누웠다. 계절이 바뀌도록 엄마는 곁을 지켰다. 남편도 들렸지만 의미는 없었다. 힘없이 병원 복도를 서성이다 웬 남자와 어깨가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아주 평범한 경어가 귀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 것일까? 내 삶을 가졌

다 던져도 죄송하지 않은 세상인데. 이혼 못하는 나만 바보라고 비아냥대는 세상인데 뭐가 그리 죄송한 것일까.

저어기 왜 죄송하세요?

나정은 인식을 붙들고 되물었다. 아무도 죄송하다거나 괜찮냐고 묻지 않았기에 더 집요하게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처음 들은 듯한 신기한 그 말에 나정은 미친 듯이 매달렸다.

보세요. 정말로 죄송한가요. 저한테 그런 말 맞는 거죠.

부딪처서요.

그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발음으로 말했다. 순간 잃어버린 자존심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어린애처럼 그가 한 말을 중얼거리며 나정은 병실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TV를 볼 때도 물을 주는 엄마에게도 그 말을 반복했다. 엄마는 등짝을 후려쳤다. 의사들은 빨강 분홍의 약들을 추가했다. 인식의 말을 반복할수록 나정은 힘이 솟구쳤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다시 그 독특한 억양의 단어를 되뇌며 발을 뗀다. 인식과 입원했던 건물 입구를 통과한다. 작년에 보았던 아기 예수 곁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끔벅대고 있다. 금지 끝으로 아기 예수를 문지르다 승강기에 오른다. 6층 복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세 번째 방 앞에 선다. 막 저녁 식사를 끝낸 방에서 음식 냄새가 묻어온다. 오늘 식단은 아마도 튀긴 고등어와 시금치 국인가 보다. 구수하고 비린내가 아니어도 이 맘 때의 식단을 알고 있다. 식사가 끝난 어수선한 병실을 빠끔히 들여다 본다. 아는 사람이 없다. 저만치 창가에 인식이 있었는데. 황달이 와서 노래진 눈알로 나정을 맞아주던 그는 없다. 나정은 누군가 사다 놓은 화분 앞에서 등을 돌린다.

어머 웬일이에요. 벌써 산달이세요?

간호사가 인사를 한다. 검사받으러 왔다가…. 나정은 말끝을 흐린다. 그녀가 저녁 약을 돌릴 동안 복도를 걷는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던 어느 날 오전 인식이 맞은 편 나정의 병실로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노란 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국화 좋아하세요?

눈으로 대답했다. 그 길로 인식은 나정을 데리고 1층으로 갔다. 둘은 링거 폴을 밀면서 후문으로 나갔다. 금세 골목길이 눈을 자극했다. 나정은 칠 벗겨진 철제 대문 안을 집게발로 들여다 보았다. 세월을 건너지 못한 손때 묻은 세간들과 고무통에 널브러진 게발선인장, 흰 스티로폼 상자에 핀 촌스런 꽃들이 정겨웠다. 엄마도 어릴 적 살던 집에 국화며 물봉숭아, 맨드라미, 분꽃들을 키웠다. 그 때처럼 호박이 납작하게 썰어져 소쿠리에 널린 마당에서 사람냄새가 건너왔다. 인식은 미소를 머금은 나정을 더 깊은 골목으로 이끌었다. 모퉁이를 돌아 길 끝쯤, 미닫이문 유리창 너머로 세월의 더께를 껴입은 아저씨가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찢어질 듯 붙는 바지를 즐겨 입었던 나정도 옷 수선 집 단골이었다. 대못에 걸린 색색의 실꾸러미들과 다이아몬드 문양 쇠창살에 갇힌 길가의 작은 봉창이 온기를 머금은 듯 푸근했다. 오밀조밀 밀도 높은 길가의 연탄과 바리캉으로 뒷머리를 밀던 이용원이 쨍하고 가슴을 갈라놓았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가 아닌 말들이 씨방을 터뜨리며 속에서 올라왔다.

고향 같아요.

감사합니다 보다 더 좋은 말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인식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운명이 결정된 것일까. 살을 맞대고도 통하지 않던 것들이 담벼락을 타고 넘어왔다. 길 복판에 시장을 통째 실은 트럭이 신나게 손님을 모을 동안 나정은 탱자만한 밀감 한 망을 잡았다. 인식이 값을 치르기도 전에 신맛 나는 밀감을 까먹었다. 인식은 말없이 미로를 데리고 다녔다. 이 도심에 이토록 여러 갈래 길과 뒤섞인 삶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정은 따뜻했다. 밥 먹어. 어디선가 엄마가 손을 낚아챌 것 같은 길모퉁이서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그날 밤 나정은 모처럼 단잠에 들었다. 기억의 문 앞을 서성일 동안 신맛 탓인지 아기가 꿈틀거린다.

오래 기다리셨죠.

간호사가 우유를 내민다. 이 병동 간호사들은 거의 인식과의 얘기를 알고 있기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간호사와 환자 사이는 아프지 않으면 할 말이 없다는 걸 둘은 알고 있다. 단지 내달 초에 몸 풀러 온다는 소식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는다.

잘됐네요. 내년 3월이면 우리도 흑석동으로 이사 가거든요.

그럼 이 병원은요?

손끝이 살짝 풀린다. 우주 끝으로 간다는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이별 없는 만남은 없다는 걸 알기에 태연한 척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집과 더 가까워서 다행이네요.

전자저울을 쳐다본다. 인식은 수치가 내려서 나정은 올라서 늘 저울을 주시했다. 암

덩이가 과대 생장하는 인식과는 반대로 우울증 약을 먹는 나정은 몸무게가 불었다. 살려는 인식과 죽으려는 나정의 무게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변하지 않는 무게였다. 그러나 인식으로 인해 나정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어느 날부터 나정의 약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니까.

아직도 레메론 솔텝 드세요?

아니요. 나정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밤에 먹는 약을 끊은 지 오래다. 입덧과 같이 약과도 결별했다. 우울할 틈이 없었다. 새소리만큼 짧겠지만 행복했으니까.

정말 좋아지셨어요.

그럼요 애기가 있잖아요.

이별은 올 때마다 아프고 저리다. 하지만 슬픈 일만은 아니다. 인식을 보낸 자리에 아기가 있듯 보내야만 새것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흑석동에서 만나자 인사하고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한 아름 넘는 은행나무 길로 접어든다. 울울창창 숲길도 아니고 그냥 은행나무 한 그루뿐인 길이 나정에게 다가온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조차 없는 길을 걷는다. 휘적휘적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은행잎도 눈 속에 잠이 들었다. 쌓인 눈 탓에 발끝이 푹신하다. 올가을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상모를 돌리던 거센 바람도 잠든 초저녁, 나정은 혼자 은행나무를 만진다. 살아있는 화석이라던 이 나무만 금빛 추억을 방울방울 매달고 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 봐야 제대로 열매가 열리거든.

금빛 깃을 단 노란 얼굴의 나무가 반갑다. 노란 은행잎은 황달을 떠오르게 했다. 어떤 이는 황인종의 얼굴이라지만 노란 은행잎을 볼 때면 늘 인식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식은 떨어지는 은행잎을 고개를 떨군다고 했다. 그의 잎에서 시구가 떨어질 때마다 나정은 상처와 한 걸음씩 멀어져갔다. 하지만 인식은 황달 낀 은행잎이 되고 있었다. 단풍이 물드는 인식에게서 나무 냄새가 났다. 암으로 죽어간다는 건 나무가 되는 일인지도 몰랐다. 잎이 떨어지고 수액조차 마르면 선 채로 뻗쳐가는 나무, 어쩌면 나무화석이 되기 위해 인식이 태어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식은 집 근처 은행나무를 보면서도 안타까워했다. 손끝만한 새잎 틈새로 차 스푼 크기의 꽃을 문 암나무를 보면 인식은 발정 난 개마냥 두리번거렸다. 보리이삭을 찾듯 기웃대다 마침내 떨어진 수꽃차례를 줍고서야 돌아서던 사람이었다.

공룡시대부터 살았던 나무거든. 땀이 삐질삐질 목 언저리에 차야 꽃이 핀다니까.

입덧을 했다. 인식이 연두색 꽃을 쥐던 오월이었다. 그 꽃 진 자리에 열매 맺히던 가을날 인식은 은행나무 꽃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살포시 피었다 황혼이 물들 듯 단풍 지던 날 눈썹 두 개를 떨구고 간 것이다. 나정의 뱃속에 열매를 두고서. 나정은 잠시 호흡을 고른다. 오늘은 반대편 골목에서 큰길로 나가 인식과 마지막 걸었던 길을 돌아보리라 맘을 다잡았다. 이전까지 보지 못한 길이 보이듯 그렇게 인식이 길 위에 드러났을 뿐인데도 나정에게 인식은 잊히지 않는 소박한 길로 남아있다.

네가 떠난 이 길이 이토록 가깝게 다가오는 건 아마도 너와 나의 상처를 품고 있기 때문일 테지.

세무사 간판이 많은 왼편 골목, 병아리 어린이집을 향해 걸었다. 그 옆집이 돌감나무 집이다. 눈을 인 홍시들이 그대로인 걸 보아 이사를 한 모양이다. 작년 아기 주먹만한 감이 대롱대롱 열린 가지를 꺾으며 인식은 돌감나무라 했다. 나정은 서리맞은 작은 감을 오래도록 창가에 올려 두고 하나씩 따먹었다. 차진 홍씨를 씹으며 밀어처럼 목이 메 가슴을 쳤다. 씨 많은 돌감 홍시를 다 따먹던 날, 나정은 주먹만한 대봉 감을 치맛폭에 받았다. 엄마는 태몽이라 했다. 그 꿈마저 희미해지던 어느 봄날 나정은 한 몸에 두 영혼이 산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제일 먼저 한숨을 내쉰 엄마는 알 듯 말 듯 구시렁거렸다.

내가 괜한 짓을 해서는…….

엄마였다. 그날 인식과 인연을 이은 사람이. 괜찮으세요를 남발할 시기였으리라. 엄마는 나정의 배가 조금씩 부풀자 재개발 꼭대기로 왔다. 빗자루와 쓰레받이가 걸린 벽 앞에서 엄마는 몇 번이나 숨을 조절했다. 인식의 병 때문에 여기로 왔다는 걸 알면서도 어깨를 들썩거렸다. 인식과 나정은 전 재산을 팔아서 방을 얻고 치료에 전념했다.

네 아버지도 모자라 너까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에게 자식은 그런 존재다. 지금도 나정이 산동네를 지키는 이유를 엄마는 알고 있으리라. 엄마도 아버지가 떠난 뒤 오랫동안 분꽃 피던 집에 살았으니까. 나정은 까치발로 접 안 붙인 돌감나무 가지를 잡는다. 꽉 마른 가지가 부러질 듯 휘어진다. 꺾으려다 말고 홍씨 한 알을 따서 손에 거머쥔다.

아버지는 낙엽만 날리면 감나무를 벤다고 난리였어. 실컷 감 따 드시고는 마당 더럽힌다며 톱을 들고 설치셨지. 그럴 때면 엄마가 하는 말이 있었어. 지난여름 당신 자는 평상에 그늘 해주던 나무야. 내년 여름이면 후회할 일을 왜 해. 그러면 아버지가 그랬지. 하긴 저 나무가 감 맛 하나는 최고여. 슬쩍 톱을 던지고는 꼬리를 내리셨지.

빨갛게 익은 그의 목소리가 발자국마다 따라다닌다. 외등이랄까 대롱대롱 매달린 돌감나무 그림자가 눈길에 누워있다. 단풍진 감잎을 따주던 이는 떠나고 어눌한 목소리만 쟁여져 아는 체하는 골목과도 작별한다. 개발에 휩쓸려 가겠지, 모든 것은 사라지는 거니까. 나정은 도로 가로 나온다. 건너편 철제 빔 아파트와 대조되는 불빛조차 쓰러진 맨션 쪽을 향하기 위해서다.

누구나 아프면 저렇게 돼.

병과 약에 뒤틀린 인식은 자신을 흉물스런 맨션에 빗댔다. 인식에게 달리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간암 3기 말에 복수와 황달이 오가는 반복적 상황 앞에서 가식을 부릴 이유는 없을 테니까.

B형간염 보균자라는 걸 알았을 땐 늦었어. 형 둘도 모두 이 병으로 갔거든. 보험도 안 되더라구.

간을 통째로 바꾸면 된다던데.

말끝이 꺾이었다. 간이식 순번은 그가 죽어서나 올 테다. 하지만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할까. 문 밖에서 기다리는 검은 화물선을 그날까지 따돌릴 수만 있다면. 그러나 시간은 짧았다. 사는 게 곧 죽는 거라는 공평한 원리 앞에서 손이 필요했다. 그것만이 서로를 지탱시킬 힘이었다.

우리에게 얼마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잖아. 그러나 당신은 이쪽에 나는 저쪽에 있을 거야.

유한하기에 서로를 더 절박하게 엮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식은 결코 떠난다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길은 늘 열려 있으니까. 맘이 닫혀 못 가는 길은 있어도 길이 없어 못 가는 길은 없는 거니까. 그의 말대로 이쪽과 저쪽은 한 선상에 있는 것이다. 길은 길로써 이미 뚫려 있기에 공간의 분리가 의미 없을지도 몰랐다. 나정은 인식이 열어준 작고 외진 눈길을 밟으며 내일은 혼자 오지 않으리라 주억거린다.

눈발이 조금씩 흩뿌리고 있었다. 인식은 코트를 입혔다. 남편이 합의이혼서를 내밀었던 밤이었다. 인식은 은행나무 길로 나정을 데리고 나갔다. 세무서 지나 맨션이라는 희미한 글자가 나오고 갯마을이란 손만두집을 지나쳤다. 둘은 이름이 좋아 가끔 점심을 먹고 맞은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하곤 했다. 박물관 주차장 뒤편 운동마당에서 인식은 나정을 운동시켰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정도 이내 기구에 적응했다. 몸을 백팔십도로 돌린다든가 노를 젓거나 구름 위를 걷는 듯 다리를 휘젓는 운동기구들이 조금씩 친숙해져 갔다. 그런데 그날은 가는 길이 달랐다.

저기까지 가면 돈지방이라는 건널목이 나와. 용산에서 서빙고역 사인데 경원선 줄기야.

철원에서 원산까지 이어질 철길이라며 인식의 눈에서 모처럼 빛이 났다.

군사분계선으로 끊어진 철길이 이어지면 이 길을 타고 철원을 넘어 평강과 원산폭을 지나 나진 선봉을 돌아서 금강산에 갈 거야.

지명들의 생소함만큼 살고파 하는 인식의 강렬한 욕망이 생경스러웠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 꿈이라도 갖고서 살아내길 바랬다. 하지만 도착한 건널목은 초라했다.

철길을 막고 있는 휴전선이 암덩이 같은 거지.

인식은 밤마다 그곳으로 나와 철길을 본다고 했다. 혈관같이 얽힌 철길이 어떤 의미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까지가 그의 체력이 허락하는 지점일 것이다. 인식은 이 길 위의 길에서 삶과 죽음 중 어느 쪽을 건너고 있었을까. 인식은 조그만 관리실로 나정을 안내했다. 구면인 듯한 관리인과 인식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커피를 마실 동안 눈발은 조금씩 더해갔다. 심심해 보였는지 관리인은 나정에게 설명을 덧달았다.

하루 운행 횟수가 이백육십 회나 되거든요. 차가 사천오백 대나 지나가지요. 서울 시내 일종 건널목이라 보기는 이래도 요지에요.

관리인 목소리를 듣는 중에도 몇 차례 전철이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밤을 가르는 긴 불빛이 나정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며 명멸했다. 하나의 섬광으로 사라지는 저 빛과 같은 게 인생일까. 아니면 인식의 짧은 삶이 저러하다는 것일까. 관리인에게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건널목을 건넜다. 사철 푸른 나무가 이어지는 인도는 멀리 보이는 한강대교와 이어졌다. 다리를 향해 걸었다. 병원복 홑바지 사이로 칼바람이 파고들었다. 발가락 감각마저 무뎌지는데도 머릿속은 조금 전 보았던 빛처럼 선명했다. 인식과 영원히 이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욕망이 올라왔다. 이 남자라면 남은 생을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뚜렷하게 뇌리에 그물망을 짜고 있었다. 인식을 올려다 보았다. 인식도 은사시처럼 앙상하고 마른 큰 키로 나정을 내다보았다. 같은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이내 눈길을 거둔 인식은 흘리는 듯 말을 던졌다.

아마 하느님이 벌을 내리신 것 같아. 목사님이 되려 했거든.

나도 수녀님이 되고 싶었는데. 그런 꿈 누구나 갖는 거 아냐?

그러지 않길 잘한 것 같다고 나정이 되받았다. 아마도 바람이 나 수녀원을 떠났거나 말괄량이 수녀가 되었을 거라며 인식을 보았다. 그러나 농담을 받기에는 인식의 눈빛이 저어기 차분했다. 나정은 멋쩍어 꿈 이야기를 했다.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초등학교 강당 옆이었어. 물웅덩이에 성모님이 나와서 손을 내밀더라구.

소명을 받았네.

스무 살 이후 십팔 년 만에 듣는 단어에 옆구리가 결렸다. 소명은 서점을 지나치다 눈길을 붙드는 책 제목 같은 것이라 했던가. 잡으면 내 것이고 스쳐가면 흘러가 버리는 그것처럼 인식과의 관계도 외면하면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여기서 놓아버리면 끝이라는 말인가. 경원선을 끊은 분사분계선처럼 암덩이가 우릴 떼놓기 전에 인식을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다시 아기를 갖고 싶다는 소망이 열망으로 바뀌어서 고개를 쳐들었다.

당신 애기 꼭 가질 거야.

순간 인식의 눈빛이 번뜩이다 잠잠해졌다.

우리에게 애기가 왜 필요한 거야.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식의 병세는 모든 걸 체념하게 했다. 그렇지만 나정은 그럴 수 없었다.

나만의 희망을 갖고 싶어서.

나 없이 혼자 키워야 할 애기야. 그건 희망이 아니라 족쇄야. 당신 삶이 걸렸다구.

인공수정이라도 할까 봐. 아니라면 당신 아이었으면 해. 당신의 분신이었으면 한다구.

나정은 죽으려다 병원에 실려 왔다. 그와 달리 인식은 살려고 병원에 온 사람이다. 건널목에 걸쳐진 레일처럼 교차점이 없는 만남이었다. 삶과 죽음이 평행선을 달릴 때 인식이 나타난 것이다. 살다가 살다가 힘에 부쳐 쓰러진 나정에게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다고 낮은 목소리로 눈빛으로 위로해준 사람이었다. 남편이 이혼장에 적진 않았지만 우울증 환자로 몰아 에둘러 끝내려 한 의미 없는 삼 년이었다.

지금 또 누군가를 만나 살을 섞고 임신을 하고 당신을 잊고 살라면 난 다시 죽음을 택할 거야. 이 병원이 날 치료한 게 아냐. 그건 보조역할일 뿐이었어.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고 목 놓아 울고 싶을 때 나를 안아준 건 당신이었어. 이 외로운 길에서 혼자가 아니란 걸 확인해 준 사람이 당신이었다고.

돈지방 건널목을 향해 걷고 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영원히 못 갈 것 같아 반드시 혼자 걸어내야 할 길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통일되면 이 전철이 경원선과 이어질까. 그러면 아이와 이 철길로 금강산에 가서 인식의 소원을 풀어줄 수 있을까.

당신 혼자 어떻게 감당하려고.

해를 넘긴 이른 봄에 한 말이었다. 그래도 싫다는 대답이 아니어서 안도했다. 인식을 빤히 보았다.

당신 안 죽을 거잖아. 우리 애기 보며 더 힘내서 살면 되잖아.

당신 보듯 할 거라고는 하지 못했다. 인식도 짐작할 말이기에 서로 더 묻지 않았다. J병원 정문을 지나 시장통 길로 건너갔다.

방 없습니다.

세 번째 여관에도 방이 없었다. 인식은 여인숙 간판이 어울릴 건물로 향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할 즈음 신은 가장 어수룩한 방을 열어 주었다. 호흡을 조절하던 인식의 어깨에 얹힌 수평선이 조금씩 열렸다. 작은 열쇠가 열릴 때마다 인식의 어깨가 기울다 들렸다. 거친 숨소리도 없이 결 고운 비단 박하사탕이 입안에서 녹는 달까. 행복이라는 단어가 짧게 신호를 보내왔다. 나정은 오래전부터 알았던 맛처럼 익숙한 향기를 음미했다. 부드럽게 파도치는 빗장뼈가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돌아오는 길을 늦은 춘삼월의 흰눈이 반겨주었다.

흩날리는 눈발처럼 뒤섞여 두 사람의 분신들이 만나기를 나정은 기도했다. 떡볶이집으로 갔다. 어묵 국물과 매운 떡볶이는 그와 나정의 성격처럼 궁합이 잘 맞았다. 그날의 기억에 나정은 입가에 번지는 군침을 닦으며 돈지방 건널목의 관리소로 들어간다. 면이 있는 관리인이 반색한다.

아이고 산달 다되셨나 봅니다.

관리인을 보는데 아기가 옆구리를 찬다. 순간 옆구리를 거머쥔다. 녀석이 안부 전하는 모양이에요. 놀란 그를 안심시키며 커피를 부탁한다. 의사가 커피 한잔쯤은 괜찮데요. 나정은 간이의자에 걸터앉는다. 초저녁을 가르며 전철이 스칠 듯 지나간다. 아니 긴 빛이 어둠을 뚫고 온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빠른 속도로 강렬한 섬광이 뚜렷하게 가슴에 꽂힌다. 뜨거운 커피가 입천장을 지진다. 아릿함에 혀로 입안을 더듬는다. 인식과의 첫 키스가 전류를 보낸다. 나정은 종이컵을 휴지통에 넣고 일어선다. 잠시 후 다시 한 번 불빛이 흡입하듯 지나간다. 나정은 한동안 사라진 어둠 속에 눈을 던지고 우두마니 서 있다. 인식일까. 그도 나처럼 첫눈이 와서 이곳에 온 걸까. 인식의 스웨터를 목까지 잡아당기며 나정은 어둠을 직시한다. 관리인이 건널목까지 나와서 배웅을 한다. 오랜만의 환대를 받으며 나정은 다시 눈길에 발을 놓는다.

다음번엔 애기랑 같이 오세요.

길가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다가서니 아무 것도 없다. 착시일까. 올가을 인식과 온 이후 처음으로 혼자 걷는 길이어서인지 더 춥다. 인식은 각혈을 하고는 다시 J병원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이 길을 걸었다. 그날도 뒷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나정은 부른 배로 엎드려 인식의 등산화 끈을 당겼다. 부쩍 약해진 체력에 헛발질이라도 할까 봐 발목을 감아서 매듭을 지으려고 바투 앉았다. 그때였다. 나정의 손등에 뜨겁고 붉은 것이 쏟아졌다. 한참을 인식은 한 대야쯤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다시 입원한 인식은 나아지는가 싶었다. 뒷길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물들 무릎 인식은 나정의 손을 잡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인식은 나정의 곁에 기대어 걸었다. 인식이 내주던 손과 어깨 그리고 맘을 나정이 대신 인식에게 대어주면서 나란히 걸었다. 돈지방 건널목을 건너 사철 푸른 나무 길로 두어 걸음 뗐다. 이렇게라도 인식이 살아만 있어 준다면 생각할 즈음 나정은 택시를 불렀다. 병원으로 돌아간 인식은 온갖 검사실과 혼수상태를 오가다 오래지 않아 빗장뼈를 닫았다. 아래위로 흔들리는 수평의 빗장뼈는 그 작은 열쇠를 열지 못하고 영원한 지평선이 되었다. 인식의 삼 혼이 육신으로 조상으로 저 세상으로 칠백 리 길을 떠날 동안 나정은 팔 개월의 배를 안고 인식에게 말했다.

너를 잃어서 눈물이 나기보다 나를 찾아서 눈물이 나.

걷는 건 도를 닦는 거야. 걷다 보면 분노도 아픔도 내려앉고 고통도 잊어지거든. 당신도 매일 걸어 조금씩. 그럼 날 느낄 거야.

지금 그날의 길에서 나정은 인식을 만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저쪽에서 나는 이쪽에서 마주 보며 걸어갈 뿐인 것을. 삶은 이쪽에 죽음은 저쪽에 있을 뿐인 것을 망각하고 있는 건지도. 인식의 말대로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해준 게 걷는 것임을 나정은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너로 인해 찾아낸 이 길을 혼자 걸어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인식과 걷던 이 길이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을 떠나보낸 길목에서 인식을 만났듯, 길은 끝없이 새 길을 물고 이어지겠지만 아직은 익숙하게 아는 길을 걷고 싶다. 인식은 한 번도 남편에 대해 묻지 않았지만 그 병동에서 나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정의 아픔을 진정으로 안아준 사람은 김인식, 그 남자였다.

오늘따라 인식의 숨결이 가깝다. 허공 속에 손을 휘젓는다. 잡히는 게 없다. 대신 어깨에 무언가 얹힌 듯 따스하다. 누군가가 왼손으로 나정의 오른쪽 어깨를 만지고 있다. 그런데 온기가 없다. 천근만근 발이 늘어진다. 자꾸만 아기가 아래로 쳐진다. 두어 번 허리를 바치고 멈춰서 저만치 다리 위를 쳐다본다. 누군가의 인연들이 불빛으로 이어지는 저녁, 이 거대한 세상이 모두 차 있는데 혼자만 떠 있는 기분이다. 그럴수록 자위를 해본다. 당신은 떠난 게 아니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리만 옮겼을 뿐이라고. 조금만 더 걸으면 한강대교로 진입할 텐데 아기가 유난히 아랫배로 쏠린다. 나정은 배를 쓸며 아기를 달랜다.

아가 힘들지. 집에 가서 벙어리장갑에 엄지손가락을 달아줄게.

택시를 잡으려고 팔을 뻗는다. 순간 물컹하고 뜨거운 액체가 각혈처럼 쏟아진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아기가 건너오려는 것일까. 한줄기 빛이 길 위의 길을 비춘다.

이수정 / 200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절반의 무당」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그녀의 검은 가터벨트』가 있고 부산예총회장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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