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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키 패밀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7. 21:21

 

크로키 패밀리

박송아



그 남자가 발견된 곳은 어느 유명 백화점의 침대 코너였다. 남자는 전시용으로 비치된 침대 위에서 시트를 머리끝까지 쓴 채 잠이 들어있었다. 그 침대는 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이태리산 침구로 치장된 상품이라, 백화점 측에서도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던 것이었다. 때문에 백화점 안은 보안문제로 개점시간이 평소보다 2시간가량 늦춰졌다. 이색적인 기삿거리를 찾고 있던 몇몇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문제의 침대가 한 유명 여배우의 혼수품이라는 것이 덧붙여 보도되었다.

최초 발견자는 침대코너를 관리하는 여직원이었다. 그 여직원은 백화점의 대변인을 대동하고 기자들의 취재에 응했다. 전날 그녀는 늘 해오던 대로 침대 코너를 정리했다. 전시용 침대 위에 투명한 비닐을 덮은 뒤 그 위로 다시 검정색 천을 덮고 나서야 퇴근을 했다. 그 다음 날 그녀가 출근했을 땐, 천과 비닐은 반듯하게 포개져 바닥에 놓여있었다. 그녀는 다른 직원이 미리 걷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묘하게 불룩해져 있던 침대시트가 위아래로 고르게 움직이자, 비명을 지르며 경비원을 호출했다.

허겁지겁 달려온 경비원과 함께 시트를 걷어내자 남자가 드러났다. 남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서부터 침대 밖으로 길게 늘어진 연갈색 끈은, 그의 벨트가 풀어진 거였다. “꼭 뱃속에 든 태아 같았어요.” 여직원은 언젠가 TV에서 봤던 ‘생명의 신비’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태아가 연상되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취재를 마쳤다.

내부 감시카메라의 녹화 기록에 의하면, 남자는 오후 7시 즈음에 백화점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직원용 탈의실로 향하는 남자를 눈여겨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코너가 있는 8층의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비상등이 켜지자, 탈의실에서 남자가 나왔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침대마다 족족 눕거나 잠시 잠을 잤다. 밤새 그런 식으로 움직이던 남자는 아침 6시가 되어서야, 침대 코너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유명 여배우의 혼수품으로 내정된 침대로 기어들어가 시트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여직원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남자는 그렇게 미동 없이 누워있었다.  

야간 순찰을 도는 백화점 경비원은 그의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왜 남자를 발견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경비원은 자신이 46년생임을 밝히며 화를 내었다. “눈이 어두워서 그런다. 내 나이 돼 봐. 너희들이 언제까지나 젊을 줄 알지?” 경비원은 중얼중얼 거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다리를 떨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내 나이 돼 봐.”를 굳어진 주문처럼 내뱉었다. 그는 나이 탓이라는 변명을 늘어놓다가, 결국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빌어먹을. 쥐꼬리만한 돈도 못 받고 잘리게 생겼구만.” 경비원은 다소 튀어나와 보이는 눈을 굴리면서 기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내 나이…….”라고 탄식처럼 나오는 말을 입술을 오므려 막았다. 그리고 가래침을 뱉은 뒤 자리를 떠났다. 

남자는 경찰서에서 자신의 점퍼를 뒤집어쓰고 조사를 받았다. 주머니가 많이 달린 낡은 카키색 점퍼였다. 올해 28세였으며, 취업을 해서 사회에 나온 지 막 1년이 지난 상태였다. 왜 그런 짓을 했냐는 담당 형사의 질문에, 남자는 “잠을 잘 장소가 필요했어요. 조용하게, 편하게 그리고 깊게.”라고만 대답했다. 그 외의 질문엔 그저 “죄송합니다.”로 일관했다.

 

크로키를 하던 손을 멈췄다. 남자의 카키색 점퍼가 낯설지 않았다. 나는 연필의 꽁지를 입에 물고는 TV 화면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보았다. 화면은 여전히 점퍼를 뒤집어쓴 남자가 조사를 받고 있는 장면이었다.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는,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던 남자. 혹시 그가 아닐까. 그를 자세히 보기 위해 미간에 힘을 줬다. 시야 속으로 들어오는 남자가 조금 더 선명해지려는 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회색톤 정장을 입은 아나운서가 우중충하게 다음 소식을 안내했다. 그러자 나는 들고 있던 크로키 북을 내려다 봤다. 8절 크기의 종이에는, 침대 위에서 태아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잠든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크로키 북을 옆으로 치워놓고 물고 있던 연필도 내려놓았다. 그리고 밀어 놓았던 앉은뱅이책상을 끌어당겼다. 상 위엔 배춧잎을 넣은 된장국과 쌀밥, 마트에서 산 김치가 전부였다. 숟가락을 들어 절반 정도 남은 밥을 국그릇에 옮겨 담았다. 된장국이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가 만든 배추 된장국은 어머니가 해줬던 것과는 다르게 맛이 없었으니까. 그냥 된장국을 먹는다는 기분만 내도 충분했다. 대충 말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밥상 위에 있는 리모컨으로 손을 뻗었다. 뉴스 채널을 돌려 다른 채널들을 살펴봤다. 그러자 내 뒤에 깔아놓은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못마땅한 듯 거칠어졌다. “크흐음.” 그러나 나는 모른 척하며 채널을 계속 넘겼다. 정신없이 바뀌는 채널처럼 마음이 요동쳤다.

나는 아까 침대에 누워있던 그 남자가 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 점퍼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사실 그런 점퍼는 아주 흔한 것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 옷이 현수의 것이라는 것을, 그 남자가 현수라는 감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현수는 그 점퍼를 좋아했다. 내가 선물했다는 점도, 주머니가 많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손을 잡아끌며 점퍼에 달린 주머니들에 한 번씩 손을 넣어보게 했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현수일 리가 없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사나운 기세로 채널을 돌렸다. 꾸역꾸역 밀어넣은 국과 밥을 씹지 않고 삼켰다. 김치를 한 점 막 입에 넣어 우물거리며 내가 “날씨가 흐리네.”라고 말하자, 등 뒤에서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엔 분명 냉기가 서려 있었다. 아버지는 음식을 입에 넣은 채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천박한 계집애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 말은 식사 때마다 식어가는 음식들을 앞에 두고 의식처럼 되풀이되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와 나는 바른 자세로 앉아 그것을 경건하게 듣는 시늉을 했다. “자기는 밥풀까지 튀기면서 말하면서도 꼭 계집애들한테만 그런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양푼비빔밥을 비벼 한 입 가득 밀어넣으며, 아버지를 흉보곤 했다. 

어쨌거나 비가 오려는 듯 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맑지 않았다. 아까 뉴스에서 본 아나운서의 정장 색과 하늘의 색이 비슷했다. 계속해서 빠르게 넘어가는 채널들 때문에 현기증을 느낄 즈음, 4번 채널에 이르자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4번은 우리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 설치된 CCTV가 종일 놀이터를 비춰주는 채널로, 부모들은 이 채널을 보며 아이들의 동태를 살피곤 했다. 그리고 이 4번 채널은 아버지가 뉴스 채널 외에 유일하게 보는 채널이기도 했다.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해 채널을 항상 여기에 맞춰뒀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런 걸 보고 울거나 웃는 것들은 계집애들 뿐이다.” 매번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어머니나 내게서 리모컨을 빼앗았다.

이른 시간과 궂은 날씨 때문인지, 4번 채널이 비추는 놀이터는 한적했다. 한 소녀가 혼자 그네를 타고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언젠가 어린 내가 여름방학 숙제로 그린 그림의 하늘 부분 채색을 도와주려는 어머니를 향해,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찼었다. “미련하긴. 하늘을 고작 하늘색 크레파스로만 칠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러자 어머니가 하늘색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슬그머니 분홍색 크레파스를 집어 들었다. “그건 계집애 색 아니냐!”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내 그림의 하늘은 진한 빨강색이 되었다. 그 뒤로도 어떤 그림을 색칠할 때, 크레파스 회사가 아니라 아버지가 정하는 기호대로 따라야 했다. 실은 우리 집의 모든 것이 아버지가 정한 대로 흘러갔다.

아버지의 가래 끓는 것 같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시멘트 바닥에 흩어진 모래를 신발로 비비는 것 같은 소리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먹은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앉은뱅이책상을 들어 올렸다. 4번 채널은 그대로 두었다. 그러자 가래 끓는 소리가 한층 더 심해졌다. “크흐흠, 크흠!” 뉴스를 봐야할 시간에 내가 4번 채널을 틀어놓았으니, 아버지 불만이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방문을 나서서 부엌으로 향했다. 

병원비 문제로 아버지를 퇴원시켜야 했을 때, 담당의사는 가래가 끓으면 위험하니 반드시 흡입기로 빼내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저건 정말로 가래가 끓어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멀쩡한 숨을 억지로 끓어내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지금 아버지는 숨소리로 혀를 차면서, 자신의 못마땅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부엌의 세면대로 가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의 세기를 가장 약하게 해둔 채, 조심스럽게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온 신경을 아버지가 누워있는 안방으로 기울였다. 아버지는 움직일 수도 없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기 때문에, 조금만 미묘한 기척이 느껴지면 달려가야 했다. 늘 아버지를 위해 대기하고 있어야 되는 상태인 것이다.

안방이 조용했다. 억지로 가래를 끓어내던 소리를 멈춘 아버지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4번 채널을 보는 데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지가 마비된 건 3년 전 뇌졸중 때문이었다. 그는 몇 번의 큰 수술과 고비를 넘겨 간신히 의식을 찾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동경이 되었던 늠름한 풍채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아버지가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가래 끓는 숨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크흐흠, 크흐흠, 크흠!” 그 숨소리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늘 뻔했다. 계집애가 그게 뭐냐, 계집애는 그러면 안 된다. 이 두 문장의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 말의 범위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을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같았다.

설거지는 금방 끝났다. 그릇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설거지를 하게 된 버릇은 어머니 덕분에 생긴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졌다. 택시기사였던 아버지는 하루종일 밖에 다녔다. 아버지가 없으면 어머니는 집 안에서 빈둥거리며 TV를 보고 과일을 깎아먹곤 했다. 종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는 그러나 끼니 때면 꼭 집으로 왔다. “자고로 밥은 집에서 먹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끼니 때가 되면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허둥댔다.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된장국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혀를 내두르지 않는 부분이 딱 하나 있다면, 바로 그 기가막힌 된장국이었을 것이다. 식사를 하기 전 아버지는 뒷짐을 진 채 집 안을 한 바퀴 돌며, 어머니의 살림솜씨에 대해 잔소리를 한바탕 하고 나서야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마주앉아 숟가락을 드는 어머니를 힐끗 보며 말했다. “또 먹냐, 곰탱이.” 그 말에 어머니는 재빨리 밥을 국에 말아 후루룩 마셔버리고는 자리를 비켰다. 그 자리에서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등 뒤에서 아버지는 또다시 혀를 찼다. “저런 미련 곰탱이 같은 계집애.

곰탱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던 지라 어머니는 유난히도 웅녀의 이야기를 싫어했다. 내가 그녀와 소주잔을 마주하고 앉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어머니는 자신의 잔과 나의 잔에 소주를 가득 부으며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한 놈은 분명히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일 게다. 네 아비처럼 말이다.” 어머니는 재가 씹힐 정도로 바삭 구워진 삽겹살의 비계도 떼지 않고 집어 먹었다. 그리고 시커멓게 변한 혀를 꼬며 말했다.

“곰 쓸개에 구멍을 내어 빨대를 꼽아 웅담즙을 빨아먹는 게 다 남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고것들이 왜 그런 줄 아냐?” 잠시 말을 멈추고 킬킬거리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다리 사이를 우악스럽게 매만졌다. 여기를 살리려고, 여기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 행위에 눈살을 찌푸리자, 어머니는 가슴을 쾅쾅 쳤다. “아무도 몰라. 여기를. 여기를!” 그러면서 어머니는 남자들이란 여자의 일생을 쪽쪽 빨아먹는 버러지 같은 놈들이라고 퍼붓곤 했다. “그 놈들은 빨아먹는 걸 좋아하는 존재다. 그것이 웅담즙이든 젖통이든 말이야.

 

커피를 끓였다. 커피가 가득 담긴 머그잔을 들고 거실에 놓인 작업책상으로 향했다. 작업책상 곁으로 다가간 나는, 잠시 서서 책상 위에 늘어진 크로키와 거실 벽면에도 빼곡하게 붙여진 크로키들을 바라봤다. 크로키에는 어머니가 주로 그려져 있었다. 다리 사이를 움켜쥐는 어머니, 가슴을 치는 어머니, 된장국을 만드는 어머니. 채색 없이 선으로만 표현되는 그 크로키들이 합쳐져, 하나의 거대한 어머니 크로키로 보였다.

책상으로 다가가 한쪽에 놓인 갈색 봉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안에 든 원고를 확인했다. 대학생 시절의 지도교수에게서 받은 일감이었다. 영국에서 출간되어 꽤 인기를 모은 동화로, 번역된 제목은 ‘알록달록 패밀리’였다. 이것은 무지개 가족이 서로 싸우거나 다투면서도 가족으로서 어우러져 결국엔 하나의 무지개로 완성이 된다는, 그런 교육용 동화였다. 내가 할 일은 그 동화의 한국어판 표지와 삽입될 몇 장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일이었다. 오늘은 그 시안을 지도교수에게 확인받아야 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의자에 앉았다. 번역된 원고와 표지, 일러스트 5장을 전부 꺼내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그리고 동화를 다시 읽으면서 그린 시안들을 확인했다.

시안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난쟁이들이 등장했다. 난쟁이들은 제법 앙증맞게 표현되어서 동화에 걸맞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채색이 문제였다. 시안이 통과되면 색을 입혀야하는데, 나는 채색에 자신이 없었다. “왜 색이라는 것을 칠해야 할까.” 나는 한숨을 쉬듯 중얼거리며 시안 원고를 살펴 보았다.

채색에 대한 감각은 나에게 결여되어 있는 많은 것들 중 하나였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견고한 단점이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대학을 그리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지 못했다. 미술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들에게서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자신만의 세계관을 작품 속에 잘 드러낸다는 말도 꽤 들었었다. 그러나 번번이 채색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남들과 똑같은 색과 방식을 사용해도, 완성된 작품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4년 내내 크로키만 그리다가 학업을 마쳐야만 했다. 연필의 선과 명암으로만 표현하는 크로키 작업은 나에게 아주 잘 맞았던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색감을 추구하는 요즘에서는, 크로키만으로 먹고 사는 일이 빠듯했다. 

처음 미술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여자는 자고로 여자답게 놀아야 하는 거야.” 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여자로서 가장 훌륭한 성공이라고 하며 아버지가 반대해도, 어머니는 나를 굳건하게 지지했다. “두고 봐요, 이 아이는 당신이 말하는 계집애들이랑 차원이 다른 계집애가 될 테니까!”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갤러리를 우아하게 걸어다니며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한 번 탔던 나의 미술대회 우수상을 액자에 끼워 보관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보태 나의 재능을 자랑했다. “미술학원 선생님이, 어린 피카소가 따로 없다고 하대요. 그런데 피카소가 누군지 알긴 알아요?” 그런 어머니에게 누군가 예의상으로 맞장구쳐주면, 어머니는 내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아버지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 “너는 보란 듯이 살아야한다, 보란 듯이.

오늘은 시안을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원고가 든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슬쩍 안방을 들여다 봤다. 아버지가 눈을 꿈뻑이며 TV를 보고 있었다. TV 화면을 바라보니, 한산했던 놀이터엔 제법 아이들과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할 일이 없는 노인들은 지팡이에 기대, 아이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버지는 무슨 기분으로 저 4번 채널을 보고 있을까. 미동하지 않는, 아니, 그럴 수 없는 아버지를 잠시 바라보다 욕실로 들어갔다.

 

찾아간 지도교수의 연구실은 그녀의 아이들과 남편의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다. 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불편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교수는 나의 반대편에 앉아 시안을 넘겨보고 있었다. 그녀는 세련된 화장과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아마 어머니도 자신의 딸이 저런 여성이 되길 바라며 미술을 시켰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오랜만에 신어서 불편했던지라 벗고 있었던 하이힐에 다시 발을 집어넣었다.

“발상은 괜찮네요. 오늘부터 채색하면 되겠네.”라며 그녀가 웃어 보였다. 나는 더듬더듬 알겠다고 대답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몸을 곧게 펴자 교수의 모습 너머에 있는 액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전에 몇 번 와 봤던 연구실이었지만, 처음으로 본 액자였다. 나는 그 액자 속에서 누드로 된 가족이 그려져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 중 가족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바로 교수였다. 내가 교수 가족의 누드화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 교수가 내 시선을 따라 자신의 시선을 옮기다가 피식 웃었다.

“아름답지 않아요? 선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교수의 까슬까슬한 음모, 교수 남편의 늘어진 성기, 교수의 음모, 아이들의 민둥한 가슴과 가냘픈 다리. 그리고 그들 전부 이가 드러나도록 웃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모두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를 가지고 있었다. 교수 가족의 누드화는 아름답기보다는, 마치 한 인간의 몸에서 분리된 살덩이가 따로따로 서 있는 이질적이고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연구실을 나서자마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연구실에서 나온 나는 낯선 세계에 첫 발을 디딘 고단한 여행자처럼, 긴장되고 피로했다. 나는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서 나와 비치적거리며 학교 안 벤치에 다가가 앉았다. 신었던 하이힐로 인해 아픈 발목을 주무르며 주위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동희 엄마로부터 문자가 와있었다. ‘아버지는 걱정 말고 너 일보다가 천천히 들어오렴.

동희 엄마에게 아버지를 잠시 맡기면서 약속했던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서두르고 싶어졌다. 황급히 하이힐을 구겨신은 뒤 학교를 빠져나갔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동희네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었다. 동희 아빠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렸고, 투병한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남편 없이, 세상에 남자도 없이 말이에요.” 동희 엄마는 사는 것이 막막하다며 어머니를 찾아와 매일같이 울어댔다. 어머니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토닥이며 위로하곤 했다. “괜찮아. 없어도 괜찮을 수 있어.” 동희 엄마는 자주 어머니를 찾아왔다. 그러나 매번 어머니의 위로 덕분에 찾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동희 엄마는 어머니의 품 안에 안겨서, 소파에 앉아 지켜보는 아버지를 곁눈질로 바라보곤 했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자신을 보는 동희 엄마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은밀한 훔쳐봄을 동희 엄마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었다. 어머니는 온 몸에 살이 듬뿍 쪄 둥그렇고 굵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고 곰이라고 한 것이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닌 것이다. 몸빼 바지 속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긁적이며 남은 반찬을 모아 만든 비빔밥과 새 집 마련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것이 어머니가 아버지를 견디며 살아온 방식이었다. 미련하다고 해도 그녀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부터 이어 내려온 생존의 답습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아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와 내게는 “계집애.”라는 단어를 붙이며 비난하기 일쑤였지만, 동네 아줌마들에게는 우아한 남자로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동네 아줌마들은 우리 어머니를 부러워했다. 몇몇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세상에, 저런 여자를…….” 하고 탄식하며 아버지의 취향을 안타까워했다. 그만큼 아버지는 두부 한 모를 사러가서 거스름돈을 받는 모습조차 특별해 보일 정도로, 뭔가 있는 남자긴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태운 많은 여자 손님들에게서 명함을 받곤 했다. 택시 안을 청소하던 어머니가 그 명함을 발견하고 따질 때면, 아버지는 귀찮아 했다. “계집애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홀로 소주를 마시며 또 가슴을 쾅쾅 쳤다. 간혹 “우리 어무니는 왜 날 저런 것한테…….”라고 흘리듯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혼기에 가까워져도, 어머니가 닦달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학교 길에서, 자꾸만 낙엽이 하이힐 굽에 엉켜들었다. 눈에 낙엽이 들어오자, 지금이 10월의 가을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느꼈다. 그러고 보니 현수와 내가 처음 만났던 계절도 10월의 가을이었다. 현수는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었다. 그는 표정이 없고 행동이 단조로웠다. 삭막한 성격을 가지고도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고, 나에게 쉽게 몸을 붙여오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크로키 같은 사람이었다. 선으로만 표현될 만큼 단조롭고 건조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현수를 크로키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낙엽의 길을 지나 아스팔트길을 디디다가, 내 앞에 손을 잡고 길을 내려가고 있는 젊은 연인을 발견했다. 연인 중 여자의 엉덩이와 허벅지에 부드럽게 붙은 살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배에 시선을 두었다. 배가 불러 복부 부분의 옷자락이 들떠있었다. 한동안 그 생명의 굴곡을 깊게 응시했다.

3년 전에 아버지가 집으로 끌어들였던 여자는, 나보다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것은 어머니와 내가 암묵적으로 아는 사실이었다. 애써 참아내면서 살아오던 어머니는, 그러나 내 동생이라는 아기를 배고 있는 여자의 모습에서 무너져 버렸다. “지긋지긋해, 나가!” 와 “곰탱이 같은 계집애, 네가 나가!”가 반복하는 가운데서, 나는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내가 속한 이 가족의 무게를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

나는 그 길로 현수를 찾아갔다. 한겨울의 깊은 밤이었다. 짧은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 짝이 다른 운동화를 신고 그의 자취방 앞에서 마냥 서 있었다. 벨도 누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현수가 나왔다. 나는 현수를 보며 더듬더듬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너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하고 말을 맺자, 현수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내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말해주었다. “아니야.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다 알 수 있어.

 

“이런 건 제가 할 게요.

집에 돌아와 보니 동희 엄마가 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동희 엄마는 단지 아버지를 닦아주고 싶었노라고 말했다. 그저 그 뿐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동희 엄마에게 고맙다고 하며 서둘러 안방에서 내보냈다. 그녀는 어쩐지 계속 아버지가 있는 안방에 눈길을 번갈아 주다가, 입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집 안에서는 정체모를 갈치조림 냄새가 났다. 부엌을 확인하자 동희 엄마가 냄비 가득 갈치조림을 해놓은 것이 보였다. 갈치조림은 아버지가 된장국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이것을 동희 엄마가 어떻게 알았을까. 아버지에 대한 저 여자의 은근한 집요함은 왜 아버지가 저 지경이 된 후에도 계속되는 건가. 나는 갈치조림을 냄비 째 음식물 봉투에 버렸다.

안방으로 들어가 보니 상의가 반쯤 벗겨진 아버지가 얌전히 누워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아버지가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봤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눈동자에서 치욕스러움이 엿보였다. 여자를 끼고 군림하던 아버지는 이제 나무껍질 같이 놓여, 주는 대로 먹고 살아간다. 아버지를 내려다보던 나는 곧 그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동희 엄마가 미리 준비해뒀던 물수건과 대야에 든 따뜻한 물을 점검했다.

나는 손을 뻗어 아버지의 상의를 벗기고 속옷도 벗겨냈다. 그 뒤에 물수건의 물을 꼭 짜내서, 아버지의 손마디부터 닦아내기 시작했다. 바짝 말라 뼈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몸은 그 늠름한 형태가 조금은 남아있었다. 동희 엄마는 이 몸을 보고 싶었던 걸까. 아버지의 피부를 물수건으로 세게 문지르자, 수건이 지나간 자리에서 때가 밀려 나왔다. 그러자 어김없이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치스러워 하는 것이리라. 지금 아버진 마음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 내 뺨을 두어 번 내리치고 망할 계집애라고 소리 지르고 싶을 것이다.

사포질을 하는 목수의 손길처럼, 나는 거칠면서도 신중하게 아버지의 몸을 다루었다. 갈수록 줄어들어가는 몸과 옅은 피부색에 이러다가 아버지가 크로키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크로키가 된 아버지, 선만 남는 아버지. 그 생각이 미치자 문지르는 속도가 나도 모르게 늦춰졌다.

아버지의 겨드랑이를 닦아낼 차례가 왔다. 망설임 없이 아버지의 팔을 들어 올려 겨드랑이를 닦아내었다. 팔과 몸이 착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겨드랑이 속 땀냄새는 말할 수 없이 고약했다. 나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겨드랑이를 닦아냈다. 가래 끓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아버지가 비록 수치를 느낀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쓰러진 아버지를 수발하면서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것을 골라 찾아내는 것은, 어머니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다. 겨드랑이는 그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몸을 닦다가도 그 팔을 들어 올려 겨드랑이를 살폈다. “에구구, 드러! 지지다, 지지!” 일부러 크게 소리를 내며 아버지를 골렸다. 그러다가 질릴 즈음엔 주위를 몰래 살피다가 겨드랑이에 자신의 얼굴을 살짝 갖다 댔다. 그리고 그 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어머니의 기이한 행위에 내가 기가막혀 하자, 어머니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이렇게라도 살아봐야지 않겄냐.

 

몸을 다 닦았을 즈음, 아버지가 잠이 들었다. 환자식을 먹을 시간이었지만 그냥 그대로 두었다.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잠이 왔을 때 충분히 잘 수 있게 해야 했다.

때가 둥둥 떠 있는 대야를 욕실의 하수구에 부었다. 욕실에서 막 나오는 데 거실에서 전화가 울렸다. 손의 물기를 대충 바지에 문질러 닦고 전화기를 받았다. 누구일까, 어머니인가. 그러나 전화는 동희 엄마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아까 버린 갈치조림 때문에 전화했다. 아버지가 먹는 환자용 영양식에 갈치 살과 졸여진 무를 잘게 갈아 먹이면 좋을 것이라는 당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녀의 그런 배려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알아서 한다니까요. 상관마세요.

전화기 너머 동희 엄마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한 마디 했다.

“너무 그러지 말렴. 얼마나 사신다고 그러냐, .

“아줌마는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무엇을 모른다고 그러니.

대체 당신이 우리 가족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소리 지르려던 차에 동희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전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작업용 책상으로 다가가 앉아, 새 크로키 북을 꺼내 아무 장이나 펼쳤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크로키했다. 동희 엄마의 갈치조림을, 아버지의 겨드랑이를, 때가 둥둥 낀 대야를 거친 선으로 슥슥 그려댔다. 연필을 쥔 손이 마치 칼을 쥐고 있는 것 같은 아찔한 감각에 떨려왔다.

 

아마도 현수라면, 지금의 나를 이해해줬을 것이다. 늦은 겨울밤 찾아갔던 날처럼.

나는 그 날 현수의 자취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땐 좁은 자취방 안에 침대가 자리 잡고 있어서, 방이 더욱 비좁아 보였다. “침대라는 건 좋은거야.” 현수는 침대가 있으면 뭔가 우쭐해진다고 했다. 어깨를 접고 몸을 부대끼며 바닥에서 자는 삶과는 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래서 집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침대만은 꼭 장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현수는 잘 때 꼭 온 몸을 웅크리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비록 침대에 누워도 말이다. “어쩔 수 없나 봐, 습성이라는 건.” 현수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중얼거리곤 했다. 나와 함께 침대에 누운 현수는, 그의 습관처럼 웅크린 채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10명의 남매 속에서 크는 건 말이지, 빼앗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며 사는 거지.” 그는 10명의 남매 중 여섯째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쟁터 속에서, 중간 순서의 여섯 번째 아들인 현수는 부모에게든 형제들에게든 간에 쉽게 잊혀졌다. 늘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같이 놀 사람은 분명 많았다. 그러나 오히려 현수는 외로웠다. 수많은 가족들 중에서 자신의 자리는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는 명절과 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고, 시에서 모범 가족상을 수여했을 때는 화가 났다. “모범 가족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기준이야?” 큰누나한테 따져 묻자, 큰누나는 “숫자가 많잖아, 드물게도 말이야. 그거면 되지 뭘 그러니.”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외롭단 말이에요. 현수는 그 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큰누나에게 몰려드는 자신의 어린 형제들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현수가 품은 소외감에 대한 불만은, 평화로운 일상에 묻혀갔다. 형제자매들은 사이가 좋은 편이였고, 현수의 부모는 싸움 한 번 없이 한 의견을 냈다. 큰 갈등 없이 살아가는 가족의 틀에서 현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자신은 이 그룹에 필요하지 않는 구성원이라고 생각되었다. 옅어져가는 자신의 존재를 문득 느낄 때면, 참을 수 없는 상실이 밀려들곤 했다. 현수만큼이나 옅어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식구가 많은 만큼 현수 아버지의 책임은 무거워졌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그의 등은, 현수만큼이나 옅어져 있었다. 사춘기를 보내던 현수는 스스로의 삶을 망가뜨리며 책임을 지는 아버지란 존재가 오히려 나약해 보였다. 그리고 12평 남짓한 공간에서 10명이 비좁게 모여 자는 생활을 멸시했다.

한참동안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던 현수가,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알어? 우리는 절대 이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그에 나는 현수에게 반문했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며.” 내 말에 현수는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대답했다. “그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가족은 답습되는 거거든.” 그러면서 현수는 부르르 떨었다.

답습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 줄 아니. 밟는다[]는 거야, 습襲을. 습엔 말이야 물려받고, 껴입고, 되풀이되는 것이 엄습한다는 뜻이 모두 들어가 있어. 인간들은 가족을 답습하면서 살아간다며 현수는 내 어깨를 꼭 쥐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현수의 형제자매는 13명까지 늘어났다. 부모는 나이가 많이 들어 노쇠해졌다. 그러자 첫째부터 순서대로 집안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섯째인 현수 역시 그 연대감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현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동시에 취직을 해서 버는 족족 가족에게 내놓아야만 했다. 13남매가 사는 집에서 태어나서, 어느 새 그 남매를 보살피는 부모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현수의 의지가 아닌, 말 그대로 답습된 것이었다.

 

지쳐가는 현수의 얼굴이 기억난다. 가족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했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현수는 그 생활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어 갔고, 잠을 이루지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려고 하면, 잠들려고만 하면 우리집 식구들이 나를 깔아뭉개. 쾅쾅쾅, 내 위에서 뛰어 놀기도 해. 나를 눌러 와. 잠들지 못 하겠어. 비록 침대가 있어도 말이야.

그러다가 결국 현수와 나는 헤어졌다. 나는 현수를 보기 힘들었고, 현수도 그런 내 앞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헤어짐이라고 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분리였다. 우리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같은 것을 앓았지만 우리의 삶의 방향은 엇갈린 채로 흘러갔다.

거침없이 크로키를 하던 손이 어느 순간 뚝 멈췄다. 현수의 가족을 생각하면서 그린 크로키에는, 그러나 ‘알록달록 패밀리’에서 나오는 무지개 가족의 난쟁이들이 있었다. 난쟁이들은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책의 내용처럼 이들은 끊임없이 화를 내고, 화해를 하다가, 다시 화를 내는 가족의 삶을 반복할 것이다.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난쟁이들을 내려다보며 색연필을 쥐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채색 작업에 몰입했다. 

 

‘알록달록 패밀리’의 채색 원고는 보기 좋게 퇴짜 맞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였다. 연락을 받고 학교로 찾아간 나는 지도교수의 조교를 통해서 수고비의 일부를 받았다. 몇 달 간 고생한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액수였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내가 불평할 수 없었다. 조교는 내가 제출한 채색원고 때문에 교수가 출판사 측에 사과와 해명을 해야 했다고 말해주었다.

하긴 내가 봐도 원고의 ‘무지개 가족’은 밋밋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공식을 다채롭고 창의적으로 이용하라는 요구가 그 그림에 주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나는 고생한 보람도 없이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멍하니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지금은 집 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집 앞의 놀이터로 향했다. 조금 늦더라도 동희 엄마가 잘 돌봐 줄 것이다. 빈 벤치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무릎 위에 가방에서 꺼낸 크로키 북과 연필도 다소곳이 올려놨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미끄럼틀을 타고 놀이터 모래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넘어져서 우는 아이도 있었고, 놀이터를 감시하는 CCTV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그 CCTV에 손을 흔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놀이터의 풍경을 하나하나 담아 빠른 속도로 크로키를 하다가, 나는 혹시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선을 돌려 CCTV를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다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 여기 있어요, 하듯이. 그러다가 내 손이 유난히도 옅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놀이터에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든 착각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는 이내 크로키 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크로키 북 위에는 평소처럼 수많은 크로키들이 그려졌다. 아이들의 움직임, 노인의 고독, 염려하는 부모의 달리기 등이 짧은 시간에 착착 완성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네줄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크로키 북에서 고개를 들어, 그네를 자세히 관찰했다. 원래 네 개였던 그네는 하나씩 줄이 끊어져 딱 하나만 유일하게 움직였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그네마저 끊어진 모양이었다. 기괴한 모습으로 삐거덕거리는 그네의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어디론가 떠난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가 떠나기 전의 모습도 저 그네처럼 위태롭고, 괴로웠다.

 

아버지는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와 어머니에게 헤어짐을 통보했지만, 얼마 안 가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여생을 평생 꼼짝 말고 누워 살아야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어머니는 절망했고, 아버지의 여자는 보험금을 가지고 도망가 버렸다. “어찌해 아버지는 그런 여자를…….”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들이 자신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그 여자를 험담했다.

그런 아버지를 말없이 받아들인 것은 어머니였다. “내가 해야 되지 않겠냐, 이 년의 팔자.” 그렇게 말하면서 어머니는 가슴을 쳤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아버지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짓눌려 살아온 세월을 두고두고 갚아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어떠한 행위를 해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신의 겨드랑이 냄새를 맡으면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어린아이 취급을 해도 어머니를 보는 눈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어떠한 행동을 해도 아버지의 눈은 그저 “곰탱이 같은 계집애.”라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자학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허벅다리를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치곤 했다. 그것은 꼭 뜬금없이. 된장국 냄비를 다시 데우다가 그것을 휘젓던 국자로, 김장 김치를 절이기 위해 굵은 소금을 치던 고무장갑으로도 어머니는 자신의 허벅다리를 쳤다. “이 년의 팔자, 이 년의 팔자!” 나는 사정을 두지 않고 꽂는 힘이 어머니의 허벅지를 다치게 하는 것보다도, 그걸로 인해 바닥으로 흩어지는 두부와 소금 등을 치우며 짜증났다. 그것을 치우며 그 희한한 행위를 비난하면, 어머니는 가슴을 쿵쿵 내리치며 말했다.

“살아있나 싶어서 때려봤다, ?” 어머니는 극단적인 통증이 없으면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희미해진다고 했다. 누구나가 그래, 라고 대답하면 어머니는 그저 가슴만 쾅쾅 쳤다.

현수, 그렇다면 답습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그와 헤어지기 전,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현수는 그에 망설이다가 말했다. “답습하는 거야, 그거 역시.” 의미를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현수는 웃었다. 그리고 내게서 멀어졌다. 나는 현수와 헤어진 뒤 오랫동안 그 말을 곱씹어 보았지만, 그의 말은 이해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가 목을 맨 것은 약 1년 전이었다. 내가 간만에 외부의 일러스트 청탁으로, 지방에 내려가 있던 때였다. 그 날 어머니는 가슴을 쾅쾅 치고, 허벅지를 내리쳐도 진정이 되질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란 남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매달리는 자신이 더더욱 한심해졌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음을 먹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 위의 벽에 못을 박았다. , , . 가슴을 치듯 강하게 박아냈다. 그러자 아버지가 눈을 떴고, 어머니는 그 시선을 느끼며 박은 못에 끈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끈에 자신의 목을 넣고 의자에 서 있다가 발로 그것을 찼다. 어머니는 오줌을 지릴 아버지의 당황한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끈이 끊어지며 어머니의 몸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발목을 접질렀다. 시큰거리는 발목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하던 어머니는, 이부자리 위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의 눈은 놀란 기색 없었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발목을 주무르며 아버지에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에게 나는 이미 없는 존재군요. 너무 옅어서, 있어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어머니는 자신이 아버지에게는 사소한 답습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리를 절뚝이며 집을 나갔다. 집에 돌아온 내게 ‘미안하다, 너에게 이런 걸 남겨둬서.’라는 쪽지를 남긴 채.

 

왁자지껄 떠들면서 달려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째서 자꾸 가족을 만들려고 하는 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현수를 떠올렸다.

현수, 그것은 아마도 혼자는 살 수가 없어서 일 거야. 결국 우리는 온기를 그리워하는 존재들이니까. 그들 때문에 아프지만 결국 그들을 위해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이니까. 그것이 비록 답습일지라도 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너를 계속 보시더라.

동희 엄마는 아버지가 4번 채널에서 계속 보고 있었노라고 말해주었다. 크로키를 하고 생각에 잠긴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에도 갈치조림을 해놓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동희 엄마는 집을 나갔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TV를 보던 아버지의 눈동자가 문에 서 있는 나에게로 향했다. 나를 바라보는 이부자리 위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이 희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갈수록 말라가는 육신 때문일까. 이대로 가다간 아버지가 이부자리 위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아찔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크로키 북을 꺼냈다. 한 번도 그리지 않았던 아버지를, 그렸다. 사각사각. 연필이 크로키 북을 스치는 소리만 안방을 채울 뿐, 나도 그리고 아버지도 일체 소리가 없었다.

“이것은 크로키에요.

단숨에 완성된 크로키를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보여준 그림을 조용히 응시했다. 아버지는 그림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눈을 깜빡였다. 그저 깜빡일 뿐이었다. 아버지를 그린 크로키가 완성되자, 아버지는 더욱 옅어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감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크로키 북을 두고 기어서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곁에 누웠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오늘따라 잔잔했다. 몸을 웅크려 말고, 눈을 감았다. 내일부터는 채색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박송아 / 1988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2012 <세계일보>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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