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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에 가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6. 2. 09:50

신두리에 가다

나호열

신두리에 갔다. 품이 넓은 바다와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있고, 사막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먹먹한 그리움을 주는 곳, 정확히 말하자면 태안 해안 신두사구를 보러 간 것이다. 이미 2001년에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된 이곳은 백 여 군데가 넘었던 해안사구가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으로 사라졌으나 그나마 군사보호지역으로 묶여 있던 행운(?)으로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갯그렁, 갯쇠보리, 해당화 등의 시물과 표범장지뱀, 개미귀신등의 파충류와 꿩을 비롯한 개개비, 붉은머리 오목눈이, 황조롱이 등 여러 조류들의 생활터전인 신두리 사구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바람과 바다와 모래의 퇴적이 이루어낸 자연의 힘과 조화가 집적된 곳인데, 해가 갈수록 그 원형이 망가지고 뒤틀려지는 모습을 보게 되어 마음이 안타까워진다. 사람들에게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지화 되고 신두리 사구를 둘러싼 지역이 사유지인 탓에 우후죽순, 팬션과 같은 위락시설이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신두리 사구를 관통하는 둘레길이 조성되면서 편의만을 고려한 보행 데크가 설치되어 고즈녁한 풍광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스멀거린다.

자연에 대한 생태주의적 관점은 인간의 경제적, 물질적 이익을 최소화하고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당대인 當代人을 넘어서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국토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확산되어야 하는 것인데 현실은 눈 앞의 이익과 효용에만 급급한 나머지 무분별한 인적으로 뒤덮게 만드는 잘못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이 땅에 들어온 지도 20 여년이 지나간다. 아직도 내셔널트러스트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과 참여는 미미하다. 그러나 십시일반 국민의 성금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을 공공자산으로 남겨두는 이 운동의 성과는 작지만 알찬 열매를 거두고 있다. 그 운동의 손길이 이곳에 닿을 수 있다면 저 팬션 자리에 해당화가 수줍게 붉은 얼굴을 내밀지도 모르고 어지러운 내 발자국 옆으로 재빨리 지나가는 표범장지뱀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때 아닌 금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1킬로키터쯤 떨어진 두옹습지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