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돌다 / 나호열
삼릉 ↔ 포석정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것이네
삶과 죽음
한 뼘도 안 되는 거리를
많은 세월을 소모해야 하는 것처럼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그대 앞을
수 만 보를 터벅거리며 걸어야 하는 것
산길은 성급하게 서둘러서는 안되네
흘러온 시간만큼 거대해진 왕릉 옆에
안개를 매단 소나무 숲을 지나
바위마다 새겨진 마애불을 보면
누군지도 모를 천 년 전의 사람들이
합장하며 서 있고
누군가가 이 길을 먼저 즈려밟았다는 놀라움이
소름으로 끼치는 일이네
그대를 향하여 가는 길이 어디 먼 곳에 있던가
문신처럼 마음속에 또아리 튼
물의 길, 바람의 길, 하늘의 길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숨이 차다
그리움도 오래 걸으면 저렇게 풀섶에 주저앉아
한 시절을 달래는 쑥부쟁이가 되는 것을
다시 고갯길을 내려 잡으면
무거워진 등짐을 구름으로 날려 보내놓고도
발자국 소리는 텀벙텀벙 계곡 물에 빠지네
가까운 길을
왜 멀리 돌아가야 하는 지
웃는 듯
우는 듯
천 년 전의 미소가 이정표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