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당신에게 말걸기 2007

<해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사람의 여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2. 18. 01:24

 

<해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사람의 여정

 

한명희(시인 ․ 강원대 교수)

 

 

1. 길에다 쓰는 편지

 

 무량수전 지붕부터 어둠이 내려앉아

 안양루 아랫도리까지 적셔질 때까지만 생각하자

 참고 참았다가 끝내 웅얼거리며 돌아서버린

 첫사랑 고백 같은 저 종소리가

 도솔천으로 올라갈 때까지만 생각하자

 어지러이 휘어돌던 길들 불러 모아

 노을 비단 한필로 감아올리는 그때까지만 생각하자

 아, 이제 어디로 가지?

 ―「저녁 부석사」

 

  나호열 시집 [당신에게 말 걸기]는 길 위에 있는 시집이다. 첫시집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시집 [낙타에 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나호열의 시들은 길 위에서 부르는 노래가 많았다. 위에서 인용한 시는 [낙타에 관한 질문]에서 고른 시인데, 지난 번 시집과 이번 시집의 연속성을 얘기하기 위해, 또 이번 시집과의 변별성을 얘기하기 위해 글의 첫머리에 실어보았다. 이번 시집 [당신에게 말 걸기]에서도 나호열은 길 떠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망월사로 (「망월사를 오르다가 비를 만났다」), 마현에서 분원리로(「발자국」), 헌츠빌로(「헌츠빌 가는 길」)로 떠돌아다닌다. ‘그믐밤 표지판 없는 길’을 새벽까지 걸어다니기도 하고 (「칼에게 묻다」) 바다를 건너고 광야를 달리기도 하고(「숲」) 폐쇄된 휴게소에 들르기도 한다 (「길은 저 혼자 깊어간다」). 요크데일, 인디고 책방 2층 창가에 앉아 책을 바라보기도 하고 (「Indigo 책방」) 게스트 룸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Guest Room GS3」). 그야말로 떠돌이의 여정이다.

 

그리움으로 피었다 지는 꽃

살아온 흔적 중에 빛나는 일만 적으라 하네.

높은 지위

남에게 자랑하여 고개 숙일만한 일들을

요약해서 적는 것이 약력이라네.

나이 들면서 자꾸 뒷쪽을 바라보는 것은

덧셈보다 뺄셈에 능숙해지는

바람을 닮아가기 때문이라네

바람이라고 적을 수는 없네

떠돌이였다고 말할 수는 없네

태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먼지처럼 쌓였다 사라져버린

그 수많은 날들을

나는 축약할 수가 없다

기억나지는 않으나

밥 먹고 잠들었던

잠들었다 부시시  깨어나던 동물의 날들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나는 약력을 쓰네

꿈이 꿈인 줄 모르고

꿈 속을 헤매다가

꿈속에서 죽어서도

죽은 것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마디로 줄여서 약력을 쓰네

―「약력」 

 

  나호열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유람하거나 휴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운명 같은 것이다. 우리가 그의 여로를 따라갈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모험과 경이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나호열의 외롭고 슬픈 내면이다. 그는 말한다. 자신의 ‘약력’란에 바람이라고 적을 수는 없다고, 떠돌이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약력이라는 것은 살아온 흔적 중에 빛나는 일만’적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높은 지위/ 남에게 자랑하여 고개 숙’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람이요 떠돌이였다는 것만이 그 자신에게 적확한 표현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람이었고 떠돌이였기 때문에 그가 살아온 날들은 ‘먼지처럼 쌓였다 사라져버’리지 않았던가. 그는 태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기억나지는 않는 나날들도 바람이요 떠돌이의 나날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에게 길 떠남은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옆구리가 터진 치약처럼

지구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느낌

몸을 누르면 언제나 엉뚱한 곳으로

하혈하는 슬픔이여

그믐밤 표지판 없는 길을 걸어

문득 만나게 되는 새벽

몸의 바깥은 서늘한 물기로 가득하고

얼마나 많은 몽유의 시간은

시퍼렇게 물의 칼날을 세웠던가

몸에 베인 마음들 뒷길로 돌아

무디게 날을 부수고 또 부수었는데

이제는 바람이 되어 완강하게

죄없는 나뭇잎과 꽃잎들을 떨구어내는 몸이여

더는 갈 수 없는 끝에 닿으면

솜사탕처럼

솜이불처럼

녹거나 풍화될 것인데

슬픔은 아직도 견고하다

뿌리가 깊다

―「칼에게 묻다」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려와서 서둘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일본 작가가 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나호열의 시에도 자주 북소리가 나오지만 그는 적어도 북소리 때문에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아니다. 지구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느낌, 그 느낌은 슬픔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이 그를 길로 내몬다. 슬픔을 느낄 때 몸은 하나의 거대한 튜브로 변한다. 그 튜브 속에는 슬픔이 가득 들어있어 튜브를 누르면 슬픔이 터져나오고야마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길을 떠난다. 그믐밤, 표지판도 없는 길에서 새벽을 맞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길 위에서 지친 몸은 ‘더는 갈 수 없는 끝에 닿으면’ 솜사탕이나 솜이불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견고하고 뿌리가 깊어 쉽게 사라질 수가 없다.

 

목을 치고 오르는 울음을 뱉으려고

휴지를 뽑으려니

얄팍해진 마음 한 장이 먼저

튀어나온다

고운 향기

그러나 불에 약한 그대 마음에

더러운 이 눈물을 훔칠 수는 없지

휴지통엔

날 것으로 버린 한숨

통째로 뜯어버린 영혼이

가득하다

아침이 오면 휴지통 같은 나를 끌고

황량한 먼 도시로 떠나야 하는데

길이 미끌미끌하다

마음이 꾸불꾸불하다

―「휴지, 그 넋두리」

 

  무엇이 그를 울게 만드는지, 무엇이 눈물조차  훔칠 수 없게 만드는지 이 시는 다 말하지 않는다. 휴지에 눈물을 닦는 것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 약한 남자를 무엇이 ‘아침이 오면 휴지통 같은 나를 끌고/ 황량한 먼 도시로 떠나’도록 만다는 것인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휴지통에 날 것으로 버린 한숨과 통째로 뜯어버린 영혼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시인의 우울하고 슬픈 내면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처럼 나호열에게 있어 여행은 그의 내면에 깊게 자리잡은 외로움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리움과 관련이 있다. 그는 슬프다고 말하면서 떠나고 떠나서 다시 슬퍼하는 것이다. 그립다고 말하면서 떠나고 떠나면서 다시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픈 이야기가/ 이 세상의 외로운 사람들이 다/ 내 속에 있는 것 같다”(「먼 훗날」)는 느낌. 그것 때문에 그는 길 위를 떠도는 것이다. 그가 “까마득하게 오래 전부터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맑은 물가에 나아가 홀로 얼굴을 비춰보거나, 발목을 담궈 보다가 그 길마저 부끄러워 얼른 바람에 지워버리는 나는 기댈 곳이 없다”(「얼굴」)고 노래할 때, 그것은 그대로 그의 외로움의 고백이자 길을 떠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의 여행은 고독하고 슬프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어디로든 가야만 한다.  “길이 미끌미끌”하고, “마음이 꾸불꾸불”(「휴지, 그 넋두리」)하더라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행은 그의 운명 같은 것이므로.

 

바람에게 길을 묻는 일이나

바람의 얼굴을 보려고 헤매는 일이

온몸을 앞으로 내밀어 넘어질 듯한

저 오랜 소나무의 몸짓만큼 쓸쓸하구나

우리는 너무나 많은 잔가지들을

허공을 움켜쥐기 위하여 뻗었던 것은 아닐까

극락보다 대웅보다

더 극락 같은, 더 대웅 같은 소나무 아래서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이 한 없이 맑은 적요 속에서

나는 눈물로 흐드러진 꽃잎을 건네주고 싶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넘어가던 새가

파르르릴리 파르르리리 그 울음만

때아닌 낙엽처럼 발자국으로 떨어지는 것

바람은 저만큼 가고 풍경소리만 뒷모습이 그윽하다고

그립고 그리워서 또 그리운 그대에게

나 지금 일주문 앞에 서 있다고

그대 앞에 서 있다고

―「귀소 歸巢」 부분

 

 그리울 때, 외로울 때 나호열 시인은 편지를 쓴다. 그립고 외로운 일이 많다보니 그는 시 속에서 편지를 쓰는 일이 많다. 위의 시 「귀소」에는 ‘봉정사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봉정사에서도 그는 편지를 쓰고자 한다. 그의 봉정사 여행도 쓸쓸함과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때 그는 “그립고 그리워서 또 그리운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한다. 여기서 나호열이 이토록 그리워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백지」에서 “네가 외로워하는 것은 그 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지만/ 네 옆에 내가 갈 수 없음이 외로움이다/ 그러므로 나는 숲에다 편지를 쓴다/ 길에다 하염없는 발자국에다 편지를 쓴다”고 말한다. 그는 숲에 들면 숲에다, 길 위에 있으면 길 위의 발자국에다 편지를 쓰는 것이다. 흐르는 강을 만나면 흐르는 물 위에 편지를 쓰는 것이다. 나호열이“별을 바라볼 때만 그는 살아 있다/ 너무 멀어 손길만 길어지는/ 편지를 쓸 때만 그는 살아 있다”(「고백」)고 말할 때, 편지를 쓸 때만 살아 있는 그는 바로 나호열 자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길을 떠나면, 길을 떠나서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 그리움은 해소될 것인가. 그의 근원적인 외로움은 치유될 것인가. 진정 그러할 것인가.

 

 

2.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사람

 

  나호열은 시집 [당신에게 말걸기]는 타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자 하는,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 않는 시인의 안타까운 고백록이다. 따지고 보면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외로움과 그리움을 견디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를 뿐 어쩌면 우리 모두는 외로운 사람이고 그리움에 사무친 사람들일 것이다. 나호열이 길을 떠나는 것도 그런 외로움과 슬픔을 견뎌보려는 방편의 하나였다. 여기에 더불어 나호열은 끊임없이 타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그를 더욱 외롭고 슬프게 만든다.

 

사람들 빠져나간 자리에

갯벌 위에 내려앉는다 조용히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철새처럼

밥을 먹는다

초원 식당에서 정좌한 채로

도를 닦는다

영양를 좇던 하이에나들이 빙 둘러 서서

주둥이에 피를 묻힌 채로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저 푸른 초원 위에 펼쳐지고

풀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풀을 뜯는 소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풀밭에 눕는다.

음식이면서

침대이면서

화장실인 저 초원의 풍경을

꾸역꾸역 입 안으로 가져간다.

그리움이 씹히고

울음을 삼킨다

2인분의 식사를 혼자 시킨다

―「혼자만의 식사」

 

  이 시에서 역시 시인은 길 위에 있다. 길 위의 한 지점, 갯벌에서 그는 밥을 먹는다. 갯벌 가의 식당에서 초원을 생각하며 밥을 먹고, 혼자이지만 둘인 것처럼 이인분의 식사를 시켜서 밥을 먹는다. 그리움을 씹으며 울음을 삼키며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방식. 그것이 혼자인 그가 선택한 외로움 극복 방법이다. 그러나 갯벌에서 초원을 본다는 것은 그가 떠나와 있는 이 갯벌도 그의 마음을 다 채워주지 못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곧 다른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물에

편지를 써 보았나

흘러가는 

안녕

그 이름

또는

오늘의 무사함

발자국 소리 들리지 않게

혼자 울어 보았나

 

오늘은 내가 먼저

바다에 닿아

하얗게 솟구치는

갈매기를 바라보느니

―「헌화가 獻花歌」

 

  길 위에서, 그는 늘 혼자다. 혼자 밥을 먹고, 위의 시에서처럼 혼자 운다. 그는 대부분 혼자 여행을 떠나지만 「봄, 마곡」처럼 동행이 있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조차도 그에게 일행은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는 혼자 있지만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랜 시간 혼자 있어’ 외로운 의자(「의자」), ‘온 산을 불태우고 혼자 걸어가는 저 소리’(「목소리」), ‘정류장에 혼자/ 오래도록 서 있는 사람’(「홀로인 것들」) 등 그가 혼자 있는 것들에 주목할 때, 그들은 모두 외로움의 표상이 된다. 그러니까 나호열의 ‘혼자’는 혼자이고 싶지 않은 혼자인 셈이다. 그러기에 그가 홀로 여행을 떠날 때도 옆에 없는 ‘그리운 사람’에 대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립기에 그는 편지를 쓰지만 그 편지는 결코 그리운 사람에게 닿지 못한다. 흘러가는 강물 위에 편지를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수신인의 주소도 없이 편지를 쓰기 때문이다.  

 

숲에 오면 나는

공연히 눈물이 나는 것이다

주소가 없어

부쳐지지 못한 한 뭉치 소포처럼

웅크린 저 소나무가

낯익다

여기 꼼짝하지 말고 있어

날은 어두워지는데

총총걸음으로 사라져버린

엄마를 기다리다

혼자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소나무와 함께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바람에 맞서 뼈마디 굵어진 일이나

동구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한 채

짧은 여름 키 세운 기다림의 저 눈길이

못내 그리운 것이다

나이는?

이름은?

우리는 아무에게도 접속되지 않은 채

그렇게 눈시울만 붉게

서로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또 다시 숲에 와서」

 

  나호열에게 숲은 ‘모든 목숨들의 보금자리’(「숲에서 기적소리를 들었다」)이고“가끔은 내가 보고 싶을 때”(「숲」) 가 닿은 장소다. 그는 자주 자신을 나무에 비유(「나는 전생에 나무였다」, 「내 속에는 나무가 살고 있다」)하거니와 숲이야말로 그의 존재를 확인케 해주는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또 숲은 자신의 그리움의 연원을 반추하게 하는 곳이다. 그 깊은 곳에“여기 꼼짝하지 말고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가 있다. 가을 음악회의 쏟아지는 박수소리도 외로움도 혼자 감당해야했던 열네 살 소년이 있다(「가을 음악회」). 그 소년이 자라서 길을 떠난다. 그는 길 위에서 수많은 편지를 쓰지만 그것은 늘 배달되지 않는다. 편지는‘주소가 없어’부쳐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강물에/ 편지를 써 보았나’(「헌화가」)하고 묻는다. 그는 편지를 쓰지만 강물에다 쓰므로 누구도 그것을 읽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는  아무에게도 접속되지 않을 수밖에 없고, 접속되지 않으므로 접촉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그것은 늘 혼자만의 독백이 되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접속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늘 불발로 끝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편지는 계속된다. 그의 노래는 계속된다.

 

그의 노래는 바람이었다

뼈가루처럼 하얗게 흩날리는

눈발이었다

한번도 그는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현을 짚어내고 튕기는 그의 손은

손에 있지 않았다

그의 손은 가슴 속에서

절벽을 움켜쥐고 있었다

뚝뚝 떨어져 나가는 살점들

봄이 되어도

꽃 피우는 나무들 옆에

그는 살아 있는 듯

죽어 있었다

죽어도 꼿꼿하게 설 수 있다고

아무도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이 없다

―「가인 歌人」

 

  나호열이“한번도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은”, 그러나  아무도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이 없는 ‘가인’을 소개할 때, 이 가인은 그대로 그 자신의 자화상이 된다. 그도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고자 하지만 누구도 그와 접속되지 않는 것이다. 이 시집에 목소리, 말, 침묵을 소재로 한 시가 많은 것도 이러한 특징을 반영한다.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들은 사람이 없는 것, 아무리 편지를 써도 부칠 수 없는 것, 이것이 나호열의 시의 한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혼녀였다.

그녀는 파출부였다

그녀는 바람난 여자였다.

그녀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하우스에서 잠을 잤다

그녀는 버림받았고

그녀는 배반했다.

그녀는 재즈를 불렀다

 

그녀 안에 있는 모든 그녀들이

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우울증에 걸린 이혼녀가

우울증에 걸린 파출부를 죽이려고 하고

우울증에 걸린 바람난 여자가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는 그녀를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우울증에 걸린 배반이

우울증에 걸린 복수를 죽이려 하고

우울증에 걸린 재즈가

우울증에 걸린 그녀의 잠을

그녀의 집을 죽이려고 찾아들었다

 

그녀는 죽지 않기 위해

모든 그녀들을

우울증을 죽여 버렸다

 

스물 다섯의 젊은 여배우는

우울증에 걸린 이 세상을

목에 매달았다

우울증이 소문처럼 이 세상을 맴돌았다

―「어느 여배우의 죽음」

 

  나호열의 이번 시집에는 타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대상에 대하여 관찰하는 경우도 드물다. 대신 이 시집은 시집 전체가 그 자신의 독백이라고 해도 좋을 만치 내면을 고백하는 일에 바쳐져 있다. 드물게 위의 시는 타인에 대해 얘기한다. 그것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젊은 여배우에 대해. 이 여배우는 이혼녀 역할, 파출부 역할, 바람난 여자 역할 등 많은 역을 맡고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잠을 잔다. 그러나 이 여배우는 혼자서 여러 사람의 역할을 할 뿐, 그녀 밖의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그녀 안에 있는 모든 그녀들’이 그녀의 소통 상대인 것이다. 그러나 자기 속의 자기와의 소통은 결국, 불행한 대화임이 드러난다. 그녀가 연기하는 이혼녀는 ‘우울증에 걸린’ 이혼녀이고, 파출부도 ‘우울증에 걸린’ 파출부며 바람난 여자 역시 ‘우울증에 걸린’ 여자인 것으로 보아서 그러하다. 그녀가 연기하는 배반, 복수, 재즈 부르기, 잠자기도 모두 우울증에 걸린 상태의 것이다. 이 여배우가 죽기 않기 위해서 (물론 이 죽음의 공포도 우울증 때문에 생긴 것이다) 택한 방법이 우울증을 죽이는 것이고 그녀 안의 그녀를 모두 죽이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여배우의 자살의 원인이 우울증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인데, 우리는 다시 그 우울증의 원인이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수많은 자기들, 다시 말해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자기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채, 자기 혼자 묻고 자기 혼자 대답하는 상황이 계속 된다면? 위의 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호열 식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극단적인 대답 말이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어느 여배우에게 보내는 나호열의 연민은 ‘배우’의 죽음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자기 안에 많은 사람들을 가두고 우울하게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연민인 것이다.

 

3. 당신에게 말 걸기

 

 나호열 시집 [당신에게 말 걸기]는 그가 우리에게 어렵게 건네는 말이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그들’ 중 하나가 그의 몸을 빠져나와 조심스레 우리에게 붙여오는 말이다. 그 자신이 외롭고 슬픈 존재지만 더 작고 더 쓸쓸한 것들을 향해 내미는 손이다.  

 

풍경이 흔들린다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아, 화약 냄새

풍경소리 대신 사랑꽃이 봉오리를 연다

바람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앉아서 귀를 열어

산을 듣는다

보듬을 수는 없으나

보면 볼수록 목소리가 청량하다

나무가지에 걸터 앉았던 새의 발자국이

무성한 잎으로 반짝이고

무심한 줄만 알았던 시냇물이

날다람쥐로 고개를 넘는다

바람난 몇 그루의 나무

물그림자에 혼이 나가고

풍경소리에

사랑꽃 벙그는 분홍빛

시냇물 속에

가까이 다가 앉는다

온기가 닿을듯 말듯한

모닥불 그 아슴한 거리에

들릴듯 말듯한

이야기가 한 구절씩 타들어간다

시간의 결 속에 문신으로 새겨넣었던

가까이 앉은 주인공은 누구인가

풍경이 다만 흔들린다

바람이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가까이 앉아서 이야기 하다」

 

  나호열은 여전히 길 위에 있다. 그러나 바람의 길, 떠돌이의 길에서 그는 잠시 멈추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파란 신호등이 들어와도 서고/ 붉은 신호등이 와도 멈추어 선다”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멈추어 서야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그 신호등은 나를 서게 한다」)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풍경을 흔들고 지나갈 때, 그는 드디어 ‘산을 듣’기에 이른다. 풍경소리가 아니라 사랑꽃이 봉오리를 여는 소리, 바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게 된 것이다. 그는 산‘가까이 앉아서 귀를 열어’ 산을 듣는다. 그리고 시냇물 가까이 다가가 시냇물을 듣는다. 그때 ‘들릴듯 말듯한 이야기가 한 구절씩 타들어’간다. 이 시에는 외로움이나 그리움, 슬픔이 끼어들 틈이 없다. 대신 길에서 만난 대상에 대한 귀기울임,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자리한다. 

  나호열은 「길은 저 혼자 깊어간다」라는 시에서 “천천히 아주 조금씩/ 참을성 있게 그 길은 저 혼자 깊어져 간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멀리 멀리 돌아서 보면/ 직선으로 달려갔던 그 길도/ 알맞게 휘어도는 것을”이라고 노래한다. 이것은 길 위에서 오래 시간을 보낸 사람만이, 그리고 길 위에서 혼자 울어본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을 이길 수는 없어도/ 참아낼 수는 있는 것”(「먼 여행」)이라는 달관의 경지 역시 혼자만의 먼 여행을 통해 이룩해 낸 것이 틀림없다. 길이 저 혼자 깊어져 가는 것처럼 나호열도 길 위에서 이만치 깊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도 그만큼 깊어져 수많은 아포리즘을 이 시집은 지니게 된 것이다. 

  앞에서 나호열은 외롭고 그리워서 여행을 떠나고 떠남으로써 다시 외로워하고 그리워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서 말하고 혼자서 운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깊어진 그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출 줄 알게 된다. 그리고 주변의 사물들에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는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당신에게 말 걸기」

 

  혼자서 있어서 외롭고 외로워서 다시 혼자였던 그가 누군가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도 놀랍지만 이 시에 담긴 마음은 더 놀랍다.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는 전언! 과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화난 꽃도 없다는 말도 듣고 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이 세상에 못난 꽃이 어디 있으며 화난 꽃은 또 어디 있더란 말인가. 그는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예쁜 꽃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 마음이 참 예쁘다. 그런데 꽃이 자신이 이렇게 예쁜 걸 모르는 것 같아서 다가가서 “당신은 참, 예쁜 꽃”이라고 말해주기까지 한다. 이 마음은 더 예쁘다. 이 예쁘고도 예쁜 시의 제목은 「당신에게 말 걸기」이다. 그는 꽃에게 다가가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으며  “당신은 참, 예쁜 꽃”이라고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나호열이 말을 건네어 보는 것은 예쁘지만 작고, 예쁘지만 자신이 예쁜 줄 모르는 것들이다. 특히 그의 말 걸기는 단순히 의사소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다가가 그를 위로하고 그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호열의 말 걸기가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검은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쓰고 걸어간다

걸어가는 쓰레기처럼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 곁을 지나간다

코를 막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 옆을

묵묵히 걸어간다. 뷹은 신호등 앞에서 멈추었다가

초록 신호등이 켜지자 다시 걷는 걸 봐서는

그는 아직 정신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창안을 들여다보다가

키득거리며 손짓하는 제 또래 여학생들을 피해

다시 걷는다

너는 누구냐 지나가는 경찰도 묻지 않는 그

인생이 노숙이라는 것을 너는 아느냐

망막에 눈물을 걸쳐놓으니 너도 참 아름다운 사람

열 다섯이나 되었을까

제 몸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우주 속을 걸어가는 어린 왕자 같구나

낙엽 가득한 쓰레기 포대 속으로 낙엽과 함께 사라지는 너

그런데, 왜 너의 발자국 소리가

내 가슴속에서 쿵쿵거리는 지

나는 알 수 없구나  

―「어린 노숙자」

  

  이 시에서 나호열이 위로하고자 하며 또 그 가치를 알려주고자 하는 대상은 검은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쓰고 쓰레기 냄새를 풍기며 걸어가는 열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어린 노숙자이다. 사람들은 이 어린 노숙자가 지나갈 때 코를 막거나 찡그리고, 제 또래 여학생들은 키득거리며 손짓한다. 지나가던 경찰조차 그에게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호열은 이 어린 노숙자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꽃에게 말을 걸듯 이 어린 노숙자에게도 말을 걸고 싶은 것이다. ‘망막에 눈물을 걸쳐놓으니 너도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리고 너의 그 모습은 마치 ‘우주 속을 걸어가는 어린 왕자 같’다고. 그리고 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도 망막에 눈물을 걸치고 산다고. 나도 너처럼 외롭고 슬프다고. 그러기에 ‘너의 발자국 소리가/ 내 가슴속에서 쿵쿵’거리고 있다고.

 

입다물고 있어

한때는 무엇이었을 쓰레기들

비닐봉지에 몸을 섞는다

3인용 쇼파 하나 비닐봉지 옆에

내버려져 있다

한때는 나도 등나무였던 시절이 있었다

꽃도 피우고 잎도 돋고

바로 서지는 못해도 뜨겁게 사랑할 줄 알았다

너도 버려졌구나

화적떼처럼 달려드는 바람을 어쩌지 못하고

은행잎들 무수히 쇼파에 내려앉는다

아무도 그들이 떠난 곳을 묻지 않는다

모든 쓰레기는 전생을 가지고 있다

―「前生」

 

잠이나 자자

쿠숀이 무너져 버렸지만, 쇼파는 늘 아름다운 꿈을 준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따라 나는 그곳에 간다.

낮이나 밤이나 꿈을 꾸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은 흰 자막같은 깃발을 높이 세워두련다

멀리서도 그 깃발이 보이게,

내가 여기 살아있다고 손짓을 하고 있어.

바람이 필요하겠지

세찬 바람이 깃발을 깃발답게 만들어 주겠지

그 깃발 바라보고 어디서든 길 잃지 말아라

멀리 가지는 말아라

 

쇼파가 내게 말한다

너는 너무 낡았어

내가 쇼파에게 말한다

너는 너무 낡았어

같이 낡아버린 쇼파와 나는

삐거덕 소리를 낸다

부둥켜안을 때 나는

뼈와 뼈가 맞닿는

저 아득한 소리

―「그렇다」

 

  [전생]에서는 비닐봉지 옆에 내버려져 있는 소파를 향해, [그렇다]에서는 쿠션이 무너져버린 소파를 향해 나호열의 말 걸기가 시도된다. 그가 말을 건네는 것은 이렇게 약하고 그늘 진 것들이다. 그리고 자기와 닮은 것들이다. 쓰레기 옆에 버려진 소파, 쿠션이 무너진 소파를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는 마음은 자기와 닮은 것에게 보내는 연민에 다름 아니다. 이 보잘 것 없는 것, 쓸모없는 것에게 보내는 눈길 속에서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탄생하고 있다. 시 「전생」이 보여주는 통찰은 이런 것이다. 모든 쓰레기는 전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지금은 아무도 ‘전생’을 묻지 않는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다 무엇무엇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굳이 사람에게로 옮겨보자면 모든 사람은 그대로 다 존엄하며 누구도 함부로 취급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다시 ‘당신은 참, 예쁜 꽃’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나호열이 ‘소파’에게 말을 건넬 때, 꽃에게 하듯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소파에게 ‘너는 너무 낡았어’하고 말할 때, 그는 소파의 화답을 받게 된다. ‘너는 너무 낡았어’하는 똑같은 말을. 그리고 그와 소파는 같이 삐거덕 소리를 낸다. 그와 소파가 “부둥켜안을 때 나는/ 뼈와 뼈가 맞닿는/ 저 아득한 소리”는 훌륭한 화음이 될 것이다. 그와 소파가 하나가 되어 내는 소리이므로. 이렇게 해서 그의 말 건넴은 소파와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그래서 결국 그를 외롭지 않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말을 건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일 것이다. 특히나  작고 쓸쓸한 것들에게 허리를 낮추어 거는 말들은 따뜻하고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말 건네기는 분명 더 따뜻하고 더 밝은 화답을 돌려받을 것이다. 나호열이 [당신에게 말 걸기]에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말 건넴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시집 [당신에게 말걸기]는 그에게 중요한 전환이 되는 시집임에 틀림없다. 작고 쓸쓸한 것들에게 건네는 말건넴에서 그는 어떤 화답을 받을까? 그리고 그는 그 화답을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 것인가. 그의 다음 시집이 기대되는 이유다. 그의 시를 빌려와 그의 시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싶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부드럽게 풀려나가는 실타래 같기를!

 

나는 기억한다네

지금껏 지나왔던 길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눈감고도 훤히

바라볼 수 있다네

지금껏 지나왔던 길이

내 몸을 묶었던 오랏줄이었다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부드럽게 풀려나가는 실타래 같을 것이네

더 멀리 가보려고 발버둥치는

더 빨리 닿으려고 마음 졸이던

그곳은 어디에도 없다네

―「헌츠빌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