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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맹목적인 '親환경'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8. 16. 01:49

 

맹목적인 '親환경'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 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녹색' '친환경' 내세운 정책이 사태 악화시키는 경우 많아

기후변화로 몸살 앓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연약한 우리들,

지구 구하자는 허황된 얘기 말고 환경변화 적응하는 노력 힘써야

자연이 정말 이상하다. 사라졌던 장마가 되살아나면서 두 달 가까이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국지성 폭우가 쏟아진 서울 도심에서는 산사태로 쏟아져 내린 엄청난 토사류(土砂流)가 아파트를 덮치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지난겨울의 추위도 혹독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진과 해일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이 이제는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도 극심한 가뭄과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촌 어디에서도 성한 곳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 소재에 대한 공허한 논란이 벌어진다. 우면산도 예외가 아니다. 생태공원을 만든다고 산을 마구 파헤쳐서 생긴 인재(人災)였다는 주장과 우면산의 토질이나 수목 상태를 고려하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천재(天災)였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실제로 산사태는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현상이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오지나 바닷속에서도 생긴다. 매년 산사태에 희생되는 사람이 태풍이나 허리케인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보다 더 많다. 모든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우리 탓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피해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주장도 확인하기 어렵다.그럼에도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알량한 과학기술을 앞세워 맹목적인 개발과 성장을 추구해왔던 우리 인간에 대한 자연의 냉엄한 복수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눈부신 성장의 유혹에 빠져 있었던 우리가 자연환경을 위해 충분히 고민하고 노력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많이 늦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라도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투자를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친환경적인 녹색 성장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명백한 당위적 책임이고 의무임에 틀림이 없다.그렇다고 무작정 '녹색'과 '친환경'을 외치기만 하면 자연환경이 지켜지고 복원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겉으로는 친환경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환경에 더 큰 부담을 주는 황당한 일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친환경의 환상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우면산에 조성 중이던 생태공원이 그런 경우였다. 생태공원이라는 이름만 붙여 놓는다고 모두 시민의 포근한 휴식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환경의 명분이 오히려 우리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버리기도 한다.정부가 강화도, 인천만, 아산만, 가로림만 등에 건설하겠다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潮力)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하루에 두 차례씩 드나드는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지극히 친환경적일 수 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나서서 온실기체 배출을 줄이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해버린 정부로서는 더욱 그렇게 보고 싶을 것이다.그런데 밀물과 썰물의 에너지를 활용하려면 거대한 물막이 댐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서해안 갯벌을 포기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조력발전이 정말 친환경적인지가 불확실해진다. 실제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규모 조력발전소는 1966년에 완공된 프랑스의 랑스 조력발전소가 유일하다. 조력발전의 친환경성이 명백하지 않다는 증거다. 더욱이 서해안은 지형적 특성 때문에 썰물을 이용할 수 없어서 발전 규모에 비해 갯벌의 피해 면적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건설하게 된 시화호 조력발전소와는 문제가 전혀 다른 셈이다.진정한 친환경은 현대 과학과 기술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진정한 녹색 기술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엉성한 직관과 감성에 의존한 친환경은 엉터리 구호일 뿐이다.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을 지고 장에 따라가는 어리석음으로는 친환경의 목표를 절대 달성할 수가 없다.친환경도 어쩔 수 없이 인간 중심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는 친환경은 의미가 없다. 인간이 사라진 다음 지구에서 벌어지게 될 삭막한 광경을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우리가 구해내야 한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연약한 우리 자신이다.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의 엄청난 영향력과 파괴력을 비판하면서 돌아서서는 우리가 지구를 구해내야 한다는 달콤하지만 모순적인 주장에 현혹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정말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친환경의 환상이 아니라 급격하게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현명하게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다.

조선일보 2011.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