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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품격 높은 문화국가 구현을 위한 문화예술의 가능성과 역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1. 5. 22:46

품격 높은 문화국가 구현을 위한 문화예술의 가능성과 역할

 

김주영(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1.문화예술의 사회적 영향

 

사회가 예술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에 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왔고, 반대로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시대를 품습니다만, 한 작품이 시대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연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작품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대개 주관적인 영역에 머물기 때문이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해서, 이를테면 사회의 행복 지수 상승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술과 사회, 사회와 예술의 주고받는 영향에 관한 일반론은 저에게 결국 ‘닭과 달걀의 문제’와 유사합니다. 비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先 인가의 문제, 즉 시대가 예술을 만드는가, 예술이 시대를 만드는가에 대한 저의 통찰은 ‘ 사회가 예술을 만들고, 예술이 사회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회와 예술이 상호간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예술이 한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책을 예로 들자면, 한 작품은 개인에게 간접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경험은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책을 읽기 전과 후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겁니다. 개개인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집약되었을 때 저는 그것이 엄청난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고양된 풍부한 감성은 한 사회의 정신적 풍요로움과 비례할 것입니다.

 

또한 문학작품은 자신과는 다른 곳에 위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역지사지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작품이 개인으로 하여금 타인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하게 만드는데 일조 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는 우리 사회가 효율적으로 소통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때 우리는 경제 성장을 목표로 생산성 증대를 위한 성실과 근면, 부단한 노동만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지금도 성실과 근면은 중요한 덕목이고, 도 그래야만 합니다만, 지금은 그것이 전부인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1만 달러를 목표로 하는 시대와 3만 달러를 목표로 하는 시대는 경제성장의 원동력도, 문화욕구와 소비도 달라야 할 것이고,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창의성이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나아가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경제적 지위에 맞는 품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소외된 이웃과 빈곤을 겪고 있는 이웃 나라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빛과 그림자는 뗄 수 없습니다. 3만 달러의 고소득 시대를 앞두고 사회적 빈곤층의 그늘은 더 짙어지고 가속화 됩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나눔’을 가능케 하는 것 역시 문화예술입니다.

예술이 사회에 끼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 전파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는 일종의 정신적 여유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과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한 편의 독서가 삶을 풍요롭게 하고, 메마른 감성을 적시고, 숨은 에너지를 일깨웁니다. 상상력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회, 문화적 감성이 물 흐르듯 소통되는 사회는 분명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 잠재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의 문화적 욕구와 성취는 경제성장과 나란히, 그에 걸맞게 성장해 왔느냐는 것입니다.

 

 

2.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문화적 빈곤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가 말해주는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정작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와 철학의 빈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시장이 경제 발전과 소득 증가에 정비례해 성장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달 -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는 순수예술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소설을 쓰는 제 입장에서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출판사도 많아졌고, 작가도 많아졌고, 장르도 다양해졌고, 독자도 많아졌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작가들이 소설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여전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조사 결과를 참조하면 그도 그럴것이 1월말 문화체육관광부의 ‘2009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독서량은 연 평균 10.9권 (월 평균 0.9권)독서 시간은 하루 평균 8 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2010년 한국인의 주당 독서 시간은 인도인의 30%도 채 안되는 3.1 시간에 불과합니다. 세계 30개국 13세 이상 3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한 결과라는데, 30개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낮은 30위를 기록했습니다. 1년 내내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성인이 10명 가운데 3명이나 된다고 합니다.(정경뉴스10월 15일자)

 

앞에서 말씀드린 출판시장의 확장은 몇 십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즉 국민소득 1만 달러 미만이던 시대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경제상황이 나빠진 최근 몇 년 간 큰 타격을 입은 사회 분야 중에 하나가 문화예술입니다.

 

일견 확장처럼 보이는 출판시장도 과거 출판시장과 단순 비교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시현상일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과 폭과 비교했을 경우, 출판시장의 성장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수익구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경기에 가장 먼저 지출을 줄이는 항목이 문화 여가 비용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다 문학은 물론이고, 음악, 미술, 공연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위원회 기금과 같은 공적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대권을 발급해서 객석을 채우고, 필요한 비용은 공적자금과 약간의 기업 후원금으로 채웁니다. 그나마 채우면 다행이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술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전문 인력이 배출되고, 다양한 형태의 창작공간이 지자체나 문화재단 등을 통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전문가다운 인식이 부족하거나, 전문 인력이 배치되지 못했거나,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하는 곳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여건도 열악할뿐더러, 예술센터나 창작공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당장 공간부터, 아니면 공간만 배정하고 마는 관료주의적 정책의 결과물은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경제성장이 문화적 욕구를 동반 상승하지 못한 채 질주했듯이, 예술경영 혹은 예술정책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적 팽창이 질적 향상을 수반하지 못했거나, 이제는 중간점검을 통해 내실을 기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3. 소통과 나눔을 위한 예술정책

 

예술정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독일의 ‘문학의 집(Literaturhaus)'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낭독의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 전국 각 도시마다 산재해 있는 문학의 집은 다양한 창구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작은 도서관인 동시에, 문학 관련각종 프로그램, 이를테면 심포지엄, 강연, 토론회 등을 진행하고, 특히 매주 작가의 작품 낭독회가 개최되는 소통의 공간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두 가지 방향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술가와 일반 대중의 소통, 예술가와 정책의 소통입니다.

 

1) 예술가와 대중의 소통

 

예술가와 대중의 소통을 말하면, 자칫 대중이 원하는 혹은 팔리는 작품을 써야한다거나, 숨어 지내지 말고 부지런히 인터뷰나 사인회에 나서라고 종용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작품을 통한 소통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과 만나야 합니다. 사실 작품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작품이 전제되어야 독자가 소통할 수 있는 것이고, 작가의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 독자를 감동시킬 때만, 그 소통도 의미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보다 많은 작가들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작가가 빈곤을 두려워하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다 하더라도, 정책의 차원에서 이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창작 여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문화시장이 열악하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의 문화 경쟁력 제고를 위해 더 많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술정책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수많은 문화예술 인재들이 역량을 다해 작품에 매진할 수 있도록 책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두 번 째로 말하고 싶은 예술가와 정책의 소통입니다. 예술정책과 경영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창작자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예술가와 정책의 소통

 

창작자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하고 또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지, 어떤 정책을 필요로 하는지, 그들의 우선 순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 입안 단계에서부터 귀 기울여 듣고, 폭 넓게 연구조사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다각도로 논의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재정이 한정된 만큼, 창작자들의 모든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공공기금으로 운영된다면, 성과나 효율성을 간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소라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창작 여건 개선을 우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술정책 시스템은 개인 단위의 창작자가 해결할 수 없는 광범위한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작권 문제, 독서 인구 증가를 위한 캠페인, 문화 바우처 등 문화 복지 사업의 확대, 문화예술 체험 교육 확대를 위한 제도 도입과 개선, 찾아가는 공연처럼 지역과 창작자의 접점을 만들어 내는 일, 문화소비 활성화 방안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적 욕구와 향유의 기회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창작 여건을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현대 예술은 장르의 확장 혹은 교류가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과 새로운 형식의 공연과 전시가 기획됩니다. 창작 현장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기존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좋은 작품을 써서 독자들과 만나는 것이 국가 문화 경쟁력의 시작입니다. 독일 문학의 집과 같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소통의 공간 또한 이와 같은 경쟁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화경쟁력은 단시일 내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자동으로 수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오로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 중심의 예술정책은 숙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3) 소통하는 정책의 조건

 

창작 공간을 운영하는 경우, 성과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 창작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작가가 창작 공간에 머문다는 것 자체에 일차적인 중요성과 의의가 있습니다. 지역 주민에게 작가의 작업실은 그 자체로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해석됩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소통과 새로운 공간의 역할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작품 낭독회, 습작 교실, 독서토론회의 작은 불씨는 작가가 현재 그곳에 ‘있음’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작의 산실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채류 작가 수, 작품 수, 출판 부수, 판매 부수 등 가시적인 결과물을 우선시한다면, 특히나 일정 기간 내에 몇 작품과 같은 행정편의주의적 결과를 요구하는 것은 창작을 독려하다기 보다, 되려 완성도 높은 작품을 향한 창작 의지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예술 정책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어떤 예술정책이건 수립과 집행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 시키는 완벽한 정책이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다수가 공감하는 공정성은 우리 모두의 노력 여하에 달렸습니다. 투명성 확보야말로 기금 운용의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중요한 관건이기도 할 것입니다.

 

4. 문화 예술 정책의 출발점

 

발제를 시작하면서, 예술정책과 예술경영에 관해 ‘팽창’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역시 몇 십 년 전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2011년 역대 최대치라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및 기금안 규모는 정부 총 재정안의 1.09%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7만 명 당 1개꼴로, 4,400명 당 한 개인 스페인의 16배에 달하며, 공공도서관의 국민 1인당 장서수는 1.3권으로 OECD국가 중 최하위입니다.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노벨 문학상을 받느냐는 질문에 한국문학번역원 김주연 원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올해 무슨 소설집. 시집을 읽으셨습니까? (만일 읽은 책이 없을 경우)당신이 바뀌면!” 이라고 말입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문화적 허기와 가난 - 우리의 문화적 빈곤함이야말로 ‘소통하는 문화예술정책’이 시작되는 지점 이어야할 것입니다.

 

* 이 글은 구 예술문화위원회(대학로)가 예술가의 집으로 개관하면서 개관기념 대토론회 기조발제로 발표된 글이다.(2010. 12.09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