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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2. 27. 13:21

 

사랑의 정체

 

김가경

 

 

 사랑하지 않고서는, 마음속에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노력을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사랑하지 말자, 겨로 사랑할 수 없다고 해도 그것 또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부모를 증오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가출하는 아이들의 환경이 객관적으로 볼 때 아무 문제가 없을 경우, 주변은 부모의 사랑의 부재를 따지고 주입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아이는 더 반발하고 더 증오심을 갖게 된다. 아이 자신이 자신 속의 사랑의 부재에 애가 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자식이니까, 형제자매니까, 친구니까, 친척이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제야말로 마음속에서 음습하게 사랑을 파멸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들은 우선 생물로써 단독의 존재이다.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물과 식물, 의류만 있으면 무인도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다. 진화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 지적 레벨 이상이 되었을 때 집단생활의 이점을 알고 모이게 된 것이다. 규칙이 생기고 그 규칙이 점점 더 확실함과 견고함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표면적으로는 법이랑 사회적인 룰, 그리고 내면적으로는 법이랑 사랑의 강제가 행해진다. 사람이 사람으로 있는 이상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고.

 

 그렇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들이 지금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대상의 어느 정도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또는 '사랑하고 있다'는 순간이 있으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순간도 있다는 걸.

 

 이 미묘한 엇갈림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정말은 그렇게 절대적인 사랑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회나 개인에 위험을 가져오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원래 에고의 덩어리로, 자기가 가장 소중하고 타인의 아픔 같은 것은 그 다음이다. 어쩌면 전혀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 理想이라는 것은 대개 먼 존재가 덧없는 끈으로 이어져있가고 생각하면 슬픔만큼 편해진다.

타인도 그렇다. 그래서 바라는 것을 강요할 수도 없다, 라는 체념이 어쩌면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새롭게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지만 사랑보다는 진실에 더 향해 있는 깊고 순수하고 부드러운 인간의 '어떤 축복스러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김가경 수필집 『사랑』(푸른사상,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