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여 詩人에게 고독을 선물하라"
조정권 시인 '고요로의 초대' 펴내
한국 시단의 '정신(精神)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조정권(62·사진)이 6년 만의 새 시집 '고요로의 초대'(민음사 출간)를 냈다. 육지에서는 연기가 수직으로 올라가고 바다에서는 수면이 잔잔한 그 순간 '고요'처럼 조정권의 시어는 "사유(思惟)의 높이와 깊이를 담아낸다"(문학평론가 이광호)는 평가를 받아왔다.
17일 만난 시인은 전날의 숙취로 계속 냉수를 들이켰다. 고려대 문예창작과 제자들이 상계동 집 근처로 찾아와 과음을 했다고 했다. 한때 시인 남진우, 평론가 하응백 등과 함께 '상계동 시단'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이제 남은 건 자신뿐이라며 빙긋 웃었다. 제자들에게 하는 소리는 늘 일정하다. "선생 닮지 말라. 시 쓸 때 선배 닮지 말고, 너희들끼리도 서로 닮지 마라. 시는 같이 어울려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혼자 가는 것이다. '독생'(獨生)이다." 그는 수도자·성직자에 비유하면 시 쓰기가 '기도하는 행위'라고 했다. 가라앉거나 들뜨지 않은 마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서(自序)를 쓰지 않았다. 대신 막스 헤르만의 잠언 중에서 '바라는 것'을 인용했다.
'소란스러움과 서두름 속에서도 늘 평온함을 유지하기를./정적에 싸인 곳을 기억하기를./ 한때 소유했던 젊음의 것들을 우아하게 포기하고/ 세월의 충고에 겸허히 의지하기를./ 자신에게 온화하기를.'
1991년 시집 '산정묘지'로 같은 해 김수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한꺼번에 받은 뒤 그는 상을 '스쿠루우지 영감의 쇠사슬'에 비유한 적이 있다. 전생에서 지은 죄만큼 쇠사슬이 늘어난다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비유처럼 격려나 위로 못지않게 그 상이 무겁고 부담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는 "시인에게 가장 좋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철저한 고독"이라며 "고독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의 산물로 읽는 독자들이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그렇게 시인은 당신을 '고요'로 초대한다.
조선일보 2011.02.21
글=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
사진=이덕훈 기자 dh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