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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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1989

희망의 나라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1. 29. 21:56

희망의 나라로 / 나호열

 

1.

사막을 건너가는 쌍봉낙타를 본 적이 있어

가도가도 끝없는 열기와 모래바람

이윽고 오아시스에 닿을 때까지

배고픔을 견디고

갈증도 아낄 줄 아는 영리한 짐승

이 도시가, 거대한 낙타가 되어 걸어가고 있어

육봉 속 감추어진 지방질

차곡차곡 술통처럼, 채워진 물과 같이

우리는 그렇게 뒤엉킨 채 어둠에 묻혀있지

역사의 가파른 비탈길을 빈 물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올 때마다

우리는 두통을 느끼면서

"왠지 낙타가 흔들리고 있군"하고 혼잣말을 하지

아무도 희망의 나라에 가보지 못하였으므로

눈 먼 낙타의 신기루를 눈치채지 못하였으므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였다.

 

2.

휴화산 베스비어스, 나는 꿈꾼다

포식을 끝낸 이빨처럼

제련소 높은 굴뚝을 빠져 나오는

연기의 내력을

미래는 아름답다라고 내게 속삭이던

소녀는 할머니가 되어가는 나른한 오후에

부화되지 않는 광물鑛物의 마지막 순간을

총성처럼 울리는 경고방송

마음대로 하늘을 날아서는 안되는

아, 희망의 나라로 날아가던

한 떼의 새들이

일제히 내 꿈을 덮친다

그렇다면 베스비어스, 절망의 남근이여

너를 부둥켜 안고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가슴으로

우리는 한마디

너의 절규를 듣고 싶어한다

최후의 증인처럼

당당한 패배를 첫사랑으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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