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시창작 도움자료

작가는 고민을 기록하는 동시대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1. 13. 13:13

작가는 고민을 기록하는 동시대인

 

 

                                                                                                                                                                         은희경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까지 인생의 단정함을 가지려고 했었다. 보통의 주부였고 건전한 소시민이었다. 그 때의 나는 정의로움과 미덕, 인간의 선의 善意를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으며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게다가 내가 갖고 있는 틀로는 도저히 세상을 해석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점점 혼란과 절망에 빠졌다. 나는 가족에게 성실햇지만 늘 외로워야 했고, 재능을 다 바쳐 최선을 다했지만 가난했으며, 점점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간다는 좌절에 빠졌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란 것이 불공평하고 부조리하며 또한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삶의 구체적인 곤궁과 불신에 부딪치면서 내가 모르고 있었던 나의 비겁하고 모순되고 이기적인 면을 알게 되었다.

 

대체 삶은 무엇인가, 또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잘못 살아왔다고 깨달은 30대의 질문은 훨씬 절박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나 살자, 그리고 또 나만 이렇게 문제많은 사람인지 아니면 인간은 누구나 다 그런 측면을 가지고 있는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좀 알아보자. 나는 그런 마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소설은 따뜻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내 소설은 자기 부정과 세상의 이면 裏面을 뒤집어보는 비판적 관점으로부터 태어났다. 신랄하고 냉정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 위트, 농담이 적절했다.

 

또한 나는 60년대 70년대에 성장했고 80년대에 청춘을 보냈다. 억압이 많은 사회는 이선을 낳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진지함과 건전함을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던 나는 인간과 인간사회의 허위의식을 까발리기 시작했다.

 

문학은 사회를 반영한다. 90년대 이전까지 한국문학은 상당히 무거웠다. 전쟁을 고발하고 독재에 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소설에서 가벼움'과 '객관적 태도'와 '유머'를 중요하게 여겼다.

 

"열 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나의 첫 장편 <새의 선물>에서 어린 나이에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상실한 소녀가 어른들의 삶을 통해 환멸을 알아버린 뒤 내뱉는 독백이다. 삶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이것은 반어법이다. 나는 인간의 상처를 덮고 핥아주는 다정함 보다는, 환부를 똑똑히 바라봄으로써 익숙해지도록 하는 위악적 태도를 상처의 치료법으로 택했다.

 

내 주인공들은 지나칠 만큼 자기 자신을 '본다'. 때로는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킨다. '보여지는 나'에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나'이므로 나를 '바라보는' 진짜 나는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상처를 덜 받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상처입힌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는 나약한 사람들이 차라리 세상을 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려 하는 자기방어의 아이디어라고 할 수도 있다. 싸움에 자신없는 내 방식대로의 휴머니즘인 셈이다.

 

내가 휴머니즘을 표현하는 방식은 인간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우리 모두도 똑같은 존재라고 말해주눈 것이다. 내 소설 <비밀과 거짓말>에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지냈던 냉정한 아들이 등장한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밝혀진 아버지의 비밀과 거짓말을 엿보면서부터 비로소 아버지라는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강인함으로 인해 위대해지지만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는 깨달음과 함께.

 

이처럼 내가 보는 세상은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어려운 세상이다. <타인에게 말걸기>라는 내 소설에서 주인공 여자는 타인의 따뜻한과 사랑을 갈구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많은 남자에게 말걸기를 시도해보지만 결국 언제나 혼자 남겨진다. 주인공 남자는 자신의 세계로 침입하려는 여자를 경계한다. 여자는 점점 망가져가더니 마침내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억지로 병원에 불려나온 남자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왜 하필 너를 불렀는줄 알아? 네가 친절한 사람 같지 않아서야. 거절 당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았어. 나 네가 좋아.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냉정함 말이야. 그게 너무 편해. 너하고는 뭐가 잘못되더라도 어쩐지 내 잘못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이처럼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고독과 불안, 소외, 따돌림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더 괴로운 것은 분명 뭔가가 잘못돼 있는데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것이 단자화된 개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선악이 분명한 시절에는 물리쳐야 할 적이 있었고, 또 인과관계와 승자가 있었다. 고전소설이 그렇듯이 서사도 다채로웠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대인들은 타인에게 깊이 개입하지 않고 자신 역시 침해받지 않으며 거리 유지를 하며 살아간다. 고독을 감당해야만 한다. 존중 받아야 할 자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타자와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현대적 부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나는 작가가 더 이상 스승이나 선각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민을 기록하는 동시대인이다. 작가는 세상 전체를 볼 수 있는 문을 향한 열쇠를 발견해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이 포착한 현대인의 고민을 그려내고 거기에 대한 사유를 제시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나의 관점'을 보탤 뿐이다.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관점이 보태질 때마다 우리는 인간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을 거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문학이 인간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다.

 

『문학의 집 서울』제 109호 (2010년 11월호) 「수요문학광장」에서 옮겨옴.

 

작가약력

 

1959 전북 고창 출생

1981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83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석사)

1995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이중주>로 등단

1996 장편 <<새의 선물>> 발간

1997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 발간

1998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발간

1999 장편 <<그것은 꿈이었을까>>, 소설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발간

2001 장편 <<마이너리그>> 발간

2002 소설집 <<상속>> 발간

200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위원 장편 <<비밀과 거짓말>> 발간

2007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발간

 

수상

 

문학동네 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시창작 도움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0) 2010.12.05
시와 이미지   (0) 2010.11.30
상상력  (0) 2010.10.31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기  (0) 2010.10.28
진정한 시의 죽음을 위하여  (0) 2010.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