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의 눈
나호열
퇴로를 무너뜨리면서 앞으로 앞으로 기어가는
두더지의 작은 눈은 언젠가는 터져 버릴지 모른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더욱 어둠답게 보는 일처럼
가슴 따뜻한 일이 또 있을까
언젠가 언젠가 지상으로 돋아오를 때
아주 미세한 빛에도 눈은 스스로 문을 닫아
길섶에 무심히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볼 때 마다
어쩔 수 없이 땅 밑으로 숨어들어가 세상을 그리워 한
두더지를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 고개 내민 두더지의 눈과 마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