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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게 길을 묻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12. 27. 17:53

꽃에게 길을 묻다

──태백의 개불알꽃

 

 

박강순

 

 

꽃과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눈앞에 있을 때 굳이 멀리 두고 보아야 하고

멀리 있을 때 애써 눈앞에 두고 보듯 보아야 한다

누구나 날 때와 죽을 때를 달리하는 까닭에

꽃과 꽃처럼 아름다운 이에게 가는 길은

참으로 이 길 밖에 없다.

──작가 미상

 

 

 

봄이 되니 온갖 꽃이 다투어 피어난다. 날씨는 차고 쌀쌀한데 어디에 숨었다가 돋아나는지 거기에 그 꽃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곳에서 눈부시게 찬란한 빛깔을 터트려 겨우네 웅크렸던 사람의 마음에 따뜻한 기운을 가져다 준다. 꽃이 먼저 피는 놈도 있고, 잎이 먼저 피는 놈도 있지만 봄에 피어나는 모든 것들은 잎도 꽃처럼 아름답고, 꽃도 잎처럼 아름답다. 처음 돋아나는 여린 기운이 뭉쳐서 한 다발의 화사한 꽃다발을 통째로 선물하는 것 같다.

꽃이 먼저 피는 복숭아꽃은 그 진한 분홍빛이 아련한 그리움 같고, 은행나무 끄트머리에 달려있는 새싹은 여리디 여린 아이의 손가락처럼 사랑스럽다. 문득 멈춰 서서 그것들을 올려다 보면 어두운 도시 하늘에 연둣빛 손가락이 다투어 나를 보며 부르는 듯 싶다. 오동나무는 보라색 꽃등을 온몸으로 밝히고 서 있다. 그 튼실한 몸뚱이에 어떻게 저렇게 고운 색깔이 숨어있을까, 마법 같은 꽃의 희롱이 신기하기만 하다.

나이를 먹으니 가을 보다는 꽃이 피는 봄이 아름답고 생명의 경이를 더욱 느끼게 한다. 사실은 그 글이 그 글 같고,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글을 쓴다는 것이 장난을 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꽃은 저렇게 치열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떨어지는데, 사람은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은지. 유정有情이 사람을 이렇게 힘들 게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시간의 유한성과 인간의 다정多情이 어지럽게 분분이 지는 꽃처럼 눈앞에서 흔들린다.

 

 

 

■태백의 개불알꽃

 

여기 꽃이 있다. 꽃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귀하게 생겼고 잎도 그만 하면 나무랄 것이 없는데 하필 이름이 그러하다. 누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요즈음에는 보기도 힘든데, 너무 잔인한 운명인가. 입술 꽃잎이 주머니처럼 특이하게 생겼는데 누군가가 얄궂게 그 모양을 보고서 장난끼가 발동하였나. 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사람들에게 개명을 해달라고 아우성을 쳤겠지만 꽃은 말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개불알꽃은 우리나라 산속에 피는데, 나는 태백에서 처음 그 꽃을 보았다. 귀하기는 귀한 것 같다. 그 때까지 제법 산에 많이 다닌 편인데 한번도 그 꽃을 만난 적이 없었다. 야생화를 찍은 달력에서 그 꽃을 처음보고 이렇게 특이한 꽃도 있구나 하고 생각을 했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니 찾아서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좀 귀한 야생화는 군락지가 노출되면 사람들이 모두 캐어서 집에 가져 가려고 하니 꽃을 찍은 사진은 있어도 그 곳이 어디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꽃과의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지고 그러한 만남이 있어 더욱 지극한 것이 아닐까?

 

여행을 할 때는 무작정 떠나는 것도 좋지만 테마를 정해서 가면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고 놓치기 쉬운 풍경도 찾아낼 수가 있다. 그래서 그 해 그 해마다 주제를 정해서 여행을 하는 습관이 있다. 한때는 폐사지만 찾아 다녔고, 한때는 섬을 떠돌아 다녔고, 한때는 큰 나무만 보러 다녔다. 강의 발원지를 찾아 보기로 하고 처음 떠난 것이 태백에 있는 한강의 발원지-검룡소-였다. 발원지라는 말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무엇보다도 한강이라는 큰 강의 시작, 그 시작이 주는 신비함과 원시성.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근원에 대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 그리고 그 시작은 작은 샘이라는 사실이 여행을 흥분 시킨다.

 

부산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은 정말 멀다. 대구를 지나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영주에서 내리면 그때부터 구절양장 구비구비 산속 길을 지나야 태백에 도착한다. 봉화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은 산 속으로 난 길이라 주변의 경치가 아름답다. 자꾸 휘둘리며 구불구불 그 길을 가다 보면 이 길은 4차선으로 새로 안 만드나 하는 불평을 하고 만다. 정말 우리나라 국도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면서도 가끔 이런 불평을 하는 것을 보면 나 역시 편리함에 길들여졌구나 하고 어쩔 수 없는 한숨을 짓게 된다 .

 

검룡소는 태백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안창죽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내가 갈 때만 해도 처음에는 포장이 되지 않고, 표시판도 적었는데 두 번째 가니 달라지고, 세 번째 가니 포장도 되고 표시판도 더 커져서 찾아 가기는 아주 쉬워졌다. 구불구불한 길을 10여 킬로로 달려가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1.5킬로미터를 걸어가면 검룡소가 나온다. 검룡소로 걸어가는 길은 참으로 서정이 넘치는 길이다. 길 옆으로는 숲이 우거져 있고 잔잔한 시내가 흘러가고 새들이 울고 나비가 날아가고, 가끔씩 졸졸 흐르는 물을 적시면서 징검다리도 건너간다. 키 큰 이깔나무가 시원하게 솟아있는 숲길도 지나가고,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있다. 경사도 완만하여 산책하듯 맑은 공기에 취해서 걸어가는 길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것 같다. 그렇게 걷다가 한 사진작가가 길 옆 수풀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무엇을 찍었냐고 물어보니 그가 가르키는 손끝에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그것이 개불알꽃이었다. 약간 경사진 언덕 숲속에 수줍게 피어있는 분홍꽃─특이한 입술꽃잎이 무거운 듯 고개를 숙이고 비비추이파리보다는 작은 타원형의 잎을 가진 꽃이 혼자 외롭게 서 있었다.─이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가슴에 숨겨두고 싶은 작은 연인을 만난 것 같았다.

 

그때 만난 모든 것이 신기하고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처음 만난 검룡소는 원시의 신비감을 간직한 채 용솟음을 치면서 이끼 가득한 계곡을 흘러 넘쳤고 샘은 맑고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엄숙함과 깊이가 샘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두운 바위와 푸른 이끼, 우거진 나무와 맑은 물. 이 물이 흐르고 흘러서 한강을 만든다는 경외감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탄과 기쁨을 느끼게 했다.

멍하니 샘물을 보면서 앉아 있는데, 그 윗쪽에서 심마니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다가 개불알꽃이 많이 피어있는 곳을 아냐고 물어보니 금대봉에 가면 무리지어 피어있는 곳이 많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검룡소는 대덕산에 있지만 대덕산은 금대봉과 연결되어 있다.)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5월 말경에 금대봉에 가서 그 놈을 원 없이 봐야지.

지난 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꽃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핸드폰이라도 있고 아니면 삐삐라도 있어서 ‘나 꽃을 피웠어요.’라고 울려주지 않는 한 깊은 산에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부산에서 태백이 가까운 거리도 아니니 사흘드리 가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확인하고 알려주면 좋겠지만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 없으니 작년 그 때쯤을 맞추어서 다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금대봉은 두문동에서 올라가면 많이 오르지 않고 쉽게 오를 수 있다. 금대봉은 야생화의 천국이다. 정말 얼마나 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지 모른다. “야생화쉽게찾기”라는 책을 들고 5월의 어느날 개불알꽃을 보리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금대봉을 찾아갔다.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많은 꽃을 만났다. 숲속에 피어있는 앵초와 새우란을 그렇게 본 적이 없게 많이 보았다. 짙은 분홍색의 앵초는 신록의 이파리들 속에서 작은 꽃잎을 흔들거리며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게 피었고, 사실 새우란도 아무데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내가 찾는 그 꽃이 없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개불알꽃이 있을 것 같은 숲속을 아무리 헤집고 돌아다녀도 도대체 만날 수가 없었다. 터덜거리며 내려와서 용연동굴 쪽으로 갔다. 동굴 앞 꽃밭에 무엇인가 익숙한 잎사귀가 보였다. 있어야 할 꽃은 이미 다 시들어버리고 잎만 파랗게 살아있는 개불알꽃이 그 곳에 있었다.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다시 차를 타고 검룡소로 갔다. 작년 그 곳에 가면 꽃이 있을까 하고…. 그 언저리를 다 헤집고 다녔지만 그 놈은 만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간절히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 오는 길은 멀고 길다. 꽃도 마찬가지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연이 있으면 약속이 없어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인연이 없으면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다.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손끝만 만지작거리다 전화번호를 못 누르듯이 꽃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래도 만나는 방법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듯이 보고 싶은 꽃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어느 것이 길인지는 모르지만 멀리 두고 보는 것이 오래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옛날에는 글을 읽고 그것을 이해한다고 여기면 내가 그 것을 깨우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내가 겪어서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깨우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꽃을 만나기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꽃도 공을 드리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야 얼마나 노력하고 공을 드려야 내 사람이 되겠는가.

 

 

먼 데서 반짝거리는 등불처럼

왔다가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해변의 눈발처럼

다가서면 부서지는 영혼이 있다.

소중한 것일수록

멀리 두고 보아야지

내 손에 닿으면 부서지는데

간절한 소망이 진부함 속에 사라지는 사랑으로 느껴질까봐

꿈꿀 수 있는 눈빛은 모두 지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나의 염원, 나의 영혼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개를 가지고 꽃으로 피어난다.

──졸시, 「상사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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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순 /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단순한 진리』외 3권이 있고 서울시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