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제일 양장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2. 6. 21:30

제일 양장점


                           김상숙

한 땀 한 땀

양장, 본을 뜨고 있다


실밥 잇듯 주욱 들어선

제일시장 난전 모퉁이

낙타처럼 가슴이 빈약한 여자가

늦은 밤

꽃무늬 레이스 천에

또박또박

희망의 쵸크를 긋는다


자르고, 붙이고, 덧대고

캄캄한 좌판마다

하나

꽃이 핀다

가봉假縫 없이 자르고 박은

기성복들이 질주하는 세상

틈틈이 꽃의 행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하는 그녀

시장 골목길에 모래바람 일면

박음질 끝에 더 푸르러지는 꽃나무들

마지막 단추 구멍 내다보면

낙타가 빠져나갈 바늘귀가 보인다


시집 한 권 묶으려고 나도

봉제선을 수없이

뜯었다 박는다


이 도시에서

낙타는

자주 길을 잃는다

사방이 길이다

 

 낙타와 사막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물이다. 광막한 사막을 건너가는 대상의 행렬은 우리에게는 친숙한 이미지이다. 낙타는 거친 풀을 먹고 그럴 때마다 입안 가득 피가 고이고, 내장 에 며칠을 견딜 수 있는 물주머니가 있어 갈증을 오래 견딜 수 있다. 낙타는 무릎 관절이 없어 땅에 온몸을 부딪히듯 않는다. 그래서 낙타는 삶의 고통을 이겨내는 고독의 상징, 인내의 상징으로 각인된다.

 

 그런데 과학적 상식을 넘어 엉뚱한 상상이 나를 이끈다. 낙타는 원래부터 불모의 땅 사막에서 살았던 것인가? 자신의 생명을 강력하게 보호할 무기가 없어 사막에 살게 되었는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사막을 건너갈 수 있도록 길들여졌던 것인가? 이 질문은 우문이지만 쓸모없는 질문은 아니다. 

 

 서민들에게 양장점이나 양복점은 너무 멀리 있다. 왜냐하면 기성복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칫수에 몸을 끼워넣어야 하는 삶. 몸에 옷을 맞게 하려면 살롱 또는 부따끄, 고급 호텔 아케이드에 자리잡은 테일러에 가야 한다. 물론 지갑은 두둑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제일양장점은 재래시장 끄트머리에 있다. 대형 마트에 밀려 쇠락해 가는 재래시장은 호객의 와자지껄이 있고, 흥정이 있으며, 비릿한 땀냄새가 있다. 그런 재래시장은 대량생산, 대량구매라는 자본주의의 강령에 코가 꿰인 서민들의 발걸음을 되돌리게 한다. '제일 양장점'은 절벽으로 내몰린 서민의 표상이다. '여자'의 재봉은 사막과도 같이 황폐해진 삶의 현장에 꽃을 피우는 행위이지만, 또한 낙타가 사막을 건너가듯 위험하고, 무의미하고 그래서 고독한 랭위이다.

 

이 도시에서 / 낙타는 / 자주 길을 잃는다 /  사방이 길이다

 

 낙타는 우리들 자신이다. 사방이 길인데 왜 긿을 잃을까? 이 시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방으로 뚫린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 길은 우리들 자신이 욕망을 포장하여 바벨탑에 이르게 만든 길이다. 그 길은 세속적 욕망의 '가봉假縫 없이 자르고 박은/ 기성복들이 질주하는 세상 '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바늘 귀 만한 그 길을 대다수의 낙타는 통과할 수가 없다. 낙타가, 우리가 가고 싶은,가야할 길은 따로 있다.

 그 길은 누구의 낙타가 아니라 오직 낙타의 낙타로 살아갈 수 있는 피안에 다다르는 길이다. 

 

시집 한 권 묶으려고 나도

봉제선을 수없이

뜯었다 박는다

 

이 聯은 사족이다.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금빛 주단  (0) 2009.05.09
2070년 헤이리 카메라타  (0) 2009.03.24
여보 당신  (0) 2009.01.31
검침원  (0) 2009.01.27
무덤에서 떡 먹기 장성혜  (0) 2009.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