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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무덤에서 떡 먹기 장성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1. 18. 01:34

                                       무덤에서 떡 먹기                        장성혜


하루가 무덤 속 같다면 나오세요. 어디로 갈지 방향 잡지 못하겠으면 중앙박물관으로 가세요. 깨진 약속이나 삐걱거리는 식탁은 잊으세요. 지하도에서 떡 파는 할머니 만나면 망설이지 말고 바람떡을 사세요. 입구에 화살표가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떡이 든 가방을 메고 구석기시대로 가세요. 주먹도끼 보며 가방 속 팽팽한 랩을 찢으세요. 화살표는 경고 하겠죠. 무덤에 손대지 마세요. 떡 먹지 마세요. 못 본 척 사냥하는 장면 앞에서 짐승 속살 같은 쫄깃한 떡을 씹으세요.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 줄줄이 보일 거에요. 금방 신석기시대 죠. 빗살무늬 문양을 본뜨는 아이가 쳐다보면, 얼른 하나 입속에 넣어주세요. 독무덤 곁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굽고 있어도 부러워하지 마세요. 머지않아 그 사랑도 무덤이 될 테니 까요. 천천히 걷다 보면 무덤은 자꾸 커질 거에요. 화려한 껴묻거리 사이에 오래 머무르지 는 마세요. 사라진 무덤 주인을 생각하다 목이 막힐지도 몰라요. 금관 앞에 실수로 떡을 떨어뜨려도 괜찮아요. 가방 속 떡이 남았으면, 한 바퀴 더 도셔도 좋아요. 목이 마르고 다리 가 아프면, 무덤 속이 더 환히 보일 테니까요. 아침에 빠져나온 무덤이 생각날 지도 몰라요. 떡을 우물거리며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시간의 화살촉이 보일 거에요. 벽에 해와 달이 그려져 있을 거에요. 몇 조각 구름이 떠 있을 거에요. 무덤에서 무덤으로 가는 길이 희미하게 보일 거에요. 문득 출구에 선 당신이 남은 한 조각 떡처럼 보일지라도 슬퍼하진 마세요.


 

 

‘누가 詩라는 관념을 만들어내었을까?’가끔씩 내가 나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명확한 해답이 구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을 이끌어내곤 해서 아예 처음의 질문을 잊어버리고자 애쓰게 된다. 시의 정의는, 시의 효용은 수없이 분지되고 확대되면서 결국은 새로운 시의 형식과 정의를 향한 시인들의 분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요소가 있음은 부인할 수 가 없다. 말하자면 의식과 무의식을 아우르는 세계의 새로운 발견, 체험을 바탕으로 한 聯想과 연상에서 빚어지는 상상의 세계로의 引導는 빼놓을 수 없는 시의 요소이다.

 

「무덤에서 떡 먹기」는 발상의 才氣로부터 출발한다. ‘하루가 무덤 속 같다면’과 같은 인식은 사실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이며 우리의 삶이 ‘무덤에서 무덤으로 가는 길’이라는 종반부의 인식 또한 낯설지 않으며 그러므로 ‘출구에 선 당신이 남은 한 조각 떡처럼 보일지라도 슬퍼하진 마세요.’라는 마지막 독백도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것은 시를 읽어가면서 충분히 예견이 가능한 준비과정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작 이 시를 주목하는 것은 다시 말하건대, 발상의 새로움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 세요’로 이어지는 청유請諭의 부드러움 속에 녹아드는 대화의 형식- 사실은 화자 話者이 일방적인 발언 뿐이지만- 이 단 숨에 읽어 내려가게 하고, 그렇고 그런 허무한 삶의 극복이 아니라 철저하게 허무한 삶을 더 허무하게 만드는 장소로 ‘박물관’을 선택했다는 것이 착상의 기방함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박물관’이 어떤 곳인가? 과거의 유물을 통하여 과거의 사람들과 그 삶의 흔적들을, 편린들을 되짚으면서 때로는 온고이지신의 의미를 되씹어보고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환상적으로 수행하게 해주는 장소가 아니던가!


 그러나 이 성스럽고 경건해야 할 장소에 바람떡을 사들고 가서 ‘못 본 척 사냥하는 장면 앞에서 짐승 속살같은 쫄깃한 떡을 씹으세요‘.라고 하거나  ’금방 신석기시대죠. 빗살무늬 문양을 본뜨는 아이가 쳐다보면, 얼른 하나 입속에 넣어주세요’라고 떡 먹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채 ‘가방 속 떡이 남았으면, 한 바퀴 더 도셔도 좋아요.’라고 무식한 일탈을 권유하는 것들이 판토마임의 일인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무덤 속에 산다. 오늘이라는 무덤 속에는 획일화되고 자동화된 일상과 시간의 화살촉과 몇 조각의 구름과 해와 달이 그려진 - 그것들이 컬렉션 된 그림이거나 가구라고 해도 무방한 - 완강한 벽이 존재한다. 사방이 가로 막혀야 안심하는 삶, 한 마디로 낡아져 가는 부패해가는 시간의 연속성의 사슬에 묶여져 있는 삶과 주거의 형태에 만족하는 우리는 主食이 되지 못하는 심심풀이 바람떡에 불과하다는 소모적 존재로의 격하를 감내하게 만든다.


 「무덤에서 떡 먹기」는 오늘의, 우리의, 삶을 조명한다. 아니, 어제의, 너와 나의. 마멸되고 풍화된 세계를 증언한다. 시에서 위안을 찾고, 희망을 찾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려던 독자들에게 이 시는 차디찬 경멸의 메시지만을 던져 줄 것이다. 이 시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인으로서의 올바른 태도는 자신의 인식을, 인식내용을 감추거나, 확대 포장하거나 해피엔딩의 교조적 태도에 함몰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증언하고, 시대를 증언하는 일에 - 돌팔매질을 당할 지라도-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빵처럼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시의 맛에 길들여져 있다. 나에게 남는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시에, 아니 우리의 인생에 정답이 정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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