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에 가다
불현듯 앞을 막아서는 안개 때문이라고
뒤늦은 발걸음 뉘우칠 수는 없겠네
한 계절 꽃 피우던 얼굴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까맣게 타버린 씨앗
눈물 대신 발밑에 뿌려두었으니
함부로 밟아서도 성급히 손으로 거두어도 되지 않을 일
청풍은 잠시도 발길 멈추지 못하게 하였으나
나는 보고 말았네
옥순봉 호수에 제 몸을 던졌으나
수심 깊어 기암절벽을 물 위에 그려 놓으니
또 푸른 하늘이 그림자를 비추어 주네
선경이라 한들 하루 이틀 삼일이면 시들하다는
나그네의 말씀을 한 귀로 흘리려 하네
오래 바라볼수록 내 몸에 스며들어
없는 듯 살아 숨쉬는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