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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과의 대화 289

왜군 7만 물리친 함양 백성, 그들은 왜 잊혀져갔나

왜군 7만 물리친 함양 백성, 그들은 왜 잊혀져갔나 중앙일보 입력 2022.06.10 00:28 지면보기지면 정보 경남 함양 황석산성 김정탁 노장사상가 경남 함양의 아나키스트들을 취재하다 이곳 황석산성에서 정유재란의 승패를 가늠할만한 결정적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이 전투는 정유재란 때 한양이 왜군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은 이유에 해당할 만큼 중요했다. 임진왜란 때는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이 왜군에 패해 선조가 한양을 비우고 의주로 피난을 가야 했다. 정유재란 때는 어째서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지 못했을까.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를 추론해 볼 수 있다. 황석산성 전투에서 수천명 항전 임진왜란·정유재란 종식 이끌어 이순신, 명량해전 대비 시간 벌어 참패한 일본, 전투상황 왜곡·조작 ..

유물과의 대화 2022.06.10

“양주 동자석·나주 돌장승…조선의 걸작”

“양주 동자석·나주 돌장승…조선의 걸작” 중앙일보 입력 2022.05.16 00:02 이은주 기자 구독 유홍준 교수 “그림은 사물을 본뜬 것이니 천지간의 것 가운데 그 오묘함을 그림으로 전하지 못할 것이 없다(···) 나는 화가에게 명하여 내가 그동안 거쳐왔던 관아들을 그리게 했다.” 조선시대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낸 한필교는 자신이 일했던 열 다섯개의 관아를 그린 화첩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현재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조선시대 관아 중 대부분이 옛 모습을 잃고 그 사진조차 남은 게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료적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다”고 평가했다. 조선 중종 때 문신 최명창 묘 동자석. 돌장승의 백미로 꼽힌다. [사..

유물과의 대화 2022.05.17

정조의 사상 통제로 조선 학문은 몰락했다

정조의 사상 통제로 조선 학문은 몰락했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299. 조선 학문의 종말 선언② 문체반정과 백탑파의 몰락 1803년 음력 7월 2일 훈련도감 무관 108명이 훈련대장인 영안부원군 김조순 후원으로 서울 창신동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다. 뒤쪽에 원각사 10층석탑이 보인다. 석탑은 흔히 백탑(白塔)이라 불렀다.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같은 이용후생을 주장한 학자들이 백탑 주변에서 수시로 만나 백탑파를 형성했다. 김조순은 백탑파 수장인 박지원 글을 맹비난하고 정조의 ‘문체반정’에 적극 동조한 관료였다. 그 덕에 김조순은 정조 사돈이 됐고,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 문을 열었다. 백탑파는 학문 탄압 속에 사라졌고 그 학문도 맥이 끊겼다. 박지원이 죽기 2년 전 김조순이 후원한 이 시회..

유물과의 대화 2022.04.28

“요망한 이단 서적은 일절 수입을 금하고 모두 불태우라” - 정조

[박종인의 땅의 歷史] “요망한 이단 서적은 일절 수입을 금하고 모두 불태우라” - 정조 297. 조선 학문의 종말 선언① 1786년 병오소회(丙午所懷) 정조 본인과 아버지 사도세자, 아들 순조가 태어난 창경궁 위로 낮달이 떠 있다. 정조는 스스로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불렀다. ‘만 갈래 강을 비추는 달의 주인 되는 늙은이’이라는 뜻이다. 본인은 ‘치우침 없이 밝힘으로써 스스로도 밝다’고 자평했지만 정조 시대는 일관되게 성리학 이외 학문을 배격한 학문의 암흑기였다. 1786년 ‘병오소회’는 그 암흑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4.13 03:00 관광객 홍대용의 북경 여행 1766년 서울 북촌에 사는 노론 부잣집 사내 홍대용이 작은아버지 홍억을 따라..

유물과의 대화 2022.04.13

500년 모순을 뒤집은 갑오개혁

500년 쌓인 모순 뒤엎은 그들 “두번 다시 나라를 그르치지 말자” [박종인의 땅의 歷史] 296. 갑오년 삼국지, 운명의 청일전쟁 6. 500년 모순을 뒤집은 갑오개혁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은 1894년 조선정부가 보낸 자객 홍종우에 의해 암살된 뒤 부관참시와 능지형을 받았다. 일본 지식인들은 그 잔인한 처형에 경악했다. 고종 정부가 환호작약하는 동안 전쟁이 터졌다. 대원군과 갑신정변 세력이 꿈꾸던 세상을 하나씩 그려갔지만, 일본 측 지원 속에 시작된 갑오개혁은 양날의 칼이었다. 김옥균 피살과 부관참시를 묘사한 일본 판화. /영국박물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4.06 03:00 갑오개혁의 시작 1894년 7월 13일 조선 정부는 동학 농민군 요구에 항복해 정부 내에 개혁 담당 기관인 ‘교정청’을..

유물과의 대화 2022.04.08

불국사의 비밀 "석가탑은 왜 그림자가 없을까?"

[백성호의 한줄명상] 불국사의 비밀 "석가탑은 왜 그림자가 없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1.11.03 05:00 “석가탑은 왜 그림자가 없을까?” #풍경1 신라는 종교적 지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한마디로 ‘불교의 나라’였습니다. 신라 수도였던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 이름도 ‘불국사(佛國寺)’입니다. ‘불국’은 ‘부처님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신라 왕들의 명칭에도 ‘법흥왕(法興王)’이나 ‘진흥왕(眞興王)’이 있었습니다. 부처님 법을 일으키고, 진리를 일으키자는 뜻입니다. 그러니 신라의 국가적 지향점은 이 땅에 불국토(佛國土)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왕비의 이름에도 ‘마야 부인’(제26대 진평왕의 부인)이 있었을까요. 마야는 석가모니 부처의 어머니 이름입니다. 인도식 발음을 그대로..

유물과의 대화 2022.04.08

“선비가 절에 불을 질렀기로서니 수사는 왜 하는가!”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선비가 절에 불을 질렀기로서니 수사는 왜 하는가!” 295. 흥천사 동종의 운명과 조선 선비 불교 탄압사 ‘흥천사명 동종’에 새겨진 문양. 세조 때 만든 이 대종(大鐘)은 운명이 기구했다. 조선초기 왕실 종교로 융성했던 불교는 이후 사림이 득세하면서 실질적으로 유림들의 테러 대상이 됐다. 서울 정동에 있던 흥천사도 수시로 방화에 시달렸고 많은 절들이 유생들 방화로 폐사됐다. 흥천사 종은 폐사지를 떠나 공무원들 출퇴근 시보용 종으로 쓰이기도 했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3.30 03:00 * 유튜브 https://youtu.be/2nm5E9VZq_I 에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덕수궁에는 커다란 종이 야외에 전시돼 있었다. 지금은 경복궁에서 복원과 보..

유물과의 대화 2022.03.31

30년간 대통령 태우고 달린 메기 닮은 열차, 국가문화재 된다

30년간 대통령 태우고 달린 메기 닮은 열차, 국가문화재 된다 노형석 입력 2022. 02. 10. 14:16 수정 2022. 02. 10. 14:26 댓글 4개 1969~2001년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 메기 대가리 닮아 '메기특동' 별명도 문화재청, 국가문화재로 등록 예고 1969~2001년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로 쓰였던 ‘메기특동’. 문화재청 제공 1969~2001년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들이 탔던 열차를 ‘특별동차’, 줄여서 ‘특동’이라고 불렀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 지방 순시를 가면서 탔던 열차다. 1969년 일본 제작업체가 선두부가 2층으로 툭 튀어나온 현지 특급 전망열차를 모델 삼아 한국 정부에 납품했던 이 특제동차는 메기 대가리를 닮아 ‘..

유물과의 대화 2022.02.10

중국에 바친 여자, 공녀(貢女)

“못생긴 계집을 내놓으면 왕명 불복종으로 벌한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285. 중국에 바친 여자, 공녀(貢女) 경복궁 행랑에 석양이 내린다. 조선 전기에 이 궁궐에 딱 한 번 놀러와 보고 명나라로 떠났던 여자들이 있다. 명 황실에 바쳐진 공녀(貢女)들이다. 공녀들은 크게는 나라를 위해 작게는 집안을 위해 희생된 ‘물건’ 취급을 받았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2.22 03:00 * 유튜브 https://youtu.be/Z31O0qE4vzU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로 가는 공녀(貢女) 선발을 피하기 위해) 딸자식 둔 어떤 자는 사윗감 서넛을 동시에 부른 뒤 맨 먼저 온 사내에게 시집보낸다. 강보에 싸인 어린 계집을 유모가 안고 시집을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어느 집에서..

유물과의 대화 2022.01.27

사대부 500년 기품 위에 피어난 독립운동의 꽃

사대부 500년 기품 위에 피어난 독립운동의 꽃 중앙일보 입력 2022.01.21 00:34 업데이트 2022.01.21 13:30 가장 오래된 한옥 ‘안동 임청각’ 눈이 내린 경북 안동 임청각 정경. 사진 왼쪽으로 낙동강과 옛 중앙선 철로가 보인다. 일제는 임청각 복판에 철도를 내며 가문의 맥을 끊으려 했다. 99칸 한옥 중 50여 칸이 사라졌다. [사진 김호태 이상룡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가는 어디일까. 명문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집안의 내력을 사람의 삶에 대입하면 어떨까. 공자는 훌륭한 삶을 15살에 뜻을 세우고(立志), 30살에 일어서고(而立), 40살에 유혹에 빠지지 않고(不惑), 50살에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60살에 귀가 순하게 되는(耳順..

유물과의 대화 2022.01.22

287. 1882년 조미수호조약에 숨은 對中 굴욕외교

[박종인의 땅의 歷史] 조미조약 체결 전 조선 대표는 청 황실에 삼궤구고두례를 올렸다 287. 1882년 조미수호조약에 숨은 對中 굴욕외교 인천 개항장거리에는 거대한 공자상이 서 있다. 청국과 일본 조계지를 경계 짓는 계단 꼭대기다. 그 위에는 1882년 미국과 조선이 수호조약을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 기념비가 서 있다. 오른쪽 난간 위 황금 용이 장식된 담장 아래다. 당시 조선 대표는 중국의 속국 신하로 청나라에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치렀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1.12 03:00 * 유튜브 https://youtu.be/ymEgM2QmSGs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천 개항장거리는 영역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 높은 계단을 경계로 ..

유물과의 대화 2022.01.13

노론을 떨게한 정조의 한마디 “난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노론을 떨게한 정조의 한마디 “난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 283. 금등지서의 비밀과 융건릉 사도세자 무덤인 경기도 화성 융릉은 홍살문-정자각-봉분 배치가 일직선이 아니다. 봉분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방향도 다르다. 아버지 사도세자 복권을 필생의 업으로 삼은 정조가 ‘천 년 만에 있을 길지’를 고른 끝에 내린 풍수학적인 배치다. 정조는 세자를 죽인 영조가 적어내린 한(恨)을 품은 문서 ‘금등지서’를 17년 동안 숨겨놓고 노론 눈을 피해 아버지 복권 작업을 벌였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2.08 03:00 * 유튜브 https://youtu.be/JRL4Lvz1SsY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가위를 7일 앞둔 1793년 8월 8일 왕위에 오른 지 17년..

유물과의 대화 2021.12.22

“공부하는 선비가 드물어 안타깝구나, 성균관을 보수하여라”

“공부하는 선비가 드물어 안타깝구나, 성균관을 보수하여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282. 평양 풍경궁③/끝 망국까지 성리학에 집착한 고종 조선왕조의 법궁인 경복궁.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 월대에서 정전인 근정전 지붕이 힐끗 보인다. 해거름에 서쪽에 해가 진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경복궁을 버리고 경운궁(덕수궁)을 황궁으로 삼았고, 경운궁에 기거하며 평양에 또 다른 궁궐 풍경궁을 건설했다. 그가 입에 달고 살았던 단어는 ‘도리(道理)’였고,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에도 그는 “성균관에서 도리를 교육하라”고 명했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2.01 03:00 * 유튜브 https://youtu.be/pBHbecmKWNE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06년 4월 15일 대한제국 황..

유물과의 대화 2021.12.14

시대착오의 상징, 고종이 만든 평양 풍경궁 ②

“백성에게서 갈취한 돈으로 남에게 빼앗길 궁궐을 짓는구나” [박종인의 땅의 歷史] [281] 시대착오의 상징, 고종이 만든 평양 풍경궁 ② 1904년 3월 러일전쟁 종군기자인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은 대동문을 통해 평양성에 진입 중인 일본군 행렬을 목격했다. 헌종 계비 홍씨 국상 중이라 백립을 쓰고 있는 군중 속에 일장기가 보였다. /미국 헌팅턴대 도서관 잭 런던 컬렉션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1.24 03:00 * 유튜브 https://youtu.be/dRAcR5AcbG0 에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1904년 2월 29일 대한제국 황궁인 경운궁(덕수궁)이 전소(全燒)됐다. 새벽녘 함녕전 온돌에서 발화한 불이 온 궁전을 홀딱 태웠다. 아직 불길이 잡히지 않은 그날 아침 고종은 “궁색하지만..

유물과의 대화 2021.12.07

“외국은 수도가 둘이다. 평양에도 궁궐을 지으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외국은 수도가 둘이다. 평양에도 궁궐을 지으라” 280. 시대착오의 상징 평양 풍경궁① 충남 부여에 있는 신라 고찰 무량사는 멀고먼 평양에 있던 대한제국 궁궐 풍경궁과 인연이 있다. 풍경궁은 1902~1903년 “기자(箕子)가 문명과 예법을 전파한 평양에 두 번째 수도를 세운다”며 광무제 고종이 만든 궁궐이다. 총공사비 1000만 냥은 평안도 백성이 책임졌다. 1927년 경성으로 이건된 풍경궁 정문 황건문은 해방 후 동국대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71년 무량사에 목재로 팔려갔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1.17 03:00 * 유튜브 https://youtu.be/ZjIPU56hxvQ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71년 12월 10일 서울 동국대학교 정문으..

유물과의 대화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