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파도 밀려서 왔다가 밀려서 갑니다 긴 모래톱으로 남는 한숨 또는 휘파람 소리...... 어디선가 홀연히 섬이 다가설 것 같아 눈이 멉니다 망각은 하얗다 1991 2020.05.11
동행 동행 / 나호열 그는 남산을 천천히 걸어 올라 갔고 나는 다시 침침한 지하도를 더듬거리며 내려왔다 앞으로 한동안은 잊어버릴 것이다 먼지처럼 가볍게 모이를 찾아 내려오는 비둘기들이 백지위에 더러운 발자국을 남기고 흩어졌다 휘발되지 않는 상처를 나눠 가지며 우리는 똑같은 무게의 하늘을 쳐.. 망각은 하얗다 1991 2011.08.07
매화를 생각함 매화를 생각함 / 나호열 또 한 발 늦었다 일찍이 남들이 쓰다 버린 쪽박같은 세상에 나는 이제야 도착했다 북서풍이 멀리서 다가오자 사람들이 낮게 낮게 자세를 바꾸는 것을 바라보면서 웬지 부끄러웠다 매를 맞은 자리가 자꾸 부풀어 올랐다 벌을 준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망각은 하얗다 1991 2011.07.31
슬픔, 그 머나먼 이름 슬픔, 그 머나먼 이름 / 나호열 너는 그리로 오라 한다 외줄을 타고, 그러나 비파줄이 흔들리지 않게 네 가슴을 밟으라 한다 미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 길로 너는 미쳐서 오라 한다 망각은 하얗다 1991 2011.07.28
사람을 찾아서 사람을 찾아서 / 나호열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오랜 길을 걸어 지친 사람에게 먼저 나는 깊은 산중에 홀로 깨어나고 홀로 잠들면서 꼿꼿한 한 그루 나무가 되어야 했습니다 긴 시간이었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내게 왔을 때 그가 원한 것은 따뜻한 잠,포근히 누을 자리였습니.. 망각은 하얗다 1991 2011.07.25
장미꽃의 배경 장미꽃의 배경 / 나호열 늙은 사내는 지금 근심에 싸여 있다 인적은 점점 더 드문해지고 카바이트불은 마지막 심지를 뿜어올리고 있다 오늘은 아마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일들이 많지 않았나 보다 마악 사랑을 시작한 사람보다 오늘은 제 갈 길로 등을 돌린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좌판에서 .. 망각은 하얗다 1991 2011.07.24
비누 비누 / 나호열 거품이 인다 적당한 향기와 백색의 거품 속에서 천천히 나는 마모되어 간다 사랑하겠노라고 온 몸으로 천 만번 약속해도 지켜지지 않는 사는 일 망각은 거품처럼 거품은 망각처럼 때를 지운다 늘 물의 이치를 생각하면서도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을 위한 속죄양인.. 망각은 하얗다 1991 2011.07.21
살아있음 살아있음 / 나호열 감사합니다 살아있음 고통의 살아있음 살아있음의 고통에 대하여 무덤 속에 살아았는 주검의 조용한 해체 느낌의 살아있음 살아있음의 느낌 감사합니다 망각은 하얗다 1991 2011.07.18
마지막 잎새 마지막 잎새 / 나호열 아름다운 추락을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우아한 자세로 우울의 깊이를 짚으며 마지막 한 순간 강하고 단호한 바람과의 승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한 죽음을 위해 연습은 허용되지 않았다 망각은 하얗다 1991 201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