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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하얗다 1991

동행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8. 7. 12:59

동행 / 나호열

 

 

 

그는 남산을 천천히 걸어 올라 갔고
나는 다시 침침한 지하도를 더듬거리며 내려왔다
앞으로 한동안은 잊어버릴 것이다
먼지처럼 가볍게 모이를 찾아 내려오는 비둘기들이
백지위에 더러운 발자국을 남기고 흩어졌다
휘발되지 않는 상처를 나눠 가지며
우리는 똑같은 무게의 하늘을 쳐다보게 될 것이라고
벽과 길을 버리고
하늘 깊은 저 속 어딘가에
털갈이가 한창인 그 무엇이 있을 거라고
오랫만에 긴 호흡으로 공기를 들여마시면
사랑과 미움의 불완전 연소 뒤에 남는
탄산가스가 한꺼번에 심장으로 몰려 들어왔다
눈동자가 따끔거렸다
눈물은 아마도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갖자마자 부서져 버리는 시간처럼
보석처럼
아무도 그것들을 탐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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