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나호열한때는 달팽이를 비웃은 그런 날들이 있었지세상은 핑글거리며 돌아가고 있는데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겠나 하고집 속에 틀어박혀 공상이나 일삼는 철학자처럼머리 속 황무지를 개간하는 노동이 무슨 필요 있느냐고그러나 어느 날 자급자족 되지 않는 세상에 찬 바람 불어밥 굶고 신문지 이불 삼아 노숙하는 사람이 나임을 알았을 때발 부르트도록 걸어왔던 그 길이 신기루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비록 구부리고 토끼잠을 잘지언정 달팽이 네가 부러웠다집은 갈수록 멀어지고 겨울은 끝내 떠나가지 않을 듯 싶었다- 시집 《낙타에 관한 질문》 2004 이 시는 비웃음과 부러워함이라는 대립적 정서의 마주침에 의하여 전개된다. '나'는 '달팽이'를 비웃고 또 부러워한다. 비웃는 까닭은 첫째 '달팽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