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2024/04 61

2024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4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웰빙 / 한백양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이미 앉은 사람을 박대할 수 없으니까 한동안 복숭아는 포기할 것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누구에게 잘하진 못한다 나는 요즘 희망을 앓는다 내일은 국물 요리를 먹을 거고 배가 출렁일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을 거고 옷을 사러 갔다가 옷도 나도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잔뜩 칭찬을 듣는 것 가끔은 진짜로 진짜 칭찬을 듣고 싶다 횡단보도 앞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쉴 새 없이 말..

진화론을 읽는 밤

진화론을 읽는 밤 냉장고에서 꺼낸 달걀은 진화론의 지루한 서문이다 무정란의 하루가 거듭될수록 저 커다란 눈물 한 덩이의 기나긴 내력을 통째로 삶거나 짓이기고 싶은 약탈의 가여움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 비상을 포기한 삶은 안락을 열망한 실수 사막으로 쫓겨 온 낙타 아버지와 초원을 무작정 달리는 어머니 말 그렇게 믿어왔던 맹목의 날들이 닭대가리의 조롱으로 메아리친다 다시 나를 저 야생의 숲으로 보내다오 삵에게 쫒기며 도망치다 보면 날개에 힘이 붙고 휘리릭 창공을 박차 올라 매의 발톱에 잡히지 않으려는 수 만년이 지나면 쓸데없는 군살과 벼슬을 버린 새가 되리라 진화론의 서문이 너무 길어 달걀을 깨버리는 이 무심한 밤

안부 (2021.12) 2024.04.06

[52] 풍경을 들이는 문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2] 풍경을 들이는 문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3.02.24. 03:00업데이트 2023.02.24. 18:34 이동춘, 도산서원의 문, 2009. 벽은 제한하고 문은 확장한다. 벽과 문은 하나다. 벽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짓고 문으로 드나드니, 사람이 만든 집이 사람의 발길과 눈길을 인도한다. 어떤 벽은 절대 넘을 수 없는 철벽처럼 차갑고, 어떤 담은 슬쩍 뛰어넘어도 될 것처럼 다정하다. 어떤 문은 늘 열려 있어서 평화롭고, 또 어떤 문은 벽보다 꽉 막혀서 남의 세상이다. 벽과 문으로 구획된 공간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동춘(63) 작가는 젊은 시절 생활 문화 전문지 사진기자로 일을 시작해서 전통적 또는 한국적이라 할 만한 소재..

쌍문2동 골목에는 ‘골목순대국’이 있다

쌍문2동 골목에는 ‘골목순대국’이 있다  도봉구의 옛 중심, 쌍문2동  도봉구는 서울 동북부에 위치한 동네다. 북으로는 경기도 의정부와 양주에 접해있는 도봉구는 서울 최북단에 위치한 곳으로 옛날에는 경기에 속했던 지역이다. 역사 속에서 도봉구는 경기도 양주이기도 했고, 고양이기도 했다.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점차 주변으로 서울의 권역이 확대되면서 도봉구도 서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행정권역으로는 서울이면서 역사적인 경험은 경기와 공유하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곳이다. 지금껏 도봉구의 맛집 이야기를 실컷 했으면서 갑자기 왜 다시 도봉구에 대한 딱딱하고 재미없는 설명을 하는지 의아할 테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맛집이 자리한 쌍문2동에 대해서는 이런 소개가 꼭 필요..

왕비 시해 사건의 진실

일본군 장교 8명이 민간인으로 변복하고 왕비 시해 지휘 중앙선데이 입력 2024.03.23 00:45 [근현대사 특강] 왕비 시해 사건의 진실 ① 1890년대에 촬영된 경복궁 광화문 전경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행동대는 긴 사다리를 놓고 담을 넘어 안에서 문을 열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북쪽 끝 건청궁에서 왕비가 일본인들의 손에 살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들은 왜 남의 나라 왕비를 살해하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만행을 저질렀던가? 국내 역사책의 기술은 한결같다. 청일전쟁이 끝나면서 일본이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정권의 중심인 민씨 세력이 일본 배척 분위기를 주도하므로 이를 꺾기 위해 왕비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왕비가 쥐락펴락하는 나라라는..

카테고리 없음 2024.04.06

[181] 소객택인 (召客擇人)

[정민의 세설신어] [181] 소객택인 (召客擇人) 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10.23. 23:31 측천무후(則天武后) 원년(692)의 일이다.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자 온 나라에 도살과 어류 포획을 금지했다. 우습유(右拾遺) 장덕(張德)이 귀한 아들을 얻어 사사로이 양을 잡아 잔치했다. 보궐(補闕) 두숙(杜肅)이 고기 전병 하나를 몰래 품고 나와 글을 올려 장덕을 고발했다. 이튿날 태후가 조회할 때 장덕에게 말했다. "아들 얻은 것을 축하하오." 장덕이 절을 올리며 사례했다. "고기는 어디서 났소?" 장덕이 고개를 조아려 사죄했다. 태후가 말했다. "내가 도살을 금했지만 길한 일과 흉한 일의 경우는 예외요. 경은 이제부터 손님을 청할 때 사람을 가려서 하는 것이 좋겠소." 그러면..

누가 궁예를 왜곡하는 소리를 내었는가?

[유석재의 돌발史전] 누가 궁예를 왜곡하는 소리를 내었는가? 유석재 기자 입력 2024.04.05. 00:00 유석재의 돌발史전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79194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배우 김영철)가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관심법을 쓰다 누군가 기침을 하자,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라며 꾸짖는 장면. /KBS 유튜브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니 또 KBS 채널에서 ‘태조 왕건’ 전편을 스트리밍해 주고 있었습니다. 방영된 지 20년도 훨씬 넘게 지난 이 드라마에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대사는 주인공인 왕건의 것이 아닙니다. 드라마 전반부의 실질적인 주인공에 가깝게 비중이 큰 인물, 바로 궁예(김영철)의 “지금 누가 기..

유물과의 대화 2024.04.05

어느 예술 후원가의 부고

어느 예술 후원가의 부고 중앙일보 입력 2024.04.05 00:46 업데이트 2024.04.05 01:30 김인혜 미술사가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던 때, 한 지긋한 연배의 의사 선생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요즘 화가 중에도 옛날 빈센트 반 고흐처럼 모든 열정을 그림 그리는 데만 쏟아붓고 다른 생각은 할 줄도 모르는, 그런 예술가가 있나요?” 나는 이 질문이 문득 참신하다고 느꼈다. 내게 그 대답은 당연히 “예스”인데, 이 노신사는 정말 진지하게 그 사실을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아니, 당연한 거 아닌가. 예술가가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림을 그리나. 이들은 예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유전자를 그냥 타고난 사람들이다. 정말 좋아서, 이게 아니면 안 돼서 처박혀..

벚꽃 개화 시기 예측, 맞출 방법이 있다는데...

벚꽃 개화 시기 예측, 맞출 방법이 있다는데... [김민철의 꽃이야기] 김민철 기자 입력 2024.04.02. 00:00업데이트 2024.04.03. 08:20 올봄 유난히 곳곳에서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열렸습니다. 서울 송파구는 지난달 31일 석촌호수 벚꽃이 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폐막식을 치렀습니다. 송파구는 지난해에는 축제가 열리기도 전에 벚꽃이 져버리는 낭패를 겪었습니다. 속초시는 지난달 30~31일 벚꽃 없는 ‘영랑호 벚꽃축제’를 연 다음 벚꽃 만개가 예상되는 6~7일 벚꽃축제를 한번 더 열기로 했습니다. 속초시는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벚꽃 개화 시기는 여의도 벚꽃 축제 등 지역 축제나 행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수백만 건의 빅 ..

창원시 마산 구석구석 ‘레트로 탐험’

통술집서 취하고 100년 복집서 해장… 선 굵은 ‘남자의 도시’로 시간여행 [박경일기자의 여행] 문화일보 입력 2024-04-04 09:05 업데이트 2024-04-04 09:54 마산 문신미술관 뒤편의 회원현 성터에 세워진 누각인 망루. 마산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해발 143m로 산이라기에는 좀 민망한 높이지만, 망루가 서 있는 곳은 환주산 정상이다. 문신미술관에서 15분이면 오를 수 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창원시 마산 구석구석 ‘레트로 탐험’ 시간을 지켜온 맛 오동동 통술, 신선한 안주 가득 옆테이블 손님과도 술잔 부딪쳐 꾸덕꾸덕 말린 아구찜 ‘감칠맛’ 복국·꼼장어도 실패 없는 메뉴 4~5월만 맛볼수 있는 미더덕회 국내유일 양식산지 진동항 별미 시간이 겹쳐진 공간 좋은 물..

의자 4

의자 4 사람은 의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났는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이라 불려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제 몸을 내어줄 때 일 것이다 의자는 오랜 시간 홀로의 시간을 견디고 자신에게 아무런 고마움을 느끼지 않고 잠시 고단한 발걸음을 멈춘 이들이나 다른 일을 하기 위하여 하인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미련 없이 떠나는 그때까지 묵묵하게 무게를 견딜 뿐이다 세월이 흐르면 의자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허물어 쓰레기가 되어 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마땅히 의자가 되어야 한다 나를 닮은 어떤 일들에 필요한 노역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문화다양성과 유럽의 상호문화도시 프로젝트 연구

문화다양성과 유럽의 상호문화도시 프로젝트 연구 홍종열(한국외대) 요약 21세기의 세계는 정보통신의 발달과 교통수단의 신속성, 안정성을 바탕으로 지역과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민족, 종교, 언어 등의 다양성은 곳곳에서 충돌과 상호간의 배격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는 점증하고 있으나 다문화는 주主/종從, 다수/ 소수의 구도를 탈피하지 못하므로서 전 인류의 평등성을 구축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본 논문은 문화에 대한 확장 개념으로 다문화를 넘어선 상호문화주의를 설정하고유럽공동체(EU)의 여러 도시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실험을 통해서 인류의 통합을 추동하는 과제들과 성과를 탐색하고 있다. Ⅰ. 문화의 개념과 다양성 1. 문화는 인류의 유산이며, 각 문화의 디양성은 ..

카테고리 없음 2024.04.01

화개 花開

419국립묘지에 몇 그루 매화나무가 있다 팻말에는 매실나무라 쓰여있다. 꽃 필때 혹은 관상이 주가 될 때는 매화나무요, 열매가 열릴 때 혹은 매실수확을 주로 할때는 매실나무라 부른다. 화개 花開 혼자보다는 둘이 좋고 둘보다는 여럿이 좋았을 때 지나고 가지 끝에 한 송이 매화에 그믐달이 숨네 미련없이 떠나는 인연은 홀연히 흩날리고 그래도 활짝 웃어는 봐야지 그윽하게 퍼지는 문 여는 소리 화개

지방 소멸 부르는 수도권 일극 체제 광풍

지방 소멸 부르는 수도권 일극 체제 광풍 중앙일보 입력 2024.04.01 01:00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지방자치분과 위원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생산·소득·소비 측면에서 본 지역경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경기 등 수도권의 전국 경제성장률 기여도가 51.6%(2001~2014년)에서 70.1%(2015~2022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 정도가 2015년 이후 갈수록 심화하면서 수도권 일극(一極) 체제가 ‘광풍’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점점 굳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체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정도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10년 49.2%에서, 2015년 49.4%, 2019년 50.0%, 그리고 2022년 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