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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 이야기

벚꽃 개화 시기 예측, 맞출 방법이 있다는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4. 5. 16:53

벚꽃 개화 시기 예측, 맞출 방법이 있다는데...

[김민철의 꽃이야기]

<208회>

입력 2024.04.02. 00:00업데이트 2024.04.03. 08:20
 
 
 

올봄 유난히 곳곳에서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열렸습니다. 서울 송파구는 지난달 31일 석촌호수 벚꽃이 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폐막식을 치렀습니다. 송파구는 지난해에는 축제가 열리기도 전에 벚꽃이 져버리는 낭패를 겪었습니다. 속초시는 지난달 30~31일 벚꽃 없는 ‘영랑호 벚꽃축제’를 연 다음 벚꽃 만개가 예상되는 6~7일 벚꽃축제를 한번 더 열기로 했습니다. 속초시는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벚꽃 개화 시기는 여의도 벚꽃 축제 등 지역 축제나 행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수백만 건의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해 예측한다는데 왜 벚꽃 개화 시기 하나 맞추지 못하는 걸까요?

벚꽃 개화가 늦어지는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윤중로에 여의도 봄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2024.3.31/뉴스1

 

◇개화 시기는 온도와 빛이 결정

꽃이 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 요인은 온도와 빛입니다(‘이일하 교수의 식물학 산책’) 빛은 광주기가 중요한 변수인데, 밤낮의 길이는 일정하게 변하기 때문에 벚꽃 개화에서는 비교적 ‘깨끗한 시그널’이라고 합니다. 일조량도 영향이 없지 않지만 큰 변수는 아니라고 합니다. 벚꽃 개화는 기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일 변수나 마찬가지인데 왜 이렇게 예측이 어긋나는 것일까요.

개화 시기 예측은 보편적으로 ‘생물계절모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식물이 겨울 휴면 상태에서 깨어나려면 일정 기간 이상 추운 날씨를 경험해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일정 수준의 따뜻한 날씨가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각 식물마다 꽃이 피는데 필요한 추운 정도와 따뜻한 정도가 다른데, 이를 수치화한 것이 냉각량(冷却量)과 가온량(加溫量)입니다. 냉각량은 꽃눈이 겨울잠이 빠진 뒤 어느 정도 추위를 견뎌야(저온요구량을 채워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지 수치화한 것입니다. 철모르고 꽃을 피웠다가 추위에 얼어 죽는 것을 피하기위한 장치입니다.

생물계절모형은 식물이 겨울 휴면 상태에서 깨어나려면 일정 기간 이상 추운 날씨를 경험해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일정 수준의 따뜻한 날씨가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처음 꽃공부를 할 때 야생화인 처녀치마가 하도 예뻐서 양재동 꽃시장에서 처녀치마 화분을 하나 샀습니다. 잔뜩 기대를 갖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길렀지만 다음해 4월 꽃대가 올라올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처녀치마는 북방계 식물이라 한겨울에 꽁꽁 얼 정도로 추위를 겪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기른 처녀치마는 냉각량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처녀치마 꽃.

 

하지만 밖에서 자라는 벚나무에게 냉각량은 별 문제가 아닐 것 같습니다. 문제는 가온량을 채우는 것입니다. ‘가온량’은 꽃이 피는데 필요한 누적 온도를 계산한 것인데, 매일 일평균온도에서 기준온도(5도 안팎으로 식물에 따라 다르다)를 뺀 값의 누적값입니다.

서울대 이은주 생명과학부 교수와 허창회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등은 2006년 논문에서 벚꽃의 경우 기준온도가 영상 5.5도, 가온량은 106.2도라고 했습니다. 5.5도 이상 일평균온도를 더한 수치가 106.2도에 이르면 벚꽃이 핀다는 얘기입니다

이 교수팀은 개나리와 진달래, 복사꽃, 아까시나무의 기준온도는 각각 4.1도, 4.0도, 5.3도, 8.3도, 가온량은 각각 84.2도, 96.1도, 138.0도, 233.1도라고 했습니다. 이 수치를 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맨 먼저 피고, 그다음 벚꽃과 복사꽃이, 마지막에 아카시아꽃이 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날씨 예측 정교해지면 개화 예측도 정확해질 것”

그렇다면 역대 벚꽃 개화 시기 통계와 일일 기온 분포를 갖고 있고 가온량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예측한 시점부터 개화 시기까지 기온 분포입니다. 이것이 기존 패턴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가온량을 정확히 알아도 ‘말짱 도루묵’인 것입니다. 특히 벚꽃이 피기 직전인 3월 날씨는 변덕스럽기 그지없기 때문에 벚꽃 개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2024년 4월 1일 부산 남구 국립부경대에서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과 대학생 등이 부산시티투어버스와 활짝 핀 벚꽃을 배경으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참여를 홍보하는 캠페인 '벚꽃투표 BUT꼭투표'를 펼치고 있다. /김동환 기자

 

기상청은 벚꽃 개화 시기 예측이 번번이 틀리자 2016년부터 개화 예보 기능을 민간 기상정보업체에 넘겼습니다. ‘사쿠라의 나라’ 일본에서는 벚꽃 개화 시기를 잘못 예측한 책임을 지고 기상청장이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도 올해 벚꽃 개화가 늦어져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기상협회 등은 연초에 “올해 벚꽃 개화 시기는 3월 20일”이라고 예측했지만 빚나갔습니다. 일본에서 통상 벚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는 데 ‘600도의 법칙’도 쓴다고 합니다. 매년 2월 1일부터 일별 최고 기온을 더해 그 합계가 600도에 가까워지면 벚꽃이 핀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개화 시기엔 이 합산이 593도였고, 재작년엔 627도로 거의 600도 안팎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달 27일까지의 합산만 732도에 달했는데도 벚꽃이 피지 않았다고 합니다.

변덕스러운 3월 날씨에다 기후변화의 영향도 벚꽃 개화 시기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일정하게 오지 않고 변동 폭이 더욱 커지는 형태로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아직까지는 벚꽃 개화 예측은 신의 영역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모르는 벚꽃 개화의 메커니즘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개화가 전공인 생명과학과 교수는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또 애기장대 같은 초본을 통한 연구여서 나무 개화는 다를 수도 있긴 하지만 식물 개화에 대해 큰 줄기는 잡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벚꽃 개화 예측이 어려운 것은 식물학의 문제가 아니라 기상학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지금은 한두 달 전에 하는 기온 예측이 맞지 않기 때문에 벚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며 “만약 날씨 예측이 매우 정교해지면 벚꽃 개화 시기도 상당히 정확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