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2024/04/09 2

[83] 병

[최영미의 어떤 시] [83] 병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2.08.15. 00:00 태어난 제 나라를 부끄러워하는 것. 지나간 사랑을 한탄하는 것. 부정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것.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술잔 들고 술 깬 후의 슬픔을 미리 생각하는 것. -사토 하루오(1892~1964) (유정 옮김) 그림=이철원 어떤 일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 정서가 비슷해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시인들과는 다른 마음의 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쓸쓸함이 마음 바닥을 건드린다. 패배한 자의 슬픔이라고 할까? 동아시아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개인의 좌절감. 제 나라를 부끄러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부정하기를 좋아하나 현실을 바꿀 힘은 없고, 지나간 사랑을..

공부할 시 2024.04.09

[182] 지미무미(至味無味)

[정민의 世說新語] [182] 지미무미(至味無味)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10.30. 23:30 유명한 냉면집을 안내하겠다 해서 갔더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맛을 보곤 실망했다. 좋게 말해 담백하고 그저 말해 밍밍했다. 네 맛도 내 맛도 없었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꼽는다는 냉면집 맛이 학교 앞 분식집만도 못했다. 나처럼 실망한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집 벽에 순수한 재료로만 육수를 내서 처음 맛보면 이상해도 이것이 냉면 육수의 참맛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여러 해 전 일인데도 가끔 생각난다. 감미료로 맛을 낸 육수 국물에 길들여진 입맛들이 얼마나 투덜댔으면 주인이 그런 글을 써 붙일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사람들이 여전히 줄을 서서 찾는 걸 보면, 맛을 아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