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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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젊은 날의 초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6. 3. 2. 00:08

어느 날 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경제력을 잃은 백수가 되어 있었다. 스산한 겨울 오후의 해는 느리게 고속도로를 덮고 있었다. 주말이면 거품처럼 도로를 가득 메우던 차들은 지금쯤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에서, 거대한 도시의 길거리에서 차가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었다.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시야는 한결 넓어지고 출근부와 서류더미와 형식적인 조직의 메마름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자유로움과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는 아득한 슬픔이 제한속도보다 저만큼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살아온 만큼 내 꿈은 비누처럼 향기를 가득 품으며 마모되고 있었고, 그 꿈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자 마음은 오히려 풍선처럼 가벼워졌다. 그렇게 달려간 곳이 경주, 문득 나는 불국토를 꿈꾸던 신라인들의 기도처였던 남산(금오산)이 오르고 싶어졌던 것이다. 꼬박 4시간을 달려갔으나 날은 저물었다. 불국사 못 미쳐 남산이 바라다 보이는 한적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안내인은 정장 차림의 내 모습을 훑어내리다가 아직도 반짝거리는 구두코에 시선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일행은 없나요?'

혼자 다니는 여로는 외롭다. 모든 일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해야 한다.

 '예, 혼자입니다'

 안내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안내실 바로 옆 방을 내어주었다. 아무 준비없이 떠나온 길이었다. 그 누구와도 절연되는 연습을 지금부터 해두어야 한다. 얼마간의 퇴직금으로 견딜 수 있는 기간은 얼마? 오늘은 잊어버리자. 옷도 벗지 않고, 씻지도 않고 나는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마 잠깐 잠들었을 것이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 안내인이었다.

 '적적하시면 술이라도 드시지요?'

 '괜찮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자려고 하였으나 복도를 오가는 발자국 소리에 결국 잠을 포기하고 말았다. 새벽에 산을 오르기 위해서 차 트렁크에 넣어둔 등산복과 등산화를 꺼내려다 발 밑에 툭하고 떨어지는 물건을 집어드니 한 권의 책이었다. 그 동안 휴가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일에 잡혀있던 시간들, 언젠가는 발길 닿는 대로 떠나보리라 바리바리 챙겨두었던 물건들....그 속에 버려져 있던... 객창을 두드리는 겨울바람 소리에 한 장씩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981년 민음사 간행, 저자 이문열, 겉장 몇 장이 떨어져 나가 목차도 없고 본문도 서너 장 뜯겨져 나간 『젊은 날의 초상』은 그렇게 나의 동행이 되었다.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하구」,「우리 기쁜 젊은 날」,「그 해 겨울」의 단편소설로 발표된 바 있는데 이 세 편을 다시 묶은 것이 『젊은 날의 초상』이 되는 것이다. 얼핏 헤르만 헷세의「지와 사랑; 골드문트 운트 나르지스」를 연상케하는 이 소설은 화자인 20대 초반의 '나'가 격렬하게 이 세상과 조우했던 경험을 회상의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문열의 작품들이 대개가 그렇듯 이 소설 또한 풍부한 저자의 독서량과 사색의 깊이를 마음껏 드러내면서 '존재란 무엇인가?'하는 형이상학적 질문에 도달하게 만든다.

 

「하구」는 화자인 '나'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온 강진이라는 소촌에서 만난,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며「우리 기쁜 젊은 날」은 6,70년대의 대학생들의 고뇌와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 젊음이 얼마나 권태스럽고, 그 권태를 이겨내면서 받아들이는 사회적 성숙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말해 준다. '나'는 비로소 「그해 겨울」에 이르러 진정한 방랑에 도전한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강원도 탄광으로 흘러들었다가 산촌 술집의 허드레 일을 두 달 동안 하게 되지만 그의 방랑의 흔들림은 기껏해야 허무에로의 도피일지 모르는 회의와, 보다 현실적으로 그에게 들러붙는 술집 작부인 윤양의 집요한 유혹으로부터의 탈출로 이어진다. 그는 무작정 바다로 가기로 한다. 그는 해발 칠 백 미터의 창수령 눈 덮힌 고개를 넘어가다가 연애에 실패하고 시골 교원으로 와 있는 친척 누이를 만나고, '칼 가는 사내'를 만난다. 그는 한국전쟁 전 평등사회를 꿈꾸던 혁명가였고,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동지들을 배반한 자를 처단하기 위하여 가는 길이었다. '칼 가는 사내'는 결국 배반자의 비참한 생활을 목도하고 바다에 칼을 던져 버리고 화자인 '나'도 감상과 익기도 전에 병들어 버린 지식을 바다에 던져 버린다. 그 후 '칼 가는 사내'는 감옥에서 배운 달군 쇠로 목판에 그림 그리는 일로 돈도 벌고 결혼도 한다. 화자인 '나'는 소설의 서두에 밝힌 것처럼 평범한 도시봉급자의 생활을 한다.

 

 윗풍이 센 여관방에서 나는 자꾸만 흐릿해지는 눈을 닦으면서 몇 번인가 책장을 덮었다 열곤 했다.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은 어떠했는가? 이 소설이 나온 1981년에 나는 독재와 항거하고 정의사회를 꿈꾸던 학생들이 컴컴한 사회의 뒷켠으로 말없이 사라지는 현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 밥벌이를 대신했으며, 절규하는 젊은이들의 외침을 한낱 철 안 들고 세상물정 모르는 투정으로 받아들인 지성인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나의 꿈을 대신했다. 못질을 당한 채로 나의 꿈은 20 년 넘게 의식의 밑바닥에서 달콤한 현실의 사탕발림에 녹아들어 갔으며 그 수많은 세월 속에 굳어질대로 굳어져 있는 나의 꿈을 의붓자식 보듯 내팽겨쳐 두고 있었다.

 

나는 밤새 잊혀졌던 '젊은 날의 초상'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었다. 비겁과 오만, 의심과 세상에 대한 증오의 밑바닥에 자리잡은 용렬한 통속을 들어내자 비로소 텅 빈 허무가 해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꿈을 뒤집어 놓고 보니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배운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삶, 대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방랑을 꿈꾼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화자인 '나'는 선악의 기준으로 나누고는 있지만 이 세상의 존재하는 그들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들이 얄팍한 술수로 세상을 넘보거나 말거나 마음 두지 않는다. 방랑은 그래서 끝이 없는 것, 약속없이 만나고 약속없이 헤어지는 것, 별 것 아닌 평범한 '나' 로 돌아오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긴 방랑을 계속해야 하는가.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길을 나서는 나에게 안내인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살하러 오신 분인줄 알고 밤새 걱정했지요'.

 

 천 년 전의 신라인들은 바위에 탑에 그들의 염원을 아로새겼다. 그들이 오가던 산길은 아직도 그 오솔길이고 천 년 전의 하늘은 바로 오늘의 하늘이다. 정상에 올라 나에게 외쳤다.

 

' 나 어저께 잘렸어. 그렇지만 잘 살거야 걱정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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