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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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톤에서의 하루(2)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6. 8. 20. 23:30

2. 킹스톤 가는 길

 

 

문호리 예배당


청량리에서 한 시간
가슴까지 차 오르는 강이
오르고 내리는 버스를 타면
출렁이는 물 향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 너 장의
편지를 썼다 지우고
억새풀로 흔들리는 잠결에 닿는 곳
가끔, 깊은 산골로 가는 기차가
경적을 울리면
길은 무섭게 한적해진다
건널목 지나
토닥토닥 몇 구비 돌고 돌아도
보이지 않는 마을
멀리서도 예배당 종소리는 울려
마을이 가깝다
작은 언덕 허리 굽혀 올라가는
오래된 예배당
아름드리 느티나무
바람에 곡을 붙여
풍금을 타고
먼지 내려앉은 나무의자에 앉아
꽃 꺾은 죄를 고백하는 곳
그 돌집 옆
모래알로 쌓아올린 큰 예배당
더 많은 죄인들이 드나들어도
아직은 견딜 만 하다고
열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영혼 속으로
숨어들 만 하다고
청량리에서 한 시간
종점까지 와서 만나는
그대는 나의
작은 예배당


* 문호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다리를 지나 서종면 면사무소에서 좌회전하여 청평쪽으로 가면 문호리이다. 마을 입구에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나는 그 예배당 지나치며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은 바로 옆에 큰 교회를 세웠는데, 큰 교회, 큰 절집을 볼 때 마다 죄지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서종면 시무소에서 문호리 가는 길에 북한강이 흐르는데 강물이 길과 같은 높이로 흘러 마치 내 가슴 속을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저녁때쯤 되돌아오면 노을이 아름다웠던 곳이다. 지금은 문호리에서 청평댐까지 땅을 돋우어 도로가 확장되고 길과 강이 멀어져 카페 ,음식점, 숙박시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서 옛날의 흥취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그 문호리 예배당은 내 마음 속에 숨은 듯 늘 서 있다.

 

 

속력을 올리면 차는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길은 넓게 열려 있었으나 아무래도 바퀴 쪽에 이상이 있는 듯 싶었다. 타이어의 압력이 일정하지 않거나 균형이 맞지 않을 때 생기는 현상으로 생각되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그저 무사히 운전을 마칠 수 있기만을 기도하면서 떨리는 운전대를 움켜쥐었다. 바퀴가 이탈하면 어떻게 하나, 왼쪽 바퀴 하나가 떨어져 나간다면, 앞바퀴 두 개가 동시에 떨어져 나간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 우선 거울을 통해서 뒤따라오는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재빨리 갓길로 차를 빼야하며, 동시에 비상등을 켜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안 된다. 시속 90킬로에서 100키로 사이에서 들려오는 마모음이 경고하는 의미를 되씹으면서 내 삶을 해체시키는 요인들에 대해서 오랜만에 경건하게 무릎을 꿇었다. 해체는 집착이 강할수록 급속하게 진행된다. 명예에 대해서, 부에 대해서, 안락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것으로 말미암아 부서지는 삶을 무수히 보아 왔다. 인생의 굽이굽이를 돌아오면서 이제는 텅 빈 겨울 들판 같은 내일이 버티어 서 있다고 해도 두렵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는 말인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금 나는 기계의 완고함과 매커니즘에 안도하면서 이렇게 가슴을 벌름대고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가져가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면서 어떤 집착에 나는 몸을 기대고 있다는 말인가?

유람선은 시간이 맞지 않았다. 바다와 같은 너른 호수 사이에 떠 있는 섬을 바라보고 노을을 바라보기에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손바닥만한 도시를 누비는 시티투어 버스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는다. 옆에 있어야 할 나의 그림자, 촛불로 타오르는 손길이 자꾸 어깨 근처에서 흘러내렸다. 늦봄의 바람은 스쳐 지나가는 한 여행자의 꿈처럼 눈에 물기를 담아낼 뿐, 나는 거기에 있었으나 나는 부재중이었다. 시청 앞에서 버스가 출발하고 50분 동안, 작은 도시의 골목길을 누비면서 노랑머리의 젊은 여자 가이드는 한시도 쉬지 않고 150년이 채 안 되는 그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내가 해독할 수 없는 낯 선 언어로 토해내고 있었다. 차라리 나는 꾸깃꾸깃해진 한 편의 시를 내 옆에 보이지 않게 앉은 그에게 보여주고 파파라치에 대해서, 폐광과 늙은 여자의 그로테스크한 대비를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행복했는지 모른다. 하루 종일 나와 동행했던 죽음에의 공포와 관음증에 노출된 윤리와 회귀해야 하는 시간의 유효성은 나와 함께 하면서도 좀처럼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물어보라, 그대가 벤취에 앉아 응시한 저 쪽에 누가 있었는가? 한 장의 사진 속에 그대를 담아주기 위해서 누가 빛나는 그대의 생애의 셔터를 눌러 주었는지 물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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