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문해력일까 '문화력'일까
중앙선데이
입력 2025.01.04 00:08업데이트 2025.01.10 07:59
강태웅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요즘 5060들은 소셜미디어(SNS)로 젊은 세대들의 문해력에 관한 기사를 공유하며 혀를 차곤 한다. 금일(今日)을 오늘이 아니라 금요일로, 중식(中食)을 점심식사가 아니라 중국요리로, 독도법(讀圖法)을 지도를 읽는 법이 아니라 독도에 관한 법령으로 잘못 알고, 시발점(始發点)을 시작하는 지점이 아니라 욕으로 알아듣고, 이부자리를 이불과 요가 아니라 별자리 이름으로 이해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기사를 접한 기성세대는 대개 ‘이런 것도 몰라’라며 젊은 세대 걱정을 한다. 이런 걱정이 필자 주변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에 대한 수정까지 요구되고 있다.
젊은이 문해력 부족하단 지적 많아
한자 교육만 강화한다고 해결될까
동영상에 익숙한 문화적 차이 있어
기성세대 잣대로만 판단해선 안돼
그런데 문해력과 관련한 사례들을 잘 살펴보면 한자가 섞인 말이 대부분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지만, 젊은 세대들의 한자력(漢字力) 저하가 문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1세기 들어 한문과 한글을 같이 쓰는 국한문 혼용체가 사라졌지만, 일본의 경우 계속해서 한문과 가나(仮名)를 섞어 쓰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보다 한자를 접하는 일이 많다 보니 한자에 대한 의존도도 높다. 그렇다고 일본의 젊은 세대가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문자로 이루어진 매체보다는 동영상을 더욱 많이 찾는다. 게다가 SNS의 짧은 문장에서 한자보다는 가나를 많이 쓰고, 한자를 자동으로 변환해주는 문자입력 프로그램을 이용하다 보니 한자를 이해하는 힘, 즉 한자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한자는 80자에 불과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쌓이고 쌓여 전부 1026자를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교과서를 아예 읽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정도는 아니지만 한자에 대한 이해는 우리말 능력에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문해력 논의가 한자력 문제를 넘어 젊은 세대에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보는 시각에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기성세대의 기준으로 문해력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도 우려스럽다. 사실 문해력(文解力) 자체도 한자력이 높은 단어는 아니다. 서술어가 목적어보다 먼저 나오는 한문 어순에 따르면 해답(解答), 해동(解凍), 해법(解法)처럼 해문력(解文力)으로 써야 자연스럽다.
세대 간 문화 차이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그에 따라 쓰이는 언어 역시 차이가 있었다. 젊은 세대의 글에 대한 이해 능력이 ‘저하’했다기보다는 자신들이 향유하는 문화 환경에서 낯선 단어를 다르게 이해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힘, 즉 ‘문화력(文化力)’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스스로 ‘문화력’ 부족을 통감할 때가 많다. 한 학생이 수업 중 발표를 하면서 어떤 정보를 무슨 채널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필자는 어느 방송국 채널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학생은 유튜브 채널을 말하는 것이었다. 채널마다 번호가 배당되어 있는 지상파나 케이블의 방송국을 연상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들은 채널이라 하면 유튜브를 먼저 떠올리는 모양이다. 어떤 학생이 ‘숲’에서 본 축구 생중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지만, 필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숲은 나무가 가득한 곳이 아니라, 인터넷 방송 플랫폼 SOOP을 지칭한 것이었다. 숲은 얼마 전까지 아프리카TV였다. ‘아프리카’라 했어도 대륙 이름으로 알아듣는 기성세대가 많았을 것이다. 기성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세대 간 ‘문화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혀야 하고 한자 교육을 보다 확대하자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특히 한자에 대한 지식은 우리 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고, 더 나아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 언어 습득에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법과 정도를 지나치게 기성세대의 잣대로만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도 몰라서야 되겠느냐’라고 기성세대는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달라도 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문해력 소동이 ‘라떼는 말이야’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태웅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5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