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끄러운 날... 케이블카 타고 설산 속으로
[아무튼, 주말]
초겨울 雪景 맛집
정선으로 떠난 여행
속 시끄러운 한 해의 끝자락, 마음의 평화를 찾아 첩첩산중으로 향한다. 헐벗고 앙상한 채로 겨울을 나는 나목을 만나러. 눈으로 뒤덮인 설산을 무념무상 걸으러. 자극적인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순백의 세상과 마주해 아이들처럼 순한 말, 순한 이야기를 나누면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겨울 왕국’ ‘설경 맛집’으로 소문난 강원도 정선의 오지(奧地)로 떠났다. 겨울의 다양한 표정이 존재하는 대자연 속으로.
◇‘눈꽃’ 볼까, ‘구름바다’ 만날까?
겨울 산행의 백미로 꼽히는 눈꽃과 상고대를 보고 싶다면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가리왕산부터 발걸음해볼 일이다. 정선과 평창의 경계에 있는 가리왕산은 ‘태백산맥의 지붕’이라 불리는 명산. 내륙 산악지대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만들어낸 상고대와 운해 그리고 는개(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를 만날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가리왕산케이블카(정선아리랑상품권 5000원 포함 성인 왕복 1만5000원)를 타면 등산하지 않고도 가리왕산 하봉까지 편히 오갈 수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장의 곤돌라를 활용한 가리왕산케이블카는 올림픽이 끝나고 환경보전을 위해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살아남아 정선 관광의 명물로 등극했다. 존폐 여부는 여전히 논의 중이다.
해발 419m인 하부 탑승장 ‘숙암역’에서 출발할 경우 20여 분 만에 해발 1381.7m의 가리왕산 하봉 정상에 있는 상부 탑승장 ‘가리왕산역’에 닿는다. 3층 전망대로 가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설산의 능선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영하 4도였던 지난 1일 가리왕산 일대는 눈꽃과 상고대 대신 뜻밖의 하얀 운해가 마중 나왔다.
산봉우리 사이를 구름바다처럼 덮는 운해(雲海)는 대개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는 초봄이나 늦가을에 고지대에서 운이 좋아야 목격할 수 있다. 전망대 직원은 “며칠 동안 눈과 비바람 등 악천후가 이어져 안전을 위해 케이블카 운행을 부득이 중단했는데, 오늘은 마치 늦가을 날씨 같아서 운해가 등판한 것 같다”며 반가워했다. 전망대에선 멀리 평창 육백마지기의 풍력발전기를 비롯해 방향에 따라 가리왕산 중봉·상봉, 청옥산, 계방산, 오대산, 두타산, 발왕산, 노추산 등의 봉우리나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정상 운영할 경우 동절기 기준 휴무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정선5일장인 정선아리랑시장(2·7일로 끝나는 날) 장날이 월요일일 경우 케이블카는 정상 운영하고 화요일에 쉰다. 때에 따라 일몰, 일출 노선도 운행하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gariwangsancablecar.com) 참조.
◇혹한기 훈련과 겨울 낭만 사이
모든 여행이 눈물 나게 아름답고 황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편견을 버리면 콧물 나게 재미있는 추억여행 폴더 하나가 추가된다. 뺨이 얼얼해질 정도로 춥지만, “정선레일바이크는 눈발이 희끗희끗 날릴 때 타는 게 찐(진짜)”이라는 후기를 믿고 슬슬 발동을 걸어본다. 이어지는 코스는 레일바이크 체험이다.
2005년 6월에 개통해 내년이면 어느덧 20주년을 맞는 정선레일바이크는 전국 레일바이크계의 ‘원조’이자 ‘노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어 정선 여행객 중 안 타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겨울에 무슨 혹한기 훈련이냐?”는 말은 마시라. “비수기인 겨울에도 일부러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있어 점검일인 수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운행하고 있다”는 게 코레일관광개발 김진태 정선 지사장의 설명이다.
정선레일바이크는 20년째 사계절 변함없이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km 구간을 시속 15~20km로 오간다.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하얀 눈 쌓인 철로를 가르고, 눈발이 흩날리는 들판과 강 위를 천천히 달리다 보면 겨울 풍경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보는 기분이 든다. 레일바이크를 타는 40분여 동안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기라도 하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그 노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우후에~” 트로트 가사 속 금순이처럼 굳세어지지는 못하더라도 청량하고 알싸한 겨울 공기에 어수선했던 마음이 환기된다.
이따금 바람을 막아주는 터널 구간이 한파대피소처럼 나타나면 고맙기까지. 웃음 터지는 구간들도 등장한다. 오르막길에선 “더 구르라(페달을 밟으라)”며 서로 PT선생님처럼 잔소리를 하다가도, 수월한 내리막길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기념사진, 셀카 찍기에 바쁘다. 손이 시려 옆 사람과 손난로(핫팩)를 서로 주고받다 보면 없던 전우애, 인류애가 솟아오른다.
허벅지가 뻐근해져 ‘그만 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쯤 종착역인 아우라지역에 닿는다. ‘아우라지’는 둘 이상의 물길이 모이는 물목을 일컫는 말.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강과 삼척시 중봉산에서 흐르는 골지천이 합류해 어우러지는 조양강 유역에 역이 자리한다. ‘주례마을’ 아우라지 장터에서 요기하거나 풍경열차를 타고 구절리역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김 지사장은 “설경 감상은 초겨울을 추천한다”며 “기상 상황이 괜찮을 땐 여행객이 한 팀만 찾더라도 정상적으로 운행하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레일바이크 운행을 중단할 수 있으니 문의 후 방문하라”고 당부했다. 장갑과 모자, 손난로 등 한파 대비 ‘생존 무장’은 선택 아닌 필수!
정선선 간이역인 ‘나전역’과 치유의 정원 ‘로미지안가든’이 레일바이크 탑승역인 구절리역에서 차로 10~20여 분 거리, 정선아리랑시장이 30분 거리에 있다. 1969년 석탄산업의 발달과 함께 보통역으로 문을 열었다가 나전광업소 폐광 후 폐역 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나전역은 2017년 나전역 카페로 변신했다. 나전역 카페에선 정선의 곤드레 나물을 특화한 디저트 ‘곤드레 몽블랑 갈레트’를, 정선아리랑시장에선 곤드레 나물밥이 인기다. 곤드레 나물을 수북하게 얹어 갓 지은 곤드레 돌솥밥, 몽글몽글한 두부 넣고 팔팔 끓여낸 시골 된장찌개가 언 몸을 구수한 향으로 녹인다. 양념장 넣고 쓱쓱 비벼 돌솥밥 한 그릇 뚝딱 한 후 뜨끈한 물 부어 눌은밥까지 긁어 먹고 나면 고민거리가 생긴다. 이대로 눌러앉을 것이냐, 다시 설경을 만끽하러 나갈 것이냐.‘
◇문치재 드라이브, 만항재 운탄고도 트레킹
추위를 피해 설경을 감상하려면 드라이브 코스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산악지대 고갯길 천국인 정선에서 해발 732m의 ‘문치재’는 화암면 424번 지방도에서 북동리로 넘어가는 가파른 고개다. 함양 오도재와 보은 말티재, 단양 보발재 등과 함께 대표 고갯길로 꼽히는 문치재는 고양산과 각희산, 곰목이재 등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에 둘러싸인 문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오산 동쪽에서 북동리 무낼(무내리)로 넘어가는 문이라고 해서 문치재라고 불려왔다는 설도 있다. 사진 작가들 사이에 설경이 아름답고, 빛 공해가 적어 별 사진을 찍기에 좋다고 소문 나면서 전망 감상을 위한 여행객들의 발걸음까지 더해졌다. 왕복 2차로를 사이에 두고 전망대 뒤 편으로 각희산 등산 코스와 연결된다. ‘화암동굴’도 차로 5~6분 거리로 가깝다.
전망대에 서면 구불구불한 길이 원근감 있게 내려다보인다. 이 길을 사이에 두고 겨울과 늦가을이 공존하는 풍경이다. 전망대 옆 나무 장승엔 ‘여게가 조차누’ ‘자알 찌거바요, 야’라는 정겨운 강원도 사투리가 적혀 있다. 총 길이 약 1.5km, S자 형태로 이어진 길 위에서 천천히 차를 운전하다 보면 차창 밖으론 산골 마을의 소박한 풍경이 지나간다. 고갯길이 거의 끝나는 부근에 북동리 사금채취체험장 표지판이 나온다. 북동리는 조선시대부터 이름난 사금 산지였던 곳으로 금광마을로 유명했다. 토박이 주민들 사이에서 “일제강점기에 정선 읍내보다 전깃불이 먼저 들어올 정도로 번성했다”던 마을엔 사람 소리보다 물소리, 새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함백산 만항재도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겨울엔 ‘설경 맛집’으로 불린다. 다만, 문치재에선 차로 50여 분 거리이기에 하이원리조트나 삼탄아트마인 등과 코스로 엮어 이어가 볼 만하다. 눈꽃은 보고 싶은데 추위도, 걷는 것도 싫은 이들에게 최적의 여행지.
해발 1573m의 함백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높은 산으로 꼽힌다. 차를 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고개인 만항재 정상부에 가면 하얀 눈밭의 숲과 만난다. 봄부터 가을까지 300여 종의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 대신 겨울엔 눈꽃과 상고대가 기다린다. ‘만항재쉼터’ 주인은 “요 며칠 상고대가 관찰됐다”며 “날씨에 민감해 잠깐 모습을 비췄다가 반짝하고 사라지기에 상고대를 보려거든 발걸음을 몇 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고대가 없어도 주변은 충분히 아름답다. 가까이 ‘천상의 바람길 트레킹’ 명소로 꼽히는 ‘정암풍력발전단지’의 풍력발전기가 눈바람을 잘라내고, 어깨에 눈을 인 커다란 소나무들이 고요하고 이국적인 정취를 뽐낸다. 체력이 허락된다면 석탄을 나르던 길을 이은 운탄고도로도 이어가 볼 수 있다. 눈으로 덮인 나무 사이로 난 길은 그야말로 설국. 소복이 쌓인 눈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지 50대 남성이 슬며시 눈을 뭉쳐 아내에게 던진다. 그 옆 한 커플은 눈사람을 열심히 만들어 인증 사진을 찍는다. 눈의 고장 정선에선 누구나 하얗게 동심으로 돌아간다. 20대 커플도, 50대 부부도.
[ 리조트 카페도, 치유의 정원도 ‘정선 주민처럼’ ]
디지털 관광 주민증 들고 가볼 만한 정선의 핫플
인구 감소 지역인 정선을 갈 때 필요한 건? ‘디지털 관광 주민증’이다. 참여 업체에서 비치한 ‘QR 코드’만 찍어도 정선군민들과 동등하거나 비슷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웰니스 관광지’의 시설도 디지털 관광 주민증 소지 시 할인 혜택을 준다.
가장 파격적으로 우대해 주는 곳은 치유의 정원인 ‘로미지안가든’. 정가 1만5000원인 입장료가 성수기·비수기 구분 없이 정선군민들과 똑같이 7000원이다. 추워서 볼 것 없다고? 흰 눈 쌓인 날 찾으시라. 설립자 손진익 대표가 오랫동안 기관지 천식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정착해 꾸몄다는 치유의 숲은 눈이 쌓이면 아름다운 설경을 자랑한다. 일식당 ‘야마노우에(山の上)’에서 사누끼우동, 돈가스 등을 맛보면 일본 여행이 부럽지 않다.
가리왕산케이블카 탑승장과 가까이 있는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는 올해 ‘디지털 관광 주민증’ 우수 사업장으로 이달 초 선정됐다. 리조트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 ‘로쉬카페’는 디지털 관광 주민증이 있으면 10% 할인 혜택을 준다. 바로 구워내는 화덕 피자와 파스타가 2만원대부터. ‘비타민 주스’ ‘헬시 주스’라 이름 붙인 건강 음료도 맛있다. 리조트 관계자는 “가리왕산 케이블카 이용객 중 디지털 관광 주민증을 이용해 식사하거나 차 한잔하고 가는 여행객이 늘었다”고 했다.
정선레일바이크는 탑승권을 구매할 때 디지털 관광 주민증을 제시하면 자체 제작 기념품인 머그컵을 증정한다. 그 밖에 화암동굴, 아라힐스 스카이워크 등도 입장료 20% 할인 혜택이 있으니 모르고 가면 손해다. 혜택은 업체마다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문의 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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