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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포기에 기자도 놀랐다, 스님과 신부님 ‘독특한 산행’
카드 발행 일시2024.11.26
에디터
김영주
강원도 정선군엔 독특한 걷기 동호회가 있다. 스님과 신부님, 목사님이 뭉쳐 함께 걷는 ‘님과 함께’ 옛길걷기 모임이다. 첫 모임은 2년 전, 정선읍의 어느 짬뽕집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정선을 대표하는 절인 정암사 천웅 주지스님과 당시 정선종합사회복지관장으로 일하던 조원행(50) 신부가 “같이 정선의 옛길을 걸어 보자”고 한 게 발단이다. 여기에 스님과 신부를 따르는 ‘신도’가 따르면서 걷기모임은 어느덧 50~60명이 됐다. 님과 함께는 한 달에 한 번, 정선을 비롯한 강원도의 길을 걷는다. 총무를 맡는 권혜경씨는 “정선에 사는 사람들이 주축이지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정선 항골 숨바우길을 님과 함께 회원들. 천웅 정암사 주지스님(앞줄 왼쪽)과 조원행 신부(오른쪽)가 낙엽 쌓인 숨바우길 초입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지난 15일, 천웅 스님과 조원행 신부 그리고 10여 명의 회원이 정선군 북평면 항골계곡 초입에 모였다. 이날 행선지는 계곡을 따라 이어진 항골 숨바우길이다. 백석봉(1170m)과 상원산(1421m) 사이 계곡을 따라 걷는 입구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빙 돌아 나오면 10여㎞에 이른다. 걷기 앱을 켜면 약 1만 보, 운동하기 딱 좋은 코스다. 특히 백석봉 오르기 전 제3 진출입로까지 5㎞ 구간은 평지나 마찬가지여서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다. 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다시 되돌아오면 10㎞, 만추에 가족끼리 걷기 좋은 길이다.
정선 항골 숨바우길. 예전 벌목을 위해 만든 '산판길'을 걷기 길로 재탄생시켰다. 김영주 기자
이날 모임엔 다양한 이와 함께했다. 정선아라리 소리꾼 한승연씨, 시노래 가수 박경하씨 등이다. 또 정선군청의 김영환 관광문화과장, 지형규 산림과장도 함께 했다. 한씨는 정선아리랑이 좋아 20여 년 전 서울에서 정선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처음엔 소리가 좋아 한두 가락 따라 배우던 정선아라리가 이젠 삶이 되고 직업이 됐다. 2013년부터 ‘정선아리랑’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선엔 한씨와 같은 보유자가 20여 명 더 있다고 한다.
정선군청의 두 과장은 ‘님과함께’ 지원을 위해 짬을 냈다. “정선군에서 가장 유명한 걷기 모임인데, 군청 직원도 같이 걸어야지요.”
스님과 신부님의 조합도 독특한데, 예술인과 공무원까지 더하니 길이 풍성해졌다.
반면에 걷기의 노하우는 제각각이었다. 여느 산악회처럼 출발 전에 플래카드 들고 사진 찍고, 누가 누구를 챙겨주고 그런 게 없었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 자유롭게 걷는 분위기였다. 어깨에 작은 가방을 하나 메고 각자의 길을 갔다. 걷는 동안 말도 별로 없었다. 숲과 계곡, 나무와 낙엽이 어우러진 길을 ‘치유와 명상’으로 채웠다. 기자의 개인적인 취향과도 잘 맞았다.
정선 항골 숨바우길. 이정표는 주변의 나무를 이용해 작고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김영주 기자
숨바우길이라 이름 붙여진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선군이 계곡 옆으로 나무 데크를 놓고 산책로를 만든 게 2년 전이다. 그리고 공모를 통해 숨바우길이라 명명했다. ‘이끼 낀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길의 역사는 오래됐다. 벌목이 한창이던 때에 만들어진 길이다.
“예전에 산판(벌목) 치던 길이에요. 지금은 사람 한둘 다닐 정도의 좁은 오솔길이지만, 그때는 트럭이 지날 정도의 길이었겠지요. 가다 보면 계곡 옆으로 석축을 쌓아올린 곳이 있는데, 주변의 돌을 모아 트럭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든 거죠. 우리나라에 있는 옛길 중에 이런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을걸요.” 지형규 산림과장이 말했다.
그보다 더 오래전엔 궁궐 짓던 금강송을 베어내던 길이다. 귀한 금강송은 한강 물길을 따라 서울까지 갔다. 산판꾼들은 아름드리 소나무(떼)를 베어 나르고, 뗏꾼들은 그 떼를 엮어 뗏목을 만들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마포나루까지 떼를 운반했다. 그 서사의 시작이 바로 이 계곡인 셈이다.
정선 항골 숨바우길. 곳곳에 작은 소와 폭포가 있는 호젓한 길이다. 김영주 기자
산판 치던 길은 산골 사람들의 나들이길이 되기도 했다. 계곡이 워낙 깊고, 길게 뻗어 있다 보니 곳곳에서 천렵이 이뤄졌다고 한다. 걷다 보면 ‘용소(龍沼)’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 있는데, 천렵을 하던 곳이다. 용소 이후엔 ‘모래소’라는 곳도 만난다. 화전민들이 이곳의 모래를 퍼다가 터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래소까지가 시작점에서 2.5㎞ 남짓, 평지 길의 절반가량이다.
정선 항골 숨바우길을 '님과 함께' 회원들과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일행 중 절반 가까이가 이 지점에서 멈춰 섰다. 눈치를 보아하니 더는 안 갈 모양새다. 예상대로 “그만 내려가겠다”고 한 이들이 상당수였다. 전체 코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내려가겠다니 당황스러웠다. 명상에 접어들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님과 함께는 끝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각자 걷고 싶은 만큼 걷지요. 더 가실 분들은 스님을 따라가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인솔해 먼저 내려가고, 나전역 카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조원행 신부가 말했다. 나전역 카페는 폐쇄된 간이역을 예쁜 휴게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정선의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한두 명이 내려간다고 하니,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남은 사람은 천웅 스님과 한승연씨, 지형규 산림과장 그리고 기자까지 4명뿐이었다. 많은 산악회와 걷기 모임을 따라 다녔지만, 산행 1시간 만에 3분의 2가 ‘중도 포기’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걷고 싶은 만큼 걷는다’를 철저히 지키는 모임이었다.
정선 항골 숨바우길. 만추의 서정이 가득했다. 김영주 기자
이후부턴 정반대였다. 발바닥에 땀이 나듯 바삐 걸었다. 앞에서 걷는 천웅 스님의 걸음이 보통 사람으로선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빨라서였다. 산악 담당으로 잔뼈가 굵은 기자도 따라 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걷는 동안 사진을 찍느라 30초 정도 멈춰 섰다가 따라잡으려면 달려가야 할 정도였다. 땀을 뻘뻘 흘렸다. 이상하게도 동행한 한씨와 지 과장도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단 한 번도 “스님, 천천히 가시지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 정선의 님과 함께 걷기 모임은 자동으로 묵언 수행이구나.’
시속 4㎞의 속도로 제3 진출로까지 다다랐다. 산길을 걷는 것치곤 꽤 빠른 속도였다. 이후부터는 오르막이다. 그제야 천웅 스님이 멈춰섰다. 스님 역시 가쁜 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 지점까지는 예전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백석봉 가는 방향은 초행이라고 했다. 빠른 걸음으로 온 이유는 시간이 애매해서였다. 갈림길에 선 시간이 오후 2시30분. 백석봉으로 올라 하산하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이때가 거의 마지노선에 가까웠다. 산이 깊어 오후 5시 이후엔 위험하기 때문에 해 떨어지기 전 하산하기 위해 서둘렀던 것이다. 좀 더 일찍 산행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늦게 출발한 게 화근이었다.
백석봉 오르는 길은 만추의 서정이 가득했다. 뒤늦게 물든 낙엽송 군락은 앙상한 잡목들 사이에서 샛노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고, 자작나무 군락은 어깨 아래 잎은 모두 떨군 채 머리 꼭대기에만 노랗게 물든 잎이 달려 있었다. 나무꼭대기에 걸린 가오리연 같아 보였다. 드문드문 나무 벤치가 있었는데, 간목(刊木)하면서 벤 나무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숨바우길 내리막 구간에서 시원한 계곡 물로 땀을 식히는 천웅 스님(오른쪽)과 한승연씨(가운데), 지형규 정선군청 산림과장. 김영주 기자.
오르막을 숨 가쁘게 올라 능선에 다다르자 이후엔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산 정상부엔 아름드리 소나무가 주종을 이뤘다. 소나무 울창한 삼거리에 등마루쉼터가 나타났다. 계속해서 오르면 백석봉 정상, 남쪽으로 하산하면 항골 입구로 내려간다.
오후 3시가 넘어 산 정상까지 가기엔 빠듯해 하산하기로 했다. 정상에 올라 한승연씨의 정선아라리를 듣기로 했는데, 길을 재촉하느라 듣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정선아리랑예술단의 아리아라리 공연은 정선 장날(2·7일)에 맞춰 열리는데, 올해의 마지막 공연이 오는 27일 정선아리랑센터에서 열린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길바닥도 돌이 많이 깔려 있어 발바닥과 무릎에 부담을 줬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올라온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을 추천한다. 아니면 백석봉 정상을 거쳐 능선을 따라 ‘졸드루’로 내려오는 길이 덜 험하다고 한다.
항골 입구까지 내려오니 오후 4시30분. 해 떨어지기 전 딱 맞춰 하산했다.
차준홍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4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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