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10] 그 역에 가을이 오면
고운 코스모스를 만났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 한 구절은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그리고 ‘잘 있나요. 가을은 역시 코스모스 피는 고향역의 계절이지’라며 정겨운 안부를 전해준 ‘고향역’ 작사·작곡가인 임종수 선생님도 생각난다.
‘고향역’은 1972년 발표된 나훈아 노래로 사랑받는 곡이다. 하지만 정작 노래를 만든 임종수의 고향 순창에는 기차역이 없다. 노래 속 ‘고향역’은, 타지인 형 집에 머물던 중학생 시절 황등역과 이리역(현재 익산역)을 통학하던 여정에서 비롯되었다. 그 길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기찻길 옆 코스모스를 보며 위로받았던 기억이 담겨 있다.
처음 나훈아에게 전해질 당시에는 ‘차창에 어린 모습’이라는 사뭇 다른 제목과 가사였다. 나훈아의 제안으로 슬픈 가사 대신 건전한 가사와 고고 리듬으로 바꾼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 이후, 9월이 되면 추석 명절 고향을 떠올리는 정서에 나훈아의 음색과 어우러져 ‘누군가의 고향역’으로 사랑받게 되었다.
이제는 ‘역’ 하면 지하철역이 먼저 떠오르는 시대이다. 기차역 중에는 기능이 축소되어 간이역이 된 곳도 있다. 노선 변경이나 역사 신축으로 역이 폐쇄되어 폐역으로 남은 곳도 많다. 그중에서도 보령 청소역, 삼척의 구(舊) 하고사리역사, 곡성의 구 곡성역, 양평 구둔역을 비롯한 24곳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구 서울역사는 1925년 경성역사로 준공되어 광복 후인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1년 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오랜 세월 철도 교통의 중심이었다가 2003년 그 자리를 내주었다.
사연과 사람을 이어주던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지만, 구 서울역사처럼 문화 공간으로 쓰임새가 바뀌며 사랑받는 폐역사가 많다. 서울 근교에는 자전거길 쉼터로 변모한 남양주 능내역도 있다. 가을바람에 실려 추억이 깃든 그곳을 찾아 나서야겠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햄릿이냐 돈키호테냐 (1) | 2024.11.12 |
---|---|
고독과 잘 지내기 위한 (0) | 2024.11.08 |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누구인가? <Ⅰ> (2) | 2024.09.06 |
성인(聖人)들이 생고생하는 나라 (0) | 2024.08.06 |
나 ‘자신’을 내려놓는 정원 가꾸기 (2) | 2024.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