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7] 문을 열고 폴짝 나오는 생명
뒤돌아보니
내 발을 밟고 가는
개구리로다
見返[みかえ]るや我[わ]が足[あし]ふんでゆく蛙[かえる]
대지의 문이 열렸다. 봄기운을 느낀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온다. 긴긴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 한 마리가 비몽사몽 뛰어가다가 연못가에 선 인간의 발을 밟고 간다. 양말에 구두를 신었다면 개구리에게 발이 밟혀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게다를 신은 맨발의 발등이라 폴짝 뛴 탄성이 잘 느껴졌으리라. 바야흐로 경칩의 촉감. 뒤돌아보고서야 존재를 깨닫는 시선도 경쾌하다. 에도시대 시인 신토쿠(信徳, 1633~1698)의 하이쿠다.
문을 열고 나오는 건 개구리(蛙)뿐만이 아니다. 한자 부수에 ‘벌레 충(虫)’을 단 녀석들은 거의 다 출몰한다. 뱀(蛇), 나비(蝶), 벌(蜂), 달팽이(蝸), 개미(蟻), 모기(蚊), 파리(蠅). 옛사람들은 양서류나 파충류도 벌레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다. 벌레도 인간만큼이나 따스한 햇살이 반갑다. 봄은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계절이리라. ‘고금와카집(905년)’ 서문에서 기노 쓰라유키도 말한다. ‘꾀꼬리도 벚꽃을 보며 울고 개구리도 맑은 물에서 우니,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것들 가운데 노래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벌도 나비도 모기도 인간도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봄을 노래한다.
그런데 일본인에게 벌레는 조금 더 각별한 모양이다. 일상 대화에서 벌레를 뜻하는 ‘무시(虫·むし)’를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약한 벌레인 ‘요와무시(弱虫)’는 겁쟁이라는 뜻이고, 우는 벌레인 ‘나키무시(泣き虫)’는 울보라는 뜻이며, 화내는 벌레인 ‘오코리무시(怒り虫)’는 걸핏하면 화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벌레가 그저 벌레가 아니라 인간 자체다. 인간이 벌레가 되는 카프카의 소설처럼 일본인은 평소 언어생활 속에서 변신을 거듭한다. 일본 국어사전 ‘고시엔’을 펼쳐보니 벌레에 이런 뜻이 있다. ‘잠재한 의식.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일으키는 근원. 오래전에는 인간의 마음속에 생각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벌레가 있다고 여겼다.’
나약하고 슬픈 벌레가 내 마음에 들어와 내 생각과 감정을 장악한다고 생각한 것. 그렇다면 ‘벌레가 좋다(무시가이이, 虫がいい)’는 관용구는 무슨 뜻일까. 흔히 ‘벌레가 좋은 이야기’라는 식으로 쓰이는데, 이때 벌레는 인간의 마음, 그중에서도 나의 마음이다. 내 마음에 드는 이야기, 그러니까 내 상황에 맞게 멋대로 해석한 뻔뻔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기왕 내 안에 벌레를 들여야 한다면 슬프고 우울하고 이기적인 벌레보다는 경칩에 문을 열고 나오는 희망찬 벌레를 들이고 싶다. 그래서 다 같이 즐거운 벌레가 되어 이 봄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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