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5] 강가에 핀 봄소식
버들강아지
빛줄기에 닿으니
봉긋해지네
猫柳日輪[ねこやなぎにちりん]にふれ膨[ふく]らめる
날이 한결 포근하다. 우리 집 강아지 연필도 봄바람에 들떴다. 한 번 산책에 나서면 허공에 코를 킁킁대며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이봐, 봄이야. 이건 봄이라고. 그런데 집에 들어간다? 인간, 감성이 메말랐구나. 조금만 더 돌자. 그런 눈빛. 네 마음은 알겠는데 얼른 가서 오늘의 하이쿠 찾아야 해. 하지만 30분 정도 더 도는 건 괜찮겠지. 그렇게 봄날 강아지 마음에 져서 마을 한 바퀴를 더 돈다. 그럴 때면 탐스러운 꼬리가 한껏 말려 올라가 ‘봄이다, 봄이야’ 하고 재잘거리는 듯하다. 강아지 꼬리도 봄을 반긴다.
이 무렵 강가에는 보들보들한 솜털을 바람에 한들한들 날리며 새봄을 맞이하는 버들강아지가 보인다. 얼음이 녹고 봄물이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갈색 모자 같은 비늘 잎을 벗어던지며 기지개를 켜는 버들강아지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탐스러운 솜털 하나하나가 햇살에 닿아 더욱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다. 시인 야마구치 세이손(山口青邨, 1892~1988)이 쓴 하이쿠대로다. 이렇듯 손에 잡힐 듯 섬세한 묘사는 오랜 관찰과 애정에서 나온다. 이 한 줄 시를 고스란히 마음에 담으며 가만히 눈을 감는데, 마치 귀엽고 보드라운 잿빛 솜털이 살랑거리는 양재천변 갯버들 앞에 서 있는 듯하다. 버들강아지는 복슬복슬한 강아지 꼬리가 연상되어 붙은 이름이다. 이제 날이 더 푹해지면 그 털 하나하나에서 작디작은 꽃이 피어나겠지.
일본에서는 버들강아지를 고양이버들(猫柳, 네코야나기)이라고 한다. 우리가 강가에 살랑이는 갯버들의 솜털을 보며 강아지 꼬리를 떠올렸다면, 일본인은 고양이 꼬리를 떠올린 거다. 같은 자연물을 보며 한국과 일본이 각기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져다 붙였다니 재미있다. 여름 들판에 초록빛으로 한들거리는 강아지풀에게도 일본인은 고양이장난감(猫じゃらし, 네코자라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고양이를 이르는 단어 ‘네코’도 ‘자는(寝る, 네루) 아이(子, 코)’가 어원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꾸벅꾸벅 졸다가 틈만 나면 인간을 비꼬는 고양이로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올린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쓰메 소세키, 1905년 작)의 나라답다.
나의 연필은 밀양에서 올라온 점박이 시골 강아지이고 꼬리가 정말로 버들강아지처럼 빛줄기를 받아 봉긋해지는 녀석이기에 내게는 버들강아지라는 단어가 한결 사랑스럽다. 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고양이버들, 아니면 다람쥐버들이나 사슴버들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을 가져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보는 것도 즐거운 시적 활동이 아닐까. 자기만이 떠올릴 수 있는 참신하고 귀여운 언어 수집하기가 곧 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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