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5] 그래, 배를 저어야지
복수극, ‘더 글로리’가 인기다. 학창시절 처참하게 짓밟힌 주인공이 복수에 자신을 헌신해서 영광과 명예를 되찾아 가는 과정을 그렸다. 삶은 때로 잔인할 정도로 폭력적이어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을 준다.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누구라도 불운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에게는 그런 불행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위기는 공포를 유발한다. 사람을 잡는 것도 살리는 것도 위기 자체가 아니라 공포를 느끼는 마음이다. 극단적인 공포심은 사람을 바꾼다. 정윤순 작가는 몇 해 전 큰 사고로 반 년간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그는 특유의 집념으로 사진 작업에 몰두했다. 생업이 따로 있지만 그가 사진을 통해서 맞서고 있는 삶의 무게를 두고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사진을 찍기 위해 배우고 고민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은 그에게 더 단단한 마음 근육을 키워주었을 것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은 작가 자신이다. 저 배를 직접 만들고 촬영 장소를 물색해서 옮기고 의상을 갖춰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배를 띄울 수도, 노를 저을 수도 없는 곳에서 중심을 잡고 서있기도 버거워 보이는 주인공은 온몸에 경계 태세를 갖추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한 손엔 노를 움켜쥐고 눈썹을 일그러뜨린 채로, 그는 지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두려움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이 그를 구원하고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수월치 않은 여정이다. 그 무게를 견디는 힘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삶을 지탱한다. 도전하거나 도망가거나, 수용하거나 부정하거나, 남의 눈엔 정반대로 보이는 행동이라도 마른 바닥에 배를 띄우는 심정으로 노를 젓고 있긴 매한가지다. 누가 알겠는가. 저 척박한 돌산에 물이 흘러들어 어느새 배가 둥둥 떠다닐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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