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 동짓날 팥죽과 유자 목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23. 09:32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 동짓날 팥죽과 유자 목욕

입력 2023.12.21. 03:00업데이트 2024.03.22. 16:52
 
 
 

동짓날 햇살

다정하게 다가와

무릎에 앉네

冬至の日しみじみ親し膝に来る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동지에 해가 짧아져 추워진 줄만 알았는데, 태양이 가장 낮게 뜨니 햇살이 창문 너머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 무릎에 앉는다. 데면데면하게 창가에서 놀던 햇살은 어느새 곁에서 속살대는 벗이 되었다. 연중 밤이 가장 긴 동지는 햇살과 가장 다정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북반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소를 지을 법한 이 하이쿠는 온화한 작풍으로 이름난 도미야스 후세이(富安風生·1885~1979)가 썼다.

동짓날 햇살에 다정한 마음이 있다면, 동지팥죽 속에는 쫀득한 마음이 있다. 어린 날에는 할머니와 동생과 소반에 둘러앉아 새알심(心)을 빚었다. 찹쌀 반죽을 동전만큼 떼 손바닥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대 궁굴리며 새알을 만든다. 할머니는 두 번이나 세 번만 굴리면 금세 멋진 알을 만들었지만, 동생과 나는 열 번 스무 번을 굴려도 꼭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작은 새알은 손바닥을 간질이며 굴러다니다 곧 부화할 것처럼 따뜻해졌다.

우리 마음이 담긴 새알심은 팥죽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한 알 떠서 호호 불어 먹으면 짭조름하고 뜨거운 것이 온 우주처럼 들어와 입천장 아래 들러붙었다. 그걸 때어내느라 쩝쩝대고 있으면 할머니는 나이만큼 새알심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서 배불러도 새알의 마음을 먹고 또 먹었다.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을 때  (2) 2024.06.03
[2] 새해가 밝다  (0) 202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