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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에 올라앉은 어린왕자… 1600년 넘은 사찰의 풍경이 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27. 14:18

전각에 올라앉은 어린왕자… 1600년 넘은 사찰의 풍경이 되다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문화일보입력 2023-01-31 09:14업데이트 2023-02-08 11:19

 

장재선

 전등사 법당이자 문화공간인 무설전 지붕 위에 이영섭 작가의 어린 왕자 조각상이 앉아 있다. 강화=장재선 선임기자



■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9) 현대미술을 품은 ‘전등사’

강화도 정족산성에 있는 사찰
국난때마다 ‘호국도량’ 역할
유일하게 현대미술 축제 열어
종교성과 예술성의 동행 추구

무설전은 세련된 뮤지엄 같고
법당 불상 5개는 모두 하얀색
천장엔 999개 연등 설치미술
통로 및 복도는 ‘서운 갤러리’


‘가장 오래된 절집이 가장 새로운 예술을 품었구나.’ 전등사(傳燈寺)를 둘러본 후 저절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강화도 정족산성 안에 자리한 전등사는 한국 최고(最古)의 사찰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 아도화상이 진종사(眞宗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게 372년이니 그 직후 세워진 셈이다. 고려 충렬왕 때인 1282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대장경과 옥등을 시주하며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화궁주는 태자비로 17년이나 있었으나 원나라의 제국대장공주에 밀려 왕비가 되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다. 전등사는 그런 아픈 역사를 보듬으며 국난 때마다 호국도량으로 역할을 다해왔다. 국보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鼎足山史庫本)’을 지켜낸 것은 그 역할의 하나이다.

이 절에 몇 차례 간 적이 있다. 도편수의 아픈 사랑 이야기가 설화로 전해지는 대웅보전의 나부상(裸婦像)을 보러 가기도 했고, 사찰 뒤편 수목장(樹木葬) 터에 잠들어 있는 김영태 시인을 찾은 적도 있다. 이번엔 이 절의 미술 작품들을 보러 갔다. 우리나라 사찰들은 대부분 불교 문화재 관리에만 힘쓰느라 현대미술을 수용하지 못했는데, 전등사는 다르다는 것이 여러 사람의 전언이었다. 미술사학자인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종교와 무관하게 현대미술 축제를 여는 유일한 사찰”이라고 했다. 종교성과 예술성의 동행을 추구하며 미술이라는 그릇에 젊은 감각을 담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전등사 무설전(無說殿)의 불상을 제작한 김영원 조각가는 “기존 부처님상들은 금칠을 하고 머리 부분이 큰데, 백색 도료를 써서 번쩍거리지 않게 하고 인체 비례에 맞는 상을 만들었다”며 “직접 가서 보면 여느 사찰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무설전 복도의 벽면은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운영한다.



무설전을 보니 김 조각가의 말이 실감 났다. 지난 2012년 건립했다는 무설전은 템플스테이를 하는 건물인 월송요(月松寮) 아래 지하 공간을 파고 들어간 모양이었다. 전체 가람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며, 세련된 뮤지엄처럼 디자인을 한 게 돋보였다. 전각 표지판에 ‘그림이 있는 법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처의 뜻을 새기는 전당이자 미술 작품을 즐기는 문화공간임을 분명히 밝혀놓은 것이다. 정문의 지붕에 이영섭 작가의 어린 왕자 조각상이 앉아 있는 게 흥미로웠다. 작년 가을에 설치했다는데,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무설전에 자연스럽게 스민 모습이었다. 관람객이 출입하는 측면 문의 입구에 서니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신발을 신은 채로 법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김 조각가의 전언대로 법당의 불상 다섯 개가 모두 하얀색인 것이 눈에 띄었다.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비롯해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 등 협시불은 각각 아이돌 남녀 가수, 친근한 중년 남녀의 얼굴을 형상화했다.

주불이 봉안된 돔형 공간에는 전통 탱화 대신 오원배 동국대 교수의 벽화가 프레스코(Fresco)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젖은 회벽에 물감을 스며들게 하는 프레스코는 보통 서양의 교회 등에 사용한다. 이 기법을 법당에 사용한 것은 국내에서 전등사 무설전이 처음이다.

천장에는 설치미술 작품인 999개의 연등을 달았다. 전등사 총무인 지불(指佛) 스님은 “사찰서 이렇게 등을 다는 것이 지금은 흔해졌으나, 10년 전만 해도 특허를 낼 정도로 희귀한 일이었다”고 했다.

통로 겸 복도는 ‘서운갤러리’이다. 전등사 조실이었던 서운(瑞雲·1903∼1995) 스님을 기린 이름이다. 동국학원 이사장과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스님은 후학들에게 교육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고 한다. 서운갤러리는 지난 2019년부터 매년 상·하반기에 걸쳐 청년미술가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에게 창작지원금과 함께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도록도 만들어준다. 올해는 김지연, 김영미 작가가 각각 전시를 펼칠 예정이다.

전등사는 매년 가을 삼랑성(三郞城)역사문화축제를 여는데, 여기서는 중견 작가전을 선보여 왔다. 전등사를 에워싸고 있는 삼랑성은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나중에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 이름이 바뀌는데, 1866년에 프랑스 함대가 개항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점령했을 때 맞서 싸운 역사가 있다. 이를 기리기 위한 축제를 2001년부터 펼쳐왔고, 2008년부터는 중견 미술작가들의 작품전도 포함했다. 정족산사고 전시관에서 당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10명의 작품을 매년 전시했다. 그동안 박대성, 임옥상, 이이남, 곽남신, 김호득, 황주리, 문경원, 김기라 등 작가 150명이 참여했다.

작년 가을 전시에 참여했던 이영섭 작가의 어린 왕자 조각상은 무설전뿐만 아니라 죽림다원 입구와 약사전 앞 뜨락에서도 볼 수 있다.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목도리를 한 어린 왕자가 어쩌면 이렇게 절집 풍경에 잘 어울릴까. 젊은 여성들이 어린 왕자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무설전 법당의 불상은 금칠 아닌 백색으로 되어 있고, 후불 탱화 대신에 프레스코 벽화가 자리하고 있다.



전등사를 둘러보면 곳곳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동문 바로 앞에 자리한 한옥 템플스테이 공간인 전등각만 해도 문봉선, 권대섭, 이인, 양순열, 이성재, 조승화, 강영준, 이재화 작가 등의 작품이 있다.

사찰 종무실로부터 소장 작품 전체 목록을 받아보니 눈이 크게 떠졌다. 대가들의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불 스님은 “대부분 우리 절의 회주(會主)이신 장윤(章允) 스님과의 인연으로 오게 된 작품들”이라며 “작가를 격려하기 위해 매입했는데, 그분들이 나중에 중견 혹은 거장이 되셨다”고 했다. 이영섭 작가처럼 전시 후 기증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전등사에 현대미술을 접목한 장윤 스님.



장윤 스님은 1985년부터 전등사 주지를 20여 년 맡으며 사찰의 중흥을 이끌고, 그 후 회주로서 벗바리 역할을 하고 있다. 조계종단의 원로인 그는 “동국대 재직(동국학원 사무처장과 이사 역임) 때 오원배 교수 등 대학미전(大學美展) 작가들과 교우하며 대화를 많이 나눈 것이 현대미술에 각별한 애정을 품게 된 계기”라고 했다. 그 이전인 1970년대에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에게서 서예를 배우며 인사동에서 작가들을 자주 만났던 것이 바탕이 됐다.

장윤 스님의 제자인 전 주지 승석(乘奭), 현 주지 여암(如岩) 스님은 은사의 뜻을 받들어 미술 전시와 작품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 스님들의 대를 이은 합심 덕분에 1600년이 넘는 고찰이 현대미술의 보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큰 의미가 있다. 전통문화의 산실인 사찰이 당대와 소통하며 미래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등사는 국가지정 보물이 6점이나 있을 만큼 문화재가 많다. 그중 백미(白眉)인 대웅보전은 오래된 만큼 그 가치가 높지만, 낡고 퇴색해서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다. 사찰 측에서 문화재청에 정밀한 조사를 요청해놨다고 한다.

이번에 가서 새삼 눈여겨본 것은 종무소가 있는 적묵당(寂默堂)의 편액과 추사(秋史) 김정희의 글씨였다. 편액의 ‘傳燈寺’ 글씨는 대한제국 영친왕의 스승이었던 해강(海崗) 김규진이 썼는데, 여느 편액과 달리 대나무와 난초 그림이 그 옆에 있어 이채롭다. 그림은 죽농 안순환의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요릿집 ‘명월관’을 운영했던 안순환이 김규진과 함께 명산대찰을 유람하며 남긴 편액의 하나이다. 적묵당 정면 왼쪽에 걸려 있는 추사의 글씨 ‘유천희경’은 ‘하늘에서 놀고 큰 강을 희롱한다’는 뜻이다. 가로 글씨인데 두 글자는 세로로 쓰는 등 유희성이 엿보이는 서체로, 호방하게 살고 싶은 예술가 추사의 심경이 담겨 있다. 평생의 도반이었던 초의선사 영향이었을 것이다. 전등사에 가면 이처럼 고금(古今)의 예술을 두루 만나며 속진(俗塵)을 벗어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연기법은 우주법칙… 부모가 언행 바르게 해야 후대에게 좋은 기운 줘”

■ ‘전등사 주지’ 여암 스님

“불교 가르침 어떻게 줄까 고민
대중과 만나는 소임 충실할 것”



‘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으시구나.’ 전등사 주지 여암(사진) 스님의 웃음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운 흔적이 있는 승복을 입은 스님은 토굴 선방에서 홀로 수행하다가 2년 반 전 주지가 됐다. 은사인 장윤 스님을 비롯한 전등사 승려와 조계종단의 추대에 의한 것이다.

스님에게 “토굴에 계실 때보다 행복하시냐”고 물었더니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또 웃음을 지으며 “선방서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왔지만, 지금은 주지로서 대중과 만나는 소임에 충실하려 애쓴다”고 했다.

스님은 “불자인 부모와 함께 온 초·중생들과 대화할 때 소통이 잘 되지 않을까 봐 겁이 난다”며 “차세대에 불교 가르침을 어떻게 쥐여줄까 늘 고민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떤 세대에도 연기법(緣起法)은 우주 법칙”이라고 강조했다. 부모가 언행을 바르게 해야 후대에게 좋은 기운을 준다는 것이다. “현세의 인연이 내세에 반드시 이어지니, 선업(先業)을 쌓아야 합니다. 지금의 남편, 아내를 내세에 만나지 않고 싶거든, 현세에서 더 잘 해주셔요. 업이 풀려야 하니까요(웃음).”

하루 몇 분씩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스님의 권유이다. “직장서 은퇴한 분들이 쓸쓸하다고 하시는데, 하루 1시간씩 명상하며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전등사를 찾아 스님과 대화를 나누던 날, 예기치 않게 눈발이 흩날렸다. 순례자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고 있던 그는 전화를 들어 종무소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길에 염화칼슘을 뿌려서 신도들이 다니기 편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속세에서든 승가에서든 다른 이의 불편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선업의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Tip - 대웅보전 나부상의 비밀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裸婦像)은 아픈 사랑의 설화가 있다. 대웅전을 짓던 도편수가 사하촌의 주모와 정이 들어서 돈이 생길 때마다 맡겼는데, 공사가 끝날 즈음 찾아가니 사라지고 없었다. 그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건물 네 귀퉁이에서 처마를 힘겹게 떠받치는 모습으로 나부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추녀를 지지하기 위한 야차상일 가능성이 있다. 전등사는 정족산성의 문을 출입구로 쓰기 때문에 여느 사찰과 달리 일주문과 사천왕상이 없다. 이 조각들이 사천왕상을 대신하는 야차상이라는 것이다. 어떤 설이 맞든, 네 귀퉁이의 조각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대웅보전이 국가지정 문화재라서 단청을 함부로 할 수 없기에 나부상의 색감이 크게 퇴색해 있으나, 그 아우라는 바래지 않았다.

장재선 기자

문화부 /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