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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기자의 예술순례

유럽 성당 못잖은 걸작 품은 ‘명동대성당’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30. 14:46

석굴암서 영감받은 ‘14사도화’ … 동·서양이 함께 빚은 ‘성미술 보고’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문화일보입력 2023-03-14 09:07업데이트 2023-03-14 09:09
장재선

 

 명동대성당의 중앙제단 전경.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유리화 아래 장발 화백의 1926년작 ‘14사도화’가 있다. 유리화와 천사상 촛대 등은 1898년 성당 축복식 때부터 있던 것들이다.

 



■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10) 유럽 성당 못잖은 걸작 품은 ‘명동대성당’

내부 제단 둘러싼 ‘14사도화’
‘근대미술 거장’장발 1926년作
석굴암 부처 제자들 보고 그려

중앙문엔 韓교회 초기모습 조각
‘십자가의 길’ 청동 부조 등 눈길

교구청에는 시선따라 움직이는
역상조각 김수환 추기경 전신상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지난가을 이후 서울 명동대성당을 세 번 찾았다. 가을과 겨울의 두 번은 유리화, 조각, 그림 등 성미술(聖美術)을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번 초봄은 가족과 함께 한 순례였다. 그때마다 절실히 느낀 것은 명동대성당이 성미술의 보고라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는 유럽의 유명 성당 못지않게 걸작들을 많이 품고 있다. 1898년 축복식을 한 명동대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좌(主敎座·교구장 의자가 있다는 뜻) 성당으로 한국 천주교의 심장이다. 첨탑이 하늘로 치솟은 고딕 양식의 건물은 주교좌 성당의 위용을 자랑한다. 그 압도감이 워낙 크기 때문에 성당 곳곳에 성미술 작품이 자리하고 있어도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다.

 

                             서울 명동대성당은 첨탑이 치솟은 고딕 양식으로 1898년 축복식을 했다.

 



◇성모에게 봉헌된 주교좌 성당

명동대성당은 축복식 때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됐다는 점에서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 같다. 노트르담(Notre Dame)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란 뜻으로 성모를 뜻한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 왼쪽 옆의 루르드 성모동굴은 ‘노트르담’에게 바치는 성전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1960년 노기남 대주교가 조성한 이 동굴엔 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1.8m 높이의 성모상이 있다. 그 앞에 함께 하는 것은, 프랑스 루르드에 나타난 성모를 본 여성 벨라뎃다 조각상이다. 성당 뒤편 동산엔 ‘무염시태(無染始胎·원죄 없이 잉태했다는 뜻)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성당의 앞과 뒤를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성당 건물 정면에 세 개의 문이 있는데, 큰 행사 때만 열리는 중앙문에 청동 부조가 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최의순 조각가의 작품이다. 한국 교회 초기에 신앙인들이 박해를 받았던 모습과 함께 신부, 신도들이 고아와 병자를 돌보는 장면을 담았다. 세계 천주교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순교를 통해 신앙을 지켜낸 한국 교회의 궁극적 목적이 사랑의 실천임을 알려준다.

성당 안의 양쪽 벽엔 ‘십자가의 길’ 청동 부조가 새겨져 있다. 그리스도가 걸은 마지막 길을 14처로 나눴는데, 그의 부활을 15처에 담은 것이 독특하다. 역시 예술원 회원인 최종태 조각가 작품으로, 형태가 단순하지만 사실적이다.

중앙제단 위에 있는 ‘14사도화’는 한국 근대미술 거장으로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장발(1901∼2001) 화가의 1926년 작이다. 그리스도 열두 제자 외에 초대교회에서 복음 전파에 헌신한 바오르와 바르나바도 그렸다. 장발은 당시 유행하던 독일 보이론(Beuron) 화풍을 따라 외적인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표현을 추구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1925년 당시 드브레 주교로부터 그림 요청을 받았을 때 경주 석굴암을 방문해 부처의 10대 제자가 새겨진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세기 전에 제작된 14사도화의 아우라는 동서(東西) 예술 전통이 함께 빚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기예수 탄생을 표현한 유리화의 빛이 그 아래 ‘79위 복자화’에 비치고 있다.

 



◇비(非)신도에게도 그림 제작 요청

중앙제단 왼쪽 벽에 한국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 초상화가 걸려 있다. 문학진(1924∼2019) 화백의 1983년 작으로, 이듬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명동대성당을 방문했을 때 축복함으로써 한국 천주교 공인 표준영정 1호가 됐다.

그 왼쪽에 소제단이 있는데, 맨 위쪽에서 ‘아기예수 탄생과 동방 박사의 경배’를 그린 스테인드글라스(유리화) 작품을 볼 수 있다. 성당의 창문과 천장에서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는 유리화 중 하나이다. 이들 유리화는 1898년 축복식 때부터 있던 것들로, 1984년 이남규 작가가 보수·복원했고 2005∼2007년 장상건 작가가 2차 작업을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제단의 유리화 밑에 ‘79위 복자화’가 자리했다. 1925년 로마 바티칸 베드로대성당에서 거행된 한국순교자 시복식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탈리아 화가 주스타니안이 그렸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그 옆 벽면에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의 전신 초상화가 걸려있다. 수묵담채화인데, 맑고 밝은 내면의 정신세계가 오롯이 느껴진다.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비(非)신도인 황창배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명동성당 측에서 1984년 당시 신도가 아니라도 인물을 가장 잘 그릴만한 작가를 찾아 요청했다니 그 개방성이 걸작을 얻게 한 셈이다.

중앙제단의 우측으로 가면, 벽면에서 한국 천주교 창설자로 인정받는 이벽과 명례방(明禮坊)신앙공동체의 주역인 김범우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역시 1984년에 각각 김태, 조영동 화백이 그린 것이다.

성당 안의 그림에서 특별히 시선을 끈 것은 ‘명례방 천주교 집회도’(김태 1984년 작)였다. 현재의 명동 일대인 명례방에 있었던 김범우 집에서 한국 천주교 초기 신도들이 모여 교리 공부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이 흰옷을 입고 있는데 ‘서학’을 일찍 접해 스승 격이었던 이벽만 하늘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갓을 쓴 양반과 패랭이를 쓴 상인, 흰수건을 맨 평민까지 한 방에 있는 게 두드러진다. 철저한 신분 사회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평등사상을 실현하려 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장동호 조각가의 ‘예수 사형 선고 받으심’.

 



◇“사람은 가도 성상이 남았으나….”

성당의 야외 뜰엔 조각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사제관 앞의 ‘예수 사형 선고 받으심’에 오래 머물렀다. 조각가 장동호(1961∼2007)가 1994년에 성당 광장에서 전시한 후 기증한 작품이다. 거대한 대리석으로 그리스도의 두상을 만들고 가시관과 함께 좌대에 세 개의 못을 붙였다. 명동대성당 성미술 담당이었던 정웅모 신부는 “여러 각도에서 그리스도 얼굴을 보며 그분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정 신부는 “장 조각가는 정말 훌륭한 예술인이었는데, 40대에 요절했다”라며 “걸작 성상(聖像)이 남았으나, 사람이 남은 것만 하겠느냐”라며 안타까워했다.

 

 범우관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흉상으로, 최종태 조각가의 작품.

 



성당 사무실 등이 있는 범우관 1층엔 김수환(1922∼2009) 추기경 흉상이 있다. 최종태 조각가의 작품으로, 김 추기경의 엄결함과 천진스러움이 함께 표현돼 있다. 이는 성당 오른편의 서울대교구청 1층에 있는 김 추기경 전신상과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이용덕 조각가가 만든 이 작품은 이른바 ‘역상 조각’(Inverted sculpture)이다. 음각으로 새겼으나 양감이 느껴지는 부조로, 관객의 시선 이동에 따라 조각상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울대교구청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 전신상. 이용덕 조각가의 작품이다.

 



교구청 앞마당엔 최 조각가의 또 다른 작품 ‘예수상’이 있다. 부활한 그리스도가 양손을 활짝 펴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모습인데,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얼굴이어서 친근하다. 그런데 서울대교구 역사관 건물에 너무 바짝 붙어 있고, 마당에 주차돼있는 자동차들에 압박을 받는 꼴이어서 친숙함이 불편함으로 바뀐다. 원래 성당 앞마당에 있었던 것을 2014년 정비 공사 때 현재 장소로 이전했다는데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교구청 건물 내부에도 심순화 화백의 그림 ‘원죄 없으신 성모님’, 최봉자 수녀의 조각 ‘성모자상’ 등의 작품이 있다. 교구청 관리 문제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돼 있는 게 아쉽다.

교구 역사관은 상설 전시를 통해 한국 천주교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주교관으로 1891년 축복식을 한 건물이어서 성당 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다. 여기에서도 성미술품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월전 장우성(1912∼2005) 화백의 김대건 신부 전신 초상화가 눈에 띄었다. 월전은 이 그림을 그릴 때 천주교 신도가 아니었으나, 타계 직전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신에게 귀의한 예술가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된다.

 

 



성미술 담당 바톤터치… “마라톤 끝난 듯” “잘 닦인 기반서 부흥”

■ 전임 정웅모·신임 신지철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신부가 지난달 바뀌었다. 정웅모(66·사진 왼쪽) 신부가 은퇴하고, 신지철(47·오른쪽) 신부가 새로 소임을 맡았다.

“마라톤 선수처럼 제게 주어진 길을 달려왔는데, 이제 젊은 신부님께서 훨씬 잘하실 거라는 믿음으로 홀가분하게 떠나게 됐습니다.” 정 신부는 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 성당의 성미술을 알리는 데 오랫동안 헌신해왔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시절에 주보에 성화를 넣기 시작했고, 2000년에 교회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평화화랑(현 ‘갤러리 1898’)을 개관하는 데 앞장섰다. 교구 성미술 감독을 하며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던 그는 영국 뉴캐슬대에 유학해 박물관학 석사를 받았다. 귀국한 뒤 서울 장안동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지난 2016년 교구 주교좌성당 성유물 담당 신부가 됐다. 2019년 성미술 담당으로 옮긴 후 신앙 속에 예술이 깃들게 하는 데 힘썼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총무(2017∼2021)도 맡아 한국 103위 순교성인화 전체를 제작하고 전시하는 데 기여했다.

“정 신부님께서 그렇게 길을 열어주신 덕분에 제가 로마에서 문화유산학 석사 공부를 하고, 중앙대에서 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 신부는 선배가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성미술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전시, 교육, 출판 활동에 애쓰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정 신부는 “젊은 신부님이 그동안 착실하게 공력을 다져온 것이 너무나 훌륭하다”라며 흐뭇해했다. 그는 후배가 박사 학위 받은 것을 자기 일처럼 자랑하며 그 증서 앞에서 둘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 신부는 이제 성사전담사제가 됐다. 신부는 직을 떠나도 성사를 집전하는 권한을 갖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는다. 세속 명칭으로 보면 ‘은퇴 사제’인 셈인데, 그는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그와 성당 미술 순례를 함께 했는데, 계단을 뛰듯이 올라가는 것에 놀랐다. 평소 검도, 합기도 등으로 신체를 단련해온 덕분이다. “은퇴를 하니 더 바쁘더라고요. 가사도 직접 해야 하니. 하하.”

그는 서울 성북동 사제관을 떠나 경기 용인 정양모(90) 신부의 곁으로 갔다. 친형이자 성서학자인 정 신부의 사제관 가까이에서 살고 싶어서라고 했다. 신의 대리자인 신부가 육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왠지 정겨웠다.

 

 중앙문의 청동 부조는 한국 교회 초창기 모습을 담고 있다. 최의순 조각가의 작품.

 



■ Tip - ‘명동성당 도슨트’ 내달 재개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명동대성당을 둘러보며 ‘가톨릭 미술이야기’를 나누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대면 행사를 중단했는데, 이번 봄에 재개한다. 상반기는 4월 12일부터 6월 4일까지 주일과 수요일 오후 2시에 진행한다. 성당 내부와 야외 정원의 작품들을 전문가들이 설명한다.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http://cc.catholic.or.kr/docent/)를 통해 가능한데, 홈피가 현재 개편 작업 중이어서 오는 25일 열린다. 개인은 투어 당일 3일 전, 단체는 최소 2주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장재선 기자

문화부 /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