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六堂 최남선은 왜 담양 지실 마을을 찾았을까
[김두규의 國運風水]
낙향한 선비들이
숨 고르던 담양 亭子
소멸 위기 지자체들이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크게 3가지 정책이다. 귀촌·귀농, 소득 증대 사업, 관광 활성화. 귀촌·귀농 정책은 지자체마다 지리적 강점과 약점이 있다. 미래 귀촌·귀농 정책이 성공하려면 KTX가 정차하는 곳이어야 한다. 두 번째가 잘못된 소득 증대 사업이다. 대표적인 것이 악취 나는 축사와 태양광 설치물을 통한 소득 증대 사업이다. 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도시 자본들로 다수 주민의 거주권·재산권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필자는 순창군청에 거듭 문제 제기한다).
셋째, 지자체가 관광에 사활을 건다. 관광이 사회 풍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오지까지 볼거리를 찾아간다. 이를 ‘악용’하여 지자체들은 구름다리·케이블카·잔도·현수교·도로확장 등 ‘토목공사’를 벌인다(순창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토목공사’인가? 의도가 불순하다. 관광이 문제다.
관광은 “관국지광(觀國之光)”이 출전이다(‘주역’). “그 지방[國]의 문화[光]를 본다[觀]”는 뜻으로 군자의 일이다. 지방의 역사·문화·정신을 이해하여 세계관을 넓힘이다. 약 100년 전인 1925년, 육당 최남선은 50여 일 국토 여행을 한다.
“조선의 국토는 산하 그대로 조선의 역사며 철학이며 시며 정신입니다. 문자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최남선, ‘심춘순례’)
필자가 주목한 것은 육당의 담양에 대한 관심이다. 담양은 필자가 사는 순창과 인접하기에 자주 가곤 한다. 육당은 수많은 마을 가운데 ‘지실[지곡·芝谷]’ 마을을 찾는다.
“백일홍 나무에 에워싸인 식영정을 지나, 지금까지 송강(정철) 자손만으로 한 마을을 이뤄 사는 지실 정촌(鄭村)을 돌아 소쇄원을 찾았다. 담양(창평)의 산수지(山水地·풍수상 길지)는 지실이다.”(최남선, ‘심춘순례’)
최남선의 동선은 ‘송강정→식영정→지실→소쇄원’이었다. 왜 이곳을 길게 묘사하였을까? 육당이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어렴풋이 그 중요성을 안 담양군청은 이곳 행정명을 ‘남면’에서 ‘가사문학면’으로 바꾸었다. 정자를 중심으로 가사문학이 발전하였다는 이유이다. 육당과 담양군청의 설명이 부족했다. 필자가 늘 의문을 품은 부분이다.
답을 16세 이재은 학생이 펴낸 ‘선비의 케렌시아 정자’(2023)에서 찾았다. 어린 학생에게 배운다. ‘케렌시아(Querencia)’란 단어도 처음 알았다. 스페인어 ‘케렌시아’는 흔히 ‘피난처·안식처’라는 뜻으로 쓰이나, 정확한 의미는 ‘수세에 처한 투우가 결전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장소’를 의미한다.
담양의 정자들은 건축주가 분명하다. 식영정(김성원)·송강정(정철)·면앙정(송순)·환벽당(김윤제)·소쇄원(양산보)…. 당쟁·사화·옥사 등에서 패하여 돌아온 뒤 정자를 짓고 그 원망과 울분, 그리고 임금에 대한 하소연을 노래한다(가사문학). 결전을 앞둔 케렌시아의 투우들처럼 그들은 정자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스승과 제자라는 학맥과 장인과 사위라는 혼맥으로 사상적·혈연적 문화가 생긴다.
담양의 정자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이어진다. 순창 출신이나 담양(창평)을 근거지로 자신을 키웠던 김병로(초대 대법원장)의 ‘수업시대’가 이를 방증한다. 가인은 이곳에서 고정주(고재욱 동아일보 사장 조부)·인촌 김성수(고정주 사위)·송진우·백관수 등과 교유한다. 또 지실 마을의 정교원 딸과 결혼한다(김학준, ‘가인 김병로 평전’). 한민당의 중심 세력이다.
육당이 담양의 길지[“山水地”]로 칭찬한 지실 마을은 지금도 명당일까? 국내 최고 법무법인 ‘김앤장’의 정경택 대표변호사와 정성택 전남대 총장 형제도 지실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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