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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봉의 소설 읽기

뫼비우스의 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17. 11:21

뫼비우스의 띠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고 등 뒤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고는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나는 그녀의 그런 손짓 뒤에서 이미 막 시작된 초겨울의 추위가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 급하게 길을 나선 그녀는 좀 피곤하지만 약해진 모습으로 어머님 상가에서 도착할 것이다. 죽음이란 단어가 대부분의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는 것처럼, 갑작스런 어머님의 죽음과 예정에 없는 추위가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길을 떠나는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서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몇몇의 전송객만이 걸음을 재촉하며 승강장을 떠났다.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나도 돌아섰다. 지금 나의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은 그녀 어머님의 부고를 통보받고도 미적대는 나를 그냥 두고 그녀 혼자 내려갔기 때문이다. 혼자 보낸 것에 대한 미안함뿐만 아니라 같이 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사하지 못한 그녀쪽 가족이나 친척에 대한 부담, 아니면 며칠 서울을 비울 수 없는 중요한 일. 둘 모두 아닌데 나는 같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자괴심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가 떠난 대합실에서 더 서성거릴 이유도 없고 불쾌하게 자신을 누르고 있는 우울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어둠을 감싸고 있는 터미널 앞의 버스정류장에 드문드문 웅크리고 있던 승객들도, 익숙하고 재빠른 동작으로 기다리던 버스 안으로 사라져갔다. 정류장 맞은편으로 마주보며 서 있는 아파트들도 온기하나 느낄 수 없는 건조한 불빛으로 그들의 동체를 추운 바람으로부터 막아서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 첫 추위는 거리나 사람에게 파고들어 그 생활의 리듬을 마디마디 끊어놓고 있었다.

허전함. 그녀가 혼자 길을 떠났다기 보다는 함께 가지 못한 나의 행동이 나를 매우 허망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며 정류장에 서 있었다. 홀로 썰렁한 아파트로 돌아가려니 너무 청승맞았다. 하지만 나는 아파트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도 안다. 내가 밤을 지새우며 그녀가 어머님 상가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함께 가지 못한 그녀에 대한 내가 해야 할 최소의 예의이기 때문에.

 

서울을 벗어나면서부터 날리기 시작한 눈발이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제법 굵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떠난 길에 내리는 눈발이 다소 걱정되었으나 별 탈이 없기를 바랬다. 내리는 눈을 보며 나는 그를 생각했다. 나에게 살갑게 대하며 다정다감한 편인 그는, 내가 혼자 이 길을 떠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둔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려가야 할 길이 멀어 혼자 간다고 그를 닦아세운 것이 잘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버스는 일 분의 휴식시간 동안 충분히 힘을 회복한 복서 마냥 힘차게 출발했다.

아리송해, 아리송해…….

버스는 자신의 몸체에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볼륨의 스피커 속의 여가수도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 여가수가 부르는 아리송함은 이내 밀려든 어둠과 함께 나의 가슴을 묘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아직 충분히 몸에 익지 못한 기술을 부리는 어릿광대의 서툴고 위험한 몸짓과 같았다. 남을 웃기기 위해서는 나는 울어야만 하는 희극적 비극. 버스 안을 채운 여가수의 아리송함도 그 정체를 드러내 놓고 있지 않지만 그것도 슬픈 비극 같았다. 나는 신 맛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귤을 까서 눈을 조금 찡그리며 입에 넣었다. 신 귤의 향이 입 안 하나 가득 차올랐다.

그는 언제나 꿈속에 사는 이상주의자였다. 얘기를 잘해서 나를 웃겨 만드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술이 좀 들어가면 겨울 같은 깊은 고립감이나 풍요 속의 피폐함을 얘기했다.

우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몸을 허락한 것도, 같은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나누며 먹게 된 것도, 그리고 서른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앞날에 대한 아무런 예비도 없이 그와 그럭저럭 생활을 함께 하는 것도 서로가 배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둘을 묶고 있는 감정에 의해서 일 것이다.

내가 회원으로 있던 글 모임에서 박상륭에 관한 토론회 때 왔던 몇 안 되었던 참석자 중의 하나로 그를 만났다. 당시 나는 연보를 보고 사상계를 열심히 뒤져야 찾을 수 있었던 박상륭 소설에 관심을 가진 그와 몇 번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단행본도 찾기 힘들고 소설에 대한 평론도 찾기 힘든 작가에 대한 공동의 관심 정도였다.

어느 날 그는 연인에게 흰소리를 하는 것처럼 아주 익숙하고도 자연스럽게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하늘이나 구경가자며 바람을 잡았다. 그의 전화를 받고 있는 내 뒤로 매운 겨울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을 보기에는 너무나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지만, 나는 그와 약속을 했다. 전화를 끊으며 나는 내 행동이 얼마나 충동적이고 겁 없는 장난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매서운 바람이 씽씽 몰아치는 벌판에서 하늘을 보러가기 위해 그를 만났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벌판의 끝에서부터 겨울하늘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는 겨울하늘을 ‘여린하늘’이라고 불렀다. 벌판의 끝에서 피어나는 여린하늘은 겨울에만 볼 수 있으며, 그 하늘은 이 세상의 뿌리인 땅에서 피어오르며, 사람들을 흙과 같이 거짓 없고 순하게 만들어 준다는 나름대로의 ‘여린하늘론’을 펼쳤다.

바람은 마른하늘에서 내려와 피폐한 땅위에서 울어대고 있었다. 그 바람의 울음위로 또는 아래로 하늘이, 혹은 낮게 혹은 높게 펼쳐져 있었다. 허허 벌판의 끝에서 피어오른 겨울 하늘은 매서운 북서계절풍의 기세에 얼어붙어 여리고 나약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가 하늘을 그렇게 자세히 바라보기는 그 날이 처음이었다. 벌판의 끝에서부터 피어나는 하늘은 신비하고도 우울했다. 그것은 자기장이나 전기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환류와도 같이 끊임없이 벌판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꽁꽁 언 몸으로 돌아섰다. 감상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좀 더 현실적이고 매서운 추위가 몸을 먼저 붙들어 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여린하늘을 남겨두고 온 것을 기억해냈다. 아리송해는 이미 다른 노래로 바뀌었으나, 차 안에 내려앉은 어둠은 묘하게도 나의 마음을 휘저었다. 마주오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버스에 날리는 눈발을 볼 수 있었다. 어둠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는 힘이 있는 줄을 나는 몰랐다. 신통치 않은 차의 스팀을 뚫고 추위가 조금씩 그녀를 파고드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도 소리없이 나를 에워싸곤 조금씩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터미널의 버스정류소에서 보았던 온기 없던 아파트의 불빛이었다. 방의 스위치를 올리자 두세 번의 수줍은 듯한 깜박거림은 어둠 속에 숨긴 채, 불이 들어왔다. 방은 적당한 온도로 데워져 있었지만 나는 한기를 느꼈다. 조금 전 그녀와 있을 때와 같은 모습이지만, 나는 분위기다 다르다고 생각했다.

청승을 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두 개의 잔을 꺼냈다. 하나는 오늘 세상을 버리신 그녀의 어머님을 위하여, 다른 하나는 하늘에 대한 헌작을 위해 잔을 채웠다. 서울의 하늘은 하늘로서의 힘과 권위를 잃어버린 신의 권위자가 아닌 패배자이기에, 어머님은 이제는 떠난 날로만 남아있는 자들에게 기억되게 되는 매우 슬픈 이별의 날이기에, 두 잔을 채웠다.

나는 창을 열고 두 잔을 하늘에 바쳤다. 창밖에서 울어대던 바람이 이내 나의 귀에서 울기 시작했다. 아파트 광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들은 모든 창들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늘은 본래의 하늘이 아닌 혼백만이 떠도는 버려진 땅과도 같이 보였다. 그런 하늘 밑으로 몇 그루의 정원수들이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채, 가장 튼튼한 그들의 뿌리를 지키며 힘겹게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 때문에 나는 빨리 창을 닫았지만, 또다른 바람의 영혼이 닫힌 창 뒤를 두드려댔다.

땅을 딛지 않고 서있는 모든 것은 하늘이다. 벌판의 끝에서 시작되는 여린하늘은 이 아파트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최근 나는 알았다. 하늘은 갖고 있는 무궁한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 환희나 기쁨이나 혹은 애수나 감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각의 링에 갇혀 맴도는 메마른 한 줌의 재처럼 구겨진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고 있어서였다.

몇 잔의 술은 나를 여린하늘의 환상에서 깨워줬다. 내가 지금 할 일은 여린하늘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나의 열기로 이 우울하고 썰렁한 아파트를 따뜻하게 데우는 일이 우선임을 알려줬다.

나는 그녀는 울지 않을 것이라고, 다정히 입맞춤을 하고 있는 잉꼬를 보며 생각했다. 어느 날 한 쌍의 잉꼬를 그녀가 들고 왔다. 조그만 부리를 내밀며 입맞춤을 하는 모습이 귀여웠어요. 새장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잉꼬의 입맞춤은 신통하게도 아파트를 잘도 지켜주었다.

그녀와 하늘을 구경하러 간 날은, 추위에 밀려 총총히 그 벌판을 떠나야만 했다. 돌아서는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바람은 우쭐대며 씽씽 불어댔다.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그 긴 겨울의 우울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사람들의 외투가 조금씩 얇아져 가고, 눈이 녹아 거리가 질척해져 모두들 변덕스런 날씨를 얘기할 때쯤이었다.

다시 한 번 질척거리는 서울을 벗어나자고 했을 때 그녀는 그냥 웃기만 했다. 웃음은, 소리 없이 전해지는 그녀의 웃음에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일을 할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 같기도 했고, 지금 서울을 벗어난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는 자조적인 반문 같기도 했다. 긴 동장군이 밀려나는 것에 모두들 조금씩 들뜨고 있지만, 그녀는 벌판의 끝에서 밀려와 낮은하늘을 제치고 그들을 힘차게 밀어내며 깔깔 웃던 바람과도 같다는 느낌을 나는 받았다.

 

그의 제안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여전히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느껴서였다. 또한 잠시 서울을 벗어난다고 해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을까라는 회의도 들어서였다. 겨울의 추위는 단지 상대방에 대해 조금씩 연출된 모습을 보여 줄 뿐, 서로를 믿고 의지하기에는 너무 삭막하기 때문이다.

그때도 나는 잔설이 드문드문 깔려 있던 거리를 말없이 돌아서 갔다. 아직도 한껏 나대고 있는 겨울의 두께를 돈키호테처럼 물리칠 용기는 보여주지 않고, 오늘처럼 돌아서 가는 그를 보았다. 마른 바람이 휘돌아 나오는 골목의 끝에서 나는 그렇게 쓸쓸히 돌아서던 한 남자를 보았다.

마지막 귤 조각을 입에 털어 넣었다. 눈가를 한번 스치는 찡그림이 신맛을 대신했다. 입 안 가득 귤의 신맛이 가득 차 있었기에 마지막 조각은 한 번의 찡그림만으로도 족했다.

서울을 벗어나자던 얘기 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그로부터 새로운 전화를 받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거리에는 완연한 봄기운이 넘치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이고, 개나리, 진달래가 이른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리고 가끔씩은 반복되는 일에서 벗어나 점심 후의 노곤함에 양지를 찾아 따사로운 햇살을 즐길 때쯤이었다. 전화 건너편 그는 약간 취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잠시만 만나면 된다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자신있는 말투는 아니었다.

짧은 봄날의 햇살이 사라질 때쯤이었다. 꼭 만나서 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피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좋지 않아 보여 그와 만나기로 했다. 만남을 피한다면,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그와의 관계가 자꾸만 길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잔잔한 경음악이 흘러나오는 아담하지만 고급스럽게 꾸며진 경양식집에서, 그는 조금 살이 빠진 모습으로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래간만입니다.”

그는 내게 이렇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는, 보고 싶었다거나 아니면 생각을 많이 했다거나 같은 말은 모두 잘라버리고, 나한테서 답을 찾고자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불편한 관계는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사랑도 충동적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날 술을 마시는 그도 그렇게 보였다.

“가야겠습니다. 이젠 서로 잊기로 해요.”

잊는다는 말이 그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일부러 또박또박 말했다. 서로를 잊는 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그는 대답대신 기차표 한 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는 내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자리를, 천근의 무게를 가지고 내밀었다. 아마도 함께 앉아가는 또 하나의 자리는 그가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당혹감과 함께 상당히 예측불허의 사내라는 느낌을 그에게서 받았다. 지금 기차표를 내밀며 벌이는 그의 침묵의 시위는, 함께 서울을 벗어나자던 그 요청의 계속으로 느껴졌다. 내가 갖고 있던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얽혀버렸다. 나를 화나게 만들고, 아집에 가득 찬 이기주의자에다 신사인 척 하며 여자에게 농을 치는 무뢰한. 그가 내민 기차표를 무시하고 일어서는 나에게, 그는 테이블 위의 표를 갖고 일어서서 다시 내밀었다.

가져만 가 달라고.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면 된다고.

나는 그한테서 나의 자리를 넘겨받은 후 그 경양식집을 나올 수 있었다. 기차표는 엄청난 무게로 나를 압박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일방적인 요청을 거부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느꼈다. 옆으로 새거나 돌아갈 수 없는 막힌 골목길에 나를 가둔 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그가 내게 준 기차표는 풀려고 애쓰면 더 얽혀드는 매듭이자, 벗어날 수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였다.

화창한 봄날의 시간을 나는 사무실에 앉아 볼펜 끝으로 책상이나 톡톡 두드리며 죽이고 있었다. 나의 동작에 볼펜은 정확한 반작용으로 튀어 올랐다. 하지만 그가 내게 맡긴 표에는 이런 확실성이 없었다. 며칠의 고민 끝에 나는 그를 만나 표만 던져주고 오기로 작정했다. 가장 확실한 거부의 표시는 뭉개버리는 것이 아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거절의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내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아직도 어머님 상가까지는 아직도 가는 길이 한참 남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조급해서였다.

내가 그녀와 함께 길을 떠나지 않은 것은 아직도 승낙받지 못하고 있는 둘의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내가 그녀의 가족을 부담없이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어서였다.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같이 살 수 있으나, 두 사람만의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창을 두드리는 겨울바람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나를 깨워주고 있었다.

일어나라, 깨어나라.

바람은 내게 계속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겨울바람은 나에게 깊고 우울한 어둠에서 깨어나, 나의 땅, 나의 하늘에 질기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라고 속삭여댔다. 바람은, 그녀에게 서울을 벗어나자고 끈질기게 졸랐던 나처럼, 홀로 남아 초라해진 나를 부추겨댔다. 지금 내가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속절없는 방황에서 벗어나, 그 속박을 풀어 완전한 자유인으로 나와 같이 주유천하를 하자고, 바람은 쉼없는 손짓을 보내고 있다.

은밀하지만 대놓고 유혹하는 바람의 속삭임을 떨쳐버리기 위해 나는 누구에게라 할 것도 없이 빈 잔을 채워 헌작을 계속했다. 죽음이, 바람이, 그리고 그 세찬 바람에 줏대 없이 흔들리고 있는 하늘이 잔을 받았다. 무색의 맑은 액체들은 불빛에 잠시 빛났다가는 사라졌다.

막 시작된 연휴로 붐비는 역 광장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초봄의 훈훈한 햇살이 조금씩 들뜬 상춘객의 어깨 위에 그 따스함을 골고루 나눠주고 있을 때, 나는 용케도 그녀를 찾아냈다.

“표를 돌려드리려고 왔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저의 답이 될 것 같아서요.”

그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얘기하며 표를 내놓았다. 나는 예기치 않은 그녀의 반격에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묶을 올가미를 만들어냈다.

“제가 돌려받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만약 오늘 나오지 않았다면, 당신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긴 시간 아파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죠. 당신은 오셨고, 나는 나의 사랑과 함께 가야할 책임이 있는 거고.”

나는 그 날 그녀에게 사랑을 얘기했다. 그녀에게는 입에 발린 솜사탕처럼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그녀에게 말했다. 얘기를 하면서 그녀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느낌과 그녀가 나를 받아준다면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사이가 될 것이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위해서 나는 좀 무식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는 휘어지지 않으면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돌아서는 그녀의 팔을 끌어당겼다. 거세지는 않았으나 거절임에 분명한 몸짓을 보이며 그녀는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속삭였다

‘놓아주세요, 놓아주세요.’

내 손에 잡힌 그녀는 한 마리의 작은 새였다. 나를 벗어나기 위해 왔던 그녀는 나에게 잡힌 작은 새가 되어, 나를 벗어나고자 했다.

‘놓아주세요, 놓아주세요.’

나는 먹이를 포착한 포수의 우월감으로 나의 덫에 걸린 작은 새에게 올가미를 씌웠다. 그리고는 그녀를 보듬어 함께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짹 째짹 짹짹짹짹

갑자기 잉꼬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거부의 몸짓이 잉꼬의 울음에 겹쳐 나타났다. 혼자서 마시는 술의 취기가 쉬 올라왔다. 나는 나의 작은 새가 되었던 그녀와, 하늘과, 썰렁한 아파트와, 바람에 일일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계속 술을 마셨다. 그리고 마지막 잔은 잉꼬를 위해, 그들의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사랑을 축하하며 잔을 들었다.

잉꼬는 항상 주위가 조용해져야만 사랑의 시간을 가졌다. 스타카토로 소리를 짧게 끊으며, 암놈은 더욱 바짝 꽁지깃을 세웠고, 수놈은 목을 뻗어 고개를 돌린 암놈의 부리에 수없는 입맞춤을 퍼부으며 계속 사랑의 소리를 질렀다. 잉꼬는 달아오르는 사랑의 욕망을 소리로 전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그네들이 행하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고 믿음이고 연가였다.

나는 잉꼬들의 사랑의 확신을 위해 한 잔 더 들기로 했다. 그 잔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두 잉꼬의 슬프지만 분명한 이별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그 분명함에 대한 헌작으로 바쳤다.

나 자신도 그랬다. 시작은 다소 엇박자이기는 했으나, 여행이후 그녀와 같이 지내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서로가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서 새로운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가졌던 수많았던 불면의 나날들과, 실체 없는 바람이고 꿈이었기에 거침없이 속삭일 수 있었던 사랑의 얘기들. 하지만 그 속살은 그녀보다는 나 자신의 욕망이었고 나에 대한 두려움이나 학대였다. 그녀에게 상처를 준 후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견뎌내지 못하는 알량한 자신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 그것이 전부였다.

잉꼬의 울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마신 술로 불콰해진 얼굴로 잉꼬를 쳐다보며, 만약 오늘밤 이 놈들이 또다시 사랑의 시간을 가진다면, 모두다 목을 비틀어 황량한 아스팔트 위로 던져버릴거라고 작정했다.

 

예상치 않게 많이 내린 눈 때문에,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쳐버린 나는 일순 당황했다. 눈 내리는 십여리의 추운 시골길을 재게 걸어야만 어머님의 빈소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삼거리에 아직도 문을 열고 있던 길가의 다방에 몸을 녹이기 위해 들어섰다.

그 시간의 시골 다방은 동네 사랑방 같아서, 나에게는 언제나 낯설었다. 톱밥을 사용하는 구식난로가 홀에 하나 놓여있었고, 그 옆 테이블에는 단골로 보이는 손님과 마담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마담은 자신의 옆 테이블을 눈으로 가리키며 뜨거운 엽차를 한 잔을 갖다 주었다.

엽차로 한기를 몰아내며, 나는 괜히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어머님의 죽음을 확인하기에는 너무 춥고 을씨년스럽게 변한 날씨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울러 예기치 않는 걸어야 하는 시골 십리 길도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한 사람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 십리면 적당한 것일까? 우리는 죽음을 꼭 이런 방식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걸까. 또한 가서 맞닥뜨리게 될 친인척 또한 부담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네들이 지어보일 울음, 슬픔, 위로들. 이는 그네들이 망자에게 보이는 살아있는 자들의 최대의 존중이자 믿음인 것이다.

가지 않아도 좋았던 길.

나는 그렇게 생각의 선을 긋고는, 집으로 가는 길을 나섰다. 눈발이 제법 굵기는 했으나 이미 내린 눈으로 인해 다행히 길눈은 밝았다. 그 길의 끝에서도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갔던 여행도 오늘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 길은 가지 않아도 좋았을 길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쓸쓸히 돌아설 그의 등, 그 초췌하고 왜소한 등을 보기가 싫어 그와 함께 길을 나섰다. 하지만 그 길에서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자꾸 확인하고 싶어 했다. 알아봤자 무엇 하나 특별할 것도 없는 나약하고 초라한 나에 대한 확인. 사랑은 그러한 확인이거나 믿음일 수만은 없는 것이건만, 그는 자꾸만 확인하고 갖고자 했다.

어리석은 자거나 불쌍한 자.

남을 통해 나를 알아보고자 하는 덜 떨어진 인간. 그도 이런 범주에 속해있으면서, 나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고 발버둥치는 슬픈 사내인 것이다. 어머님께 가는 길을 걸으며 나는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둘을 옭아매고 있는 가장 확실한 끈이 무엇인지를.

길의 끝에서 시작되는 바람이나, 땅의 품에서 피어오르는 하늘이나, 멈추지 못하고 계속 걸어야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우리는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 올무와 환상에 빠져 헤매고 있는 것은 눈치 채지 못하는 비밀일까?

하늘보다도 낮은 눈발이 내리는 밤길을 걸으며, 나는 환상을 깨는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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