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떡볶이’ 찾아 방방곡곡 순례하는 괴짜들… “세상에 나쁜 떡볶이란 없다”
[아무튼, 주말] ‘떡볶이 마스터’와 함께한 망우동 골목 떡지순례
국민 간식 떡볶이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홍금표(32)씨만큼 진심인 경우도 드물 듯하다. 그는 2020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국내 최고 떡볶이 전문가를 가리기 위해 개최한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 대회에서 1000대1 경쟁률을 뚫고 우승을 차지했다.
‘떡볶이 마스터’ 홍씨는 우승 후 소감을 밝히면서 “평소 떡볶이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경험을 토대로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떡볶이 동호회는 ‘떡지순례’. ‘떡볶이’와 ‘성지순례’를 합쳐 만든 이름으로, 2019년 만들었다. 맛있는 떡볶이집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닌다. “휴가 여행 지역과 동선도 떡볶이집 중심으로 짭니다. 차도 곧 사려고요. 지방 소도시에 있는 떡볶이집은 KTX로 가기 어렵더라고요.”
홍씨는 최근 ‘떡지순례’(비타북스)란 책을 펴냈다. 그와 회원들이 찾아가 검증한 전국 떡볶이 맛집 135곳을 꼼꼼하게 소개했다. 홍씨와 떡지순례 회원 임수정(32)씨를 서울 중랑구 망우동 ‘떡볶이 골목’에서 만났다. 홍씨는 “서울에서 가장 개성 있는 떡볶이집들이 모여 있는 지역 중 하나”라고 했다.
◇후추 향 매력적인 ‘망우동 3대 떡볶이’
떡볶이 골목의 공식 이름은 ‘망우로 73길’. “주변에 학교 7개가 있어요. 한때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떡볶이 포장마차로 골목이 빼곡했다고 해요.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거리를 정비하면서 포장마차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망우동 3대 떡볶이집’이 골목을 지키고 있지요.”
골목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는 1977년 문 연 ‘경상도떡볶이’다. 45년 된 가게치고 외관이 깔끔한데, 가게에 들어서니 이제는 80세에 가까운 창업자 최승자씨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경북 김천 출신이라는 최씨는 “네 자녀 키우느라 골목에서 떡볶이 포장마차를 했는데, 사람들이 ‘경상도 아줌마 떡볶이집’이라 부르던 게 상호로 굳었다”고 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떡볶이 달인’으로 두 번이나 소개된 집으로, 다시마와 감 꼭지 달인 물에 쪄낸 떡의 쫄깃한 식감이 탁월하고 양념이 잘 배어 있다고 알려졌다. 홍씨와 임씨는 “맵지도 달지도 않은 균형감 속에 짠맛이 느껴진다”며 “깻잎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향은 많이 나서 신기하다”고 했다. 떡, 라면, 넙적한 어묵, 삶은 달걀이 고루 푸짐하게 들어간 ‘골고루 떡볶이’가 기본 메뉴. 망우동 3대 떡볶이집 모두 기본 메뉴를 ‘골고루’라 부른다. 가격도 3000원으로 같다. 떡 없이 라면만 들어간 ‘라면만볶이’, 어묵만 뺀 ‘라면떡볶이’는 이 집에만 있다.
망우동 3대 떡볶이집의 또 다른 공통점은 후추다. 떡볶이 국물에 후추를 써서 얼큰한 맛과 향을 더하거나, 국물에 넣지 않더라도 테이블마다 큼직한 후추통이 놓여 있다. ‘홍이네떡볶이’는 얼큰한 후추 맛이 매력적인 떡볶이를 골목에서 처음 선보이며 유행시킨 집이다. 임씨는 “달큰하면서도 후추 맛과 향이 가득한 국물이 먹고 돌아서면 자꾸 생각나는 중독성이 있다”며 “숟가락으로 떡과 국물을 함께 떠먹어야 더 맛있다”고 했다.
떡볶이에 엄청난 양의 대파가 들어간다는 점도 홍이네떡볶이의 특징이다. 대파가 과장 조금 보태 가게 정면을 가릴 정도로 쌓여 있었다. 설렁탕집이나 곰탕집으로 착각할 정도. 가게에 들어가니 남자 주인은 물론 중장년 여성 직원 2명까지 대파를 써느라 정신이 없다. 굵은 금목걸이와 팔찌까지 착용한 풍채 좋은 주인은 “떡볶이 팔아서 외제 차 사고 집도 다섯 채 있다”며 “종부세? 내면 되지” 하고 껄껄 웃었다.
망우동 3대 떡볶이집의 또 다른 특징은 만두. 넙적한 만두피 속에 짧은 당면 두세 가닥 정도만 든 튀김 만두다. 대구 납작만두와 비슷하지만, 더 크고 얇고 넓적하면서 소는 적다. 만두라기보다 바삭한 튀김과자에 더 가깝다. 떡볶이 양념에 찍거나 적셔 먹으니 별미다. 오직 망우동 떡볶이집들만 쓰는데, 인근 ‘옛날 만두’라는 작은 만두업체에서 세 집 모두 납품받고 있다.
1978년 문 연 ‘잉꼬네떡볶이’는 떡볶이 국물이 특히 깔끔하다. 홍씨는 “좋은 재료를 숙성한 특제 양념을 체에 한 번 걸러 텁텁함을 잡는 듯하다”고 했다. 시어머니에게 가게를 물려받아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2대 사장은 “가게 이름이 왜 잉꼬냐고들 묻는다”며 “시어머님이 붙이신 이름인데 한 번도 여쭤보지 않아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며 웃었다. 이곳 역시 떡과 어묵, 만두, 삶은 달걀 들어간 ‘골고루’가 기본 메뉴. ‘라볶이’는 ‘골고루’에 라면 사리가, ‘쫄볶이’는 쫄면 사리가 추가된다.
◇짜장 떡볶이 달인 ‘묵동할머니’
망우동 골목에서 멀지 않은 ‘묵동할머니떡볶이’는 짜장 떡볶이의 달인으로 유명한 집이다. 이동하면서 홍씨에게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에 대해 물었다. “필기시험에는 떡볶이에 대한 전방위적 지식을 측정하는 45문항이 출제됐습니다. ‘독특한 마블링 무늬로 친숙한 떡볶이 접시의 생산 공장은 전국에 몇 곳 있을까’, ‘다음 중 가장 굵은 떡을 사용하는 떡볶이집은 어디일까’, ‘떡볶이집이 가장 적은 도시는 어디일까’ 등 떡볶이에 대한 애정은 물론 해박한 지식까지 갖추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항들이었어요.”
필기시험과 함께 ‘시청각 문제’도 10문항 출제됐다. “음식 씹는 소리를 들려주며 무엇이 떡볶이인지 맞히는 ‘ASMR 문제’, 외국인이 떡볶이를 영어로 주문하는 상황을 제시하고 떡볶이 토핑으로 무엇을 주문했는지 맞히는 ‘영어 듣기 평가’, 유명 떡볶이 맛집 내부를 보여준 뒤 어딘지 묻는 ‘영상 퀴즈’가 나왔다. 홍씨는 27분 5초 만에 문제를 풀어 총 100점 만점에 98점을 기록했다. “98점을 맞은 참가자가 한 분 더 있었지만, 제가 더 빨리 풀었기 때문에 우승자가 됐어요. 문제를 출제한 배민 직원이 ‘정말 고민해서 출제했는데, 여긴 어떻게 맞히셨냐’며 놀라더라고요.”
묵동할머니떡볶이는 1980년 문 열어 3대를 이어온 노포. 짜장 떡볶이엔 깊은 맛이 일품인 짜장 국물에 소고기와 삶은 달걀, 튀김만두가 들어있었다. 홍씨와 임씨는 “떡심이 살짝 남아있어 쫄깃한 떡과 국물이 잘 어울린다”며 연신 숟가락으로 떡과 국물을 떠먹었다. 달착지근하면서 칼칼한 국물은 매운 정도에 따라 ‘순한 맛’(3500원) ‘중간 맛’(3500원) ‘매운맛’(4500원) 3단계로 나뉜다. 매운맛에만 치즈가 들어간다. 묵동할머니 아들인 주인 염대균씨는 “처음 온 손님에겐 매운맛을 가장 추천하는데 단골들은 순한 맛을 가장 선호한다”고 했다.
‘냉쫄면’(7000원)은 짜장 떡볶이만큼이나 인기 높다. 살얼음 아래 빨간 육수와 쫄면이 보인다. 고명으로 다진 땅콩과 채 썬 사과·오이, 무절임, 참깨가 듬뿍 올라와 있다. 이 모두를 고루 비비자 참기름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쫄깃한 면발과 새콤달콤한 육수, 오독오독 씹히는 땅콩과 아삭한 야채, 톡톡 터지는 참깨가 풍요롭고 조화롭다.
홍씨는 ‘떡지순례’가 전국 최고 떡볶이집의 완결판은 아니라고 했다. “정말 소개하고 싶었지만 ‘이미 손님이 많아서’ ‘너무 바빠서’ 등 소개되길 거부한 떡볶이집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세상에 나쁜(맛없는) 떡볶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적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는 300원짜리 컵 떡볶이는 하굣길의 행복이자 하루의 즐거움이었죠. 어떤 떡볶이든 누군가에겐 행복한 추억의 맛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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