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춘천서 멈췄던 횡단 철도의 꿈… 90년 만에 이뤄진대요
경춘선
강원도 춘천과 속초를 잇는 동서(東西) 고속화철도가 지난 18일 착공됐어요. 계획대로 이 철도가 2027년 완공되면 서울 용산을 출발해 춘천을 거친 열차가 99분 만에 속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해요. 서울에서 춘천까지는 기존 경춘선 노선을 이용하고, 춘천부터는 신설 노선으로 운행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된다면, 1937년 경춘선 공사를 시작한 지 90년 만에 경춘선의 '원래 목적'이 달성되는 셈이랍니다.
"철도가 없으면 도청을 빼앗긴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1989년 가수 김현철이 부른 '춘천 가는 기차' 가사처럼, 경춘선은 청춘과 낭만, MT(멤버십 트레이닝)와 여행을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추억의 기찻길입니다.
그러나 1937~1939년 중일전쟁의 험난한 시기에 공사를 벌여 개통한 경춘선 목적은 여행이나 관광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개통된 다른 철도와는 달리 경춘선은 한국인 자본가와 강원도민이 조선식산은행, 일본인 자본가 등과 함께 공동으로 출자해서 만든 '경춘철도주식회사'가 지었습니다. '처음으로 한국인이 참여한 조선산(産) 사설(私設) 철도'라고 할 수 있죠.
여기엔 '도청을 빼앗겨선 안 된다'는 춘천 주민들의 절박함이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당시 도시 발전은 철도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죠. 원래 충청남도청이 있던 공주는 철도가 지나가지 않게 되면서 1932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뒤 발전이 정체됐습니다. 강원도청이 있던 춘천 역시 경원선과 금강산선 철도가 갈라지는 철원으로 도청이 이전될 위기에 처하자 "철도를 지어야 춘천이 산다"는 운동이 벌어졌던 것이죠.
태평양 전쟁 발발하며 철도 연장 실행 못해
경춘철도주식회사는 경성(지금의 서울)의 도시 개발과 교외 확장, 강원도 산업 육성과 자원 개발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더 큰 그림이 있었습니다. '한반도 동서 횡단 철도'의 건설이었죠. 경부선·경의선·경원선·호남선 같은 당시 한반도 주요 철도들은 모두 남북을 잇는 노선이었는데, 일제의 주목적은 일본 열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교통망 구축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륙 한가운데인 춘천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춘천을 중심으로 태백산맥을 넘어 한반도 허리를 동서로 관통하는 경춘선 철도를 구상했던 거죠.
일단 서울과 춘천을 잇는 철도를 개통한 뒤, 춘천에서 동해안 거진이나 양양까지 연장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서울을 기점으로 경기 가평, 강원 춘천·인제·고성 등 6개 군을 관통하게 되면, 넓은 면적에 많은 자원을 지니고 있던 내륙 지방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동서 횡단 철도가 개통하면 태백산맥 광산과 물산은 곧바로 주요 화물이 되고, 인적 드문 한촌(寒村·가난하고 쓸쓸한 마을)이나 황막한 원야(原野·인가가 없는 벌판과 들)가 개발되면서 산업이 융성할 것이란 기대였습니다. 철도 건설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총독부도 '경춘선이 경인 공업 지대와 삼척 등 신흥 군수 공업 지대를 연결해 조선의 병참 기지화(한반도를 일본의 대륙 침략과 전쟁을 위한 군수 물자 공급 기지로 이용한 식민지 정책)에 기여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경춘철도주식회사의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경춘선 서울 출발역이던 성동역과 동대문을 연결하는 지하철까지 구상해 공사 기간을 2년 6개월로 산정했습니다. 지금 학자들도 '시대를 앞서 나갔던 계획'이라고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력과 자재를 확보하기 어려워져 철도 연장과 지하철 건설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MT의 추억, 복선 전철화, 철도 연장
1939년 7월 22일 오전 8시 35분, 서울 성동역에서 경춘선 첫 열차가 출발했습니다. 당시 경춘철도는 24개 역이 있었으며 열차는 하루 네 번 운행돼 서울에서 춘천까지 3~4시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사설 철도였던 경춘선은 광복 직후인 1946년 미 군정이 접수해 다른 철도처럼 국유 철도가 됐습니다.
1970년대 고도 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주말과 휴가를 맞아 야외로 나오게 됐고, 서울에서 두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경춘선 역 근처 여행지들이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 코스로 각광을 받게 됐습니다. 북한강 줄기 대성리·청평·가평 등이었죠. 이곳에선 수많은 MT와 야유회, 수련회, 캠프파이어가 이어졌습니다. 1971년 경춘선 서울 출발역이 성동역에서 청량리역으로 바뀌면서 시계탑이 있는 역 앞 광장은 기차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정겹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소가 됐죠.
21세기에 들어서서 경춘선은 크게 탈바꿈하게 됩니다. 복선 전철화 사업 때문에 성북역에서 갈매역 사이 구간이 사라졌고, 2010년 10월 경춘선 전 구간은 전철 노선으로 변신했습니다. 경춘선 폐선 부지는 경춘선 숲길로 바뀌어 산책로가 됐습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교통이 자동차 중심으로 기울면서 경춘선 철도 연장의 꿈은 오랜 시간 잊히는 듯했습니다.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됐고, 같은 해 서울과 강릉을 잇는 철도 노선인 경강선이 개통됐습니다. 서울을 출발해 직통으로 동서를 횡단하는 다른 철도와 고속도로가 먼저 생긴 것이죠. 춘천과 속초를 잇는 고속화철도 사업은 1987년 이후 대통령 후보들 단골 공약이었지만,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오래도록 사업이 착수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늦은 이제야 그 첫 삽을 뜨게 된 것입니다.
[성동역]
경춘선이 처음 운행을 시작하던 1939년부터 32년 동안 경춘선의 출발역은 '성동역'이었습니다. 위치는 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근처 한솔동의보감 건물 자리입니다. 예전에는 여기서부터 정릉천을 따라 춘천까지 이어지는 철길이 있었습니다.
용산역 같은 서울의 다른 주요 역들은 서남부에 있었던 데 비해 성동역은 동부에 위치했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경기도 북서와 강원도 내륙 일대의 물자를 흡수했던 것이죠. 그러나 광복 이후 경춘선이 국철에 편입되면서 1971년 청량리역에 경춘선의 출발역 자리를 내주고 폐역(廢驛)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