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문화마을 소식들

김훈 “내 인생 흔든 안중근 신문조서…그의 청춘을 썼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8. 4. 10:47

김훈 “내 인생 흔든 안중근 신문조서…그의 청춘을 썼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04 00:03

소설가 김훈이 마침내 안중근 소설을 썼다. 이토 히로부미 처단 전후를 그린 장편소설 『하얼빈』이다. 안중근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했다. [연합뉴스]

 

 

서른한 살 안중근이 우덕순에게 묻는다. 1909년 함께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 나섰던 그 우덕순이다.

“자네는 권총이 있는가? 총알은 몇 발 있는가?”

우덕순의 대답은 호신용으로 사둔 중고 권총이 있다는 것, 총알 일곱 발로 꿩을 잡고 세 발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헐렁한 대화는 이어진다. “꿩을 쏘고 남은 총알로 이토를 쏘는구나.” 안중근의 말에 “나는 사냥꾼이 아니지만 이토는 꿩보다 덩치가 크니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덕순이 답하자 안중근이 소리 내어 웃는다.

소설가 김훈(74)이 가상 복원한 안중근의 인간적인 면모다. 짧지만 강렬했던 안중근의 생애를 다룬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에 나오는 대목이다.

 

3일 기자간담회. 건강한 낯빛의 김훈은 “지금까지 안중근을 다룬 소설이나 르포, 연구서는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한국·중국·일본, 심지어 북한에서도 안중근은 경외와 매혹의 대상이었다.

 

김훈은 “나는 청년 안중근의 영혼과 생명력을 묘사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열흘 후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사실만을 공유했을 뿐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사전모의나 거창한 대의명분, 총알 개수나 거사 자금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기막히게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 아니겠냐”는 것이다. “혁명에 나서는 몸가짐은 이렇게 가볍구나, 그런 모습에서 혁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면서 “이런 대목을 쓰며 신바람 나고 행복했다”고 했다.

안중근 생애를 다룬 장편소설 『하얼빈』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가족 이야기를 쓸 때였다. 안중근은 거사 전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하얼빈으로 불러들인다. 자신이 일을 저지르면 어차피 조선 땅에서는 살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에서다. 아내 김아려는 거사일(1909년 10월 26일) 이튿날 하얼빈에 도착한다. 김아려에 대해 김훈은 말을 아낀다. 그럴 수밖에 없다. “김아려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김아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289쪽) 사형 선고 이후 동생 안정근의 면회 때 “내 처가 놀라기는 했겠지만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안중근의 발언 정도를 전할 뿐이다. (258쪽)

 

이렇게 인간적 면모를 들추다 보니 김훈 소설은 익숙한 안중근 서사와는 거리가 있다. 민족주의적 열정, 영웅적 색채가 덜하다. 대신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은 안중근과 이토(이토의 내면 묘사를 시도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이토의 동양평화론(내용이 판이하다), 안중근과 가톨릭 신부들 간의 갈등 구도다. 그 안의 핵심 메시지는 가령 이런 것이다.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殺)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89쪽)

 

이토 처단이 분노와 증오에서가 아니라 그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목적이라는 지극히 유물론적인 해석이다.

소설 제목이 지명 ‘하얼빈’이다.

 

“내가 출판사에 제시한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다. 주제를 너무 노출할 수 있다고 출판사가 말렸다.”

 

안중근의 어떤 점에 그렇게 끌렸나.

 
“우연히 일본인들이 작성한 안중근 신문조서를 읽고 말문이 막힐 만큼 충격을 받았다. 책이라는 게 한 인간의 인생을 지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안중근 신문 조서와 『난중일기』 두 책이 내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 흐름에 맞선 고독한 개인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순신을 다룬 『칼의 노래』와 비슷해 보인다.
 
“이순신이 절망적이었다면 안중근은 희망의 목표를 가지고 싸운 사람이다. 동양평화론이 그의 희망이었다. 역사를 소재로 많이 썼지만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소설의 이순신은 역사와 하등 관계가 없다. 『하얼빈』도 퍼스널한(개인적인) 안중근을 그리려 한 것이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지는 수많은 책을 통해 이미 증명됐다.”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둘 수 없다고 했는데.

 
“안중근 시대보다 지금의 동북아 정세가 훨씬 더 절망적이지 않나. 모든 나라가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그의 동양평화론 명분은 아직 살아 있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내 소설이 반일 민족주의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민족주의는 국권이 짓밟힐 때는 고귀한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층 간 피라미드 관계가 존재하고 이념 갈등으로 적대적인 사회에서는 민족주의의 사회통합적 기능이 매우 빈약하다고 본다.”
 

출판사에서는 이번 소설이 『칼의 노래』를 넘어섰다고 한다.

 

“공들여서 쓴 것은 사실이다. 넘어섰느냐 아니냐는 매우 과학적이지 못한 언사라고 생각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