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유랑의 밤 - 한인선-
태어난 지 두 달 된 새끼 고양이는, 밤색 털에 유리구슬 같은 밤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나의 밤색 눈과 고양이의 밤색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길게 묶은 내 머리카락의 끝을 모니터에 갖다 댔다. 같은 색. 고양이의 밤색 털, 나의 밤색 머리카락.
그때부터 밤이는 나의 식구였다. 같은 색의 털, 눈동자를 가진. 서울로 지역을 좁히면, 밤이는 나의 ‘유일한’ 식구였다. 나는 밤이와 내가 서로 더 닮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야, 이 썩은 밤아, 저리 꺼져!”
B는 280밀리미터의 거대한 발로 옷더미 위에 올라가 있던 밤이를 밀어냈다. 밤이도 끼아옹 소리를 내며 털을 곤두세웠지만 곧 B의 발에 걷혀 옷더미 위에서 떨어졌다.
“그러지 말라고. 아직 애기란 말이야.”
나는 5킬로그램이 넘는 좀 무겁고 커다란 ‘애기’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그게 무슨 애기냐. 몸집 봐. 돼지새끼잖아, 저거.”
나는 다소 버거워 보이는 자세로 밤이를 안고 있었다. 밤이는 그 와중에도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 버둥거렸다. 밤이의 발톱에 손이 긁혀 놓치자 밤이는 펄쩍 뛰어 구석으로 가더니 제 손과 등을 핥기 시작했다. B는 옷더미 안에서 런닝구를 찾아내 몸통에 끼워 넣고는 2단 행어의 아래층에서 흰색 셔츠와 양복 재킷을 꺼냈다.
“아오, 이거 봐. 또 이랬어.”
B가 투덜거리며 양복 재킷을 보란 듯이 나에게 내밀었다. 까만 양복 재킷에는 기다란 밤색 털이 군데군데, 아니 좀 여러 군데, 아니 꽤 많이 붙어 있었다. 나는 재빨리 미안하다는 표정을 만들고 B를 올려다봤다. 사실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깟 고양이털 좀 붙은 게 뭐 어때서.
“이것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진 것 같다고, 저번에도. 면접관들이 고양이 털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글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른에게 혼나는 아이처럼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그냥 뭔지도 모르고 더럽다, 칠칠치 못한 놈이네, 이렇게 생각할 거 아니냐고. 아, 어떡할 거야, 이 망할 썩은 밤아.”
B가 길게 뻗은 밤이의 꼬리를 잡아당기자 밤이가 소리를 질렀다. B는 밤이의 엉덩이를 때리며 분풀이를 했다. 나는 B의 어깨를 밀치고 밤이를 들어 책상 의자 위에 두었다.
“시간 없다며.”
B가 입을 열기 전에 두꺼운 투명 테이프를 집어 들고 드르륵, 길게 뜯었다. 끝을 붙여 둥글게 만 투명 테이프를 건네자 B가 재킷에 테이프를 떼었다 붙였다 반복하며 밤이에게 훈계를 늘어놓았다. 너 때문에 집에 모래랑 똥 냄새가 나잖아. 네가 우니까 밤에 잠을 못 자겠어. 너 때문에 뱃살이 늘었어. 네 털 때문에 면접에서 또 떨어지겠어. 이러다간 면접만 백만 번을 치르겠다.
어느 정도 털이 제거되자 B는 재킷을 입고 조립식 신발장에서 검정 구두를 꺼냈다.
“오늘 너 수업 없으면 청소 좀 해 놓으면 안 돼? 방바닥도 온통 고양이털 천지야.”
“수업은 없는데… 이따가 과외가 있어.”
“과외 어차피 저녁일 거 아냐. 시간 많잖아, 그럼.”
“알겠어. 청소는 신경 쓰지 마, 잘 해놓을게.”
B가 나가고 현관문이 띠릭, 잠기는 소리가 나자 작은 원룸엔 적막감이 돌았다.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이부자리에 벌렁 누워, 그루밍을 끝내고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밤이를 쓰다듬었다. 밤색 털이 보드라웠다.
B의 이름은 알파벳 B와는 상관이 없지만, 편의상 그를 B라고 부르기로 했다. 전 남자친구이자 첫 번째 남자친구를 친구들과 A로 불러왔기 때문이다. B는 자연스럽게 B가 되었다. B는 내가 대학에 와서 사귄 두 번째 남자친구이고, B의 집은 밤이와 내가 얹혀살게 된 두 번째 집이다. 앞으로 C나 D가 나타날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B와 만나고 있고 B의 집에 기거하고 있다.
B의 집은 A의 집과 아주 비슷했다. 학교 정문 앞 원룸들이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A와 B의 집도 거기서 거기였다. 화장실의 위치, 크기, 타일의 무늬와 벽지 색, 창문틀의 모양까지. 그 때문에 나는 자꾸만 실수를 저질렀다.
저기, 세 번째 찬장에 설탕통 있잖아.
없는데?
있어, 열어 봐.
자, 봐, 없잖아. 나 설탕 안 먹어서 설탕 안 사놨는데.
딴청을 피우면 B도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는 내가 A의 집에 살았다는 걸 알까? 말한 적은 없지만 눈치로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알든 모르든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함께 사는 중이고, 우리가 정한 수많은 암묵적 규칙 중에는 A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도 들어가 있는 것 같으니까. 규칙만 잘 지켜진다면 동거라는 게 딱히 어려울 건 없었다.
뒹굴거리는 나를 밤이의 밤색 눈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요게, 하고 내가 밤이의 콧등을 살짝 때리자 밤이가 덥석 내 손가락을 물어뜯으려 했다. 나는 밤이를 떼어 내고 부스스 일어나 밤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준 후, 싱크대 밑 서랍에서 쌀자루를 꺼냈다. 밥을 하려면 싱크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 더미를 먼저 해치워야 했기에 밥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릇들을 부셔서 엎어놓은 후 쌀을 씻었다. B 역시 밥 하는 걸 귀찮아했다.
난 집밥이 좋더라. 물론 귀찮긴 한데, 그래도 건강해지는 느낌도 들고 돈도 아끼고.
B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쌀을 씻어야만 하는 의무감을 느꼈다. 아니, 아니, 너한테 떠넘기려고 한 말은 아닌데. 앉아 있어, 왜 일어나. 그러면 나는 일어나서 쌀을 씻으러 갔다.
쌀이니 생수니 김치니, 자잘하지만 매일 닳는 것들을 사들고 오는 건 거의 언제나 B였다. 나는 쥐처럼 그의 식량을 조금씩 갉아먹었고, 그 값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했다. 그렇게 쌓이는 빚은 한 방울씩 고이며 차오르는 물과도 같았다. 나는 물이 내 목에 찰랑거릴 무렵에야 겨우 한 움큼씩 물을 퍼내며 연명해나갔다. 물을 퍼내려면, B가 좋아하는 집밥을 준비하거나 B가 원하는 애정표현을 해주거나 하면 되었다. 그리고 가끔, 그와 잠자리를 가지면 되었다. B는 사랑의 확인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고, 나는 쌓인 빚을 조금씩 청산할 수 있어 홀가분했다.
집에 있길 좋아하는 B는 면접이 끝나면 집으로 곧장 돌아올 것이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벌러덩 누워 집밥이 먹고 싶은데, 할 것이다. 그 전에 밥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일 생각이었다. 쌀을 씻고 물을 찰랑이게 넣은 밥솥에 맨들맨들 깎은 노란 감자 두 알을 넣었다. B는 밥을 지을 때 꼭 감자도 같이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강원도 식이라나 뭐라나. 뚜껑을 덮고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러 놓고 나서, 나는 낑낑대며 이불과 요를 갰다. 침대 대용으로 깔아 놓은 두꺼운 요는 묵직해서 접을 때 힘을 많이 줘야 했다.
요를 개자 밤이가 신이 나서 이불 위를 폴짝폴짝 뛰어 다녔다. 밀대로 바닥을 밀고 밤이의 털은 둥글게 만 테이프로 한 번 더 잡아냈다. 만 11개월에 접어드는 밤이는 등을 손으로 쓱 밀고 나면 털이 손에 붙을 만큼 숭숭 빠졌다.
목이 콱 막히는 기분이야. 이러다 호흡기 질환에 걸리겠다고, 쿠헉!
목을 부여잡으며 툴툴대는 B의 말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기엔 공중에 풀풀 날리는 밤이의 털이 너무 눈에 잘 보였다. B가 저녁에 면접을 보고 와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밤이의 털뭉치를 만난다면 밤이의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나는 밤이의 엉덩이 보호를 위해 열심히 털을 치웠다. 방 청소가 대충 끝나자 추리닝 바지를 무릎 위로 걷어 올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문을 꽉 닫으면 밖에서 밤이가 계속 야옹거리기 때문에 화장실 문을 반 정도 열어 둔 채 청소를 시작했다. 화장실 청소엔 치약이 딱이었다. 바닥엔 락스를 뿌려 두고, 나는 치약을 짜서 세면대와 거울에 묻힌 후 안 쓰는 칫솔로 박박 문질렀다. 세면대에 생기는 붉은곰팡이들이 깨끗이 지워져 나갔다. 치약으로 하는 화장실 청소는 B에게서 배웠다.
군대에선 이렇게 해. 치약이 무적이야, 너도 이걸로 청소해.
나는 구부렸던 허리를 쭉 펴고,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손에 쥐고 있던 칫솔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문득 컵에 꽂힌 B의 파란색 칫솔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B의 칫솔을 집어 들어 변기 주변과 변기 뚜껑을 닦았다. 쓱, 쓱, 잘도 닦였다. 야옹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밤이가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면대와 변기가 하얗게 빛날 무렵엔 밥솥의 취사도 보온으로 바뀌었다. 나는 밥솥을 열고 밥을 주걱으로 뒤적여 준 다음, 냄비에 물을 받고 마트에서 파는 990원 된장찌개 양념을 풀었다. 양념을 푼 물이 끓자 감자, 양파, 호박 등을 넣고 한 번 더 끓였다. 수저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보니 괜찮았다. 990원 된장찌개 양념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감자가 들어간 탓에 텁텁해진 것이 아쉬웠지만, B는 감자를 넣지 않은 된장찌개는 된장찌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하여간 B는 감자에 미쳐 있다. 후, 하고 숨을 내쉬다가 냉장고에서 다시 청양고추를 꺼냈다. 남은 일곱 개를 잘게 썰어 찌개에 넣고 휘저었다. 어차피 B만 먹을 찌개였다.
오후 세 시. 과외 시간이 가까워지자 나는 전 속력으로 샤워를 마치고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내가 한 밥인데 내가 한입도 못 먹으면 아까우니까. 그렇지만 몇 입 먹지 못한 채 일어섰다. 과외 시간에 늦으면 학부모들에게 욕을 먹고, 밉보이면 그대로 잘리고 만다. 게다가 오늘은 과외비를 받는 날, 절대 늦으면 안 되는 날이다.
이백? 나는 눈을 크게 뜨고 2000000의 동그라미를 몇 번이나 다시 셌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암만 다시 세도 이백 만원이다. 일시불로 내야 하는 기숙사비는 내가 감당할 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과외로 버는 돈을 다 합쳐도 절반도 안 되는 데다, 과외비는 핸드폰 비, 교통비, 식비, 학자금 대출 이자 등으로 쑥쑥 빠져 나간다.
과외를 그렇게 하는데 왜 돈이 모자라. 아껴 쓰라니까.
엄마는 돈이 절박할 때 전화하면 이렇게 말했다. 아니, 엄만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 반찬도 먹어야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고기도 좀 먹어주고 해야 배 속에 쌓인 피로가 기름에 씻겨 나가는 건데. 그리고 나도 명색이 여대생인데, 랑콤은 못 사도 에뛰드나 이니스프리 정도는 사고 싶은 거 아닌가. 적어도 스무 번은 침을 꼴깍꼴깍 삼킨 후에 파운데이션 하나 고르고, 마흔 번은 마음을 바꿨다가 니트 하나 고르고. 그래도 옷은 입고 화장은 해야 할 거 아닌가. 과외 선생인데 꾀죄죄하게 하고 다니기도 뭣하고. 과외 학생 집에 가서 현관에 허름한 구두를 벗어 놓을 때마다, 과외가 끝나고 나오는데 구두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걸 볼 때마다 얼마나 민망한데.
야, 너 과외 재벌이라고 소문났어. 과외만 몇 개째냐. 밥 좀 사.
고등학교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 무리를 해서 진학한 한국영재외국어고등학교 동기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었다. 부모님의 재산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한때는 중산층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때는 사고 싶은 건 조금 참으면 살 수 있었고, 공부하고 싶으면 고액 학원도 다닐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1년 앞두고 아버지가 실직을 한 이후엔 급작스럽게 고꾸라졌지만. 뭐든지 내리막길은 빠르고 급한 법이다.
친구들은 과외를 해서 컴퓨터를 사거나 브랜드 가방을 사거나 해외여행을 갔다. 나도 과외로 번 돈을 전부 모았으면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스파를 즐기며 지냈을 것이다. 부모님 돈 따박따박 타서 쓰는 너희들이 뭘 알겠냐. 과외비는 내 용돈이 아니라 내 생활비다. 밥 먹고 똥 싸고 물 쓰고 잠자는 데 들어가는 돈이라고. 2013학년도 2학기 학자금 대출 이자가 얼만지, 대출 원리가 몇 퍼센트인지, 거치 기한이란 게 뭔지는 아냐? 밥은 굶어 봤냐? 살 빼려고 굶는 거 말고.
할 말은 많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처음엔 몇 마디 해봤던 것 같다. 엄마한테도, 친구들한테도. 그러나 나는 점차 깨달았다. 동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라는 걸.
다 엄마 탓이야. 미안하다, 딸.
아, 너 정말 힘들겠구나.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꺼낸 말이 아닌데, 그들은 그런 말을 했고 그러고 나면 어색한 공기가 차올랐다. 동정은 결국 그런 것이다. 나와 타인을 더욱 분명하게 가르는 경계선. ‘불쌍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완벽히 타인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괜찮아. 며칠 후면 과외비가 들어오니까.
대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안심한다. 불편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 그러나 나는 그들을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냥 나에게 스스로 해주는 위로다.
이백만 원을 마련하지 못한 나는 자취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학교와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고모댁에 들어가야 하나, 그것도 눈치 보일 텐데, 아, 아니면 대학은 당분간 못 다니는 건가.
그때 같이 살자고 말해준 사람이 A였다. A는 보증금 천만 원, 월세 오십만 원의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집엔 여러 번 들락거려서 익숙했지만 막상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했다. 대학교도 다니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도 할 수 있는 길이 뚫려서, 그 길을 걷기로 한 것뿐이다. 행어를 하나 더 들이고 작은 책상을 넣으니 A의 원룸은 누울 공간이 겨우 나올 만큼 빽빽해졌다. 그렇게 첫 번째 동거가 시작되었다.
동거를 시작하자 돈은 더욱 필요해졌다. 생활비는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그 절반은 반드시 내 몫이었다. 무엇이든 함께 나누어 부담해야 했다. 콘돔 값은 A가 부담했지만, 임신테스트기 값과 아침에 소변을 보고 임신테스트기를 손에 쥔 채 느껴야 하는 불안과 공포는 내가 부담했다. 동거는 합리적이어야 했고, 나는 과외를 끊을 수가 없었다.
과외가 끊길까봐 조마조마한 건 내 쪽이었다. 아무리 먼 곳도 버스를 세 번 갈아타는 정도면 과외를 받았다. 버스를 갈아타다보니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는 일이 많아졌다. 주말이면 늘어나는 배차 간격에, 발끝이 시간에 뜯어 먹히는 기분으로 도로에 서 있곤 했다. 발을 동동 굴러도 버스는 어지간히 오지 않았고 헉헉대며 빈속으로 과외 학생 집에 들어서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 학부모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비굴하게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땐 나를 바로 보지 못하는 맑은 눈동자들이 그저 좋기만 했다. 아무것도 덧대거나 바르지 않은 민얼굴과 뿔테 안경, 책가방, 필통, 수능문제집, 그런 것들은 향수를 느끼게 했다. 아파트 이름과 동 호수를 적은 종이를 몇 번씩 펴보고 주물럭거리고 입으로 주소를 중얼거리며 길을 찾아가던, 첫 과외를 하던 저녁.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첫날부터 수업을 나갈 수는 없으니 인생 얘기를 좀 해야 하나. 이야깃거리도 리스트로 적어 두었다. 그러나 첫날엔 과외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있었고, 나는 아이보다는 아이의 어머니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쌤, 뭐하세요?”
멍하니 시선을 풀고 있던 날 재촉한 건 아영이었다. 나는 풀어졌던 정신을 끌어 모았다.
“자, 여기 24번 지문 해석해 보자.”
“…낙타는 사막을 천천히 걷는다, 물이 나타날 때까지….”
“단어 찍어 맞추지 말고. 더 정확히 해봐. 물이 눈앞에 보일 때까지, 라고 해야지.”
“물이 눈앞에 보일 때까지. 건조한 사막에도 생물들이 사는데….”
일곱 시 오십 분. 목이 칼칼하다. 두 시간 동안 줄곧 떠들어댔으니, 물을 마셔도 목이 따끔거린다. 25번 지문을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24번 지문을 얼렁뚱땅 마친 아영은 벌써 내 눈치를 보며 필통을 정리하고 있다. 나는 슬쩍 한 번 더 시계를 본다. 오십오 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숙제 표시해 준 데까지, 꼭 다하고. 다음 시간에 보자.”
지난번에 십 분 더 했으니까 오늘은 오 분쯤 일찍 끝내도 괜찮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터덜터덜 어두운 아파트 단지 사이를 걸었다. 쨍한 겨울 공기가 볼에 와 닿자 코가 시큰거렸다.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냐. 따지고 보면 너보다 힘들게 사는 애들 얼마나 많은데. 넌 과외로 돈 벌지만 내가 아는 애들은 노가다도 뛰고 마트에서 짐도 나르고 그래. 오히려 넌 편한 축에 속하는 거 아냐?”
B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지나치게 투정을 부린다고 여겼다. 문제는 나 역시 나의 피로함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과외를 하고 오면 피곤한 건 당연한 건데, 그게 단순한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그냥 온몸이 무너질 것 같은, 무너져 버리면 좋을 것 같은 기분을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맑은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공부하면 나중에 행복해진다’는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돈을 벌고, 그 돈이 없으면 내가 죽고, 이건 벗어날 수 없는 굴레고, 빠져나오고 싶으면서도 그 굴레가 끊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일 년.
“넌 부모님께 용돈 받잖아. 넌 과외도 해본 적이 없잖아.”
“그래, 안 해봤어. 그래서 몰라! 근데 너도 좀 만족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너만 힘드냐?”
B가 담배를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잠바도 벗지 못한 채 과외 프린트물이 들어있는 가방을 바닥에 툭 던졌다. 프린트물이 쏟아지자 미오옹, 하며 밤이가 나타나 가방을 뒤적였다.
나는 학교 선생들, 학원 선생들이 싫었다. 돈을 받아먹으면서 가르친다는 게 고작 수능 문제와 번호 찍기라니. 어둠은 시련과 고난, 아침은 희망, 소쩍새는 감정이입, 강은 사랑의 장애물…… 네모와 세모를 그리며 시를 공부하는 동안,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벅참이나 따뜻함은 바짝 말라버렸다. 사실 수능은 그런 걸 느끼지 말라고 강요하는 시험이었다.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것, 그것이 수능 시험에서 요구하는 능력이니까. 처음엔 이상하니까 이상하다고 말했다. 문제를 보고 답을 당최 모를 때 찍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선생에게 나는 손을 들고 물었다. 그걸 왜 배워야 해요? 그러자 선생은 대답했다. 알기 싫으면 듣지 말고 나가.
나는 그런 어른은 되지 말자고, 찍기를 알려주겠다는데 왜 따지느냐고 화내는 선생은 되지 말자고, 아이들에게 시는 정해진 대로 해석해야 된다고 알려주진 말자고, 그랬었다.
그런데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아이들에게 똑같이, 아니 더 심하게 굴고 있었다. 너 대학 안 갈래? 너 이런 식으로 하면 수능 못 쳐. 입시가 장난이니? 이런 건 수능에 안 나오니까 하지 마. 그게, 참 웃겼다.
대학생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 나는 다를 줄 알았다. 뭔가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뭔가, 대단한 걸.
학교 수업이 있는 날엔 과외 시간을 맞추느라 저녁을 굶었고, 학교 수업이 없는 날엔 하루에 세 탕을 뛰기도 했다. 과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머릿속은 안개처럼 뿌옜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과외는 선불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만둬야겠다, 마음을 먹을 때쯤이면 돈이 계좌로 불쑥 들어왔고 그러면 다시 한 달을 채워야 했다. 나는 한 달씩 계속 저당 잡히며 이 집 저 집으로 불려 다녔다. 과외 학생의 집으로 향할 때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자동차와 버스를 간절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나 좀 제발 치어 줘. 속으로 빌었다. 그러면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적어도 몇 개월은 쉴 수 있지 않을까.
“이것 봐. 어때, 멋있지?”
B는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뭐가.”
“아디다스 추리닝 바지가 두 개나 있는 남자.”
B가 추리닝 바지를 갈아입고는 씩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는 이불에 드러누워 핸드폰 게임 ‘마구마구’를 시작했다. B의 추리닝 바지는 하얗게 보풀이 일어난 검정 추리닝이었다. 방금 막 벗어놓은 건 누런 때가 빨아도 빨아도 빠지지 않는 회색 추리닝이었다.
“제발 저 회색 바지 좀 버려.”
“그거 아디다스 건데.”
“아디다스고 뭐고 너무 낡았잖아. 밑단도 너덜거리고.”
“야, 너 아디다스 몰라? 왜 버리냐, 아디다스를!”
순간 나는 꼬질꼬질한 아디다스 추리닝을 입고 ‘아디다스’라고 뽐내며 마트에 갈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했던 걸까? 나는 그의 회색 아디다스 추리닝 바지를 가위로 잘라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느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나는 가위를 드는 대신, 우울하게 물었다.
“너 우유니 사막이라고 알아?”
“몰라. 그게 뭔데?”
“몰라도 되는 거야.”
“뭐야.”
우유니 사막은 소금이 모래 대신 쌓여있는 하얀 사막이다. 비가 오면 그곳은 하얀 바닥에 물이 고여 거울처럼 하늘을 비춘다. 파란색, 흰색, 그리고 사람. 그곳에 가면 펼쳐지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사람들은 소금을 집어 올려 먹어본다고 한다. 퉤, 짜다, 라고 느끼면서 간신히 현실의 끈을 붙잡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가면, 가게 된다면, 절대로 소금을 집어 먹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우유니 사막도 가고 싶고, 거리 전체가 왕궁이라는 크로아티아도 가고 싶고, 새로 나온 디올 립스틱도 사고 싶고, 이제 12개월 차에 접어드는 밤이 중성화수술도 시켜야 하고, 가스비랑 전기료도 내야 하고, 이번 달 인터넷 비는 내가 내는 거고, 학자금 대출 1학년 1학기는 상환이 시작됐고. 그리고 B는 끝이 사각거리는 낡은 아디다스 추리닝을 자랑하고 있다. 울고 싶어졌다.
“왜 그래, 갑자기. 우유 사막? 유유 사막? 내가 그거 몰라서 그래? 거기가 어딘데?”
누워 있던 B가 마구마구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때 밤이가 타닥 뛰어와 B의 중요한 부분을 지그시 밟고 지나갔다. B가 비명을 질렀다.
“야, 썩은 밤! 너 때문에 고자가 되겠어! 으윽….”
나는 분명 웃음이 나왔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울고 있었다. 밤이가 밟고 간 부분을 어루만지던 B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얼굴색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마주 앉아, 나는 그 아이들을 더 파랗게 질리게 하고는 돈을 받았다. 몸이 아프거나 학교 현장학습 등으로 과외 수업이 미뤄지면, 보충을 잡아서라도 횟수를 채웠다. 과외는 돈을 받고 정해진 횟수를 채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횟수가 늦어지면 그만큼 돈 나올 시기도 늦어지는 것이다. 끼니도 거르며 두 시간씩 버스를 타고 과외를 하러 다니는데, 돈을 적게 받거나 늦게 받을 수는 없었다. 녹초가 된 상태로 나는 힘없이 아이들을 다그쳤다. 공부해. 딴짓 하지 마. 시키는 대로 외워. 무조건.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었다.
계좌로 한 달치 과외비가 입금되었다.
학부모에게 사정이 생겨 과외를 더 못할 것 같다고, 과외비는 돌려 드리겠다고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
이번 주에 월세를 내야만 했다.
뒷굽이 다 떨어져 걸을 때 딱딱거리는 구두 대신 무릎까지 오는 겨울 부츠를 하나 갖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었다.
밤이와 계속 같이 살려면 중성화수술을 시켜야 했다. 집고양이로 태어난 밤이의 운명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쩐지 밤이의 중성화수술이 꺼려졌다. 밤이마저 거세하고 싶지 않았다.
시키려면 발정이 오기 전에 해야죠. 되도록 빠른 게 좋아요.
동물병원 의사는 밤이가 5개월쯤 됐을 때 중성화수술을 하자고 했다.
너무 어리지 않아요?
어리긴, 이 정도면 딱 좋은 나이지. 빨리 하는 게 서로에게 좋죠.
그런가요.
왜, 어릴 때 수술은 기억도 안 나잖아요. 재빨리 해버리면 금방 익숙해지고 차라리….
나는 네, 라고 대답했지만, 밤이가 12개월 성묘가 다 되도록 병원에 데려가질 못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장 빠르게 성공하는 게 최고지.
아버지, 전 조금 느리게 살고 싶은데요.
대체 넌 뭐가 될래?
아버지, 저는 그러니까 그걸 천천히 찾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 자세로 언제 성공을 하겠다는 거냐. 너처럼 모든 걸 낙관하는 애들부터 낙오자가 되는 거야. 너도 주변을 좀 봐라. 다들 잘살기 위해 많은 걸 버린다. 그게 맞는 거야.
아버지는 내가 낙오자가 될까봐 그토록 걱정하셨다.
아영아, 아영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잘 모르겠어요.
학교에서 남자친구는 있니?
아뇨.
그럼 좋아하는 과목은 있어? 아영이는 영어 잘하니까, 영어 좋아하나?
없는데… 근데요, 쌤. 오늘은 수업 안 해요?
아, 하지. 할 거야, 왜?
저 이따 과외 끝나고 바로 레슨 가야 돼서요. 늦게 끝나면 안 되거든요.
그렇구나. 미안, 자, 책 펴자.
아영이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꼬박꼬박 과외 수업을 받았다.
다음 날 모아온 돈을 들고 동네의 동물병원으로 밤이를 데려갔다. 이동장에 들어가면 좀처럼 울지 않던 밤이는, 뭔가를 직감했는지 이요옹, 이요옹, 시끄럽게 울어댔고 나는 이동장을 들고 동물병원으로 뛰었다.
마취 주사를 맞히기 위해 의사가 시키는 대로 밤이의 몸을 붙잡았다. 버둥대던 밤이를 꽉 쥐는 내 손이 떨렸다. 긴장으로 손이 축축해졌다. 마취 주사를 놓자 밤이는 그대로 잠들었지만, 눈은 감기지 않았다. 멎은 듯 탁한 눈동자. 그것으로 내가 할 일은 끝이었다.
너무나 간단한 수술입니다. 걱정할 건 전혀 없어요.
늙은 의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생각보다 진짜 간단해. 이거 한 알만 먹으면 된대.
언젠가 콘돔이 없던 날, B는 옅은 분홍색의 동그랗고 작은 알약을 내밀었다. 사후 피임약. 성교 후 72시간 이내에 복용할 것. 그러나 사후 피임약으로는 피임에 실패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 손에 알약을 쥐여준 후 B는 안심한 얼굴로 입사 시험을 보러 나갔다. 나는 알약이 손에서 끈적거릴 즈음에야 이불 속에서 기어나와, 천천히 알약을 삼켰다. 일주일이 지난 후, 만약을 위해 임신테스트기를 꺼내들었다. B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고, 나는 알람도 없이 눈을 떴다. 내가 화장실 쪽으로 가자 밤이도 깨어나 내 뒤를 따라왔다. 밤이가 시끄럽게 울지 않도록 화장실 문을 반 정도 열어둔 후 변기에 앉았다. 여느 때보다 감당해야 할 불안과 공포가 셌다. 길고 긴 5분이 지난 후, 차갑게 식은 손으로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빨간색, 한 줄.
갑자기 생리를 할 것처럼 배가 아팠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다리에 힘이 풀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 사이로 나를 바라보는 밤이, 밤이의 밤색 두 눈과 마주쳤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 쑥, 밑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한참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날 무언가 빠져나갔다는 걸 알았다.
두 시간 후 다시 동물병원에 들렀을 때 밤이는 마취에서 깨어나 있었고 수술 부위를 핥지 못하게 하려고 끼운 깔때기 모양의 넥칼라를 쓰고 있었다. 밤이는 힘없이 축 늘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너랑 있으면 미래가 없을 것 같아.”
A는 그렇게 이별을 말했다.
“넌 진로도 안 정했고, 취업 준비도 안 하고. 나도 마찬가진데, 그래서 더 불안해. 너랑 같이 있으면 즐겁지만, 그 시간이 아깝기도 해.”
나는 어느 순간 게으른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내가 너무 낙관했다.
A에게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별의 시간, 무엇보다 자취방을 구하고 짐을 뺄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되는 대로 방을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보증금이 없는 나로선 막막하기만 했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부동산을 돌아다녀 봤으나, 골드스타 냉장고에 현관문은 불에 탄 흔적이 선명한 지하방의 보증금이 삼백만 원이었다.
그때 같이 살자고 말해준 사람이 B였다. B는 보증금 천만 원, 월세 오십만 원의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A와 몇 달째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B와 막 연애감정에 빠져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B의 집에 가본 적은 있지만, 사귀기도 전에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했다. 대학교도 다니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도 할 수 있는 길이 뚫려서, 그 길을 걷기로 한 것뿐이다. 행어를 하나 더 들이고 작은 책상을 넣으니 B의 원룸은 누울 공간이 겨우 나올 만큼 빽빽해졌다. 그렇게 두 번째 동거가 시작되었다.
물론, 밤이도 함께였다. 밤이는 어느 곳에서나 적응을 잘했다. 충분한 사료와 모래만 있다면 밤이는 딱히 장소도 사람도 가리지 않았다. A는 군식구가 딸려왔다며 밤이를 군밤이라 불렀고, B는 밤이의 털색이 고르지 못한 걸 보고 썩은 밤이라 불렀다. 군밤으로 불리건 썩은 밤으로 불리건, 밤이는 어떤 사료든 잘 먹고 화장실이 바뀌어도 똥도 잘 쌌다. 밤이는 천부적으로 살아남는 기술을 알고 있는 고양이였다.
밤이에게 뽀뽀를 퍼붓던 B는, 밤이의 털이 양복에 달라붙고 머리에 달라붙고 입속으로 들어가자 밤이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입사 원서를 쓸 때면 밤이가 자꾸 B의 무릎으로 뛰어들어 급기야 B는 밤이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물론 밤이는 날렵하게 착지했지만, 난 B에게 화를 냈다. 밤이 말고도 서로에게 화낼 건 많았다.
나는 너보다 머리 길어도 샴푸할 때 한 번만 짜서 쓴다고. 너 두 번씩 짜서 쓰지? 이거 탈모 방지 샴푸였는데… 벌써 다 썼잖아.
섬유 린스 좀 작작 넣어. 냄새 때문에 머리 아파.
난 네가 타자를 치면 책에 전혀 집중이 안 돼.
대체 밤이는 애초에 왜 데려온 거야? 책임지지도 못할 거.
“넌 뭐 때문에 공부하니?”
내가 묻자 아영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지금 얘가 뭐래,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처음 과외하던 날의 설렘을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두근거렸던 걸까.
“다 거짓말이었어. 미안하다.”
아영의 눈이 커진다.
“수능 잘 봐도 대학 못갈 수도 있어. 내 친구가 그랬어. 걘 아직도 공부한다? 난 걔만큼 똑똑한 애를 못 봤는데, 걘 아직도 수능 공부를 해.”
“아….”
“대학 가도 마찬가지야. 내가 아는 어떤 여자애는 돈이 없어서 남자 집에 얹혀살아. 이 남자 집, 저 남자 집, 돌아가면서 살아. 사귈 땐 얹혀살다가, 헤어지면 나오는 거지. 그게 뭐냐, 진짜. 그치? 아영아, 너는 어때? 왜 대학에 가려고 하는 거야? 아영아, 대학에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가장 자유로운 스무 살이 될 수 있어.”
“아….”
“어때, 멋지지 않아?”
“엄마 때문에 안 될 텐데… 그리고 쌤도 대학생이잖아요?”
아영의 눈이 빤히 나를 바라봤다.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고 다닌 덕택에 나는 과외를 두 개나 잘렸다.
B는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
“이게 다 썩은 밤 때문이라고! 면접 끝나고 나오는데 느낌이 이상한 거야, 그래서 양복을 봤더니. 나 참, 털이 두 가닥이나 붙어 있었어.”
“털 다 뗀 줄 알았는데.”
“이젠 지긋지긋하다. 저 고양이 좀 갖다 버려. 전부 지겹다고.”
B가 바닥에 드러눕자 밤이가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B는 거세게 밤이를 밀쳤고, 밤이는 다시 B에게 달려들었고, 그러다 휙-. B의 얼굴에 발톱이 싹 지나갔고 긁힌 선을 따라 핏방울이 맺혔다. 정적이 흘렀다.
“나 좀 나갔다 올게.”
B의 집을 B가 나가고, 나와 밤이만 덩그러니 방에 남았다. 늦은 밤까지 B는 오지 않았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B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하필이면 과외비가 똑 떨어졌다. 며칠 후면 과외비를 받을 수 있었지만, 미리 달라고 학부모를 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전날 사둔 편의점 샌드위치를 책상 구석에서 발견했다.
포장지를 뜯을 때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았지만, 아닐 거라고 스스로 세뇌시키며 억지로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나 쉰내가 올라오자 삼킬 수는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생수, 주스가 있었고, 마늘과 양파가 물렁해진 상태로 삭아 냉장고 구석에 박혀 있었고, 냉동실엔 말린 멸치가 얼려져 있었다. 나는 책상으로 돌아와 다시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역해서 뱉어내고는, 삼키지 못한 조각을 휴지에 싸서 버렸다. 샌드위치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나는 울지 않았다.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배가 꾸르륵거렸다. 꾸르륵- 배에 뱃고동이 울리고, 핸드폰을 뒤적였지만 누구에게도 연락하기가 꺼려졌다. B에게도, 엄마에게도, 대학 동기들에게도 연락할 수가 없었다. A도 잠깐은 생각이 났지만, 그에게야말로 연락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제야 울었다. 밤이는 옆에서 그릇의 사료를 아작아작 씹어 먹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과외를 늘리겠노라고. 두 번 다시 가난해지지 않겠다고. 아영에게는 지난날의 이야기는 너의 정신이 과연 수능이라는 엄청난 시험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한지 시험해 본 거라고 둘러댔다. 아영이는 역시 훌륭한 정신을 가진 학생이라고, 그러니 과외 횟수를 주 2회에서 주 3회로 늘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학부모에게 연락했고, 아영이 어머니는 어머, 선생님,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반겨 주었다.
지난 2년간 서른 개가 넘는 과외를 해오면서 나는 점차 진화했다. 더 이상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수능 문제로, 번호 찍기로 사라져가도 딱히 울적할 것도 없었다. 두 시간을 채우면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더 잡는 것보다 횟수를 늘리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이득이었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살기 위해 살았다. 중요한 건 잘리지 않고 과외를 하는 것이지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 아이들을 가르칠 능력이 없었다.
밤이가 다가와 내 팔에 작고 따뜻한 머리를 문질렀다. 고양이는 원래 사람에게 친화적인 동물이 아닌데, 요즘 고양이들은 많이 달라졌다고, 동물병원 의사가 그랬다. 중성화수술을 마친 밤이는 한결 더 얌전해진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내 곁에 붙어있던 밤이가,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이렇게 모두들 진화하는 건지도 몰랐다. 진화가 끝나면, 옛날의 모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두들 잊어버리겠지?
맑은 콧물이 밤이의 갈색 털 위로 뚝 떨어졌다.
A와 그랬던 것처럼, B와의 이별도 갑작스럽진 않았다. 언제부터 나는 이사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B가 밤이의 엉덩이를 때리며 소리를 질렀을 때부터, 아니다, 밤이가 B의 중요한 부분을 밟고 다녔을 때부터, 아니다, 그냥, 언제부턴가 나는 B와의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B에게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과외 때문에, 밤이 때문에, 면접 때문에, 월세 때문에, 샴푸값 때문에, 가스비 때문에, 온갖 ‘때문에’들 때문에 헤어지는 게 아니라고. B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B가 장난스럽게 말했고 나도 피식 웃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같이 웃었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지내면서 다른 곳 알아봐. 짐 두 번 옮기지 말고. 집 구할 때까진 같이 지내자.”
그때 같이 살자고 말해준 사람이 C였다. C는 보증금 천만 원, 월세 오십만 원의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B의 집에서 C의 집까지의 거리 정도는 학생이사 트럭만 불러도 충분했다. 익숙한 손동작으로 행어와 조립식 책상을 분리했고, 접시와 책 등의 잡동사니를 차곡차곡 박스에 담았다. 조립식 가구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해체되어 옮기기가 수월하고, 크기 조절이 가능해 다양한 공간에 잘 들어맞았다. 나도, 밤이도, 어쩌면 조립식이라 여기저기 잘 끼워 맞춰지는 건지도 몰랐다.
B와 소원해지면서 C와 막 연애감정에 빠져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C는 다정하고 C의 집은 신축이라 시설도 괜찮았지만, 막상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했다. 대학교도 다니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도 할 수 있는 길이 뚫려서, 그 길을 걷기로 한 것뿐이다. 행어를 하나 더 들이고 작은 책상을 넣으니 C의 원룸은 누울 공간이 겨우 나올 만큼 빽빽해졌다. 그렇게 세 번째 동거가 시작되었다. 물론, 밤이도 함께였다.
C의 집에서 자게 된 첫날 밤, 나는 납작 엎드려서 잠이 든 밤이를 끌어안고 다음 번 이사를 미리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알파벳은 이제 겨우 C에 도달했고, Z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으니, 그렇게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깊게 든 C가 커다랗게 코를 골았고, 털을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밤이가 그르릉 소리를 냈다. 밤이만이 나의 모든 걸 알고 있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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