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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엘리자베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9. 10. 01:28

내 사랑 엘리자베스

유희주

 

내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들었던 여름의 어느 한 날은 몹시 무더워 잠을 이루지 못한 다음 날 아침 이었다. 그녀가 왜 자신의 옥수수 밭에서 붉은 신발을 신고 속옷 차림으로 가만히 앉아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한 추축으로 베키네 집에서 갖은 모임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날 우리는 각자 갖고 있는 비밀스러운 음식의 레서피를 공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음식은 뒷전이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를 정도로 우린 엘리자베스의 죽음에 대해 몰입하고 있었다. 그래 과연 몰입이었다. 석달 전에 우리와 함께 모여서 갖고 올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소녀처럼 설레이며 아주 깜짝 놀랄 음식의 레서피를 알려 주겠노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좋아했었던 엘리자베스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추측으로 온 방안의 공기를 가득 채웠을 때 창문이 덜컹 열리며 에어콘의 찬 공기와 밖의 더운 공기가 순간적으로 교차되는 그 지점에 앉아 있던 나는 “이제 그만 해!!”라고 소리쳤다. 엘리자베스의 죽음이 슬프기나 한가. 저 늙어가고 있는 여자들은 지루한 생에 불쑥 살찐 까마귀가 날아들어 살기어린 부리로 권태로운 시간들을 쪼고 있는 것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들의 추측들은 모두 그동안 엘리자베스가 말한 작은 에피소드와 모두 연관성을 갖는다. 수없이 등장하는 남자들의 이름은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베키가 전화를 받고는 조금 있다가 전화를 다시 하겠다는 대답을 한다. 타운에서 그녀의 가족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냐는 의논을 해 온 것이다. 우리는 다 식은 음식을 아무 생각없이 접시에 덜어 먹기 시작했다. 음식이 입에서 돌아다녔다. 낸시가 만든 스파게티는 최악이다. 난 단호하게 말한다.

“엘리자베스의 장례식을 친구로서 돕겠어. 너희들은?”

친구들은 처음에 어쩔 수 없이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로 흐르다가 캘시가 느닷없이 울자 어디서 그런 우정이 쏟아져 나오는지 모두 훌쩍이며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사람들의 감정이란 늘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해 변한다. 난 유일하게 상대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단 한사람을 만났지만 나 또한 그녀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우체국에서 우편물 배달을 하는 빌은 뚱뚱한 아내가 발목에 힘이 없어 아주 조금 밖에 못 걷자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한지 십 년이 된다. 아내는 움직이지 않자 더 뚱뚱해 졌다. 빌은 종일 밖에서 우편물 배달을 하고 돌아와 글로서리에 아내와 함께 간다. 아내를 장애인 차에 앉힌 후 진열된 골목을 차례대로 돈다. 아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여러 가지 물건들 사이에 늘 집에서 쓰던 물건이 있다. 빌은 그것을 하나 집어 아내가 타고 있는 장애인카 뒤에 있는 바구니에 넣는다. 빌과 아내는 연신 웃으며 오늘 먹을 생선요리는 찜으로 해야겠다고 서로 의견을 내 놓고 생선 위에 뿌릴 파슬리 가루를 찾고 있었다. 그 때 엘리자베스가 그들이 찾고 있는 파슬리 가루를 찾아 그들의 바구니에 살짝 던져 넣으며 말했다.

“생선은 비린내를 없애주는 레몬과 파슬리 그리고 파프리카만 조금 뿌리고 브로일 하세요. ” 그리고는 치마를 찰랑 거리며 제 볼일을 보았다.

 

새를 연구하는 그룹은 새벽에 만나 바위 뒤나 나무 뒤에 앉아 개울물가의 새집에 시선을 고정하고 새가 어떻게 알을 품고 암컷과 수컷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연구한다. 안개가 자욱한 개울 옆의 정자에 모인 사람들은 타운 신문의 광고를 보고 모인 사람들이다. 안개는 사람과 사람 사이로 흘러들었다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그 모임을 주선한 리더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주고 관찰하는 사람, 사진찍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을 정해서 16마일이나 이어지는 개울로 내 보냈다. 그때 엘리자베스와 빌이 한 그룹으로 묶였다. 개울을 따라 걷는 새벽, 개울로 내려오니 안개는 더 미친 듯 춤을 추며 피어났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요동치는 움직임이 눈에 보이는데도 풀들은 그 움직임 속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가만히 안개에 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런 움직임이면 흔들려야 하는 것 아닐까. 발소리를 죽여 가며 개울을 따라 내려 갔다. 이제 개울이 거의 강과 맞닿아 있는 지점에 이르렀고 네 사람은 자리를 잡아 새를 관찰해야 했다. 그런데 두 남자가 자꾸 앞서 걷는다. 빌과 엘리자베스는 나이가 많아 젊은 두 남자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그만 자리를 잡자고 엘리자베스가 소리를 지르자 절대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철칙을 깬 엘리자베스를 두 남자가 노려보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앞서 가버렸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두 남자의 뒷 모습을 빠르게 뒤 좇던 빌이 다시 돌아와 엘리자베스 앞에 섰다.

“그냥 우리끼리 새를 관찰하다가 가죠.”

두 사람이 바위 뒤의 평평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개울가 숲을 향해 앉았다. 말하는 것은 안 된다. 서로 한 방향을 보고 앉아 있을 때 엘리자베스는 빌의 수염에 안개가 머문 것을 봤다. 수염 사이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을 한참 봤다. 빌은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때 엘리자베스는 손을 뻗어 빌의 수염을 만지며 “여기 안개가 앉았던 흔적이 있어요.” 빌이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고 마켓에서의 친절함에 대하여 고마워했다. “아 그 사람이 당신이군요. 아내는 좀 어떤가요?”라고 말하는 엘리자베스의 눈을 보며 빌이 말을 시작했다. 그때 새가 입에 무엇인가를 물고 돌아왔다. 스티로폴이었다. 스티로폴 조각을 풀섶 사이에 놓고 또 날아간다. “요즘은 새들이 집을 아주 튼튼하게 짓나 봐요. 실이나 스티로폴을 선호하지요. 난 자연스러운 삶을 좋아하지만 이 문명에 종속돼서 사는 것이 곧 자연스러운 삶인 경우가 많아요. 저 새들처럼 말이지요. 난 아내를 사랑하지만 이 삶이 너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해요. 늘 아내의 병원비를 어떻게 하면 싸게 할까....그게 내 생각의 90%를 차지하지요. 10%가 가끔 여기 나와 새를 관찰하는 일이고요.“ 엘리자베스가 울기 시작했다. 빌의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라고 말 하면서 빌의 손을 어루만지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 빌은 좀 당황했다. 마켓에서 파슬리가루 병을 휙 집어넣던 짧은 만남이 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랐다. 엘리자베스의 눈과 마주쳤을 때 빌은 엘리자베스가 진심으로 자신의 삶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빌의 울음이 쏟아졌다. 빌도 느닷없는 자신의 변화에 놀랐지만 그 순간에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모습이 다 발가벗겨지고 있다는 느낌에 시간과 공간이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아내가 변을 보러 가기도 전에 옷에 묻히는 일과 아내를 씻기는 일, 아내의 고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 벽에 걸린 결혼 사진 속의 아름다운 아내를 지나 푸른 정맥이 다 튀어나온 종아리와 허벅지를 내 놓고 우울하게 뜨개질을 하는 아내에게 입맞춤 하러 갈 때 종종 튀어나오는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을 움켜쥐어야 했다는 고백이 이어졌고 도덕성과 신앙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고백에 이르러서는 그 큰 몸이 들썩이도록 울고 있었다.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말하지 않던 마음속의 변화를 엘리자베스가 다 받아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빌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때 빌이 키스를 했다. 엘리자베스가 받아 주었고 아무도 없는 강가의 바위 뒤에서 그 둘은 섹스까지 이어지는 감정의 폭풍 속에 놓여 있었다.

빌이 다음 날 엘리자베스의 집을 찾았을 때 엘리자베스는 상냥하게 맞았다. 주스도 내 오고 쿠키도 내 놓고 자발거리며 떠들었다. 빌이 어색하게 까칠한 수염을 만지며 어제의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해 상식적으로 감정 마무리를 하려고 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어제의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긴 치마를 잘잘 끌며 왔다 갔다 하고 시종 까륵까륵 거리며 웃었다. 빌은 그냥 엘리자베스의 집을 나왔다. 빌의 생활에 변화가 왔다. 말의 톤이 높아졌고 행동은 빨라졌으며 아내와 보내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빌의 고여있던 생각을 회전시키는 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나 빌은 생활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내를 돌보는 일에도 여전히 최선을 다했지만 방법이 달라졌다. 집을 팔려고 내놨고 사람을 써서 자신이 아내에게서 놓여 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내서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어찌보면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친구들이 왜 그러냐고 하면 “난 오늘을 살거야. 내일은 없어.” 라고 말했다. 동네 사람들은 갑자기 변한 빌의 행동에 걱정을 했지만 남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딱 사흘이면 족하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내 사라졌고 빌은 수염을 깨끗하게 밀어버렸다. 빌이 엘리자베스의 집에 다시 찾아 온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그날은 목련이 처음으로 입을 벌린 날이었다. 하연 목련이 집집마다 피어서 초저녁 거리를 달콤하게 채우고 있었다. 빌이 깨끗하게 차려 입고 엘리자베스의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집에서 나온 사람은 한 남자였다. 뒤 따라 나온 엘리자베스의 허리를 감싸며 누구냐고 묻는 그 남자 앞에서 빌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뒤로 감추며 집을 잘못 찾아왔노라고 말하고는 허둥지둥 나오려고 했다. 그때 빌을 엘리자베스가 불렀다.

“빌!!!! 괜찮아요. 들어왔다 가요.”

어정쩡하게 꽃다발을 들고 집에 들어섰고 셋은 일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집 안에 있던 남자는 마크였는데 배관공이었다. 마크는 스스럼없이 엘리자베스의 허리를 감싸 않고 이마에 키스를 수시로 하는 것으로 애정를 과시하며 빌과 눈이 마주쳤을 때에는 슬쩍 윙크를 날리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아주 가벼운 여자라는 표현을 손가락으로 표현하며 능글맞게 웃었다. 빌이 그런 마크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경찰이 집에 들이닥치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참고인 진술은 일관됐다. -저도 몰라요. 둘이 왜 싸웠을까요?- 마크는 계속 싱글거리며 빌을 비웃었고 빌은 참담한 마음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엘리자베스의 소문은 그 일을 시작으로 하루하루 부풀어졌다. 남자는 어제 일곱 명으로 늘어났었는데 오늘은 열둘이 되었다. 전에 살던 마을의 교회에서는 그녀의 문란한 남자관계로 인해 출교까지 당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문이야 어찌되었든 동네 여자들 끼리 아침 식사 후에 모이는 모임은 지속 됐었다. 그 모임에서 엘리자베스에 관한 소문을 모르는 사람은 엘리자베스 혼자 뿐 이었다. 여자들은 모여서 다과를 나누며 수다를 떨었는데 그 주제가 그 뒤로 남자이야기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는 엘리자베스의 반응을 서로 눈치를 보며 살피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암묵적으로 알아내고자 하는 소문의 진상을 동조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다. 말을 섞지 않았으니 동조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자리에 있었으니 나도 알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니 동조 한 것이 맞기도 하다.

 

“난 남자들이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을 보면 정말 더러워. 엘리자베스 너도 그래?”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모로 살짝 꼬이면서 동조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몇 올을 잡아 배배 꼬면서 말한다. 난 방안에 있는 여섯 명의 여자들이 모두 엘리자베스의 천진한 눈을 부러워했었던 두 달 전을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부러운 듯 경멸스러운 듯 알 수 없는 분위기다. 여전한 것은 엘리자베스의 천진한 눈빛이다.

“난 남자가 땀을 많이 흘리면 물을 빨리 갖다 주고 싶고 수건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갖다 주고 싶어.”

마리아가 서재로 가다가 테이블 위의 액자를 건드려 떨어뜨렸다. 마리아가 건들거리면 좋아하지 않는 이상 누가 그런 맘을 먹냐고 비아냥댔지만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상냥하게 말한다.

“응 맞아. 그런 것 같아. 난 그냥 애쓰는 남자를 보면 불쌍해서 뭘 좀 해결 해 주고 싶은데 그게 나중에는 자꾸 꼬여. 남자들은 내가 그런 행동을 보이면 나랑 자고 싶어해. 그리고 자꾸 찾아와. 빌도 마크도 그런 남자들이었고 난 거절하면 그들이 또 상처 받을까봐 다 받아줘. 그게 자꾸 꼬여. 너희들도 그 일은 다 알잖아.”

우리는 엘리자베스의 경찰서 출두 사건을 모르는 척 했는데 스스로 그렇게 말을 하니 한결 편하게 그녀를 조여 들어 갈 수 있었다.

베키가 호들갑을 떨며 그런 호의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남자들이 병신이라며 엘리자베스 편을 들려고 했을 때 의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아니야 베키 그렇게 말하지 마. 빌은 아내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죽어가고 있는 줄도 몰랐어. 그게 너무 가슴 아팠는데 빌은 나랑 자고 난 후 생활이 완전 달라졌어. 난 그것으로 아주 만족해. 나의 위로가 그의 영혼을 구한거잖아. 마크는 건달이기는 하지만 나랑 있으면 아주 솔직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몸이 좋다고 했어. 마크는 성생활이 전혀 안되던 남자였어. 나하고만 그게 된다고 했어.”

“야 미친년~ 내가 알기로 빌은 잘 모르겠다만 마크는 여자 친구가 이 마을에 이사 온 뒤 셋이나 바뀌었고 지금도 어떤 젊은 여자애랑 석 달 째 살고 있어. 젊은 년이 미쳤다고 꼴리지도 않는 놈이랑 사냐?” 베키가 참지 못하고 걸걸한 말을 쏟아 냈을 때 엘리자베스의 표정을 모두 보았다. 그 표정은 그 순간부터 마크라는 사람을 아주 모르는 양 하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빌이 자신 때문에 생활이 달라져서 지금은 아주 활달한 생을 살고 있다고 느닷없이 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은 진실이었으므로 모두 맞다고 머리를 끄떡였지만 낸시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경멸스럽게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 너 잘 들어. 어제 빌 아내 자살했어.”

“그게 나랑 상관있어? 나는 빌을 위로해 줬을 뿐인데 아내가 죽은게 내 책임이라는 듯한 네 표정 난 무서워.”

 

베키, 마리아, 낸시, 캘리 그리고 나, 다섯 명의 여자들은 모두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네년이 꼬드겨서 빌을 정신 못 차리게 했으니 그 아내가 얼마나 절망스러웠겠냐고 입을 모아 엘리자베스를 공격했다. 테이블의 음식에는 모두 손도 대지 않았고 모두 차만 벌컥대며 마셨다. 그 때 낸시가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너 지금까지 남자 위로한다며 잔 남자가 몇이야?”라고 물었다.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몰라. 그냥 많아.”

 

우리는 모임에서 엘리자베스를 빼고 모이기 시작했다. 소문이 진실이 되는 시간은 짧았고 우리의 결정은 빨랐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있었던 때 보다 그녀의 비중은 커졌다. 우린 그녀의 이야기만 내리 세 시간 떠들다가 헤어지곤 했다. 우리가 그녀의 이야기를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을 즈음부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녀와 우리의 관계성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그녀와 어울리게 되었는지를 기억하게 된 것이었다. 베키의 개가 늙어서 죽었을 때 개의 죽음 앞에서 엘리자베스는 삼일을 종일 울었다. 베키보다 더 슬퍼하는 것으로 베키를 위로했다. 그 뒤로도 베키의 개가 늘 앉아 있던 분홍 카펫을 지나칠 때 마다 눈이 벌겋게 되곤 했다. 베키는 자신의 개에 대한 마음을 그토록 애닯프게 표현하는 엘리자베스를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집에 누전이 되어서 집이 일부 타서 집의 전기 공사와 키친과 다이닝룸을 리모델링 할 때 였다. 엘리자베스는 삼시 세끼 끼니를 해다 주기 시작했다. 공사가 일주일 가량 걸렸는데 밥을 해 먹을 수 있었던 이틀을 빼고 5일 가량 밥을 해다 주었다. 샌드위치 만들어 먹으면 된다고 해도 꼭 불로 지지고 볶는 아침, 점심, 저녁을 해다 주었다. 마리아의 남편은 엘리자베스 같은 여자가 혼자 사는 것이 좀 아깝다고 자신의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늘 마리아 칭찬을 하기도 했다. 낸시가 아들이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 때문에 고민하자 낸시의 아들이 수업 끝나는 시간에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 엘리자베스는 할 말 있다며 낸시의 아들 옆에서 걸으며 질질 짜고 울며 낸시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삼일 동안 아들을 붙잡고 이야기 한 뒤 아들이 낸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아 씨발 그 아줌마 이제 그만 오라고 해. 그 아줌마가 나를 보면서 이야기 하면 그 맑아빠진 눈에 홀려서 말을 안 듣고는 못 배겨. 엄마가 정말 그렇게 나 때문에 고통스러웠어? 아닌거 같아. 그 아줌마가 더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아. 씨발 나 마리화나 안 피울테니 그 아줌마 그만 울고 다니라고 해.” 그 뒤로 낸시의 아들은 대마초를 피우지 않았다. 낸시는 엘리자베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지갑 하나를 선물 했는데 그 지갑 속에는 낸시의 가족 사진을 한 장 넣고 늘 기도 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스스로와 한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캘리와는 좀 더 특별했다. 캘리의 엄마가 다리를 다쳐 움직일 수 없을 때 였다. 캘리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엄마를 돌 볼 사람을 구하기에게 재정적으로 여력이 없었다. 그 때 엘리자베스가 캘리 엄마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깁스를 하고 있는 6개월을 엘리자베스가 돌보았다. 우리 모두는 아무런 대가없이 엘리자베스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아 챙겼다. 유일하게 나만 그녀의 도움을 받지 않았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무슨 빚진 사람처럼 늘 입에 달고 살았다. 너를 도와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그런 말을 한번 하기 시작하면 한 시간 동안 미안한 이유를 만들어 늘어놓았다.

 

엘리자베스가 모임에서 빠진 뒤 나를 찾아 왔다. 한층 더 밝아진 표정으로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고 찾아 왔다. 빌이 찾아왔는데 아내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했단다. 엘리자베스는 나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부인이 불쌍하다며 울었다고 했다. 빌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는데 내가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 보았다.

“너 또 불쌍해서 섹스 했니?”

그때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게 왜 나쁘냐고 묻는 엘리자베스를 앉혀 놓고 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넌 너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너 빌을 사랑해? 너 마크를 사랑했어? 그리고 그 많은 남자들을 다 사랑해서 섹스했어? 한번 말해 봐. 뭐 때문에 섹스를 나눴어?”

“난 그냥 그들이 불쌍해서 도와주려고 했어. 그러면 그들은 울면서 나를 안아. 난 그냥 그 상황을 거부 할 수 없었을 뿐이야. 난 그들이 그것 때문에 또 곤란해 하면 그것마저도 해소해 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면 나를 마구 욕 해. 사랑이 뭔데?

“사랑은 나를 모두 내어 주고도 아깝지 않아서 그의 몸과 마음 그리고 모든 생활과 결합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힘이 있어.”

“그게 사랑이라면 난 그 순간은 그들 모두를 사랑한 거야. 다만 그들을 다 책임 질 수 없었을 뿐이야.”

“그건 사랑이 아니고 .......”

난 입을 닫았다. 넌 지금 정신적인 병을 갖고 있는 상태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남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난 그녀가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것이 두려운 연약한 존재다. 그녀는 온 몸을 내던져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우리 모임에 나오지 못하면서 서서히 소심하게 무너졌다. 그녀가 이사 오던 일 년 전의 해맑은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는데 내가 동네 친구들에게 엘리자베스에 대해 설명을 하고 함께 모임을 하자고 하려고 했지만 이미 동네에서 소문이 안 좋은 그녀와 어울리는 것은 함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이라며 모두 거부했다. 난 삼년간 상담 치료사를 했던 젊은 날의 경험을 들먹이며 그녀를 우리가 친구로 받아 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모두 돌이킬 수 없이 소문이 나빠진 작은 동네에서 어떻게 그러냐고 했다.

 

엘리자베스가 그녀의 옥수수 밭에서 속옷만 입은 채로 붉은 구두를 신고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그녀가 키우던 개가 그곳에서 계속 낑낑 거리기만 하여 앞집 사람이 가보니 쪼그리고 앉은 모습으로 죽어있는 엘리자베스 손에는 거미 두 마리가 쥐어져 있었다고 한다. 생각난다. 그녀가 모임에 나와 늘 깔깔거리며 말하던 것 두 마리의 거미에 대해......

“우리집 화장실 구석에 거미 두 마리가 살아. 난 이 애들이 새끼를 낳아서 키우나 어쩌나 늘 관찰 하는데 둘이 새끼 날 기미는 안 보이고 거미줄만 쳐. 그래도 난 이애들을 끝까지 돌볼 거야.”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또라이 같다며 깔깔거리고 빨랑 거미줄이나 걷어내라고 했었다. 그녀가 돌보던 거미를 밖으로 끌어내던 그 밤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녀의 혈액에서는 엄청난 양의 알콜이 나왔다. 알콜로 인한 심장마비가 그녀의 사인이 되었다. 우리 다섯 명은 그래도 그녀와 나누었던 정을 생각해서 가족을 수소문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장례식에 왔다. 70살이 넘은 노인이 침을 퇴퇴 밷으며 연실 엘리자베스에게 제 에미를 닮은 년이라고 욕을 해 대고 있었다. 노인은 두 살 때 제 에미가 버렸는데 어떻게 닮을 수 있었는지 피가 아주 더럽다며 계속 침을 밷았다.

 

엘리자베스는 남자의 마음에 들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어린 시절을 살았던 것이다. 우리 다섯명은 엘리자베스의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녀의 클라짓 서랍장을 열면서 우리는 한 명, 두 명 울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 정상적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없었다. 화장품은 구색이 맞지 않고 립스틱만 스물여섯 개 나왔다. 원피스 몇 벌이 있었고 스카프만 클라짓 가득 있었다. 우린 그녀의 몇 벌 안되는 원피스가 스카프에 의해 가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을 적어서 보드판에 꼽아 놓았는데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우리 다섯 명의 친구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빌도 마크도 적혀 있었고 알 수 없는 수많은 남자들의 이름과 수많은 여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인연이 닿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모두에게 버림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이사를 가서 또 다시 인연을 맺고 방실 방실 웃으며 사람들에게 정성을 기울일 기력을 상실한 것이다. 장례식이 있다고 우리가 신문에 공고를 했다. 그게 마지막 가는 사람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그녀를 죽게한 공범자이고 우리는 끝까지 그녀의 편이 되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씻고 싶어서 누구보다도 슬퍼하면서 그녀의 장례식을 준비 했다. 장례식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 안 올 줄 알았던 빌과 마크도 왔다. 방명록에는 사람들의 이름과 엘리자베스를 기억하는 글들이 씌여져 있다.

 

빌 –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진 리즈 안녕!

마크 – 미안해. 좋은 곳에서 잘 살아.

딕 – 내 생에 가장 소중한 친절을 보여준 여자.

질 – 네가 만들어준 팬케익이 세상에게 제일 맛 있었어.

소냐 – 네 편을 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존 – 미안하오

그레이스 – 너를 위해 기도할게

 

우리 다섯 명의 친구는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람에게 정성을 기울였는지 방명록을 보고 알았다. 그녀의 친절로 사람들은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의 죽음은 그 치명적인 상처를 아름다운 사연으로 변화 시키고 있었다. 난 그게 상처를 입은 남은 자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엘리자베스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도 그녀와의 관계를 미화시키기에 급급해진 마음에 민망해져서 친구들이 울 때도 울지 못하고 생뚱맞은 표정으로 일관 했다. 장례식은 그녀의 친절이 만든 부작용이 무엇이었든 그녀의 정신적 질병이 사회적으로는 지탄받는 행동을 했었어도 개개인에게는 위로가 되었었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과정이 되어 주었다.

 

1) 자신이 주목 받지 못하는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한다.2)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적절할 정도로 성적으로 유혹적이거나 자극적이다.3) 감정 표현이 자주 바뀌고 피상적이다.4) 자신에 대한 관심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외모를 이용한다.5) 연극적인 방식으로 말을 하고, 말하는 내용에 세부적인 사항이 결여되어 있다.6) 자신을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연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한다.7) 피암시성이 높아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8)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실제보다 더 친밀한 것으로 생각한다

 

난 내 수첩에 적어놓았던 히스테리성 인격장애의 증상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녀의 묘에 꽃을 갖다 놓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어쩌다 마주쳐도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들 중에는 우리 다섯 명도 있었다. 한동안 그녀의 묘에는 꽃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는 그녀와 인연이 닿았던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병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주목 받지 못하는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하지만 아무도 이러한 마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누군가 순수하게 맑은 눈으로 당신을 기꺼이 이해하고 있다는 표현을 하면 백이면 백 다 허물어진다. 엘리자베스에게 허물어진 남자들은 모두 이 인격 장애를 갖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는 단 한번도 성적으로 유혹을 하거나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맑은 눈으로 눈을 꿈벅이며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는데 이것을 성적으로 인식하고 성관계를 요구 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모두에게 한결 같이 사랑을 나누기를 원했지만 우리 친구들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감정이 자주 바뀌었고 그녀를 판단하는데 있어 피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외모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만은 다섯 명의 친구들이 안다.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우린 늘 붉은 립스틱에 나풀나풀한 레이스를 단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취향이 약간 독특하다고 생각했지 그녀의 원피스가 봄, 여름, 가을, 겨울용으로 단 다섯 벌이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아주 싼 재질의 스카프만 가득했던 기괴하게 느껴지기 까지 했던 그녀의 클라짓을 기억한다. 그녀의 표현이 연극적이긴 했지만 연극은 아니었고 세부적인 사항이 결여되어 있기는커녕 늘 너무 세세하게 말을 오래 해서 그 부분에 대해 우리들은 짜증을 내곤 했었다. 그 외의 해당 사항들도 그녀에게 들이대면 그녀의 병증을 설명하는 것이 되었지만 난 모든 사항이 그녀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친구 관계가 원만하고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음식을 나누는 모임을 모두가 즐거워하던 때였다. 그녀가 우리 집에 왔었을 때 난 내 묘지자리 사 놓은 것을 보여주었다. 이곳에서 두 시간 떨어진 곳인데 그곳에 가족묘가 있고 내 남편과 내 묘자리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님 자리를 살 때 함께 사 두었는데 남편과 이혼하는 바람에 남편의 묘자리 주인이 없어졌다고 말했더니 엘리자베스가 눈물이 그렁그렁 해 지며 “어쩌면 좋지 네가 외로워서”라고 말했다. 내가 좀 어이없어 하며 너 엄한데 가서 울지 말고 나 죽으면 울어 달라고 말했다. 날 위해 우는 사람이 다섯 명은 되어야 그래도 장례식이 초라하지 않지라며 농을 건넸더니 펑펑 울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다.

“얘 남편자리 차지 할 사람 찾아보자.”

엘리자베스가 그 말을 했을 때 난 웃음을 못 참고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아 이 백치미 가득한 여자를 어디다 써 먹지? 마흔이 넘었으니 배우 하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지. 야 없으면 마는 것이 남편을 왜 찾아. 자연스럽게 만나지면 만나는 거고. 야 눈물 집어 쳐!!”

“그런데 네 묘자리 너무 멀어. 나 이제 먼데는 운전 못하는데 어떻게 해.”

난 좀 어이없이 진지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아주 좋은 방법이 있어. 네가 나보다 먼저 죽는거야.”

 

우린 오래도록 엘리자베스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마다 눈물을 찔끔 거렸지만 이내 잊고 잘 지냈다. 그래도 사람들은 종종 그녀를 입에 올렸다. 주로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나고 헤어질 때 후렴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 친구들은 사람들을 만나면 꼭 엘리자베스에 대하여 묻는 질문을 받곤 했다. 우리들은 그래도 마지막으로 의리를 지키려고 그녀에 대하여 좋은 말을 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뭉개버리곤 했다. 그녀의 서글프고도 대책 없는 마음들이 온 동네에 둥둥 떠다니는 것 만 같았다. 그녀의 병증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녀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보지 못 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그녀의 옥수수 밭에서 아무도 옥수수를 따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깟 옥수수 나몰라라 했고 타운에서는 누구든 따 가도 좋다고 푯말을 써 붙였지만 아무도 옥수수를 따지 않았다. 성성한 옥수수 밭을 밀어 버리던 날 우리 다섯 명은 나란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개는 베키가 데리고 갔었다. 베키의 개가 죽었을 때 보여 주었던 엘리자베스의 태도 때문에 그녀의 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 할 때 자연스럽게 베키를 보며 이야기 했고 베키도 당연히 자신이 데리고 가야 한다고 여겼다. 베키가 데려온 개는 벌써 베키와 친해져서 꼬랑지를 살랑거린다. 베키가 끈을 풀어주자 개가 뛰어 간 곳은 바로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자리였다. 옥수수 밭이 깨끗하게 다 밀렸다.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낑낑 거리던 개를 다시 묶어 베키가 끌자 개는 순순히 끌려간다. 봄부터 늦여름까지 이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지만 시간은 흐리고 사람들의 사연은 지속적으로 만들어 진다. 그녀에 대한 소문과 그녀의 죽음이 마을의 흥미 거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생겼다. 후드 청소하는 브랜든이 권총 자살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권총 자살을 했느냐로 입방아를 찧고 있다. 그리고 세 번의 봄과 여름이 지나갔다.

 

외부의 사람이 엘리자베스의 집을 사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그 집의 전 주인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외부 사람이 계약을 하던 날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다시 잠깐 나타났다. 싸인 몇 번 하고 그녀의 재산을 챙겨 떠났을 것이다. 난 엘리자베스의 집을 한번 더 둘러 보고 싶었다. 이곳 저곳을 둘어 보는데 클라짓 구석에 책 한권이 있었다. 안델센의 [빨간구두]라는 동화책이다.

 

책장 맨 뒤에 엘리자베스가 써 놓은 글이 있다.

-나 내 발목을 잘라야 할 것 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