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우리 곁에 있는 나무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집 앞의 나무에 봄이 환히 내려앉았습니다. 쥐똥나무의 앙증맞은 초록 이파리가 올망졸망 피어나는 걸 시작으로, 아파트 울타리 곁에서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 꽃으로 이어진 새 봄이 우리 곁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반갑고 여느 때보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이 봄에도 역시 목련의 봄 노래는 세상 시름과 무관하게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하얀 목련 꽃이 모두 활짝 피었습니다. 하나 둘 살펴보니, 아파트 건물 북쪽에 서 있는 목련은 지금이 한창이지만 남쪽의 목련은 어느 새 낙화를 시작했습니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나무가 우리 곁으로 고요히 봄을 불러온 겁니다.
○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 없는 곳은 없어요 ○
요즘같은 특별한 상황이라서가 아니라, 예전부터 힘주어 자주 올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무를 더 아름답게 느끼기 위해서라면, 우선 우리 곁에 있는 나무부터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봄 꽃은 물론이고, 단풍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곁 어디에라도 나무는 있습니다. 그렇게 바로 우리 곁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를 먼저 찾아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나무 없는 곳이 없으니까요. 도시 아파트 단지라면 더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더 많습니다. 나무를 베어낸 뒤 터닦은 사람의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나무들을, 그것도 아름답게 잘 자란 나무들을 골라서 심어 키우니까요.
말 없이 찾아온 우리의 봄을 아파트 단지에서 맞이하기 위해 오후의 산책에 나섰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환하게 피어난 백목련 꽃입니다. 고층 건물의 그늘에 묻혀있는 까닭에 햇살을 찾아 웃자란 듯한 백목련 여러 그루가 곳곳에서 제가끔 봄마중에 한창입니다. 햇살 훤히 드는 자리에서 활짝 핀 꽃이 있는가 하면 그늘 깊은 곳에서 아직 덜 핀 꽃까지 백목련의 다양한 봄 노래들이 아름다운 화음을 이룹니다. 봄이면 언제나 맞이하는 봄의 교향악입니다. 백목련 꽃 그늘에 들어서서 은은히 스며오는 향기에 눈 감습니다.
○ 나무 곁으로 불어오는 상큼한 봄 바람의 큰 노래 ○
서둘러 꽃 피운 살구나무에 이어 자두나무에서도 꽃이 피었습니다. 제 집 앞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나무 가운데 한 그루입니다. 가을이면 마을 아낙들 가운데 몇 사람이 잘 맺힌 자두를 따느라 화단 울타리를 넘어서는 그 자리에서 이 어두운 봄에도 장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통로에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피어난 꽃들이 봄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입니다. 마스크를 끼고 나무 곁으로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휴대폰을 꺼내 이리저리 오가며 자두나무 꽃을 사진으로 담아두려 애씁니다. 나무 곁으로 불어오는 봄바람이 한결 상큼해집니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가 바이러스에 지친 사람들을 성원하는 봄 노래입니다.
워낙 작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단풍나무도 꽃을 피웠습니다. 단풍나무는 가을에 붉은 잎이 그런 것처럼 이 봄에도 역시 초록의 새 잎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가까이 다가서서 새로 돋아난 자디잔 잎새들의 아우성에 귀기울일라치면 잎새 아래에서 땅을 향해 피어난 빨간 꽃송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워낙 작고, 여느 꽃들처럼 화려하지 않아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단풍나무는 어렵고 갑갑하게 봄을 보내는 도시인들의 힘겨운 발걸음과 함께 하려 어김없이 꽃을 피웠습니다.
도시의 봄이 캄캄하게 지나갑니다. 나무를 심는 날이라기보다는 나무를 더 잘 보살펴야 하는 날로 기억해야 할 식목일도 지나갔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우리의 이 봄과 함께 하려 안간힘하는 많은 나무들이 있어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직은 멈출 수 없는 ‘잠시 멈춤’과 ‘거리 두기’를 흔쾌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천이십 년, 새 봄의 아침입니다.
평안하십시오.
- 아파트 단지에서 지친 사람의 발걸음을 위로하는 나무를 찾아서
4월 6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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