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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자연의 일부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혹한 운명의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3. 9. 13:49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자연의 일부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혹한 운명의 나무

  ‘거리 두기’ ‘잠시 멈춤’……. 봄꽃 맞이에 분주하던 발길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 땅의 모두가 그러했듯이 지난 한 주 동안은 ‘거리 두기’ ‘잠시 멈춤’에 함께 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과의 약속도 모두 뒤로 미루고, 급한 일은 전화 통화로 처리했습니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 전인 이른 새벽에 작업실에 가서 냉동실에 쟁여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두문불출’ 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특별한 일이 없을 때라면 늘 그런 식이었지요. 그런데 “꼭 이래야만 한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고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그런 답답한 와중에 다음 주에 출고할 신문 칼럼을 준비하며 떠오른 나무가 있었습니다.

○ 감이 열리지 않아도 매우 크고 아름다운 감나무 ○

  경상남도 의령 정곡면 백곡리의 감나무입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린 〈의령 세간리 현고수〉와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를 찾아보던 그 날, 함께 찾아본 나무입니다. 〈의령 백곡리 감나무〉는 저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나무여서 자주 찾아보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처음 만난 건, 제가 나무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20년 쯤 전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그때에도 한눈에 감나무로서는 참으로 크고 잘 생긴 나무다라며 감탄할 수밖에 없던 나무였지요. 하지만 “감이 열리지 않는 나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심지어 “이제 베어내야 할 나무”라고 이야기하는 어른들도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4백 년 넘게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많고 많은 감을 나눠주었지만 이제 생식력이 고갈되어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지요.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제가 처음 낸 책에 나무를 상세히 소개하고, 곳곳에 이 감나무의 존재를 알렸지요. 그 뒤로 일일이 적기에는 어려울 만큼 여러 복잡한 사연이 나무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감나무라는 생각에서 한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한해 내내 나무의 상태와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촬영해 ‘설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영한 적도 있었고, 나무의 상태를 보다 정밀하게 조사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2008년에 〈의령 백곡리 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9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사람과의 ‘거리 두기’에 익숙지 않았던 나무의 삶 ○

  어수선하던 나무 주변은 차분하게 정리됐고, 널찍하게 나무의 보호구역이 만들어졌으며 주변에는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않도록 울타리가 처졌습니다. 보기에 근사했습니다. 그 사이에 마을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은 〈의령 백곡리 감나무〉를 마을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로 여기게 됐지요. ‘사람과 더불어 살던’ 나무가 이제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한’ 나무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나무에게는 그게 그리 행복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나무와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긴 겁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곁에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애면글면 여생을 살아가던 나무가 이제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진 겁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나무였지만, 나무로서는 그리 좋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무의 속내는 알 수 없습니다.

  〈의령 백곡리 감나무〉는 찾아갈 때마다 살아있다는 것이 점점 더 힘들다는 듯, 조금씩 더 쇠잔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한 해에 한 번쯤 찾아가 본 듯합니다만, 갈 때마다 그랬습니다. 이번에 찾아갔을 때에는 멀리에서도 나무의 기력이 쇠했다는 걸 금세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감나무로서는 무척 큰 나무입니다. 그러나 나무를 처음 만날 때의 우람한 자태를 생각하면 한참 못미치는 형국입니다. 나무 곁에서 만난 어른들은 이야기합니다. “감나무는 사람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 나무인데, 울타리를 쳐놓고,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니, 나무가 약해질 수밖에 없지. 다시 옛날처럼 잘 살아나는 걸 보기는 글렀어.”

○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과의 거리를 견디지 못하고 ○

  시간이 흐를수록 쇠잔해지는 나무의 상태가 참 안타깝습니다. 물론 〈의령 백곡리 감나무〉는 감나무로서 지나칠 정도로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입니다. 수명이 다해 노쇠 현상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나무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털어놓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발 소리를 들으며 열매를 맺는다는 감나무가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두기’를 하는 통에 한창 때의 기세를 잃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허투루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대관절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역시 자연의 일부인 나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 나라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후예들를 여전히 듬직히 지켜 ○

  신문 칼럼에는 그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미생물과의 싸움으로 온 나라가 정지 상태인 이 즈음, 사람들은 자연이 베푸는 온갖 혜택을 대가 없이 받기만 하며 살아왔지만, 사람들은 자연에 스며들기보다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환경을 일구는 데에만 일관해왔다고 썼습니다.

  “사람들은 미세한 티끌도 허용하지 않았고, 이름모를 생명체와의 공존은 극도로 혐오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먼지 한 톨까지 빨아들이는 청소기를 만들었고, 음용수에는 미세한 침전물도 허용하지 않았다. 미생물이 숨쉬며 살아가야 할 흙 땅은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단단한 콘크리트로 덮었다. 온갖 가지 항생제를 만들어 미생물을 살해했다. 철저히 차단했다. 그럴수록 미생물들은 사람이 지어낸 온갖 항생제를 이겨내려 안간힘했다. 새로운 형태로의 변형을 거치면서 애면글면 살아남았다. 생명 가진 것들의 본능이다.”

○ 자연의 모든 생명체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며 ○

  그리고는 자연 안에서 더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와의 평화로운 공존이 참으로 절실한 시절이라고 마무리했습니다. 아직 출고 전이어서, 몇 번의 퇴고를 거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익숙지 않은 ‘잠시 멈춤’과 ‘거리 두기’로 한 주일을 쓸쓸하게 보내며 떠오른 〈의령 백곡리 감나무〉 이야기였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평화로운 날들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자연의 일부로 자연에 묻혀 더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3월 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