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큰 나라였던 마가다ㆍ코살라ㆍ아완티ㆍ왐사 등의 4개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었다. 붓다가 주로 활동했던 인도 북부는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이 용호쌍벽을 이루는 지역이었다. 나중에 싯다르타의 조국인 카필라 왕국도 결국 코살라국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인도의 젖줄 갠지스를 끼고 있는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는 한국의 경주에 해당한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7e86543c-b1c0-4e5e-a15a-09ee7cf73199.jpg)
인도의 젖줄 갠지스를 끼고 있는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는 한국의 경주에 해당한다. 백성호 기자
![인도 중부의 아잔타 석굴에는 경주 석굴암의 원형에 해당하는 건축양식이 엿보인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180a14fe-1961-4c2c-8459-bd6af3038ee5.jpg)
인도 중부의 아잔타 석굴에는 경주 석굴암의 원형에 해당하는 건축양식이 엿보인다. 백성호 기자
![인도의 유피주와 비하르주는 가난하다. 이 지역에 붓다의 유적과 불교 성지가 유독 많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a1df83a6-9984-4ab5-918f-17ddc9c3bbb6.jpg)
인도의 유피주와 비하르주는 가난하다. 이 지역에 붓다의 유적과 불교 성지가 유독 많다. 백성호 기자
![인도의 들판에서 일하는 아낙네들. 오지의 시골은 지금도 옛날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c7359ad6-7e6a-4fd3-9bfa-4d5502563fff.jpg)
인도의 들판에서 일하는 아낙네들. 오지의 시골은 지금도 옛날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나는 한국의 크리스천들로부터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이나 유럽이 왜 잘 사는 지 아나?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이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발전한 이유가 뭔지 아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을 봐라. 거의 대부분 그리스도교 국가다. 그런데 불교 국가들을 봐라. 인도가 얼마나 가난한가? 부탄이 얼마나 가난한가? 또 동남아의 불교 국가들이 얼마나 가난한가? 그러니 하나님을 믿어야 나라도 은혜를 받는다. 그래야 경제도 발전한다.” 실제 한국의 교회에서 공공연히 이렇게 말하는 목회자들이 꽤 있다.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신자들도 적지 않다.
![라즈기르에서 15km떨어진 나란다 대학 유적.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세계 최초의 대학이었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cd575e4c-00c6-49c8-9840-4cd4e569766f.jpg)
라즈기르에서 15km떨어진 나란다 대학 유적.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세계 최초의 대학이었다. 백성호 기자
![나란다 대학은 5세기초 굽타 왕조 때 지어졌다. 세계 각국에서 승려들이 유학을 와 불교를 공부했다. 이곳은 붓다의 제자인 사리불의 고향이기도 하다. 당시 인도는 손꼽는 문명국이었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389fc3f1-b2bf-4796-9e54-5de6f0896057.jpg)
나란다 대학은 5세기초 굽타 왕조 때 지어졌다. 세계 각국에서 승려들이 유학을 와 불교를 공부했다. 이곳은 붓다의 제자인 사리불의 고향이기도 하다. 당시 인도는 손꼽는 문명국이었다. 백성호 기자
![인도의 태양은 강렬하다. 3월부터 작렬한다. 여름으로 갈수록 섭씨 40~50도는 넘나든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6ed63df1-0dee-4436-96b1-4601df0f2c9a.jpg)
인도의 태양은 강렬하다. 3월부터 작렬한다. 여름으로 갈수록 섭씨 40~50도는 넘나든다. 백성호 기자
당시 라즈기르에는 웃다카 라마푸타라는 이름난 수행자가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를 찾아갔다. 웃다카 라마푸타가 이끄는 수행그룹의 규모는 알라라 칼라마보다 더 컸다. 따르는 제자만 무려 700명이었다. 알라라 칼라마의 제자가 300명이었으니, 2배가 넘는 규모였다.
![싯다르타가 찾아갔던 인도의 스승들도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그 방법은 각자가 달랐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e028a56a-371f-4523-9884-a699c9f24363.jpg)
싯다르타가 찾아갔던 인도의 스승들도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그 방법은 각자가 달랐다.
![뱀으로 착각하던 새끼줄을 새끼줄로 바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럴 때 우리의 눈도 열린다.](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b7ec2d10-c518-456a-a220-e0e760f317f5.jpg)
뱀으로 착각하던 새끼줄을 새끼줄로 바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럴 때 우리의 눈도 열린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뱀도 마찬가지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 이 모두를 사람들은 뱀으로 본다. 맹독을 품은 채 우리를 노려보는 독사로 본다. 싯다르타도 그랬다. 그는 독사로만 보이는 생로병사의 정체를 뚫고자 했다. 생로병사가 뭔가. 인간의 삶이다. 그러니 싯다르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서 웃다카 라마푸타를 찾아갔다.
사람들은 웃다카 라마푸타가 “해탈의 경지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싯다르타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을까. 나는 궁금했다. 웃다카 라마푸타가 말하는 경지란 대체 어떤 걸까. 불교 경전에는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지(비상비비상처ㆍ非想非非想處)’라고 표현돼 있다. 웃다카 라마푸타는 그것을 ‘해탈’이라고 불렀다.
![갠지스 강가에서 힌두교 수행자인 요기가 피워놓고 있던 향. 그들의 지향도 '해탈'이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198b1546-b567-4085-850f-76b4cc71aef2.jpg)
갠지스 강가에서 힌두교 수행자인 요기가 피워놓고 있던 향. 그들의 지향도 '해탈'이다. 백성호 기자
그럼 왜 ‘생각이냐, 생각이 아니냐, 혹은 생각 아닌 것도 아니냐’하는 게 중요할까. 그건 단순한 말장난일까, 아니면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걸까. 인간은 ‘나(에고)’가 있어서 고통을 받는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떡해야 할까. ‘나’가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나’가 없으면 생각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몸뚱아리를 가지고 사는 동안 생각은 자꾸만 올라온다. 물론 아주 잠깐 동안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체험할 수는 있다. 그래봤자 잠시다. 생각은 다시 또 올라온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가 있으면 생각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나가 있다. 그러니 ‘해탈=무아(無我)’라고 여기던 인도인들에게 ‘생각’이란 놈은 굉장한 골칫덩어리였다. 고대 인도인들은 생각이 있는 한 ‘나’가 있다고 여겼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무아’가 돼야 하는데 자꾸만 생각이 올라오니 난감해 했다. 웃다카 라마푸다가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나름의 해법이었다.
![인도 델리 박물관에서 만난 조각상.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 세상의 이치를 설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7e476e1c-bcac-46f1-b36d-33031caddfef.jpg)
인도 델리 박물관에서 만난 조각상.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 세상의 이치를 설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인도의 아잔타 석굴. 불상과 둘레, 그리고 바깥의 건축양식이 경주 석굴암과 무척 닮았다. 다만 경주 석굴암의 조각이 더 세련되고 정교하다. 인도의 석굴이 더 투박하고 원시적이다.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76528818-0a58-497b-8cea-f5bd950a5ea5.jpg)
인도의 아잔타 석굴. 불상과 둘레, 그리고 바깥의 건축양식이 경주 석굴암과 무척 닮았다. 다만 경주 석굴암의 조각이 더 세련되고 정교하다. 인도의 석굴이 더 투박하고 원시적이다. 백성호 기자
싯다르타는 스승에게 가차없이 물었다.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자리에서는 ‘나’가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스승께서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탈이 아닙니다. 스승님은 번뇌를 다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의 지적은 단호했다. 웃다카 라마푸타는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결국 싯다르타는 그를 떠났다. 세 번째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이었다. 떠나는 싯다르타에게 웃다카 라마푸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네가 먼저 해탈을 이루게 된다면, 부디 여기로 와서 우리를 해탈케 해달라.” 알라라 칼라마나 웃다카 라마푸타는 당대에 내로라하는 수행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깨달음은 불완전했다.
![라즈기르에는 훗날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가 꽃을 든 채 제자 가섭과 미소를 주고 받았다는 영축산이 있다. 영축산을 오르는 순례객들이 돌멩이를 하나씩 쌓아서 만든 조그만 돌탑. 백성호 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64a8acc2-e234-4936-a374-9c3e8c7afb48.jpg)
라즈기르에는 훗날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가 꽃을 든 채 제자 가섭과 미소를 주고 받았다는 영축산이 있다. 영축산을 오르는 순례객들이 돌멩이를 하나씩 쌓아서 만든 조그만 돌탑.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