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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

노르웨이 1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5. 22. 12:05

여섯 개의 섬으로 이뤄진 북부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의 섬들은 기이한 지형과 북극권의 변화무쌍한 날씨로 생경한 경관을 빚어낸다. 대서양 난류와 차가운 대기로 만들어진 해무가 거대한 바위산에 걸렸다. 이제 막 백야가 시작된 북극권의 오후 8시쯤의 풍경이다.


적막한 북해의 바다와 기이한 바위 섬들이 그려내는 압도적인 자연 경관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곳. 이곳은 북부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입니다. 여섯 개의 크고 작은 섬이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로포텐 제도에 서쪽에 유럽대륙의 끝이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E 10번 고속도로도 여기서 북해로 잠깁니다. 노르웨이라면 깎아지른 벼랑과 거대한 협곡의 피오르의 장엄함을 먼저 떠올립니다만, 여기 로포텐 제도가 빚어내는 기이하고 생경한 아름다움은 ‘놀라움’에 가깝습니다. 여행의 매력이 ‘낯섦’에 있다고 믿는 이라면, 온통 익숙한 일상의 정반대의 경관으로 가득한 로포텐 제도야말로 가장 매혹적인 여행지임에 틀림없습니다.

# 유럽대륙의 길이 여기서 바다로 잠긴다…로포텐 제도

▲ 로포텐 제도의 중심도시 스볼베르 서남쪽의 항구마을 헤닝스베외어의 항구. 대구어업의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마을이다.

북극권에 속한 북부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 여섯 개의 섬이 도로로 길게 이어진 제도의 서쪽 끝에 작은 마을 Å가 있다. Å는 ‘오’라고 읽는다. 딱 한 글자의 이름 ‘오’. 노르웨이어 알파벳의 마지막 29번째 글자가 Å다. 그러니 유럽 대륙이 바다로 잠기는 제도의 끝에다 적어두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섬과 섬을 딛고 이어진 E 10번 도로의 끝에 그 마을이 있다. 로포텐에서는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의 표지판마다 Å의 이름이 있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던 건 대륙의 끝이라는 지도 속의 지형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매혹적이었던 건 이름이었다. 입안에서 단 한 글자 ‘오’라는 발음만으로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정보도 단서도 없었다. 다만 겨울에는 끝없이 밤만, 여름에는 낮만 계속된다거나 북해의 거친 바다에서 굵은 팔뚝의 노르웨이 어부들이 커다란 대구를 잡아올린다는 것쯤이 Å에 대해, 혹은 로포텐 제도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바다는 격정적이되 땅은 적막한, 그것 그대로 하나의 섬인 기괴한 바위산이 잔설의 푸르스름한 색조로 가득한 그런 풍경이 거기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Å에는 가지 못했다. 서울에서 비행기와 차와 배로 로포텐 제도까지 9000㎞를 가서 고작 60㎞쯤의 거리를 남겨두고서 말이다. 로포텐 제도의 장엄한 경관에 비해 턱없이 짧은 일정 탓이었다. 노르웨이 로포텐 관광청의 마케팅 매니저 크리스티안 나슈흐는 일행에게 주어진 이틀이란 시간을 Å까지 왕복하는데 쪼개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로포텐 제도의 장엄한 풍경을 감안한다면, 그의 선택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가 이해하지 못했던 건 Å가 여행자들에게 물리적이고 실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이고 판타지 같은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Å를 가지 못했지만, 그래서 ‘다시 그곳에 갈 이유’가 남았다.

# 보되…로포텐 제도의 관문

▲ 로포텐 제도는 천혜의 대구 어장이다. 스볼베르의 항구에서 대구를 말리는 모습.

북극권 너머의 땅 로포텐 제도까지 가는 길은 멀고 복잡하다. 해마다 여름에는 대한항공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까지 직항 전세기를 운항하고 있지만, 다른 계절에는 경유 항공편만 있다. 오슬로까지 가는데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다시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거기서 다시 로포텐을 마주 보는 내륙 쪽 항구도시 보되까지 또 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에서 보되까지 비행기만 도합 네 번이다. 보되에서 다시 로포텐의 중심도시인 스볼베르까지는 배를 이용했다. 오슬로, 베르겐, 보되… 그다음이 로포텐이었다. 서울에서 쉬지 않고 간다 해도 꼬박 이틀쯤 걸리는 먼 길이었다. 비행기로, 차로, 또 배로…. 멀고 복잡할수록 목적지에 대한 기대는 더 강렬해지는 법이다.

로포텐 제도로 향하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는 항구도시 ‘보되’에서부터 시작하자. 노르웨이의 19개 주(州) 가운데 하나인 노를란주의 대표 도시인 보되는 노르웨이에서 철도로 갈 수 있는 최북단이다. 더 북쪽의 도시 나르비크에도 기차가 들어가긴 하지만, 나르비크까지 이어지는 철로는 노르웨이가 아니라 스웨덴 철도인 오포텐 선으로 연결돼 있다.

보되는 북해를 통해 로포텐 제도로 들어가는 바닷길의 관문이자, 하늘길의 입구이기도 하다. 로포텐으로 들어가는 배가 여기서 출발하고, 항공기가 뜨는 유일한 공항이 여기에 있다. 보되 공항이 로포텐행 비행기가 뜨는 유일한 공항인 이유는, 로포텐 공항 활주로 사정 때문이다. 활주로가 워낙 짧아 50인승 프로펠러기가 운항하는데, 프로펠러 비행기의 짧은 순항 거리 때문에 보되 공항까지만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30분 남짓. 이륙하자마자 착륙 기내방송이 나온다.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 보되는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다. 도시 구석구석까지 다 걸어서 볼 수 있을 정도다. 공항에서 내린 승객들이 너나없이 가방을 끌고 천천히 시내까지 걸어갈 정도이니 말 다 했다. 흰 눈으로 뒤덮인 날카로운 산정이 감싸고 있는 도시 건물들은 노르웨이 국기 색깔처럼 붉은색과 흰색, 그리고 파란색 일색이었다. 진청색의 차고 맑은 북해의 바다를 끼고 있는 보되 항구에는 흰 요트와 원색으로 칠한 어선들이 가득 정박하고 있었다.

‘살트 스트라우멘’. 거센 북해의 조류가 해협을 통과하면서 바다가 끓어 넘치는 곳이다.


# 거친 조류의 소용돌이…압도적인 자연

북극권에 속하는 도시들이 그렇듯, 보되를 비롯한 북부 노르웨이의 압도적인 관광 아이콘은 사실 오로라다. 보되에서 겨울철 가장 인기 있는 여행상품이 ‘헌팅 투어’. 사냥의 표적은 당연히 짐승이 아닌 오로라다. 북극권의 밤하늘을 너울거리는 초록의 오로라는 그러나 밤이 계속되는 극야 현상의 겨울철에 주로 볼 수 있다.

북부 노르웨이의 겨울철 대표 관광상품이 ‘헌팅’이라면 백야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이즈음에 인기 있는 투어는 ‘사파리’다. 사파리라면 아프리카의 초원을 누비며 지프형 차로 야생의 코끼리나 사자 따위를 보러 가는 투어를 생각하기 쉽지만, 북유럽에서 사파리란 트레킹이나 짧은 투어를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보되의 사파리 투어는 이름하여 ‘시(Sea) 사파리’다. 배를 타고 북해의 해안을 누비면서 바다 독수리를 보고, 해안 습곡을 감상하며 선상에서 대구 낚시를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북부 노르웨이의 도시 보되의 대표적인 관광 투어 ‘시 사파리’에서 마주친 흰꼬리수리.



팔뚝만 한 크기의 대구가 심심찮게 낚여 올라오는 것도, 흰꼬리수리가 수직으로 하강해 먹이로 던져준 고등어를 발톱으로 찍는 모습도, 화석이 된 나뭇결 같은 문양이 뚜렷이 새겨진 습곡지형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더 깜짝 놀랐던 건 거센 조류가 만들어낸 급류였다. ‘살트 스트라우멘’. 두 개의 섬 사이의 해협을 흐르는 조류가 만들어내는 격렬한 소용돌이를 이렇게 불렀다. 군사작전에나 쓰일 법한 강철 바닥의 출력 높은 소형 보트로 갈아타고 해협으로 들어갔다. 해협에 가까워지자 바다는 마치 폭우가 쏟아진 뒤의 거친 급류의 강처럼 끓어 넘쳤다. 가득 찬 욕조 바닥의 마개를 연 듯 소용돌이가 바다 여기저기서 피어올랐다.

급류의 거친 물살이 보여주는 건, 통제되지 않는 압도적인 자연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났던 노르웨이 내만 피오르의 까마득한 검은 절벽이 그랬고, 해빙기에 절벽마다 실타래처럼 걸리는 헤아릴 수 없는 깎아지른 폭포의 높이도 그랬다. 너무도 크고 웅장해 한편으로 기괴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 위도를 높여 노르웨이 북부로 올라갈수록 자연은 더욱 생경했고,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구름으로 뒤덮인 북해의 바다에서 햇살이 무대조명처럼 비춰졌다. 로포텐 제도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냈다.


# 경이의 풍경을 만나다…바다에서 본 로포텐

보되에서 로포텐 제도까지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크루즈 ‘후티루튼’을 탔다. 후티루튼은 노르웨이 해운사의 명칭이자 서해안을 따라 운항하는 연안 크루즈의 이름이다. 본래 노르웨이 연안 주민들의 이동이나 수송을 위해 운항하던 이른바 ‘생활 선박’이었으나, 1980년대 중반 선박을 교체한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로를 운항하는 크루즈가 됐다. 배는 노르웨이 서해안의 제2 도시인 베르겐에서 최북단 러시아의 접경 도시 시르케네스까지 5박 6일에 걸쳐 운항하는데, 크루즈이기도 하면서 때론 구간 구간 교통편 역할도 한다.

보되 항구에서 오후 3시에 탄 선박은 후티루튼 크루즈의 폴라뤼스호였다. 폴라뤼스호는 1996년 건조된 7층 규모의 호화선박. 737명의 승선 정원에 479개의 침대를 갖춘 대형 크루즈다. 식당과 극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지만 도무지 배 안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건 항해 내내 펼쳐진 바다의 경관 때문이었다. 로포텐 제도가 가까워지면서는 아예 운항 내내 배 뒤쪽 갑판에서 탄성을 지르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크루즈 위에서 만난 로포텐 제도의 풍경은 ‘경이’에 가까웠다. 로포텐 제도는 먼저 먼바다 위에 늘어선 설산으로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서자 진청색 바다 위에 풀 한 포기 자랄 것 같지 않은 거친 바위산들이 흰 눈을 뒤집어쓴 채 저 스스로 하나의 섬으로 서 있었다. 섬을 해무가 온통 휘감았는데,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강렬한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규모로 본다면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극적인 장면을 위한 누군가의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무와 그 사이로 쏟아지는 볕은 풍경을 시시각각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경한 시각적인 경험이었다. 이런 풍경이 펼쳐질 때마다 배는 속도를 줄이고 바다 위를 천천히 선회했다.

로포텐 제도의 섬과 섬이 겹쳐지면서 어두운 섬너머로 뒤편의 웅장한 설산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 혹독한 자연이 만들어낸 낯선 경관들

노르웨이 북서해안을 따라 150㎞에 걸쳐 길게 이어진 로포텐 제도는 다섯 글자 이상의 좀처럼 외우기 힘든 이름(이를테면 ‘아우스트보게위’나 ‘베스트보게위’ 같은)을 가진 섬 여섯 개가 늘어선 군도(群島)다. 크루즈가 로포텐 제도의 중심 도시인 스볼베르에 도착한 건 출항 여섯 시간이 지난 뒤였다. 오후 아홉 시였지만, 햇살은 오후 네 시쯤의 그것이었다. 밤이 깊어도 좀처럼 어두워지지 않았다. 새벽 두 시를 넘겨도 거리는 뿌연 여명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북극권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로포텐 제도는 북극권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춥지 않다. 북대서양 난류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하늘은 온통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차가운 대기와 따뜻한 바다의 기온차이가 연신 해무와 구름을 만들어 냈고, 이렇게 만들어진 안개와 구름은 북극해의 거센 바람에 빠르게 움직였다. 이쪽에서는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어 비가 내리는데, 한쪽에서는 햇살이 쏟아졌다. 비가 오다 그치고, 햇살이 쏟아지다 다시 구름이 밀려들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 탓에 곳곳에서 무시로 무지개가 피었다. 북구의 요정 ‘트롤’을 이름으로 삼은 로포텐 제도의 피오르를 찾아가는 ‘시 사파리’ 뱃전에서 바다 위로 뜬 반원형의 쌍무지개를 만나기도 했다. 색의 경계가 저렇듯 선명하고 또렷한 무지개를 본 건 그게 처음이었다.

로포텐 제도는 대구어업의 집산지다. 해마다 2월부터 4월까지 로포텐 제도 일대에는 북해의 차가운 바다에 알을 낳는 대구 떼들이 몰려든다. 회유하는 대구 떼를 쫓아 4000명에 달하는 굵은 팔뚝의 노르웨이 어부들도 로포텐의 섬으로 들어온다. 로포텐 제도의 대구어업의 역사는 자그마치 1000년이 넘는다. 어부들이 잡아낸 대구는 남쪽 도시 베르겐으로 옮겨져 당시 한자동맹의 조약에 따라 전 유럽으로 수출됐다. 1971년 북해에서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나라였던 노르웨이에서 섬사람들에게 대구는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대구어업은 예나 지금이나 로포텐 제도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기둥이지만, 최근에는 매혹적인 섬의 풍경을 즐기러 들어오는 관광객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입도 못지않다. 대구어업이 한창인 이른 봄에 로포텐 제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낚시를 즐기거나 대구 떼를 따라 들어온 범고래를 보는 투어에 나선다. 여름이면 해변에서의 해수욕을 즐기거나 북해의 바다를 보며 백야 골프를 치고, 겨울이면 바다 위로 일렁이는 오로라를 기다린다. 좀처럼 닿기 힘든 먼 거리와 혹독한 자연조건이 오히려 훌륭한 판타지의 경관이 돼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로포텐 제도의 중심 항구도시인 스볼베르.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어둑한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에 눈 덮인 산이 드러났다. 로포텐 제도에 머무는 내내 도처에서 이렇듯 강렬하면서도 회화적인 풍경을 만났다.


# 비현실을 넘어선 초현실의 공간

여행을 하다 보면 왜 이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내가 여기 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을 때 말이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곳이나, 영화나 소설 속의 공간 속에 실제로 발을 딛는 순간이라면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단언컨대 다른 어떤 여행지보다, 로포텐에서는 그런 순간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해가 지지 않는 로포텐 제도의 도시 스볼베르의 10층짜리 호텔 옥상에서 성당 너머로 구름 사이의 햇살이 퍼지는 새벽 두 시의 도시를 내려다보고 섰을 때도 그랬고, 200년이 다 된 내력의 식당에서 북해의 깊은 바다를 헤엄치다 잡힌 대구를 석 달 말려 만들었다는 음식을 받을 때도 그랬다.

그곳이 비현실의 공간처럼 느껴졌던 건 로포텐의 풍경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느껴졌던 것 중의 하나가 섬 연안의 바다 빛깔이었다. 흔히 ‘에메랄드빛’으로 비유되는 남국의 해안 휴양지의 풍경이 섬 곳곳에 있었다. 희고 고운 백사장과 투명한 옥빛의 물빛의 바다였다. 이런 매혹적인 색감의 바다의 배경이 눈 덮인 설산이라는 건 눈으로 보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가장 우아한 쪽빛 바다가 펼쳐진 스볼베르 북쪽 작은 마을 호브 헤스테고드에서 순백의 백사장을 따라 말을 타고 걷는 경험도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바다를 끼고 있는 골프장에서 한여름 백야의 자정에 골프를 즐긴다면 그 기분은 또 어떨 것인가. 로포텐 제도에서는 해봐야 될 것이 너무 많았다.

로포텐 제도의 도시 스볼베르 뒷편의 티옐베르그산 중턱에서 본 북해의 바다오 도시풍경 비와 안개가 가득한 날이었다.



# 비 오는 산정에서 북해를 바라보다

로포텐 제도의 핵심이 경관이라면, 그 경관은 고도를 높일수록 더 감격적이다. 시퍼런 칼날 같은 암봉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섬과 바다의 압도적인 풍광을 담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능히 여행의 충동으로 끌어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명소가 섬 곳곳에 널려 있다. 해발고도 900m가 넘는 히말틴덴산과 레이네브링엔산, 혹은 로포텐 제도 서남쪽 끝의 작은 섬 베뢰이…. 그중에서도 굵은 밑줄을 그을만한 곳이 ‘레이네브링엔’이다. 기막힌 트레킹 코스가 즐비한 노르웨이에서 ‘10대 트레킹 코스’를 꼽으면 단연 ‘1등’으로 꼽힌다는 곳이니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그러나 짧은 일정과 거친 날씨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로포텐 관광청 직원 나슈흐가 가깝다며 추천해준 스볼베르 뒤쪽의 티옐베르그산에 올랐다. 쏟아진 빗속에서 산정에 서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비로 온몸이 다 젖은 채 거친 산과 검푸른 북해, 그리고 마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레이네브링엔도, 히말틴덴산도, 유럽 대륙의 도로가 바다로 잠기는 마을 Å도 밟지 못했지만, 로포텐에서 ‘그 밖의 다른 것’의 경관만으로도 압도당하기에 충분했다. 로포텐 제도를 떠나는 날, 못내 아쉬워하는 기색에 일행 중 한 명이 유럽대륙의 도로가 끝나는 마을 Å를 기념하는 자그마한 자석기념품을 내밀었다. 나슈흐도 어깨를 툭 치며 “다음번에는 꼭 1주일 이상의 여정으로 오라”고 했다. 바지 주머니 속의 기념품을 만지작거리며 로포텐 제도로의 또 한 번의 여행을 꿈꾸게 된 건, 아직 로포텐 제도를 떠나지 않았을 때였다.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 그곳이야말로 ‘거기 있으면서 다시 그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하는 곳’이었다. 마치 환영처럼….

로포텐 제도의 여섯개 섬은 모두 다리로 이어져있다. 여섯개의 섬 주민을 다합쳐도 인구는 2만5000명이 고작. 그래서 길은 늘 적막으로 가득차 있다.




로포텐 제도 가는 길 =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가는 정규 직항편은 없지만, 휴가시즌이 시작되는 오는 6월 말부터 대한항공이 직항 전세기를 운항한다. 오슬로행 대한항공 전세기 운항 날짜는 6월 24일, 7월 1, 8, 15, 22, 29일 등 총 6번이다. 로포텐 제도만 가겠다면 오슬로에서 보되까지 항공편을 이용하고, 다시 보되에서 배나 항공편으로 로포텐 제도로 들어가야 한다.

Bodø는 외래어 발음규칙에 따라 보되라고 읽지만, 현지인들의 발음은‘부다’에 가깝다. 보되에서 스볼베르 공항까지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빠르고 편리하지만, 바다 경관을 보려면 크루즈 후티루튼을 타는 게 낫다. 보되에서 로포텐 제도의 중심인 스볼베르까지는 크루즈로 6시간이 걸린다.

여행정보 = 스볼베르에는 감각적인 느낌의 북유럽풍 호텔들이 많다. 스볼베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톤(THON)호텔 로포텐’을 추천한다. 컨벤션홀이 있는 호텔 10층 옥상에서는 일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스볼베르 항구의 손바닥만 한 섬에 들어선 ‘스칸딕 스볼베르 호텔’도 운치 있다. 다국적 인터넷 호텔 앱을 이용하면 톤호텔은 조식 포함 35만 원, 스칸딕호텔은 21만 원에 묵을 수 있다. 가족단위 여행이라면 성어기 때 외지에서 몰려든 어부들의 임시숙소인 ‘로르부’가 적당하다. 최근에는 아예 관광객을 겨냥해 세련된 독채 펜션 형태로 지은 것들이 많다. 대부분 조리 시설이 구비돼 있고, 숙박요금도 호텔보다 저렴한 편이다.

로포텐 제도를 이루는 여섯 개의 섬은 모두 교량으로 이어져 있고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운행간격이 띄엄띄엄하므로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 소형차 기준으로 하루 대여요금은 25만 원 내외로 노르웨이 내륙보다 비싸다.

노르웨이는 어획쿼터제 적용에 대한 우려와 독자적인 배타적 경제수역 유지 등을 위해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다. 화폐단위는 크로네. 1크로네에 약 144원이다. 노르웨이는 북유럽 국가 중에서도 물가가 비싼 편이다. 노르웨이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3-6428.


로포텐(노르웨이)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6년 5월 1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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