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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문화재의 자격, 서열이냐 전승 능력이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3. 2. 23:25

인간문화재의 자격, 서열이냐 전승 능력이냐

입력 : 2016.03.02 03:00 | 수정 : 2016.03.02 07:07

문화재청, 전승 능력 중점 두고 태평무 보유자로 양성옥 예고하자
무용계 "서열 파괴다" 반발

28년 만에 새로 나오게 될 태평무(太平舞) 인간문화재를 둘러싸고 무용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1일 문화재청이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 양성옥(62)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인정 예고한 것에 대해 탈락자를 비롯한 일부 무용계 인사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9일에는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국수호·김매자·배정혜·최청자씨 등 대표적 한국무용가들이 포함된 무용계 인사 36명이 문화재청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크게 '서열이냐, 전승 능력이냐' '신(新)무용 계승자가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느냐'는 두 가지다.

서열과 전승 능력 논란

근대 무용가 한성준(1875~1941)이 한영숙과 강선영에게 전승했던 태평무는 1988년 강선영류(流)만 문화재 지정이 됐다. 지난해 12월 태평무 보유자 심사를 받은 4명 중 강선영류의 이현자(80)씨와 이명자(74)씨, 한영숙류의 박재희(66)씨는 탈락했다. 결과를 놓고 '서열 파괴의 이변'이라는 말이 나왔다.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양성옥 교수는 심사를 받은 강선영 문하 세 명 중에서 가장 연소자였다. 반면 강선영 제자 중 가장 서열이 높고 1993년 문화재관리국이 보유자 후보로 인정했던 이현자씨는 여전히 뛰어난 춤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번에 보유자가 되리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양 교수는 이현자씨에게서도 춤을 배웠기 때문에 스승이 제자 밑에서 전수 활동을 하는 상황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현자(왼쪽 사진) 태평무 전수조교와 양성옥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태평무를 추는 모습. 서열상으로 이씨가 새 태평무 보유자가 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양 교수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됐다.  

 

이현자(왼쪽 사진) 태평무 전수조교와 양성옥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태평무를 추는 모습. 서열상으로 이씨가 새 태평무 보유자가 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양 교수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됐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하지만 무형문화재 보유자에게는 '전승 능력'이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문화재청은 보유자 인정 예고 당시 양 교수에 대해 '전승 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무용계 인사 A씨는 "고령인 이현자씨가 보유자가 될 경우 몇 년이 지나면 명예보유자로 물러날 것이고, 그러면 보유자를 또 선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특정 유파가 아니라 종목 전체의 계승을 우선시해야 하며, 계속 수제자에게로만 계승이 될 경우 오히려 전승이 배타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무용 계승자 논란

양성옥 교수가 전통무용과는 다른 계보인 신무용을 계승한 무용가라는 점도 논란 요소가 되고 있다. 근대 무용가 최승희가 서양 춤과 한국 춤을 접목해 개척한 신무용은 제자인 김백봉 경희대 명예교수에게 계승됐고, 양 교수는 경희대에서 김백봉 교수로부터 춤을 배웠다.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무용계 인사들은 "전통춤과 신무용은 신체 호흡과 춤사위 기법 등이 완전히 다른 춤"이라며 "우리 춤의 원형과 전통성 계승이라는 문화재보호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명백히 강선영 문하인 양 교수가 신무용을 배웠다는 이유로 '전통성'이 약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반론도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문화재청은 보유자 인정 예고 이후 30일 동안 이의가 없을 경우 보유자를 확정 짓지만, 이번처럼 이의가 생길 경우 재심의가 불가피하다. 문화재위원회는 오는 4일 소위원회와 11일 분과회의에서 관련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태평무와 함께 심사가 이뤄졌지만 보유자 인정이 보류된 승무와 살풀이도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