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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저택 정원 장식물로 팔려갔던… 고려초 3층석탑 80년만의 귀향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3. 1. 22:35

日 저택 정원 장식물로 팔려갔던… 고려초 3층석탑 80년만의 귀향

입력 : 2016.03.01 03:00 | 수정 : 2016.03.01 09:43

1935년 일본으로 무단 반출돼… 日소장자 설득해 국내로 들여와
일제 때 한국 石物 인기… 불법 반출 규모 파악 안돼

8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고려 3층석탑’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신관 옆에 서 있다.
8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고려 3층석탑’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신관 옆에 서 있다. /오종찬 기자

 

1935년 11월 26일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에서 대규모 전람회가 열렸다. 제목은 '시대 민예품 석등롱(石燈籠) 전람회'. 일본과 조선의 도자기·목기(木器) 등 2500점, 석물(石物) 100점, 직물 350점이 전시됐다. 아기자기한 미술품 사이에서 특히 눈길을 끈 건 조선에서 건너온 다양한 석조물. 높이 2.9m에 달하는 '신라 3층석탑'을 비롯해 조선 석등, 소형 석탑, 석인(石人) 등이 인기를 끌었다.

세계적 골동품상이었던 야마나카(山中)상회가 주최한 이 전시는 실은 팔기 위해 물건을 내놓은 경매전(競賣展)이었다. 야마나카는 도록에서 "여러 해 동안 수집한 조선 고대의 각종 석조물을 전시해 감상을 풍부하게 했다"고 선전했다. 첫 이틀은 VIP를 초대했고, 사흘 동안 일반에 공개해 작품을 거의 다 팔아치웠다. 위풍당당한 '신라 3층석탑'은 11월28일 한 일본인 수집가에게 팔렸다. 그는 규슈 사가현(佐賀縣)의 자택 정원에 석탑을 들여다 놓고 평생 감상했다. 이때 함께 구입한 조선의 석등과 석인 등은 주차장 등 집안 곳곳에 장식했다.

일제 강점기 무단으로 일본에 반출돼 80년간 개인 저택의 정원 장식물로 전락했던 3층석탑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학고재갤러리 우찬규 대표는 "10년간 일본인 소장자를 설득한 끝에 구입, 지난해 11월 국내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석탑 연구자인 박경식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장은 "신라 탑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신라 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 석탑"이라며 "당당하고 아름다운 비례미가 돋보이고 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건축 양식이 살아 있는 수작(秀作)"이라고 했다.

석탑의 운명은 기구했다. 정확히 국내 어디에 있었고, 언제 반출됐는지 기록이 없다. '석조문화재 그 수난의 역사'를 쓴 정규홍씨는 "국내에서 탑이나 부도는 종교적 의미가 큰 데다 마을의 상징 등으로 귀히 여겨 감히 개인 소유물이란 생각을 못했다"고 했고, 석탑 연구자인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은 "선물용으로도 많이 나갔던 불상·불화와 달리 일본에 있는 한국 석물들은 거의 일제 강점기에 불법 반출된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일본에선 조선 석조물을 '감상용'으로 구입해 정원에 들여놓는 게 유행이었다. 석물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자 사대부 무덤의 혼유석(魂遊石)까지 빼돌렸다고 한다. 1933년 11월 야마나카상회가 주최해 오사카에서 열린 경매전에서 간송 전형필(1906~ 1962)이 일본의 한 재벌과 끝까지 경합을 벌여 '통일신라 3층석탑' 등을 사들인 일화도 있다.

현재 일본에 우리 석탑이 얼마나 있는지는 대략적인 숫자도 파악하기 힘들다. 1965년 '한·일 문화재 협정' 당시 반환된 문화재에 석탑류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대부분 개인 소유였기 때문. 돌아온 '고려 3층석탑'은 현재 서울 소격동 학고재 신관 옆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