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의 평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 내 것
입력 : 2016.02.11 09:37
영월 섶다리·메타세쿼이아길
![영월 섶다리·메타세쿼이아길](http://travel.chosun.com/site/data/img_dir/2016/02/10/2016021001208_0.jpg)
겨울 강원도엔 스키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여름 우르르 몰려든 피서객 무리에 가려졌던 산과 강, 바다 풍경이 오롯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차 없고 사람 없고 시끄러운 소음도 없으니 강원도의 드넓은 자연이 다 내 것처럼 느껴진다.
서울에서 두 시간여 차를 달려 영월에 도착했을 때는 고요한 오후였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야트막한 다리가 꽁꽁 얼어붙은 평창강을 지나고 있었다. 강원도의 산을 뒷배경 삼아 강변에 늘어선 키 큰 느릅나무들과 고즈넉하게 조화를 이룬다. 수수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풍경에 반해 강 따라 달리던 차를 되돌려 멈춰서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소박한 다리를 '섶다리'라고 부른다. 매년 다리를 놓았다가 걷어치우는 주천면 판운청년회의 장광수 회장은 "섶이 원래 솔가지라는 뜻"이라며 "솔가지를 촘촘히 올려 상판을 만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밤뒤마을과 미다리마을을 잇는 영월 섶다리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운치 있기로 특히 유명하다. 1980년대 잠수교를 놓으면서 잠시 없앴다가 20년 전 마을 청년회에서 옛 정취를 살려보려고 복원했다.
섶다리는 원래 매년 추수를 마치고 강물이 줄어드는 초겨울쯤 만들었다가 이듬해 여름 불어난 물에 휩쓸려갈 때까지 쓴다. '미(未)다리마을'이란 이름도 장마철에 섶다리가 떠내려가 없다는 뜻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요즘은 마을 청년회에서 10월 중순쯤 설치했다가 5월 중순 철거한다. 봄장마가 들어 강물이 일찍 불어나는 경우엔 철거할 새도 없이 사라진다. 어쨌거나 한여름 성수기에는 섶다리가 빚어내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정경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섶다리를 만들 때는 우선 참나무, 물푸레나무 등 물에 강한 활엽수를 골라 Y자형으로 강바닥에 박는다. 그 위에 굵은 소나무를 얹어 다리 골격을 만든다. 솔가지 상판을 올린 다음 잡풀과 흙을 두껍게 덮어 마무리한다. 높이 2m, 폭 1.2m, 길이 90m쯤 되는 다리 위를 덮는 데 흙 25t이 들어간다고 한다.
다리 위를 걸어보았다. 첫 발짝을 내딛는 순간 폭신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중간쯤 이르니 한없이 적막하고 호젓한 경치 속에 가끔씩 새 소리만 들려왔다. 얼음이 풀리면 강물 속에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빠가사리, 꺽지, 모래무지, 피라미 같은 민물고기가 서식한다. 날이 풀리면 주말에 하루 2000명씩 찾아오기도 한다니, 이 고요 속의 평화를 맘껏 누리려면 춥더라도 지금 가야 한다. 다리 한쪽 끝, 다과를 내는 '섶다방' 굴뚝에서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피어난다.
![영월 섶다리·메타세쿼이아길](http://travel.chosun.com/site/data/img_dir/2016/02/10/2016021001208_1.jpg)
섶다리를 건너 미다리마을로 들어서면 보보스캇 펜션·캠핑장이 있다. 외딴섬처럼 아늑한 이곳에 남이섬 부럽지 않은 메타세쿼이아 산책로가 숨어 있다.
150m 남짓한 산책로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다. 푸른 잎 울창한 성수기엔 '출사족'들이 버스를 대절해 사진 찍으러 오는 곳이지만 한겨울 오후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 녹지 않은 눈길 위로 잎을 모두 떨구고 마른 가지가 서로 몸을 비비는 스산한 풍광이 한없이 쓸쓸하면서도 세상에 나 혼자인 듯 자유롭다. 20년 넘게 걸려 조성됐다는 산책로는 펜션·캠핑장 안에 있지만 누구에게나 무료 개방된다.
가는 길 내비게이션에 '보보스캇 펜션'(033-375-1011)을 입력하면 된다. 서울을 출발해 중앙고속도로→신림IC, 주천 방향 톨게이트→주천사거리→주천시내→송학주천로 따라 6.77㎞ 이동→평창강로 따라 619m 이동→미다리 방면 우회전→보보스캇. 차로 2분 거리의 영월화석박물관(033-375-0088)에선 교과서에 나오는 화석을 만져볼 수 있다. 차로 15분 떨어진 법흥사(033-374-9177)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맛집 섶다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25년 이상 한자리를 지켜온 주천묵집(033-372-3800)이 있다. 직접 쑤어 만든 탱글탱글한 도토리묵밥, 산초 열매 기름에 구워낸 두부 요리가 유명하다. 생감자를 손으로 강판에 갈아 만든 감자전과 옹심이는 씹히는 맛이 살아 있다. 도토리 반죽 위에 두부 토핑을 얹어 피자처럼 만든 도토리빈대떡은 아이들에게도 인기. 주천면사무소 인근 영월 다하누촌 식당가에는 한우와 꺼먹돼지 고깃집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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